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기도와 찬양은, (고린도후서 1장 3-14절)(The prayer and praise)

Andy1954 2023. 8. 27. 02:44

 우리가 아는대로 '모세'가 구약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라면, 신약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은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신약 성경의 반(13권)을 기록하였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사도였으며, 

훌륭한 목회자요, 선교사였으며, 또한 둘도 없는 신학자였습니다.

 

그런 바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어느 누구보다도 많은 환란과 고난을 당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어쩌면, 그의 삶 전체가 계속적인 위기에 빠져들고,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본문 1장 8절을 보게되면,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란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여기서 바울이 얼마나 심한 환란을 당했으면, 살 소망까지 끊어졌다고 하겠습니까? 

한 걸음 더 나아가, 9절에서는 '스스로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다' 즉 

죽음이 바로 코 앞에 임박해 있을 정도로 큰 위기에 처해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에서는, 

유대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쳤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처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이처럼 수없는 고난을 당하고, 위태로운 지경에 

빠져야 했습니까?

 

바울은 한 마디로, 이와같은 모든 환란과 고난은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려함이라,고 단언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나를 구하시고 건져내신 하나님, 현재도 나의 하나님이시고, 

미래에도 나를 보호하실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역경과 위기도 바울은 전혀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는 

히브리서 13장 8절 말씀을 기억하고, 

바울은 이 사실을 믿고 신뢰하고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과거 사랑은, 현재 사랑의 보증이며, 

미래 사랑의 신실하신 약속인 것입니다.

 

바울이 위험에 처했을때에 자신의 능력이나 경험, 

또는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건짐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의해 건짐을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바울을 위한 성도들의 합심기도의 능력( the power of united prayer)이 

은혜와 기적으로 나타났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성도들의 끊임없는 기도로, 

바울을 살리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에서 기도는 왜, 중요한가?

 

우리가 아는대로, 기도는 하늘 창고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창고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 창고는 하나님이 열어 주시는 게 아니라, 오직 기도로만 열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명확한 증거의 말씀이, 에스겔 36장 37절에 주어져 있습니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나님이 말씀 하시고, 약속하신것 다 이루어지지만, 

그래도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도,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고 찾으며 두드리는자는 다 얻을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기도하지 않아도, 간구하지 않은 것도 주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개 기도해야 받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기도하지 않으면, 많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와같이 기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 앞에서 낮은 자세로 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살수 없음을 고백하게 되며, 하나님의 전지하심을 깨닫고, 

인간의 외소함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한 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우리 삶의 필수품이며, 재산목록 1호입니다.  

우리가 기도만 할수 있다면, 이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만나든 염려할 것 없습니다. 

또한 기도는 은밀하게 감추어진 삶의 상처와 빈곤을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 현재의 가슴 아픈일 다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노출시키는 것입니다.

 

내가 아픔니다, 괴롭습니다, 어렵습니다, 가난하고 부족합니다. 

자기를 과신하지말고, 간절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자신을 비우고 내려놓는 사람이 영적으로 가장 건강한 상태의 사람입니다.

 

찬송가 96장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라고 찬양하고 있습니까? 

우리 예수님이 부하고, 우리 예수님이 강하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엎드리는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주시며,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기도하면 큰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한 것을 받을 뿐만 아니라, 

기도를 통하여 우리의 영적 삶이 힘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긍휼을 내려 주시는데 기도를 통해서 내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도하십시요, 기도하면 '영'이 살고, 새 힘을 얻게 됩니다.

 

출애굽기 17장 8절 이하를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아멜렉과의 첫 번째 전쟁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여호수아가 칼로 싸우고 있지만, 

사실은 칼로 싸우는게 아니라 기도로 전쟁을 이끌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멜렉이 이겼습니다.

이것은 모세의 기도하는 손이, 여호수아의 칼든 손보다 귀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수없이 부딪히는 영적 전쟁도, 내 지략과 능력으로 이기는게 아닙니다, 기도로 이겨야 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특별한 은혜가 필요할 때에는, 우리는 합심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더불어 함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크게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 하나님,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역사해 주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마태복음 18;19절에,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아-멘. 

놀라운 은혜의 약속이 아닐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게되면, 베드로가 감옥에 갇혀 있을때, 

밖에 있는 성도들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함으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옥문이 열리고, 간수들이 보지 못하고, 무사히 빠져 나올수 있겠습니까?

 

오순절날, 다같이 한 곳에 모여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성령이 강림'하시지 않았습니까?

이러한 기도의 능력과 기적을, 우리는 성경 여기저기에서 수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이것만은 기도해도 안된다는 귀절은 성경 어디에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기도'는 '기적'을 만들어 내는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기도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극복하는 매우 귀중한 방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개인적인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온 성도가 같은 제목을 가지고, 함께 기도하는 '합심기도'는 

더 크게 역사하고, 놀라운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심하여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기도의 모습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가 공예배시 '대표기도'로 '목회기도'를 인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예배의 한 과정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목회자들은 성도들의 기도를 통해 

힘과 능력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탄(satan)의 공격 목표 1호는 무엇이겠습니까? 

다름 아닌 바로 '목회자'입니다.

 

목회자가 쓰러지면, 교회가 무너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인도하는 사람은 항상 목회자를 위한기도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목회자가 영적으로 바로 세워지고 충만해야 

성도들을 바르게 양육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도, 데살로니가 전서 5장 25절에서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성도들의 매우 필요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인 것입니다.

 

그다음으로 기도로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홍해 바다도, 요단강도 갈라졌으나, 계속 갈라져 있는 상태로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원래대로 합쳐져 있음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의심하는 자에게는 아무런 결과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받은 사람은, 감사의 찬양을 불러야 합니다. 

응답 받은 기도에는 함께 더불어 찬양하며 감사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나병 환자 열 명이 깨끗함을 받는 사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열 명중 한 명만이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님께 감사할때,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 하셨습니까?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 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고 

고침받고 감사하지 않은 9명의 문둥병 환자를 찾으셨습니다.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주님 앞에서 춤을 추며, 

감사하는 다윗의 모습이 사무엘하 6장 12절 이하에 나와 있습니다.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들도 다윗과 같이 전심을 다해 감사하며 찬양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실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은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까지 계속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도는 천국에서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하늘의 천사들도 하나님을 찬양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천사가 기도했다는 말 들어 보셨습니까? 

합심기도처럼, 함께 찬양하며, 연합하여 드리면, 더욱 가치있고,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마음과 음성을 합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받은 은혜가 클수록 찬양 소리도 더 크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이, 야고보서 5장 13절과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6-18절에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

 

아멘 입니다,

우리 성도들, 날마다 경건하게 기도하며, 범사에 늘 감사하며, 

기쁨으로 찬양함으로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