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사람들(호세아 8장 1-7절)(People who sow the wind n reap the whirlwind.)

Andy1954 2023. 8. 16. 08:51

구약성경의 소선지서중 제일 먼저 나오는 '호세아서'의 주 메세지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기 위하여, 그들을 찾고 계실 뿐 아니라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이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올 것을 간곡하게 호소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북 이스라엘 백성들은 정치적인 안정 속에서, 경제적으로 매우 윤택한 삶을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가 영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가장 타락한 때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지도자들과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을 망각한 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고, 율법을 무시하였으며, 이웃에게 불의를 자행하는 ‘타락과 부패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분노는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호세아 선지자는, 그들의 죄악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심판 곧 이스라엘의 멸망을 경고

하면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본문 8장 7절을 통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린 죄, 하나님을 무시한 죄, 하나님이

없다, 고 하는 의 값으로 감당하기 힘든 큰 어려움이 임할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주면서

이러한 파멸의 모습을,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쓸어 버리는 '광풍 (쓰나미)'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쓰나미가 얼마나 무서운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2004년 인도양에서 발생한 쓰나미로, 순식간에 23만여명이 사망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또 2011년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초대형 쓰나미가 덮쳐와 한 순간에 모든 것을 휩쓸었던, 

아비규환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면서, 하나님을 잊어

버리는 것을 아주 작은 일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일처럼 여기고 생각했던 그것이 후에는 ‘불신앙' 으로 커져서 결국에는 엄청난

광풍 (쓰나미) 같은 파멸을 가져올 것입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을 떠난, 이러한 자기중심적 신앙은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말씀’없는,

형식적이고 의례적인 ‘종교의식’에 빠지는 것이었습니다.

무엇 보다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떠나 있으면, 아무런 쓸모가 없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사실입니다. 왜, 쓸모가 없게 됩니까? 

그것은 말씀이 없는 신앙은, 다시 영적 어두움으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기억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지으신 이를 기억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본문 가운데, 7절에 두 가지 놀라운 '잠언'이 나와 있습니다.

먼저, '그들이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둘 것이라' 는 말씀과 다음으로는, '심은 것이 줄기가 없어,

이삭은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며, 혹시 맺을지라도 이방 사람이 삼키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잠언은 이스라엘이 의미 없고 가치도 없는 ‘종교의 씨’를 심고, 결국에는 하나님에 위한 ‘심판의

추수’를 거두게 될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람'은, 공허하고 현실성이 없는 허황된 것 또는, 환각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바람을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공허하고 의미 없는, 타성에 젖어있는 

의례적인 ‘종교생활’을 하고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쓰나미' 같은, '파멸의 광풍'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바람을 심는다’는 것은 어떤 삶을 말하는가, 함께 생각하면서 바람을 심고 광풍을

거두는, 어리석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않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이, 바람을 심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이스라엘은 자기를 지으신 이를 잊어버렸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스라엘은 지적인 면에서 하나님을 절대로 잊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한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다면, 하나님 중심주의,

말씀 제일주의로 살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지 않았다고 하면서, 하나님 우선순위로 살지 못했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잊어버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좋아하는 신앙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많은 성도들이 자기 마음대로 믿는 것을 좋아하고, 간섭하는 것을 싫어하고 있습니다.

듣기 좋은 격려나 축복만 해주고, 자신들의 신앙은 간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아야 합니다. 참된 성도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이 자꾸 나의 생활에 파고 들어서, 

나의 계획을 흔들고, 내 생각을 무너뜨리는 것이, ‘은혜’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굴곡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극복하지 못하고 주저 앉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어렵고 힘들 때에, 인간적인 생각에 빠지게 되거나 의존하게 된다면, 하나님으로

부터 점점 더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고, 예수를 오래 믿었다, 할 찌라도 위기의 순간에 인간적인 방법을 의지하게

되면 쉽게 중심을 잃고 무너지는 경우를, 우리 주변에서 너무나 많이 보아왔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아직도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늘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멀리 변두리에 내팽게치고, 잊은 체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다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며 산다고 입술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바쁜 일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잊은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이들도 실상은, 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 하나님을 잊어 버릴까요? 고난 중에는 절대로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광야 길을 걸어 갈 때는, 지치고 힘들어도, 하나님을 잊어 버리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번영을 누리며, 배부르고 편안할 때, 하나님을 잃어버린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회개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리어 세상 속에서 십계명을 범한 자들은, 자신들이 범한 죄를 빨리 깨닫고, 이들보다 더 빨리

회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에서 ‘간절함과 목마름’ 그리고 ‘배고픔’이 사라지면, 위기가 닦쳐 온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일을 행하는 것이, 바람을 심은 것입니다.

4절을 보시면, '그들은 왕들을 세웠으니,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지도자를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세우신 세상, 하나님이 모르시는 일이 있습니까?

그러나 주님께 묻지 않고 하는 일은, 주님이 아실 바 아니며, 주님께서 인정하지 않는 불법적인 일,

또한 주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떤 일을 행할 때, 먼저 기도를 통해서’하나님의 뜻’ 을 물어야 합니다

다윗은 재임 기간 내에 수 많은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고 성경은 (역대상 18장)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우리가 아는 대로 목동출신 입니다. 외모도 남다르게 대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다윗 왕의 승리의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윗은 일마다 때마다 항상 하나님의 뜻을 물었던 ‘기도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어떠했습니까? 베냐민 지파의 후손으로 사무엘상 9장 2절을 보게되면,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주 나무랄데 없는 사울 왕이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고, 망령되이

행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상 10장 14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울 왕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행하며 살았기 때문에, 파멸의 광풍을

거두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을 하든, 주님 뜻을 먼저 묻는, 기도의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 합니다.

 

반면에, 묻기는 물었는데, 하나님의 허락 없이, 또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뜻과 의지대로

움직이며 행하는 것, 또한 바람을 심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은 전도하는 일까지도, 성령의 인도하심 대로 따랐음을 볼 수 있습니다.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 하였으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여, ‘마게도냐’로 건너가서 복음

을 전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역대상 22장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모든 것을 다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은, 얼마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 이며, 또한 영광을 돌리는

일이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 하지 말라, 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어떤 사람입니까?

사도행전 13장 22절을 보면, 다윗에 대한 놀라운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리라 하시더니”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준비만 끝내

놓았을 뿐, 솔로몬에 위하여 성전이 건축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비록, 주님의 일이라 할 찌라도, 항상 다 허락하시는 것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하나님 교회의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세속적 방법으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바람을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상의 정체가 무엇일까요? 먼저, 우상은 ‘참 신’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우상은, 일월성신 같은 ‘피조물’이거나 천둥 번개나 지진 같은 ‘자연현상’ 그리고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거나, 사람의 손에 의해서 만들어진 허상일 뿐 입니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어떤 유익을 끼치기 보다는, 생명이 없는 무익한 것입니다, 

우상은, 스스로 말도 못하며,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따라서 이런 우상이 재앙을 내리거나, 복을

주지도 못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한 일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은 우상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내가 언제부터 예수를 믿었는데, 또 어떤 사람은 내가 모태신앙을 가졌는데, 라고 하면서 

강하게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상을 우상으로 알고 섬기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상을, 하나님으로 잘못 알거나, 착각하고 섬긴다는 사실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서도,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위하여 시내산에 머무는 동안, 아론이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금고리를 받아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숭배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이방인의 신으로 생각하지 않고,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며, 우상숭배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이 땅의 많은 사람들도, 복음에는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의 즐거움을 찾기 위해서는, 어떠한 수고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찾아 해메는, 이 세상의 즐거움 속에는, 알 수 없는 우상으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세상의 즐거움이나 문화만을 즐기는게 아니라는 겁니다. 

만약에, 세상 문화 속에서 어떤 절망적인 상황을 끊고, 축복된 삶을 만들어내려고 소원하는 마음을

품었다면, 또는 거기서 복을 얻자고 하는 생각을 가졌다면,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기 만족을 위해 무언가에 이끌림을 당하고 있었다면, 비록 그것들 앞에 실제적으로는 무릎을 꿇고

빌지는 않았는지 모르지만, 이미 우상숭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을 가리켜 소위 ‘성공 만능시대’라고 합니다.

이 말은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을 추구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공'은 '마약'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유혹'을 가져온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성공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가 된다는 말씀

입니다. 오늘날 무한 경쟁 속에서 뭔가를 이루고, 성취해도 내가 누구인지, 내 존재 가치가 무엇인지,

이런 질문에 아무런 답을 줄 수 없는 것은, '성공'이라는 우상이 만들어 낸 산물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어렵고 힘들게 이룬 ‘성취나 만족’이지만, 오래가지 않습니다. 

쉽게 시들고, 순간적인 것이 되고 만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돈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며, 돈 제일주의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돈이 나의 주인이 될 때, 돈을 섬기게 되며, 돈이 나의 주인이 될 때, 이미 '우상'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다'라고 성경은 이미 무섭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하나님보다 귀하고,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모든 것이 우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사랑하고, 그것의 노예가 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이 또한 우상을 만드는 공장이며, 마음 속에 감추어진 우상이 수없이 많이 있는

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신 분복인 재산, 가정과 가족, 명예(신분), 등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의지하며, 더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인생의 허무함, 무의미, 허영심을 다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주의 긍휼하심과 선하심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큰 것이 축복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바람을 심는 것입니다.

14절을 보게 되면,  이스라엘은 위기 속에서도, 왕궁을 세우고, 유다는 성읍(도시)들을 많이 세움으로

방어벽을 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수난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왕궁이나 성읍 같은 큰 건물을 세웠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은 채 큰 왕궁이나, 큰 도성을 세움으로, 힘을 과시할 수 있었을런지 모르나, 그러나 그것

또한 바람을 심는 허황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각들과 성을 세우는 것보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우선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을 쌓기 전에 누가 자기들을 지었으며, 자기들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알아야 하는

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가장 안전한 성은,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성을 쌓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도, 하나님을 잊은 체, 큰 것을 찾아 얼마나 헤매는지 알 수 없습니다. 

교회도 ‘대형교회’를 찾아 다닙니다, 취직을 해도 ‘대기업’을 선호하고 있으며, 집을 장만할 때도 평수

가 작으면 양이 차지 않습니다. 큰 것이면 다 좋은 것 인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을 상실한 백성들이, 하나님 자리를 채우려고, 큰 것을 찾으며 몸부림

치고 있으나, 어쩌면, 그것은 도리어 '나약한 인간의 본심을 밖으로 표출'시키는 일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 것이면,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우리는 감사하며 만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적으로 잘 되거나,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만족해 하라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고 있다면, 하나님의 백성

으로서 그것이 올바른 성도의 자세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하겠습니다

우리는 바람을 심는 허영심과 세상의 헛된 우상을 버리고,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옳고 바르다고 생각하며 행한 일들이, 자칫 바람을 심고, 파멸의 광풍을

거두는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미련하고 지식이 부족해서 받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말씀’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때때로 ‘말씀’이, 우리들을 지배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가 ‘말씀’ 아래에 머물게 되면, 우리 멋대로, 뜻대로 하지 못하고, 말씀에 복종하게 되어집니다.

왜, 이처럼 말씀에 복종하게 하십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를, 지속적으로 받고 누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세상 즐거움과, 거짓 우상인, '사랑, 돈, 성공, 권력, 자기만족'을, 십자가 밑에

과감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왜곡된 관념에서 벗어나, 말씀을 붙잡아야 할 때라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지만, 계속해서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거부하는 자는, 반드시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약해지고 멀어질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되며, 죄를 짓게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징계를 받을 때 다시금 인생의 모든 복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죄를 멀리할 수 있는 마음을 회복해야 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 대신 세상을 바라보고 의지하고자 하는 '회색신앙'의 소유자는, 인간적인 방편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모면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결과는 고통만을 더 키운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내면의 신앙’을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말씀’으로 돌아가, 영과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써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 땅의 삶은 잠시 잠깐입니다. 육신을 따라 살면 죄악에 빠지기 마련입니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 때, 죄악을 멀리 할 수 있습니다. 

죄악을 멀리할 때에 하나님께 가까이 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과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어, 바람을 심고  파멸의 광풍과 고통을

거두는, 어리석고 믿음 없는 자가 아닌, 하늘의 신령한 복과 이 땅의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주인공들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