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 장 7절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오늘은 산상수훈 다섯번째 복에 대하여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원래 '긍휼'이라고 하는 말은 인간이 '죄'로 말미암아 비참하고 불행하고 불쌍하게 사는 것을 보시고 주님께서
인간에 대해 느끼신 '연민'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긍휼(mercy)'은 헬라어로는 '엘레오스'라고 하는데 이 말은 '불쌍히 여긴다'
'자비를 베푼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편 25편 6절을보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영원 전부터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것은 '긍휼'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시다는 것을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어떤 특정 사물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지으신 모든 만물에 미친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긍휼하심은 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심
으로 죄인들에 대한 그의 놀라운 사랑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1. 하나님의 긍휼하심
예수님은 마태복음 18장 23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긍휼하심과 그 긍휼을 입은 우리가 베풀어야 할
긍휼에 대하여 하나의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서 교훈하고 계십니다.
결산할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를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모든 빚을 탕감하여 주었습니다.
일만 달란트(약 6조원)란 액수의 돈은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수 없는 엄청난 액수의 돈 입니다.
주인으로부터 이렇게 엄청난 액수의 빚을 탕감 받은 것은 말 그대로 놀라운 '긍휼'을 입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긍휼을 입은 사람이 자기에게 단지 백 데나리온(대략 일천만원 정도) 빚진 사람에게는 빚을갚지
않는다고 그를 '옥'에 가두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엄청난 빚을 탕감받은 종도 그주인의 자비를 본받아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었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이 소문이 주인에게 들렸을 때 주인은 32절 말씀과 같이 그 종을 엄하게 책망하고 있습니다.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 전부를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그리고 그 종을 붙잡아 빚을 다 갚도록 옥졸에 넘겼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긍휼을 받고도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면 '긍휼없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비유의 말씀은 주인앞에 일만 달란트 빚진자는 바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할 이땅의 모든 '죄인'들을
말합니다. 그가 주인에게 빚진 일만 달란트는 우리가 갚아야 할 '죄 값'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탕감해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것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2. 긍휼히 여김으로 복받은 사람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복을받은 사람들을 보게되는데 이들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긍휼'을 베푼 사람들
임을 알 수 있습니다.
(1)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고넬료'란 사람이 나오는데 그는 군대의 백부장이며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고 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천사가 나타나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면서
베드로를 청하여 '복음'을 듣도록 은혜를 베풀고 있습니다.
마침내 베드로가 찾아가 복음을 전함으로 온 가족이 구원받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2) '욥'의 경우를 보면 성경은 욥에 대하여 '악에서 떠난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욥기 29장 12절을 보면 '부르짖는 빈민과 도와 줄 자 없는 고아를 내가 건졌음이라'
욥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며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13절을 보면 망하게 된 자도 나를
위하여 복을 빌었으며 과부의 마음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 노래했다고 하였습니다.
그가 어려운 시험을 이기고 결국은 더욱 큰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긍휼히 여기는 아름다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3) 잠언 31장에는 '현숙한 여인'이 베푼 긍휼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 현숙한 여인은 '곤고한 자에게 손을 펴며 궁핍한 자를 위하여 손을 내민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곤고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었다는 뜻입니다. 자비와 긍휼을베푼 여인의 삶의 가치는
진주보다 더 귀할뿐 아니라 모든 덕행있는 여자보다 뛰어나다고 칭찬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믿고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도 고낼료와 같이 욥과 같이 그리고 현숙한 여인과 같이 다른사람들
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푸실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3. 감당해야 할 성도들의 긍휼
그러면 하나님으로부터 크신 긍휼을 입은 우리들은 어떻게 긍휼을 베풀며 살아야 하나 성경에서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긍휼'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1) 죄를 용서해 주는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시편 51편 1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라고 시인은 '긍휼'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도 형제의 죄를 용서해 주는 '긍휼'을 베풀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느날 베드로가 주님께 물었습니다.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베드로의 물음에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찌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용서하고 또 용서해야 함을 가르쳐주시는 말씀입니다.
주님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서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달라고
날마다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의 용서는 우리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이성적인 판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내게 베푸신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2) 나누며 베푸는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잠언 19장 17절을 보면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
할까?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한 작은 구제가 '주님께 꾸어 드리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은혜의 말씀입니까? 이런 말씀을 듣고서도 어떻게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야고보 사도는 '고아와 과부'를 환란중에 돌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이라'고
야고보서 1장 27절을 통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같이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통해 '경건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줄 믿습니다.
사도 바울도 디모데전서 6장 18절에서도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라고 '긍휼의 삶'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긍휼을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러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원수까지도 사랑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서도 주님은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입니다.
우리는 영적인 소경이되어 흑암에서 헤메던 자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부족합니다. 허물도 많습니다.
이러한 우리 자신을 생각할 때 너무도 보잘것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사하여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긍휼히 여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같이 형제를 비판하고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밤 하늘에 둥글게 떠있는 저 달은 태양빛을 받아서 환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은 자들이기에 비록 '사랑'이 메마른 이세상이지만 '긍휼의 빛'을
발하며 사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첫 걸음은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 있으면 사랑이 그에게 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긍휼히 여기면서 도와주고 아껴주고 살아가는 형제 자매된 자들입니다.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일을하고 있는가가 그렇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얼마나 많은
사랑을 실천에 옮기는가 하는 것입니다.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들도 서로 용서하며 나누고 베풀며 사랑하는 삶을통하여 주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받는 복된 천국백성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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