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전에 행하던 대로,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다니엘 6장 1-10절)(Give thanks to God, just as he had done before.)

Andy1954 2023. 9. 12. 12:35

'다니엘'서는 다니엘의 일대기를 기록한, 그의 일대기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바벨론 포로시의 유대인의 

역사를 기록한 책도 아닙니다. 

다니엘서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위한, 그의 구속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열강의 군주들과 

열국의 역사와 자연의 힘을, 하나님의 예지와 권능으로, 어떻게 다스리고 계시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다니엘(Daniel)은 어린 나이에 유다 자손, 하나냐미사엘아사랴와 함께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들이, 본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이방의 땅 '바벨론'으로, 

그것도 '포로의 모습'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바벨론'은, 오늘날의 지역적인 이란, 이라크를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소위 '세속적인 나라'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1장 4절을 보게되면,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은 이스라엘 자손중에서, 특별히 왕족과 귀족 가운데, 흠이 없고, 용모가 아름다우며, 모든 지혜를 통찰하며, 지식에 통달하며, 학문에 익숙한 소년들을 데려와, 

왕의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바벨론의 문화에 동화되어 따르도록, 강요하고 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들의 유대 이름도, 바벨론식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문화를 강요하며, 이름을 바꿀수는 있었으나, 다니엘의 신앙은 바꿀수 없었습니다.

1장 8절을 보게되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바벨론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으리라,고 

하나님 문화속에서 믿음을 굳건히 하였다,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학자들은, 그 당시의 다니엘의 나이를, 대략 15-17세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의 입장에서 보면 고등학생 정도에 해당하는, 청소년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습니다. 

이처럼 포로로 끌려온 어린 청소년이 뜻을 정하여, 즉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바벨론 왕의 명령을 거역한다는 것은, 참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들도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도전과 시련을 받고 있습니까?

우리는 성숙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은 번지르하게 하고 있지만, 실상은 작은 유혹에 쉽게 넘어가고, 세상과 쉽게 타협하며 살아가고 있음은,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 옛날 요셉을 통해, 야곱 족속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듯이, 이제 하나님은 '다니엘'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도움을 주시고, 긍휼을 베푸시고 계시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어느날, 느부갓네살 왕이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그만 그 꾼 꿈의 내용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내노라하는, 많은 지혜자와 술객이나  박수나 점잼이들에게 명령하여, 자기가 꾼 꿈을 알게하고 또한 그것을 해석하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것이라고 명령하게 됩니다. 

그러나 꿈꾼 내용을 말해야, 그것을 듣고 설명하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인데, 꿈 꾼 내용을 모르니, 누가 그것을 알아내 해석할수 있겠습니까?

마침내, 많은 술사와 박사들의 목숨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다니엘이 왕에게 나아가, 시간을 주시면 왕에게 그해석을 알려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니엘이 집으로 돌아와, 그의 친구들과 함께, 기도할 때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사, 구한 것에 대하여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보여 주시며 알게 하셨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이 왕에게 나아가, 왕이 꾼 꿈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는데, 왕의 꿈은 이러하나이다. 

왕이여, 왕이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운, 한 신상을 보았나이다,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와 발은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그리고 그 꿈의 해석은, 이러하나이다. 

왕은 곧 금머리이고, 왕을 뒤이어 왕보다 못한 나라가, 일어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중심이 견고하지 못했던 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을 곧 금머리라고 하였으니, 느부갓네살 왕이 얼마나 교만 해졌겠습니까. 

그래서 금으로 큰 금신상을 두라 평지에 세우게 하고, 누구든지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면, 맹렬히 타는 풀무불에 던져 넣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운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도리어, 금상에 절하도록 말하고 있는 왕에게, 3장 16절에 보면,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라고 너무나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풀무불 가운데에서도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겠지만,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 지라도,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 절하지 아니 하실줄 아옵소서. 주를 위해 순교까지 

각오하는, 너무한 확신에 찬, 믿음의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결국 세 사람은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분명히 '세 사람'을 풀무불 가운데로 던졌는데,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고 있었으며,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들의 이러한 믿음은, 기적적으로 구원을 입었을뿐만 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하겠끔 만드는, 놀라운 역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일제시대에, 이와 유사한 일들을 겪지 않았습니까? 

신사참배를 강요당하고, 창씨 개명을 통해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 했던, 그 시대가 있었습니다.

 

다니엘은 이방 땅에서 80살 넘게 장수하면서, '네 왕'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특히, 다리오가 왕이 되었을 때에, 다니엘은 누구보다도 마음이 민첩하여, 왕이 그를 총리로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때에도 주변의 고관들은, 시기와 질투로 다니엘을 모함하기 위하여, 다니엘의 허물을 찾기 위하여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다니엘에게서 그릇됨이나 허물을 전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다니엘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수 없음을 깨닫고, 다리오 왕에게 한 금령을 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것은 이제부터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의 신뢰와 총애로 총리의 자리에 있었던 다니엘 이었지만, 또 다시 신앙의 시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왕 만을 섬기라는 금령은, 언뜻 듣기에는 그리 어렵거나 대단한 것이 아닌것 같았지만, 이 법이 다니엘에게는 하나님만을 섬기는, 유일 신앙을 버리라,는 일종의 사형 선고와 다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 금령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집에 돌아가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다,고 

6장 10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왕의 금령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자 굴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창문을 닫고 남들이 보지 

않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30일 동안, 잠시 기도를 먼춘 후에, 다시 기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가 없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엘은 문을 열고 전에 하던대로, 그의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여기서 그의 하나님께라고 하는 것은 라틴어의, 하나님 앞에서와 같은 '코람데오(coram Deo)'란 말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사자 굴에 던져질수 밖에 없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6장 16절을 보니까, 왕이 명령하매, 다니엘을 끌어다가 사자 굴에 던져 넣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리오 왕도 다니엘의 능력과 사람 됨됨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 

다니엘과 같이 훌륭한 인재를, 죽게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6장 18절을 보면, 다리오 왕이 밤이 새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오락을 그치고, 잠자기를 마다하였다,고 

하는 모습과 그리고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보아 알수 

있습니다. 그럴때, 다니엘이 다리오 왕에게, 무어라 대답합니까?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의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음으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하지 못하였나이다' 고 대답하였습니다. 아-멘입니다. 

이처럼 의인의 신앙은, 때에 따라 놀라운 '기적'까지 불러옵니다.

이 때에 왕이 심히 기뻐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끌어 올리우며, 다니엘을 참소한 자들을, 그들의 처자들과 

함께 사자 굴에 던져 넣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굴 바닥에 닿기도 전에, 사자들이 그 뼈까지도 부서뜨렸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리오 왕도, 자기 나라 모든 백성으로 하여금, 다니엘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도록 칙령을 

내렸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자부하는 우리들은, 과연 어떻습니까? 

우상 숭배와 권력 앞에서, 다니엘과 같이 풀무불과 사자굴에 던져진다 하여도, 우리의 신앙을 지킬수 

있습니까?

성도는 누구든지, 하나님께 대한 예배가, 세상의 이해관계와 충돌하거나, 또한 거짓과 위선의 위협을 받을 

때에, 세상에 대한 욕심때문에, 하나님을 배도하거나 진리를 거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도리어, 하나님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을 굳게 믿고, 하나님께 대한 신실한 예배와 외적인 고백을 통하여, 단호하게 그 위협을 돌파하고 나아갈 때, 그 권세에 두려워하며, 그들을 존경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은, 선지자 다니엘이 신앙의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전적으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에 대한 참된 

용기와 헌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구원의 기적을 이루어 낸 모습을 묵상하면서, 

아직도 세상속에 오염되고, 동화되어 있는 자신의 거짓 신앙을 내려놓고,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 의지

하고, 찬양하는, 귀한 참 신앙의 소유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