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네가 믿으면

복 있는 사람과 악인의 삶(시편 1편 1-6절)

Andy1954 2023. 8. 24. 13:18
하루는 미국 시카고에 있는 어느 호텔에, 노신사 한 분이 들어왔습니다. 
그는 후론 데스크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그 호텔 가운데 가장 값싼 방을, 자기에게 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직원은 아무런 생각 없이, 그의 이름을 물어보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죤 록펠러(John Rockefeller, 1839∼1937)"라고 밝혔습니다. 
그제야 직원은 깜짝 놀란 듯이, 그의 얼굴을 다시금 쳐다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는 당대에 세계 제일의 갑부인 '록펠러' 였음이 분명했습니다. 
직원은 의아스럽다는 듯이,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니, 회장님! 당신의 아들은, 언제나 이 호텔의 제일 좋은 방을 요구해서, 그 방에서 머물다
가는데, 어떻게 회장이신 당신은, 제일 값싼 방을 요구하십니까?"
그 때 록펠러는 껄껄 웃으면서, 이런 유명한 대답을 했습니다. "그야 자명하지 않소? 
내 아들에게는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내게는 그 같은 아버지가 없거든요."
부자 아버지를 둔 덕분에, 아들이 멋진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아버지 때문에, 아들이 복을 누리고 호강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우리 아버지는 얼마나 큰 부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버지가 주시는 복을, 마음껏 누리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옳겠습니까? 
만약에, 복 있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그 해답을, 오늘 본문 말씀가운데서,
찾을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바로 복있는 삶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1∼2절에서는,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절에서는, 받은 복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먼저 1∼2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본문에 나오는 "악인의 꾀," "죄인의 길," "오만한 자의 자리" 등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당연히 멀리해야 할 것 들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1절 말씀에 보면, 죄의 '점진적인 특성' 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죄에 가까이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악인의 꾀를 좇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인의 길에 서게 되고, 또 그러다 보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까지, 앉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점진적인 특성입니다. 

다윗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하루는 그가 왕궁의 옥상을 거닐다, 아리따운 여인이, 목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윗의 마음 속에, 슬그머니 음욕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떨쳐버렸어야 했으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하를 시켜서, 그 여인을 왕궁으로, 불러오게 했습니다. 
악인의 꾀를, 좇고 만 것입니다. 그 여인은 '우리아' 의 아내 '밧세바' 였습니다. 
그의 남편은, 지금 전쟁터에 나가서, 목숨을 걸고 싸우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자기의 권력을 이용해서, 밧세바를 범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죄인의 길로 들어서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밧세바가, 덜커덕 임신을 해 버렸습니다. 다윗은 자기와 밧세바 사이의 일을 감추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를, 전쟁터에서 불렀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관한 몇 가지 소식을 묻고 나서, 그를 집에 돌려보내 아내와 쉬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아' 는 아주 충직했습니다. "군사들이 지금 전쟁터에서,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고 있는데 어찌 나만 편히 쉴수 있으리오?" 그러면서 아내와 가까이 하지를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다윗은 우리아를 최전방에 보내서, 그를 죽도록 만들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오만한 자리에까지, 앉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을 무서워할 줄도 몰랐습니다.
악인의 길을 좇다보면, 나도 모르게 죄인의 길에, 서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오만한 자의 자리에까지, 앉아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은 애당초 그 모양까지라도, 버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코끼리는 코만 들어오면 다이다!" 라는 인도의 속담이 있습니다. 
그 덩치 큰 코끼리가, 코만 들어오면, 나중에는 그 거대한 몸까지, 비집고 들어오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처음부터 단칼에 처치해 버려야지, 그렇지 않고, 악인의 꾀를 생각하게 되면, 죄의 길에 들어
서게 되고, 나아가 오만한 자의 자리에까지, 이르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특성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아니하셨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리고는 말씀으로, 그를 깨우치셨습니다. 
그제야 다윗은,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큰 죄를 저질렀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다시금 그를, 의롭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말씀으로, 그의 영혼이 다시금 소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말씀에서 생수를
얻고, 그 말씀을 지키면서, 거기서 기쁨을 얻고, 즐겁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의로운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래서 환경과 여건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늘 푸르고 굳건한, 신앙을 가집니다. 
그래서 그 열매는, 더욱더 값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시기 때문에, 모든 일이 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늘 푸른 신앙을 가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악인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4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의인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반면에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의인은 꿋꿋합니다. 그러나 악인은 불안정합니다. 
바람에 이리 날리고, 저리 날리면서, 쫓기는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추수할 때 알곡은, 모아서 곡간에 들입니다. 그러나 쭉정이는, 불태워 버립니다.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운명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때는 추수 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때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십시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없습니다. 
죄인은 구원받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노아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은, 너무나도 타락했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육체적인 향락을 취하는 것이, 들의 삶의 목적
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은 홍수 심판에 앞서, 노아와 여덟 명의 가족은, 방주를 만들게 해서, 구원하셨습니다. 
마치내 하나님은, 방주의 문을 닫으시고, 죄악으로 관영했던 세상을, 홍수로 심판 하셨습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결코, 구원받은 의인의 회중에,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뒤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땅은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온 땅에 물이 넉넉했습니다. 
여호와의 동산같고, 애굽의 땅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은 그곳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성 사람들은 너무나도 악했습니다. 그들은 성적으로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불로써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롯과 그의 가족들은, 구원해 주셨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하늘에서 유황불이
내려와서 진멸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악인은 결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죄인은 결코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맙시다. 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불태워질 겨에 지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발간되는 신문 가운데 '워싱턴 포스트' 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아주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신문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서, 당시의 대통령이었던 '리차드 닉슨' 을 사임
시켰던 신문입니다. 
또한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쳐, 클린턴 대통령을 곤혹스럽게 까지,
몰고가게 했던 신문입니다.
1980년 7월 28일자, 워싱턴 포스트 1면에는, "지미의 세계"라는 기사가, 대서특필이 되었
습니다. '자넷 쿠크' 라는 26살된 흑인 여기자가, 취재한 기사였습니다. 
지미는 8살된 소년으로,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상습적으로 마약주사를 맞았습니다. 
기자는 그 아이가 서서히 죽어가는 모습을, 마치 현장에서 눈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묘사
했습니다. 온 세상 사람들이, 그 기사를 읽고서 충격에 휩쓸렸습니다. 
그 기사로 인해서, 그 때까지 무명이었던, '자넷 쿠크' 는 일약, 명기자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신문기자들의 최고의 명예인 '퓰리처상' 까지 수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여론들이, 경찰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어린 소년이 그 지경이 될 때까지, 경찰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경찰은 어쩔 수 없이 경찰력을 다 동원해서, 지미라는 소년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소년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그 소년이 실제 인물이 아니고, 자넷 쿠크라는 여기자가, 출세할 야심에서, 꾸며낸
인물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지는 어쩔 수 없이, 그 기사가 허위보도 였음을, 독자에게 정중하게,
사과했습니다. 물론 그 여기자는, 완전히 매장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한 죄인은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합니다. 결국 쫓겨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되어야 합니다. 바로 즉시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할지라도, 때가 되면, 더욱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서 생각해 봅니다.
6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여기서 "대저"라는 말은 '왜냐하면' 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왜 의인이 복을 받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길에,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여호와께서 그 길을, 인정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제멋대로 가다가, 결국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다니엘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의로운 삶을 살았습니다.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다 다니엘은 모함을 받아서, 사자굴 속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보호하시기 위해서,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사나운 사자들의 입을, 봉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다니엘을 모함하다가, 그들이 대신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들의 몸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사자들이 뛰어올라서 그들을 움켜쥐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뼈까지도, 부수뜨렸습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이 인도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두 청년 이야기 입니다. 
어느 주일날, 두 청년은 술집에서 술이나 마시면서, 포커나 할 생각으로, 술집을 향해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들은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때마침 저녁 집회를 알리는, 교회 종소리가 은은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종소리가 그들 가운데 한 청년의 마음 속에, 깊이 와 닿게 되었습니다. 
교회 정문에는 예배를 알리는, 게시판이 서 있었습니다. 
그곳을 보니까, 그 날의 설교 제목이 쓰여 있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은 그것을 보는 순간, 도무지 마음이 찔려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친구에게 권했습니다.
"여보게, 다른 날도 아니고, 주일날 술집에 가서 술 마시며, 도박판에 끼어 든다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내키지 않네. 술집일랑, 다른 날에 가도록 하고, 오늘은 예배나 드리세."
그러나 그의 친구는,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옥신각신하다, 두 사람은 그곳에서, 갈라서고 말았습니다. 
한 사람은 교회로, 또 다른 한 사람은 술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 날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온전히 회개하고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집은 가난했습니다. 홀로 어머니를 모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학은 진학하지 못했습니다. 
그 대신에 법률회사의 사무원으로 취직해서, 성실히 일하고, 틈틈이 법률공부를 했습니다. 
그 결과, 변호사 자격을 얻게 되었으며, 그 뒤 정치 방면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했습니다. 
그는 신앙에 기초하여, 부정 부패를 척결하는데 힘썼습니다. 
그래서 1881년에는 나이아가라 폭포 가까이에 있는, 버팔로 시장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882년에는 조금 더, 큰 뉴욕 주지사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1884년에는 미국의 제 22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는 날, 신문사들은 그 기사로 1면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런데 한 교도소있는 늙은 죄수가, 그 신문을 읽으면서 대성통곡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수는 깜짝 놀라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아니, 신문을 읽다말고 왜 웁니까?"
그는 신문을 가리키면서, 간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30년전만 하더라도, 이 사람은 나의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주일날, 우리는 교회 종소리를 듣고 나서, 각자 다른 길로 갔습니다. 
그 때 교회로 발걸음을 옮겼던, 제 친구는 이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평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하는, 죄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에 이런 원통한 일이, 또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여러분, 이 이야기에 나오는, 대통령이 누구입니까? 
미국의 제 22, 24대에 대통령을 역임한 '스티븐 클리브랜드'(S. Grover Cleveland)입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딴, Cleveland 라는 도시도, 생겨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십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은, 결국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발걸음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복 있는 사람이 되어서,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우리의 신앙이 흔들리지 않는, 모습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주님을 위해 아름다운 열매를, 많이 맺으시고, 하나님 주시는 은혜와 복
으로, 모든 일들이 형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