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네가 믿으면

교회의 본질(마태 16장 13∼20절) (The Essence of the Church)

Andy1954 2023. 9. 24. 12:10

오늘 본문 18절에서 예수님은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 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에 의해서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예수님이 기뻐하시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보면서 교회의 주인이시며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며 영화롭게 해드리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교회는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어야 합니다.

본문 말씀 13-14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기의 “인자(人子)” 곧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스스로를 칭하실 때, “인자”라는 칭호를 즐겨 사용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많은 사람들은 세례 요한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요한복음 1장19절이하에서 

나는 그리스도(메시야)가 아니라 하며, "나는 광야에서 외치는자의 소리로다"라고 

거듭 말하고 있으며, 요한복음 3장 28절에서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4장 2절 말씀을 보면 예수의 소문을 들은 헤롯왕도 

그가 목베어 죽인 세례 요한이 살아 온줄로 생각하고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라기 4장 4-6절에는 유대인들은 죽지 않고 승천한 엘리야가, 

종말의 심판에 앞서 다시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엘리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들로부터 어떤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이런 질문을 하신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견해와 제자들이 

가지고 있는 올바른 신앙적 견해를 대조하시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또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보았다는 사실은, 그들이 예수님을 얕잡아보거나 무시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은 마태 11장11절에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만큼 세례 요한은 위대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선지자 엘리야도 선지자 예레미야도 위대한 인물들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신명기 34장 10절 의하면, 모세도 역시 선지자라고 불렸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라고 보았든지,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혹은 모세와 같은 또 다른 선지자로 보았든지 

이는 예수님에대한 어느 정도의 경의적인 표현으로 볼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는 믿지 않던 세상 사람들의 

견해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5-16절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물으셨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러한 믿음과 고백은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는 

아주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바로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빌립보 가이사랴'라는 지명은, 본래 '바네아스' (Paneas) 였습니다. 

'바네아스' 라는 말은, 헬라의 신, “판(Pan)" 에게 바쳐진 동네,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헬라의 신 “판”은 목양(牧羊)의 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에는 목양의 신을 상징하는 우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 곳에 헤롯 왕이, '가이사의 신전' 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후에 그 곳의 이름이 '빌립보 가이사라' 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어째든, 빌립보 가이사랴에는 이런저런 우상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아들' 이라는 단어는, 둘 사이의 본질이 서로 같을 때 사용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말은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과, 본질적으로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곧 하나님 이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셨습니까? 

그것은 우리를 구원하실 '그리스도'가 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바로, 이와 같은 신앙을 고백하면서, 예수님에게 예배하는 자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 고백이 

확실해야 합니다.

 

요한 20:28절 말씀을 보면,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 이시니이다.” 라고,

예수님에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던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그리고 도마처럼,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고백할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이어서, 본문 1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메시야) 로서의 구원사역에 대해서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칭찬하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도저히 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함께 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예수님을 세례 요한이나, 엘리야나,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만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또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로 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계속해서, 예수님은 베드로가 복된 이유를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여기서 “이를”은, 한 마디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 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혈육은 하나님과는 관계가 없는, 곧 인간적인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지혜, 또는 노력이나, 경험 등등을 

총체적으로 가리킨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전 1장21절 말씀을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무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사람이, 자기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혈육으로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부각시키시기 위해서, 제자들에게 질문을 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본래 이름은 '시몬' 이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이 '베드로' 라는 이름을 더하셨습니다. 

'바요나' 는 아람어로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시몬의 아버지의 이름이 아람어로는 요나, 히브리어로는 '요한'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는 '바요나 시몬' 즉, '요나의 아들 시몬' 에 불과했습니다. 

베드로가 자신의 신분이나 그의 인간적인 지식, 또는 능력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았던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어떻게, 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알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도, 이 사실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도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우리 성경은 “알게 하다”라는 단어로 사용되었습니다만. 

영어 성경을 보면, “계시하다”(reveal) 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계시하셨습니다. 

어디에 계시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에 계시하셨습니다.

 

요한 5장 39절 말씀을 보면, 바로 이점에 대해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처럼 성경이 바로,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아니고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 수 있는 길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절대적 권위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교회는 사람이 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장로님이나 권사님이 교회를 세우는게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내 교회(my church)를 세우리니", 교회는 예수님이 세우시는 것입니다.

어디에다 세우신다고 말씀하십니까? "이 반석 위에" 세우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반석은 무엇을 의미 합니까?

첫째로, 베드로가 바로 반석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로 로마 카톨릭에서 주장하고 있는 견해입니다. 

그들은 교황이, 베드로와 그의 후예라고 말하면서, 자신들이 바로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또한 에베소서 2장 20절의 말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말씀과 연계시키면서, 

교회의 유형적 조직체를 떠나서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베드로가 한, 신앙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견해로, 

대부분의 개혁주의 교회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의 본질이 구원 받은 모든 성도들의 영적 연합과 교통에 있으므로, 

이러한 신앙고백을 한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가 반석이다 라고,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상보훈의 결론 부분인, 마태복음 7장24-25절에도 반석이 나오는데, 

이 때의 반석은, 예수님이나 혹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가르키고 있으며. 

시편 118편 22절을 인용한 마태복음 21장42절말씀, 

그리고 이사야 28장16절의 모퉁이 돌, 이사야 8장 14절의 반석은, 

다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다고 볼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초대교회 시대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의 한 사람인, 

성 어거스틴(St. Augustine)도 반석이 베드로가 아니라, 예수님을 가르킨다고 

주장하고 있을뿐 아니라, 사도행전 4장8절 이하의, 베드로의 설교에서도, 

예수님이 산돌이라고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반석은 바로 예수님을 가르킨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개혁주의자들은,  

베드로의 고백은, 바로 예수님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에, 

반석은, 곧 예수님 또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가리킨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함으로, 그 고백 위에,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앙위에 세워진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넘보지 못할 정도로 

든든하고, 영원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음부”란,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무덤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니까 “음부의 권세”는 무덤으로 들어가는 관문, 곧 “죽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음부의 권세도,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진, 주님의 교회를, 

대적할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의 교회는, 결코, 넘어지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주님의 교회는, 영원 무궁하다,는 뜻입니다.

 

23절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주님으로부터, 책망받는 모습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항변했습니다. 

말하자면, 베드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혈육을 따라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베드로는 예수님에게서 책망을 받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말하자면, 이 때 베드로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사탄이 원하는 혈육의 길을 따르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인 방법에 의지하며, 혈육을 따르려 해서는 안됩니다. 

그러다가는 예수님의 책망만 받기 십상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본질과 참 모습을 따라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교회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이어서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열쇠는 문을 열고, 닫는 일에 사용됩니다. 

오늘 본문의 용어로 말하면, 풀고 매는 일에 사용됩니다. 

베드로는 천국의 열쇠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그가 땅에서 매고 푸는 대로 하늘에서도 매고 풀릴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놀라운 권세가 아닐수 없습니다. 

물론, 이와 같은 권세는 베드로에게만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똑같은 권세가 다른 제자들에게도, 

그리고 마태 18:17∼18절 말씀을 보면예수님이 세우신 교회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졌음을 알수 있습니다.

 

또, 천국의 열쇠는 우리에게도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해석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1) 로마 카톨릭에서는 이 귀절에 의거, 교황이 교회 밖의 성도를 구원에 

포함시키거나 배제시킬수 있는 권세를 가졌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10장 13절말씀에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은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로 결정 되는것 이기때문에,  

로마 카톨릭의 이같은 주장은 비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 천국열쇠는 구원을 결정하거나, 죄를 사해주는 그런 권위나 파워를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천국백성이 되게 

하는것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을 보면, 베드로가 오순절에 설교할 때에 삼천여명이 회개하였고, 

4장 4절에는, 믿는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유대인에게 복음을 통하여 천국문을 열어 준것입니다.

유대인에게 뿐만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천국문을 열어준 것을 볼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천국 열쇠로 유대인에게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한 위대한 사도임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신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을 

뽐내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장롱속에 꼭꼭 숨겨 놓으라고 주신것도 아닙니다.

만민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본질이며 사명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참으로, 의외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엔,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사람에게 널리 전하라고 하여야 자연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경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인 것을 고백하고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해 놓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언뜻 듣기에는 앞뒤의 말씀이 모순같이 느껴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메시야 비밀'이라고 합니다

 

지금, 예수님과 제자들은 사람들을 피해서 빌립보 가이사랴로 오셨습니다. 

왜, 사람들을 피해서 이곳에 오셨습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왕으로 삼아서 그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주시고 

로마의 억압에서 벗어나게 해주시기를 바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 제자들이 나아가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란 사실을 

세상에 널리 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은, 그 곳으로 몰려와서 예수님을 억지로 붙들어 자기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이 땅에서 왕 노릇 하시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다시 한번 이 사실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14장17절 말씀을 보게되면,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며 

구원의 희락을 누리는 영적 나라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복음을 전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언제나 영적인 일에 힘써야 합니다. 

바로 이것을 위해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교회의 참 모습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 것입니다. 

둘째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것입니다. 

셋째로, 순수하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라고 고백함으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으며 그 순간에 영생을 얻은 것입니다.

우리가 영생을 얻은 근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요한복음 6장 40절에도,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라 하였으며,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것이라고, 말씀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영생을 얻은 우리들은, 하나님 말씀과 건전한 신앙 안에서 올바른 구원의 길을 

보여 주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고 증거함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세속화된 이 세상에서 오늘날까지 교회의 참 모습을 지키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앞으로도 변함없이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잘 감당하여 

이 땅에서 진리의 횃불을 높이들고 이 시대를 이끌어가는 시온성과 같은,

하나님의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