우리는 지난 시간까지 하늘의 신령한 복에 대해서 생각을 해봤습니다. 신령한 복을 3가지로
나누어 살펴보았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이었는데, 그것은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셨다는 복입니다.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십자기의 보혈로 우리를 구속해 주시는 구원의 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주시는 인치심의 복이었습니다.
이런 신령한 복으로 인하여 우리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보장 된 것입니다. 이 복이 얼마나 위대한지
바울은 찬송하면서 이 신령한 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런한 복을 받은 사람이라면 우리도 바울 처럼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앉고 있는 현재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찬양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인 치시고 보장하셨으니 미래에 대한 걱정 근심이 사라지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울이 찬양하고 있는 것은 이 세상의 것들이
채워진 것 때문에 찬양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주시고 대속의 은총을 베풀어 주셨으며 성령이 우리 가운데 내주
하심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찬양을 마치고 우리를 또 다른 세계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의 세계입니다.
에베소서 1장은 인사와 찬양과 기도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것은 찬양하는 사람은 기도도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찬양만 하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도만 하고 찬양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찬양하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이요, 기도하는 사람은 찬양하는 사람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바울의 귀에 에베소 교회에 대한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 소문이 무엇입니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믿음과 사랑이 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듣고 하나님께 감사
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 하는 곳입니까? 교회는 믿음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믿음은 없고 사랑만 있는 곳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곳을 성도들이 모인 교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만 있고 사랑이 없는 곳도 성경적인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믿음이 있고 동시에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안에서
믿음이 있으면 예수님의 사랑이 생긴다 는 것입니다.
그러니가 믿음 없이는 예수님의 사랑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 행하는 사랑은 자기 의를 드러내는 '휴머니즘'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믿음이 생기자 사랑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에베소라는 도시에는 점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점치는 일이 그들의 생계의 수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복음이 들어갔습니다.
복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생기자 지금까지 가지고 있는 점치는 책들을 다 모아서 불살랐습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에서 오는 사랑입니다.
왜 이것이 사랑입니까?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은 한 영혼에 대한 긍휼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에서 출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것은, 우리에게 빵을 주시기 위하여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악 가운데 신음하는 영혼의 긍휼함 때문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바로 이 긍휼함이 그들 가운데 있었던 것입니다. 점치면서 살다가 영원히
죽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점치는 책들을 다 불살라 버린 사랑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랑을 하지만 영혼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하고는 거리가 멉니다.
교회 안에서 유력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사회에 높은 위치에있는 성공한 사람을 사랑합니다.
많은 교육을 받은 인테리같은 사람을 사랑합니다. 같은 고향 사람이라고 사랑합니다.
로이든 존스 목사님은 에베소서를 강해하면서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나라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닌 가장 위대한 사람과 함께 하는 것 보다, 비록 비참하게
살지만 그가 성도라면 나는 그사람과 친구가 되고 싶다",
에베소 교회에 대한 소문이 퍼진것은 착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가 아닙니다.
성공한 사람이 많고 지식인들이 많이 모였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로 소문난
이유는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에베소 교회처럼 소문나기를 축원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바울은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창립 초기부터 신앙적 기초가 다져진 가운데 성장하고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아볼로가 이곳에서 그리스도의 도에 대하여 잘 가르쳤을뿐만 아니라 바울이 가서 그들로 성령을
받게 하여 교회가 뜨거워지면서 부흥했습니다.
더군다나 바울이 그곳에 자리잡고 목회 하면서부터 훌륭한 교회를 이루어 놓았습니다.
이모든 것들로 인하여 바울은 그의 마음에서 감사가 저절로 나와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했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보면 아시아 지역의 일곱 교회 중 에베소 교회가 제일 먼저 등장합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가지고 있었던 믿음은 여러 면으로 모범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에는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열심히 배워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된 복음을 전하는 거짓 사도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했습니다.
다만 처음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들었지만 이같은 책망은 이서신을 보낸 시기보다 훨씬 나중의
일이었습니다.
바울이 목회 했던 그시기에는 사랑이 넘쳤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는
책망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에베소 교회를 떠난 후에도 그들의 믿음이 향상되고 사랑이 풍성한 일에 대하여
감사와 기쁨에 벅찼던 것입니다.
바울은 비록 몸은 에베소 교회를 떠나 있었지만 그곳 교인들의 믿음을 전해 들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이 가장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성도들의 믿음이 성장하고
신앙생활을 잘한다는 소식을 들을 때인 것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는 성도를 향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바울의 감사 조건이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감사한 에베소 교인들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성도의 사랑은 어려움을 당한 형제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사랑은 죽은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다음에 성도에 대한 사랑은 그들의 허물을 덮어 주는 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형제들의 죄와 허물을 덮어 주어야할 근거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내는 일은 시기와 다툼과 분쟁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허물을 덮어 주면 사랑과 화평이 넘쳐 교회의 덕을 세우게 되며 교회의 영적 부흥을
가져오게 됩니다.
바울은 많은 교회를 세우고 많은 성도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았지만 특히 에베소 교회를위해
기도할 때마다 감사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하나님께 감사할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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