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 성도들의 믿음과 사랑으로 인하여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어서 오늘 말씀에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받을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그의 바람이 나옵니다.
특히 17절에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계시를 깨달을수 있는 성령의 은혜가 에베소 교인들에게 임하기를 기원한다 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에 대해서 알기 원한다면, 신학 서적을 읽으면 될 것입니다.
경건 서적을 읽으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논문을 읽으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좋은 책을 읽는 하더라도 그 책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설명을 할 뿐, 하나님의 인격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책으로 알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수 있는것은 하나님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야만 알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와 계시의 정신은 다름아닌 성령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
가 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주시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를 부르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수 있는 사람들이 성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신령한 복은 누구나 깨닫고 알수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깨달을수
있도록 이끌어 주셔야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성령의 내주를 '지혜와 계시의 정신'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전 2장10절 말씀을보면 이말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자들을 위하여 예배하신 모든것은 오직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
셨으니,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오직 성령으로 우리에게 보이셨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나 지혜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적인 것으로는 생각할 수도 없고 상상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같은 성령의 지혜와 계시를 알기 위하여서는 어떻게 하여야 될까요?,
첫째로, 진리를 배워야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11편 2절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행사가 다 크시니, 이를 즐거워하는 자가 다 연구하는
도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즐거워 하는자 곧 배우는 자가 알수 있습니다.
또한 사도행전 17장 11절 말씀을 보면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신사적
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뵈뢰아 교인들 중에는 진리의 말씀을 열심히 공부하는 가운데 믿는자가 날로 많아졌고 그리
고 깨달음으로 부흥되었음을 알수 있습니다.
둘째로, 진리를 얻기를 사모해야 알 수 있습니다.
잠언 8장10절에서 "너희가 은을 받지 말고 내 훈계를 받으며 정금보다 지식을 얻으라, 대저
지혜는 진주보다 나으므로 무릇 원하는 것을 이에 비교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째로, 진리의 말씀을 듣는 자가 알 수 있습니다.
잠언 8장32절에서 "내 아들아 이제 내게 들어라, 내도를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누구든지
내게 들으며 날마다 내문곁에서 기다리며 문설주옆에서 기다리는자는 복이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런 지혜와 계시의 영을 받으면 무엇을 알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먼저 하나님을 알수 있게 됩니다. 17절 후반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게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 지식은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영을 받지못한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을 깨달아 알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마음의눈을 밝혀주십니다. 18절에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신다고 하셨습니다.
신령한 눈은 어떻게 열립니까? 지혜와 계시의 영이 열어 주실 때 열립니다.
그러면 이처럼 신령한 눈이 열릴 때 무엇이 보이게 됩니까?
첫째로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보입니다.
이 소망은 환상으로 보는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보게 됩니다.
이처럼 지혜와 계시의 영을받아 마음눈이 열려진 사람만이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믿음
으로 확실히 바라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왜 구원시켜 주셨나? 나를 어떻게 사용하실 것인가?
아는 것이 곧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요셉은 바로 이 부르심의 소망이 분명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감옥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니엘은 하나님을 섬기는 비젼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속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문제는 바로 소망과 비젼이 없다는데 있는 것입니다.
비젼이 없으면 우리는 현실탓을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비젼이있는 사람은 현실을 비관
하지 않습니다. 비젼이 있는 사람은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양이 나오고 기쁨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부르심의 소망이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면 이러한 소망은 어떻게 갖게됩니까?
하나님을 알수록 이소망이 분명해 지는 것입니다. 성령충만 할수록 이소망이 더크게 보이는
것입니다. 다니엘이 사자굴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았던것은 하나님을 향한 다니엘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이 고난 가운데에서도 꿈을잃지 않았던것은 하나님이 언제나 자신과 함께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기업의 후사입니다. 그러나 그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가는 영의 눈이
밝히 열린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 기업의 풍성함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을 때에 우리는 물질의 풍성함으로 사는 것이 복이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물질이 많은것은 좋은 것입니다. 물질이 많으면 하나님의 일도 더많이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시는 풍성함은 영혼에 대한 복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을 꼭잡고 있을때 풍성한 영광스러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나를 부르셔서 초라한 나의 옷을벗기시고 풍성한 은혜의 옷으로 갈아입혀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사회적인 성공이 나를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 나를 높여주어야 풍성할수 있는게 아닙니다. 내영혼에 지혜와 계시의 영이 임할때
우리가 풍성을 받고 누릴수 있는것입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신의 권세와 능력으로 우주 만물의 모든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기위해선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눈이 열려
져야만 가능합니다. 19절에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기원하는 간구를 하고있습니다.
하나님께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의 능력이 무엇입니까?
첫째로, 창조의 능력자 이십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이십니다.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능력의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버지 이십니다.
때문에 이 땅에서 무엇을 얼만큼 가지고 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것은 능력의 하나님 곧 나의 아버지께서 함께하신다는 사실을알고 깨닫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될때 우리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수있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구원의 능력자이십니다. 우리는 스스로 구원할수 없는 존재들 입니다.
그래서 죽을수밖에 없는 마른뼈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하나님은 마른뼈인 우리를
살리 셨습니다. 우리를 변화 시키셨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능력은 날마다 새롭게 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고갈되지 않습니다. 한번 쓰고 나면 없어지는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날마다 새롭고 영원합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면 누구에게나 시간과 장소에도 구애받지않고 임하셔서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은 감옥에서도 임하십니다.
때로는 병원에도 나타나시며, 죽음 앞에서도 이 능력은 나타납니다.
나의 보잘것 없는것도 능력의 하나님께 드리면 그능력이 살아나 역사하게 되는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이모든것을 보았기 때문에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마음의 문이 열려 이같은 그리스도인의 영광의 소망을 바라
볼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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