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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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마태 5장

산상수훈(4)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의 복 (마태 5 장 6절 )

Andy1954 2023. 2. 9. 15:14

 

마태복음 5장  6절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우리는 삶의 만족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잠언 30장 7-9절에서, 시인은,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소서, 라고

지혜롭게,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시민의 네 번째 복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 '의'를 소유하는 자세에 대하여, '주리고 목마른 자'란 말로 표현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의'를 소유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마치 주리고, 목마른 자와 같이, 갈급하는 심정을,

가져야 함을 나타낸 말씀입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의'란 무엇인가?

사전적 의미의 '의'란 의미는 '옳은 것, 바른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사전적 의미와는 전혀 다른,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하다'고 인정받는, 선언적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의'를, 세 가지 형태로 살펴 볼수 있는데, 첫째는 '율법적 의'요, 두 번째는 '양심적 의'요, 

그리고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1) '율법적 의'란, 율법을 지키는 자가, 율법을 지키므로 얻을 수 있는 '의'를 말합니다.

그런데, 율법을 지키는 일로 '의'를 얻을 수 있는 자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 20절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즉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을 지키는 문제에 있어서 '율법을 지키다가, 율법 가운데 하나만 못 지켜도, 

결국은, 온 율법을 범한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7장 20절에서도,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결국 모든 사람이, 다 죄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지키는 일'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의'를 배격하는 우를 범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의를 얻는데, 실패하고 말았음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2) 다음에 '양심적인 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으려고 했던 반면, 율법 없는, 이방인들은, 

'인간의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 '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면 '마음의 율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같은 '마음의 율법'은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고, 변명함으로,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만약 이 '마음의 율법'이 존재치 아니한다면,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인간의 도덕과 윤리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을 것입니다.

인간이 죄로 타락한 후에도, 사회질서가 유지하며, 어느 정도, 도덕적 생활을 할수 있는은, 

이 '양심'이 우리 마음 가운데, 계속 활동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나 양심으로도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은 양심의 지배를 받고, 양심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양심의 정죄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율법과 양심'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은, 율법의 행위나 양심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의 의'를 얻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주님이 말씀하고 있는, 의에 주리고 목마름은, 바로 이런 깨달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의'는 바로 하나님 말씀이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에, 

말씀을 사모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 분의 뜻에, 순종할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를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의'가, 곧 '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내 의'가 되기 때문에, 율법적인 의나, 양심적인 의처럼 

하나님 앞에 부족한 의가 아닌, '거룩하고, 완전한 의'를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바로 이같은 '거룩하고, 완전한 의'를 

먹고 마시기 때문에, 다시는 주리거나 목말라 하지 않는 것입니다

 

2. 은혜로 '의'의 배부름을 주시는 하나님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재물, 건강, 명예, 성공과 같은, 세상 것에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 말라,

할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 말라 하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시고,'생명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만 하면, 결코 주리지도 않고,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 안에서 얻을수 있는, 이 '의'는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이, 

내세우기 좋아했던, '인간적인 의'나 '자기 의'를 가르키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할수 있었던 모습에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친, 세리의 고백에서

우리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자의 갈급하는 심정을, 볼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의에 주리고, 목말라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로마서 3장 24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입니다.

마태복음 19장을 보게되면, 한 재물 많은, 청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청년은, 어려서부터, 철저하게,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온 청년이었습니다.

어느날,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청년은, 계명을 잘 지키며, 살아왔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확신에 찬 답변을 얻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말을 들은 그 청년은, 아주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아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나이까?

그때 우리 주님께선 '자기 의'를 내세우는, 부자 청년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게 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주님 앞에서 '자신의 의'를 내세우려 했던, 재물 많은 이 청년은,

결국 근심하며 돌아갔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인간의 의는, 아무리 쌓고 또 쌓아도, 부족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의'만이 우리의 영을 만족케 하며,우리 '영혼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갈급하듯이, 하나님의 의를 갈급하며, 

갈망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께서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가 받을 복인 '배부를 것임이라',고 하신 말씀은, 

이러한 '갈급과 갈망'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위로와 만족'이 계속되는 상태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를  갈급한다는 것은, 우리의 소망을 하나님께 두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이상 낙심하거나, 불안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보다, 더 배부름을 주는 확실한 복이 어디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고,

하늘 소망을, 갖는 것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회복된 관계를, 계속 발전 시켜 나아 가는 것이, 바로 '신앙생활'이라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타성에 젖어, 만족함이 없는, 형식적인 '종교생활'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주리고 목마른 심정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사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하고 완벽한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하게 되어, 

다시는 목마름이 없고, 배고품이 없는, 만족한, 천국백성의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