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살펴볼 본문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나오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대로, 바울은 제2차 전도여행 때에, 데살로니가에서
세 안식일 머물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세 가지로 밝혔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먼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닫고, 늘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5장16절 말씀과 같이, “항상 기뻐하라”입니다(Rejoice Always).
“항상 기뻐하라.” 이 말씀은 “항상”이라는 부사와, “기뻐하라”는 동사,
두 단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기뻐하라”는 동사는, 명령형(The Command)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거역하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만 “항상 기뻐하라”고 명하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의 택하신 모든 백성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을 보면, 거기에서도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라고,
똑같이 하나님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대로 신약성경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헬라어에서는, 강조하고(The Emphasis) 있는 말을 언제나 맨 앞에 내세웁니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서, 앞에 나오는 단어는 “항상”입니다.
따라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에서, 강조하고 있는 말은 “항상” 입니다.
하루에 몇 번 기뻐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여기에는 아무런 단서나 조건이 없습니다.
언제나, 늘, 변함없이, 우리는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서12장 15절 말씀을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서 울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서로 앞뒤가 안 맞는. 모순되는 명령이 아닙니까? 아닙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울 때는, 우리의 '외적 감정'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때에라도, 우리는 항상 '내적 기쁨'을 유지할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능합니다.
고후6장10절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습니까?
슬픈 일을 당하면 우리의 외적 감정은, 자연스럽게 슬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나 힘들 때에도 내적으로는 변함없이 기뻐할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편 4장7절 말씀을 보게되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저희의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시편 기자는 지금, 성도의 기쁨과 세상 사람들의 기쁨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성도는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성도의 마음에 기쁨을 두시기 때문입니다.
성도가,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기쁨의 근원(The Source)이 영원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기쁨의 근원을 곡식과 새 포도주의 풍성함에 두기 때문입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는, 결코 영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기쁨의 의미(The Significance)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는,
초자연적인 기쁨입니다. 이와 같은 기쁨은 성도들에게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십니다.
로마서 14장 17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5장22절에서도,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실 때의 이 기쁨은,
바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만 선물로 주어지는 그런 기쁨인 것입니다.
이 기쁨은, 신령한 기쁨으로서 성령 안에서만 주어집니다.
그 기쁨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납니다.
그러기에, 불신자들은 그와 같은 기쁨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까?
그것은, 우리가 항상 기뻐해야 할 이유(The Motivation)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시편 28편 7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저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저를 찬송하리로다"
다윗이 크게 기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변 상황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힘과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다윗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하나님을 인하여 크게 기뻐했습니다
시편 89편16절에도,
"그들은 종일 주의 이름때문에 기뻐하며 주의 공의로 말미암아 높아지오니,"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인하여 기뻐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그리고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역사로 인해서
기뻐했던 것입니다.
하박국 3장 17절 말씀을 보면, 선지자 하박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면, 하박국 선지자는 실망할 일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며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인하여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어진 상황이 좋지 않거나 어려운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힘과 방패가 되시며 우리의 도움이 되심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를 위해 예비된 영원한 천국을 인하여 기뻐해야 합니다.
누가 10장 20절말씀을 보면 칠십 인을 세워 각 동네와 각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게 하신 일이 나옵니다.
이때, 칠심 인들이 돌아와 각종 능력과 권능이 나타난것을 보고 기뻐했을때,
주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를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고,
천국 백성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장차 영화로운 천국을 영원한 기업으로,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4절에서도,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 옛날 성도들은 핍박자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소유를 억울하게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했습니다.
그들은 천국과 그곳에서 누릴 영원한 소유를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약속된 장래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는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주신 것들로 인해서 기뻐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15장 16절을 보면, 예레미야 선지자는 주신 말씀으로 기뻐했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에베소서 1장 3절에서는, 하늘의 신령한 복으로 기뻐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신령한 하늘의 복들)
살전 3장 9절에는 믿음의 성도들로 인하여 기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너희=성도들)
이외에도, 우리가 항상 기뻐할 이유는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니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늘 함께 하시니,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성령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환경이 변하는 것을 바라보지 맙시다.
영원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바라봅시다.
그리함으로서 하나님의 명과 뜻을 따라 항상 기뻐하는 우리 모두의 삶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살전 5장17절 말씀대로 “쉬지 말고 기도하라”입니다(Pray Continually).
이 말씀에서도 “쉬지 말고”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다른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말고 하루 온종일
기도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는 밤이 되면 잠을 자야 합니다. 낮에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이는 우리가 숨 쉬는 것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도, 쉬지 않고 계속해서 숨을 쉽니다.
잠을 자면서도, 쉬지 않고 숨을 쉽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얼마든지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기도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는,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영적 호흡과 같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과의 교통이 계속 이루어지면,
쉬지 않고 기도하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언제나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하는 모든 일도 하나님 안에서, 은혜롭게 이루어질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비유의 말씀(The Parables of Jesus)을 주셨습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누가 11장에 나오는 “달가워하지 않는 벗의 비유”와
누가 18장에 기록된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를 살펴보겠습니다.
다른 비유들과는 달리, 이 두 비유는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은 두 사람을
등장 인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들 두 비유는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를
분명하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두 비유를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달가워하지 않는 벗의 비유”입니다(The Parable of the Reluctant Friend).
누가 11:5-8절 말씀까지를 보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저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함께, 나와 침소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됨을 인하여서는 일어나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여기에 나오는 사람은, 밤중에 찾아온 친구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친구의 요구를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요구를 거절하면 밤새도록 계속 성가시게 하여 잠을 잘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자기 친구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했습니다.
이와 같이, 벗이 간청하면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요구를 들어줍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달가워하지 않는 벗과는 전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기꺼이 그리고 후히,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쉬지 말고 계속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입니다(The Parable of the Unjust Judge).
누가 18:1-5절 말씀까지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달가워하지 않는 벗과 마찬가지로 여기에 나오는 불의한 재판관도 하나님을
전혀 닮지 않은 인물입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그렇지만 과부가, 계속해서 번거롭게 하니까, 어쩔 수 없이 그는 자기를
번거롭게 하는 과부의 요구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과는 전혀 다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부르짖으면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하라고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삶(The Example of Jesus)을 몸소
보여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과 저녁 그리고 밤 등 끊임없이, 하나님 아버지와 영적으로 교통하셨습니다.
마가 1장 35절 말씀을 보면, 새벽에 기도하시는 에수님을 볼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마태 14장 23절에도, 저녁에 기도하시는 예수님을 볼수 있습니다.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니라,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누가 6장 12절에서는, 밤새도록 기도하시는 에수님을 볼수 있습니다.
"이 때에 예수께서 기도하시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시고"
누가 22장 44절에서는,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마태 26장 44절엔,
"또 저희를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히브리서 5장 7절에도,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얼굴에서 흐르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다.
아울러, 그 때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와 같은 기도를 세 번이나 반복하셨습니다.
그때마다 제자들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물론 제자들도 처음에는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들은 잠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말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때, 그렇게 힘쓰고 애써 행하셨습니까?
예수님이, 귀신을 쫓아내실 때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만 그러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줍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몸소 간절하게 기도하심으로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간절하게 기도합시다.
하나님은 오래 참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 창고의 문을 활짝 여시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보화들을 아낌없이
내려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풍성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살전 5장18절 말씀과 같이, “범사에 감사하라”입니다(Give Thanks In Everything).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잘 되면, 그들은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 줄 압니다.
따라서, 불신자들은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않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로마서 1장 2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딤후 3장 2절 말씀에서도,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그러나, 거듭난 성도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압니다.
아울러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줄 압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범사에 감사하며 삽니다.
만일 거듭난 성도가 하나님에게 감사하지 않는다면 이는 지극히 비정상적인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연약함과 죄성 때문에,우리는 감사를 잊고
지낼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감사할 것을 계속적으로 반복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잊었던 감사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감사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우리에게 더 크고 풍성한 복을 허락하십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이 말씀도 “범사에”라는 부사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감사하지 못할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 한 가지 예외라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서 감사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예외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감사는, 타산적이거나 계산적이어서는 안 됩니다.
어떠한 상황 어떠한 사건,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에서 하나님에게 늘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성도의 마땅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6장 10절 말씀을 보면, 다니엘의 감사가 나옵니다.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은, 자기가 왕의 금령을 어길 경우 사자굴에 던져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 금령이 바로 자기를 겨냥해서 만든 것임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변함없이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렸습니다
고전 1장 4절에서는, 사도 바울의 감사가 나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몹시도 아프게 만들었던 교회였습니다.
고린도 교회 안에 게바파가 있었고 아볼로파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유 없이 바울을 악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항상 하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는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는 신앙의 문제이지 환경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변의 환경과 사람에 따라서 우리의 감사가 좌우되어서는 안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로마서 8장 28절 말씀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섭리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어떤 선한 일이 생겼을 때, 행여 그 일이 앞으로 잘못되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일이 그대로 선이 되도록 섭리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가 보기에, 선하지 않은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일시적으로 그 일이 우리에게 선하지 않게 보여질 뿐입니다.
왜냐하면, 궁극에 가서는 하나님이 그 일을 선이 되도록 만드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 눈에 선하게 보이는 일이든 선하게 보이지 않는 일이든, 우리는
상관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범사에 곧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골로새서 2장 6-7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행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범사에 감사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범사에 감사하며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마태 11장 25-27절 말슴에서도,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내게 주셨으니"
예수님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짐을 아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그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모든 일에 감사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까지도 감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어느 다락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지키셨습니다.
이는 마지막 유월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새 언약의 백성들을 위하여 예수님은 성찬을 새롭게 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떡과 잔을 인하여 하나님에게 사례 곧, 감사하셨습니다.
이때의 떡과 잔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하나님의 뜻임을 아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자신이 지셔야 할 십자가로 인해서 하나님에게 감사하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18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세상 사람들은 항상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쉬지 않고 기도하기는 커녕, 아예 기도하려고 들지를 않습니다.
그들은 범사에 감사하기는 커녕,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그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의 주로 이미 받은 사람들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며 다스리시며 섭리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항상, 기뻐합시다. 쉬지 말고, 기도합시다. 범사에 감사합시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함으로 하늘의 복을 풍성하게 받고 누리실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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