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교회.에베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자 (에베소서 3:14-19)

Andy1954 2022. 9. 6. 02:32

에베소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는, 18절과 19절에서, 절정에 달하고 있습니다.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는 것입니다.

1.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나, 그리스도의 말씀 안에 거하는, 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데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① 17절 말씀에서, 우리의 믿음이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혀야 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 그 뿌리가 박혀야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주님에 대한 사랑은, 수박 겉할끼식 사랑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쓴 일이 생기면, 뱉을 수밖에 없습니다.

뿌리가 박힌 사랑은, 깊은 사랑을 말합니다.

목숨을 다하고, 몸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받치는 사랑은 뿌리가 깊이 박힌 사랑에서 나옵니다.

이처럼 뿌리가 깊이 박힌 사랑은, 주님의 사랑을 참으로 깨달을 때,

그 뿌리가 내 마음에, 더욱 깊이 박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② 다음에 17절 말미에 보면, "터가 굳어져서"라고 말씀해 줍니다.

이것은 주님의 사랑이, 내 마음속에서 터가 굳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사랑의 터가 단단하지 않으면, 엷은 사랑, 변질되는 사랑이 되기 쉽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덥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한 사랑은,

터도 든든치 못하고, 뿌리도 깊지 못한, 세속적인 신앙에서 나온 사랑입니다.

터를 굳히는 일은, 농부가 씨앗을 심고난 후,

발로 밟아 주는 일처럼, 순종으로 잘 다져져야 하는 것입니다.

 

③ 그리고 우리는 주님의 사랑을, 지식으로 알아야 합니다.

18절에서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은, 우리들로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어떻게 알게된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지식을 통해서, 알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멀리하는 성도는, 말씀에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지식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에 대한 사랑이, 뜨거울 수도 없고, 그 뜨거움이 지속될 수도 없습니다.

 

④ 17절에서 말씀해 주는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란 말씀에 나오는,

너희란 대상은 성도들끼리의 사랑의 생활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는 생활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는, 비결이기도 하며,

우리 안에 깊이 내려진,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은 무엇입니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우리들 성도들 간의 사랑을 보고,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2. 충만하신 주님의 사랑

주님의 사랑에 대해, 바울은 19절에서,

"그 넒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알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주님의 사랑은, 무한한 사랑, 인간의 언어적 표현으로는, 나타낼 수 없는,

한량없는 사랑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넒이, 길이, 높이, 깊이 등의 사랑은, 4각형 형태의 사랑을 의미하는데,

우리는 이 사랑을, 한없이 크고, 넒은 보자기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 어떤 죄나 허물이라도, 감싸 줄 수 있는 놀라운 사랑,

아무리 무서운 죄라도, 능히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을 보여 주는 표현인 것입니다.

이 보자기는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보혈로, 짜진 것이기 때문에,

온 인류의 죄를 덮고도, 넉넉할만한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의 사랑인 것입니다.

주님의 곁에서 죽은, 한편쪽 강도도 이 보자기로 싸 메이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의 허물도, 이 주님의 사랑의 보자기로 덮어졌습니다.

이 사랑의 보자기가, 이처럼 크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죄를 보지 말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에 비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보자기는, 너무나도 보잘 것이 없습니다.

그 규모가 ,짧고 좁고 얕으며 깊지 못합니다.

조금만 다쳐도 찢어지고, 갈라져서, 조그마한 형제의 죄나 허물도, 덮어주기에 부족합니다.

덮어 주노라고 해도, 옆으로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일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사랑만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내게 충만하게 채우심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어떤 사랑을 나타내시고, 주님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어떻게 보여 주셨는가를, 잘 배우고, 깨달아,

그 충만하신 주님의 사랑 가운데서, 충만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