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일부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영적으로 계속해서 성장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성령 하나님의 감동하심에 따라서, 오늘 본문에서 신앙 성숙의 원리를 밝히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 전에는 잘못된 것들을
추구하며 살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알기 전에 자기가 유익하게 생각하며 자랑할만하다고
여겼던 것들을 일곱 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5-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2) 이스라엘 족속이요 3) 베냐민 지파요
4)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5)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6)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7)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이 가운데 처음 네 가지는 선천적으로, 그에게 주어진 것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뒤에 나오는 세 가지는, 후천적으로 추구해서 얻은 것들이었습니다.
아무튼 과거에, 그는 이것들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알고 난 뒤에는 달라졌습니다.
빌립보서 3장7절을 보면,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바울은, 과거에 자기에게 유익한 줄로 여기며 자랑하던 것들을 이제는 다 해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였습니다.
과거, 바울이 자랑했던 것들은, 이제 바울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일에
오히려 방해가 될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과거의 그 모든 자랑거리들을 기꺼이 떨쳐버렸습니다.
그러자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얻게 된 것들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빌립보서 3장8-11절을 보게되면,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섯 가지를
새롭게 얻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의 '지식'을 얻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의'를 얻었습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권능'을 얻었습니다.
넷째,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을 얻었습니다.
다섯째,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이 얻은 것들을 너무나도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 이후로 철저하게 그리스도 예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다음절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7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
바울은, 우리에게 자기를 본받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과연 우리가 어떤 점을 바울에게서 배워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삶을 예로 들면서
우리들에게 영적 성숙의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우리에게 우리의 신앙 생활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면
이 시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단호하게 그것을 떨쳐버리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더 귀한 것들을 새롭게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 영적 성숙의 원리를 잘 깨닫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 원리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또한, 영적으로 더욱 성숙해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로, 바울은,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않았습니다(Awareness).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겸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빌립보서 3장 12절을 보면,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여기서 바울은 이미 얻었다고 말씀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얻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가 무엇을 아직도 얻지 못했습니까?
바로 뒤에 나오는 말씀이 밝혀주고 있습니다.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아직은 바울이 온전함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미 말씀 드린 대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섯 가지를 새롭게 얻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다섯 가지 면에서 온전함을 얻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첫째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고전13장9절 말씀을 보면,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에 대해서도, 알더라도 어디까지나 부분적으로 알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더 많이 더 깊이 알기 위해서
부단이 애쓰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둘째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의'였습니다.
요한 13장10절을 보면,
예수님이 베드로의 발을 씻겨주시면서, 베드로에게 하셨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이미 목욕을 한 자는, 또다시 목욕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목욕을 한 자라도, 필요할 때마다 발은 씻고 또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이미 의롭다 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연약한 육신을 갖고 살기때문에 자주 넘어지며 죄를 범합니다.
그 때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아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셋째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귀신도 쫓아내었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렸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자신에게 있는 육체의 가시는 없앨 수가 없었습니다.
고후 12장 7절 말씀을 보면,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바울이 너무 자만하지 않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울의 육체에 가시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의 육체에 있는 가시가 그를 겸손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가시로 인해서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넷째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함' 이었습니다.
바울은, 그 동안 그리스도를 위하여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빌립보서를 기록할 당시에도, 그는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빌립보서 3장10절 말씀 후반부에 보면,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바울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까지 본받기를 원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바라던 대로 그의 목에 붉은 피를 흘리면서 순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때까지 자신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온전하게 참여했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섯째로 얻은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늘 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미래적인 일입니다.
아직까지, 실제적으로는 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많은 것들을 새롭게 얻었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모든 것을 온전하게 다 얻었다고 자만하지 않았습니다.
늘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앞에 있는 온전함을 바라보며 나아갔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그 누구보다도 믿음 위에 굳게 선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가 아직도 온전함에 이르지 못했다고 고백한다면
우리는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우리도 바울과 같은 고백을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이와 같이 신앙 성숙의 첫걸음은 우리의 부족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게 될 때 겸손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아
영적으로 더욱 성숙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자만해져서 온전하다고 착각하면 더 이상 영적인 성숙이
있을 수 없으며 도리어 영적으로 교만해질 것입니다.
영적으로 교만해지면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외식과 위선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과 같이, 항상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사모하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아 영적으로 성숙해 질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바울은 최선을 다했습니다(Maximum Effort).
영적 성숙을 위해서는 먼저 자신의 부족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땅히 해야할 바를 해야 합니다.
바울은,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말하자면, 푯대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 12절 말씀, 후반부 입니다.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이와 같이, 바울은 달려가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까?
바울이 달려가서 잡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무슨 뜻입니까? 쉽게 말씀을 드리면 이와 같은 뜻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을 잡으신 목적과 바울이 예수님에게 잡힌 후부터
그가 잡고자 했던 목적이 똑같았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다메섹으로 가던 길에서 예수님에게 잡힌 바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바울을 잡으셨습니까?
로마서 8장 29-30절 말씀을 보게되면, 그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바울을 하나님의 아들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바울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보혈로 그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서 그를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은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미리 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의롭다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원한 섭리 가운데 이미 영화롭게 되기로 작정되었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미리 아시고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서 였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삶의 푯대, 곧 그가 추구하는 목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예수님을 본받으라고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을 붙잡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그의 삶의 푯대로 삼고 그것을 잡으려고
최선을 다해 부지런히 달렸습니다.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까지, 무엇을 삶의 푯대로 삼고 살아왔습니까?
물질 입니까? 권세 입니까? 명예 입니까? 아니면, 건강입니까?
이와 같은 것들이, 우리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푯대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땅히 추구해야 할삶의 푯대는,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다름아닌,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시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삶의 푯대로 삼고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학생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힘써 예수님을 본받기 바랍니다.
주부는 가정에서 가사를 돌보면서 힘써 예수님을 닮기 바랍니다.
직장인들은 직장에서 일하면서 힘써 예수님을 본받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고
예수님이 뜻하신 것을 우리도 뜻하고
예수님이 목적으로 삼으신 것을 우리도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을 푯대로 삼고, 그것을 잡으려고 힘껏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바울은 집중했습니다(Concentration).
달음박질하는 사람은, 앞에 있는 푯대만을 집중해서 바라보아야 합니다.
달음박질하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거나 옆에 있는 관중들을 바라보면 제대로
뛸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본받는 일을 푯대로 삼고 그 푯대만을 바라보며 달려가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3절 말씀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여기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가리켜서 “형제들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애정 어린, 표현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 의해서 세워졌습니다.
그것도, 유럽에서 최초로 세워진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그 곳에서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주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은 모함을 받아 심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워진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였습니다.
그만큼 빌립보 교회와, 그 곳의 성도들에 대한 바울의 애정은 각별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 곳을 떠난 후에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율법주의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누구든지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기만 하면 얼마든지 온전해질 수 있다고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했습니다.
이와 같은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어서 설명했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무슨 뜻입니까?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롭게 얻은 것이 그렇게 많건만
나는 아직도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있다.
그러니 할례를 받고 율법만 지키면 온전하게 된다는 율법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에
미혹을 받지 않도록 하라.” 그러면서 바울은 계속해서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바울은, 오직 한 가지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그가 집중했던 한 가지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본받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닮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바울은 두 가지를 덧붙여서 말씀했습니다.
소극적으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반면에 적극적으로, 바울은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과거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과거에 얽메인 사람이 아니라 내일을 향하여 달리는 소망의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이와 같이 우리에게 새 날을 주셨습니까?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한 주를 주셨습니까?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라고 하십니다.
오직 한 가지 일, 곧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집중하라고 하심입니다.
누가 9장 62절을 보게되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우리는 손에 쟁기를 잡았습니다.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맙시다. 주변을 둘러보지 맙시다.
무슨 일을 하든지, 오로지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집중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바울에게는 동기가 분명했습니다(Motivation).
무슨 일을 할때, 동기가 분명하면 그 일을 보다 효율적으로 잘 해낼 수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때 그에게는 분명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14절 말씀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이, 푯대로 삼고 달려갔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예수님을, 온전하게 본받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달려가도 이 땅에서는 이 푯대에 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실 때, 마침내 이 푯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상을 주십니다.
그 상이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기도하며 그토록 바라던 것 푯대로 삼고 뛰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상은, 바로 우리가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실 때, 우리는 예수님처럼 온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영광을 유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딤후 4장 7-8절 말씀을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이와 같이, 장차 우리도 “의의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의가 온전하게 주어질 것입니다.
그리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를 온전히 본받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늘 나라의 모든 영광을 세세토록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에게는, 분명한 동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푯대를 향하여 달음박질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다섯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Divine Help).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까지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전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서 우리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빌립보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지금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을 염두에 두면서 이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기 때문에 온전하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들이 온전함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는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실 상으로 우리의 온전함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은, 이 땅에서도 또한 내세에서도 결코 온전함을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이 당부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여기서 말씀하는 “이렇게”는 무엇을 뜻합니까?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기 바라는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지금까지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한 영적 성숙의 원리들을 생각해보면 될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네 가지의 원리를 말씀했습니다.
첫째, 우리 자신의 부족함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넷째,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 있다는 확실한 동기를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이미 자기들이 온전함을 이루었다고 여겼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도 예수님을 본받기보다는 오히려 육신의 일에
파묻혀 사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이와 같은 사람들을, 염두에 두면서 바울은, 오늘 본문 15절 하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무슨 뜻입니까? 바울은,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와는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던 것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 제가 그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전해야 할 말씀은 다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마음을 여시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이와 같이, 바울은 달리 생각하는 자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어떻게 깨우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먼저 말씀으로 그들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은 사랑의 매를 들어서 징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때로는 우리도, 자만에 빠질 수가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집중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도, 그저 세상사는 재미에만 몰두할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은 먼저 말씀으로 우리를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징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환난의 바람을 일으켜서라도 우리의 잘못된 태도를 고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잘못된 길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깨우치시고
하나님은 그릇된 길에서 건져내시며 바른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늘 구하면서 언제나 예수님을 본받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섯째로, 바울은 우리에게 그대로 행할 것을 당부했습니다(Consistency).
푯대를 향하여, 달음박질하는 사람은 푯대에 이르기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중간에, 옆으로 빠지거나 중도에 포기해버리면 소용이 없습니다.
앞에 있는 푯대만을 바라보면서, 지금까지 달려온 대로 끝까지 달려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16절 말씀입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남보다 앞서 달렸다고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남보다 뒤쳐졌다고 낙심해서도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앞에 있는 푯대를 바라보면서
중단하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가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23-24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했던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바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그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푯대를 향하여 계속해서 그대로 달려갔습니다.
이와 같이, 푯대를 향하는 우리의 앞길에 이런저런 장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홍해가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여리고 성이 가로막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아낙 자손들이 우리의 가는 길을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금까지 달려온 방식
“그대로” 계속해서 달려가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서 “그대로”는 무엇을 뜻합니까?
바울은 지금까지,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푯대를 향해서 달려가야 하는지
여섯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첫째, 우리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을 본받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셋째,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넷째, 우리에게는 부름의 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여섯째, 끝까지 그대로 달려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푯대로 삼고, 달려가야 할 삶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상으로 예수님을 온전히 본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름의 상을 받는 그 날까지 의의 면류관을 쓰는 그날까지
예수님을 본받는 일에 더욱 힘써서 영적으로 성숙한 아름답고 복된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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