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믿는 자가, 받고 누리는 영광 (고전 1장 1-3절)

Andy1954 2024. 6. 15. 12:01


고린도전서 1장 1절에서 3절까지 말씀을 가지고 '믿는 자의 영광'이란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면 믿는 자에 대해서 정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영접한 자 즉 예수님을 모시고 예수님을 주인으로 섬기며 그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을 믿는자라 하는데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녀가 되는 권세는 참으로 귀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자녀들을 키워보아서 아시겠지만 언제 자기가 돈 벌었다고 실컷 놀다 들어와서는 내밥 내놓으라

고 큰소리 칩니다. 부모의 것이지 어떻게 자기의 것입니까?

그래도 내 밥 내놓으라고 하고 또 옷이 헤어지면 새 옷을 사 내라고 야단을 떱니다.

학교에서 등록금이 나와도 전혀 걱정도 안하며 당연히 내 줘야 되는 것으로 여깁니다.

부모의 것이 다 지기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소위 자녀들의 권세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녀들의 권세를 어떻게 갖게 되었습니까?

내가 공로를 세워 권세를 얻었습니까? 아닙니다. 전부 공짜로 거저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것은 그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귀한 영광인데 그런데 믿는 자에게는

이런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감사할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 1절 상반부를 보시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데 큰 영광이 있습니다.

우리들 가운데 사랑하다가 너무 좋아서 결혼한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날 부른다면 별로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부르면 기뻐서 그 날 밤 잠 못 이루는 경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시는 것은 큰 영광이 아닐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나를 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다음 우리가

모태에서 태어납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부모가 예수를 믿으면 부모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부름을 받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 다닐 때 학교 친구를 통해서 부름을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학교 친구가 같이 교회에 가자고 권합니다. 그래도 안 나오면 다음에는 결혼해서 아내를 통해

부름을 받습니다. 교회에 가자고 하면 그 전에는 들은 척도 아니하던 사람이 결혼한 후에는 

아내를따라 교회에 나오는 경우를 볼수 있습니다. 그러다가 아내보다 믿음 생활을 더잘 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직장의 동료를 통해 부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택함 받은 자를 부르시는데 부르심을 받고 주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맺어져서 부자지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영광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부르심이 우리에게는 큰 영광인줄 믿습니다.

이어서 1절 중반절을 보시면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아들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사도 즉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하면 일꾼으로 세움을 받은 영광입니다.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 일꾼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가 되는 것은 아무 공로 없이 되어지지만 일꾼은 저절로 되는 법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가 아들임에는 틀림없지만 아직 일꾼은 못됩니다. 실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을 지새우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실력을 갖추어 놓으면 무슨 일을 맡겨도 감당할 일꾼이 됩니다.

"센키비츠" 의 단편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들고 또 여자를 만들었습니다. 여자에게 좋은 거처를 만들어 주기로 약속을

하고 동굴 하나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자는 동굴이 어둡고 음침해서 싫다고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늘이 전혀없는 넓은 광야에 가서 살아보라고 하였더니 바람이 많이 불고 너무 거칠고

황량해서 못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 호수 가운데 궁궐에서 살아 보라고 하였으나 악마들이 우굴거려 못살겠다고 역시 거절

했습니다. 마침 그때 키타를 치면서 시를 읊고 지나가는 멋있는 시인을 보고 여자는 그 가슴속에

들어가 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멋있는 시인의 가슴속에는 동굴의 음침한 모습 광야의 모래 바람같은 격정 호수 속에서

우굴거리는 악마의 모습을 모두 지니고 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여자에게 음침한곳에 가서는 태양이되고 광야에 가서는 한떨기 백합화되어 사막

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고 악마들이 들끓는 곳에서는 선한 천사로 살아보라고 명하셨다 고 합니다.

이 이야기는 결국 환경을 타하지 말고 창조적 일꾼 건설적인 일꾼 희생적인 일꾼이 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을 이러한 일꾼으로 부르셨기에 큰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감격하여 오직 충성을 다 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계속해서 1 절 하반절을 보겠습니다. 바울이라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에

대해서 못되고 고약한 짓은 혼자 다 한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스스로는 잘 믿는다고 착각하면서 교회를 박해하고 예수 믿는 사람을 죽이고

탄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 만나서 회개하고 돌이켰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소스데네 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어떤 사람입니까?

바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고린도에 복음을 전하러 갔는데 그당시 고린도에는 큰회당이

많았습니다. 큰회당에는 회당장이 네 명까지 있었는데 소스데네는 그회당장 중 한사람이었습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먼저 유대인들이 모이는 회당에 가서 유대인에게 복은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회장당 소스데네가 예수 믿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소스데네는 유대인의 심한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스데네는 오히려 회당을 떠나 바울을 따라 나서서 복음을 듣고 배우고 열심

있는 복음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먼로마까지 가서 이고린도서를 써서 보내는데 바울과

소스데네가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울과 소스데네는 함께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목사도 장로도 권사도 집사도 함께 부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바울과 소스데네가 함께 부름을 받아 복음을 위하여 서로 협력을 잘 한것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위하여 함께 협력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함께 부름 받은 자'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따르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어서 2절 상반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거룩하여진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것은 거룩한 사람이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을 지칭한 것입니다.

즉 예수 안에 있는 성도들을 하나님은 거룩하다 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나 안 믿으나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먹어야 되고 잠을 자야 합니다.

예수 안 믿던 사람이 예수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사람의 겉모습이 달라집니까?

달라지는 것 없습니다.

 

그래도 예수 안에 들어와 믿음을 고백하면 하나님은 예수님으로 인하여 거룩하다 칭하십니다.

다른 사람보다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나은 것이 없는데도 거룩하다 하십니다.

거룩한 사람만이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와 신앙을 고백하면 하나님께서 '거룩하다'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가 예수 믿고 거룩한 백성 되어 하늘 나라 백성 삼으시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자랑하며 증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영광을 가리킵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원래는 하나님만이 거룩하고 사람에게는 합당하지 않은 말입니다.

그런데 홀로 거룩한 하나님이 왜 우리를 성도라 불러 주시는가 하면 하나님과 더불어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가령 부족함 없이 온갖 것 다 갖추고 있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이 벌어서 소유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다누리고 삽니다. 아버지가 부자면 같이사는 아들도 부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버지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 아들 또한 거룩한 아버지의 거룩한 아들입니다.

즉 하나님과 관계만 맺어놓으면 성령을받아 중생하므로 성도라 불러 주시는데 이것을 칭함 받은

성별이라고 합니다.

고린도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지도 못했었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수도 없었으나 바울의 전도를

받고, 지금까지 섬기던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주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즉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변화는 가치관의 변화 생활을 변화 인격의 변화까지

일으켰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이 들어올 때 천주교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이때 대원군이 천주교도들을 몹시 핍박했습니다. 많은 순교자들이 생겼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가차없이 죽였습니다. 많은 신자가 죽고 숨어서 살아 남은 자들이 신앙을

지켜서 한국천주교 2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 굴지의 교단을 이루었습니다.

그 신앙이 그들의 생활과 인격까지도 변화를 시켰습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제사를 인정하는 천주교와는 달리 가정과 가문에서 제사문제로

엄청난 핍박을 당했습니다. 즉 많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귀신을 섬기던 미신종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것은 진리를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곧 예수님 이십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가치관과 삶의 목적과 인생 자체를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고린도 사람들의 변화와같은 상황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없이 살아온것은 전부 헛것이었다

는 자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변화된 그들을 거룩하다 하셨습니다.

이런 변화의 성별이 그리스도인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리고 복을 주실 때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통하여 주십니다.

수원지의 물이 부엌으로 들어올 때 수도관을 통해서 각 가정에 공급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복의 수원지요 그 복을 우리에게까지 연결해 주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이 곧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사실이 큰 영광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은 어마어마 합니다.

그 아브라함의 아버지 하나님이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시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곧 나의 하나님이시오 다윗에게 놀라운 은혜를 주신 하나님 엘리야에게 큰 능력을 주신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신자가 받는 복의 내용 중에 은혜의 비중이 막중함을 성경은 자주 밝혀줍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모든 선물에 우리가 값을 지불하는 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것이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라는 말속에는 기쁨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엄청난 선물을 받고

보면 기쁨이 충만 해 지는데 그 기쁨까지 포함하여 은혜라고 합니다.

그래서 은혜 받으면 기쁨이 넘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은혜 받으면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변화되지 않는 은혜는 은혜가 아닙니다.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불평과 원망과 미움을 가지고 있다면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았다고 할수 없습니다. 그리고 은혜에는 매력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마음을 사로잡아 끄는 힘을 매력이라고 하는데 은혜 받으면 예수님께 매력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기 전에는 예수님께 대하여 별로 신통한 느낌이 없었으나 은혜받고 나면 예수님 없이는

못살겠다고 할정도로 매력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아야 믿음생활이 제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뒤에 오는것이 있습니다, 바로 평강입니다. 평강은 은혜의 결과라고 할수 있습니다.

은혜의 원천이 하나님이시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한다면 평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한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만이 참 평안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역대하 14장 7절에보면 하나님은 아사왕과 그백성에게 사방의 평안을 주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사방의 평안이란 빈틈없는 평안 혹은 온전한 평안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평안이 정착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람은 육신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생활의 평안의 있어야 합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될때 생활의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중요한 것이 육신의 평안입니다.

아무리 생활이 풍족하여도 질병에 걸리면 물질의 풍족함은 별의미가 없습니다.

온 세상을 얻고도 네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라고 성경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소유한 모든 것보다도 삶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육신의 평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가정의 평안입니다. 자신을 희생을 하면서도 가정의

평안을 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귀한 평안이 바로 심령의 평안 즉 마음의 평안

입니다. 그런데 심령의 평안은 은혜와 함께 혹은 은혜뒤에 오는 평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심을 받은 우리들 주님이 주신 소명과 성별 그리고 주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와 평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의 영광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