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2장과 3장은 예수님이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들에게 하신 말씀을 담고 있습니다.
앞서 나온 에베소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과 예수님의 책망을 동시에 받았습니다.
일곱 교회 가운데 네 교회가 예수님으로부터 칭찬도 받고 책망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의 책망을 전연 받지 않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버린 에베소 교회와는 달리 서머나 교회는 심한 박해 속에서도 처음사랑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끝까지 잘 지켰습니다. 그러므로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만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은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먼저 오늘 본문 첫절인 계시록 2장8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노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소아시아의 일곱교회 가운데 예수님의 책망을 전연 받지않고 칭찬만을 받은 교회는 두교회였습니다.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입니다. 반면에 마지막에 나오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을
전연 받지 못하고 오로지 책망만 받았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눈은 불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정확하게 살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에게서 책망받을 일은 고치고 예수님에게서 칭찬받을 일에 힘쓰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서머나 교회처럼 예수님의 칭찬만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 죽도록 충성하여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의 관을 받기 바랍니다.
첫째로, 서머나 교회가 받은 칭찬입니다.
2장8절 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서머나 교회가 있었던 도시 서머나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 항구 도시였습니다. 에베소에서 부지런히 가면 하룻길 되는 거리였습니다.
오늘날 터키에서는 이곳을 이즈밀(Izmir)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당시 서머나에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이 서 있었습니다.
서머나 사람들은 일년에 한번 의무적으로 황제를 섬기는 신전에 올라가야만 했습니다.
그리고는 “가이사가 나의 주입니다”라고 고백하면서 황제에 대한 충성을 맹세해야만 했습니다.
또한 당시 서머나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습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해 멸망
했을 때 많은 유대인들이 서머나로 피난을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서머나에 회당을 세우고 유대주의 사상으로 무장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펼쳐나갔습니다.
바로 이와 같은 곳에 복음이 전파되어 서머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자연히 서머나 교회는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는 자들로부터 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아울러 서머나 교회는 유대주의를 신봉하는 유대인들로부터도 심한 박해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서머나 교회에 나타나신 예수님의 모습은 두 가지로 묘사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 후반부 말씀입니다.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처음이며 마지막이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나신이 이십니다.
이사야 44장6절 말씀과 같이 구약성경에서 종종 하나님은 스스로를 가리키실 때 처음과 나중
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 칭호를 통해서 자신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처음과 나중이 예수님의 신성을 가리키는 칭호라면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는 예수님의 인성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본질상 결코 죽으실 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죽으시려고 육신을 입으시고 이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만에 사망을 이기시고 다시 사셨습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죽었다가 살아
나신 이” 라는 칭호를 통해 자신이 부활의 주가 되심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 처음과 나중으로 또한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로 나타나셨습니까?
당시 서머나 교회는 박해로 인한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박해를 받고 있는 서머나 교회를 위로하시기를 바라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어느 때라도 변함없이 그들과 함께
하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자신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처럼 그들이 설혹 순교
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다시 살아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의 형편에 맞는 모습으로 그들을 찾아주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우리 각자의 형편에맞는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주시고 우리를 위로해주시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셨다가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실패로 죽었다가 성공으로 살아날수 있습니다.
패배로 죽었다가 얼마든지 승리로 살아날수 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신 예수님의 은혜로,
이와 같은 회복의 역사가 이 시간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2장9절 말씀입니다. "내가 (1) 네 환난과 (2)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3)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친히 모든 아픔을 겪으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교회가 겪는 아픔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예수님을 위하여 겪고 있는 세 가지 아픔을 알아주시면서 그들을 인정
하시고 칭찬해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그들의 환난을 알아주셨습니다.
서머나는 황제를 숭배하는 중심 도시였으나 서머나 교회는 황제 숭배를 철저하게 거부했습니다.
그들은 가이사를 자신의 주라 고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그때문에 서머나 교회는 많은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들이 받은 박해는 여러가지 형태의 환난
으로 주어졌을 것입니다. 심한 경우 그들은 로마에 대하여 반역하는 것으로 간주되어서 처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그들의 궁핍도 알아주셨습니다.
서머나는 부요한 도시였습니다. 그렇지만 서머나 교회는 궁핍했습니다.
그 까닭은 가난한 사람들만 서머나 교회에 모여들었기 때문일까요?
만일 그러했다면 그것은 예수님이 일부러 칭찬하실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34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갇힌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줄 앎이라.”
서머나 교회가 물질적으로 궁핍했던 이유는 박해자들이 그들의 소유를 빼앗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서머나 교회가 물질적으로는 궁핍했지만 영적으로는 부요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믿음에 부요했으며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영원에 대한 소망에 부요했습니다.
그들은 이땅에 보물을 쌓아두지를 못했으나 하늘에 많은 보물을 쌓아두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이 실상은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책망만 받았던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과는 정반대였습니다.
계시록 3장17절 말씀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이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적으로 부요했지만 영적으로는 가난했습니다.
예수님은 물질적으로 부요한 라오디게아 교회를 칭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적으로 부요한 서머나 교회를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도 서머나 교회처럼 영적으로
부요한 자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셋째, 예수님은 그들이 유대인의 비방을 받는 것에 대해서도 알고 계셨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당시 서머나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정착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있었으며 자기들만이 “여호와의 총회”에 속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가리켜서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칭 유대인이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모임을 가리켜서 “여호와의 총회”가
아니라 실상은 “사탄의 회당”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서머나 교회를 쓰러뜨리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자기의 도구로 사용했습니다.
요한 8장44절 말씀과 같이 "사탄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입니다". 자연히 사탄의 사주를 받은
유대인들은 여러 가지로 거짓 참소를 하면서 서머나 교회를 대적했습니다.
결국 이들은 로마서 2장 28절 말씀처럼 표면적 유대인이었으며 자칭 유대인이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총회가 아니라 실상은 사탄의 집단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은 사탄의 도구가 되어 거짓 참소함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쓰러뜨리려고 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박해와 유대인들의 비방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을 향한 처음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해서 서머나 교회는 예수님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우리의 처음 사랑을 끝까지 잘 지켜나가기 바랍니다.
그리해서 서머나 교회처럼 우리도 예수님에게서 늘 이와 같은 칭찬을 받기 바랍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실상은 네가 하나님의 백성이니라.”
둘째로, 서머나 교회가 받은 당부입니다.
계속해서 2장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사람을 옥에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2)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두 가지를 당부하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첫째 당부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앞절의 말씀대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당하는 환난과 궁핍과 유대인의 비방을 다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안심하라! 이제는 곧 상황이 좋아질 것이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정반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장차 고난을 받게 되리라고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가 장차 받아야 할 고난의 내용과 고난의 목적과 고난의 기간을
차례대로 말씀해주셨습니다.
먼저 고난의 내용입니다. 마귀는 장차 서머나 교회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넣을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를 대적했던 자들이 유대인이었든지 로마인들이었든지 간에 그 궁극적인 주체는
결국 마귀 곧 사탄이었습니다.
고난의 목적은 시험을 받게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험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만 사탄은 성도를 시험할 수 있습니다.
예컨대 사탄이 욥을 시험한 것도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욥을 쓰러뜨리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조건을 거시면서 욥을 붙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귀는 서머나 교회를 쓰러뜨리려고 시험했지만 쓰러뜨릴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서머나 교회를 든든히 붙들고 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난의 기간은 십일 동안이었습니다. 여기서의 십일은 짧은 기간을 의미합니다.
사실 십일이 아니라 십주 아니 십년 동안의 고난이라 하더라도 장차 우리가 살아가게 될 영원한
삶에 비하면 지극히 짧은 기간에 불과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고난을 감당할수 있는 사람에게만 임합니다. 아울러 고난은 일시적이기 때문입니다.
둘째 당부입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 교회가 장차 받을 십일 동안의 환난이 끝나고 나면 그 결과는 두가지 가운데 하나일
것입니다. 옥에서 풀려날 수도 있거나 아니면 처형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예수님은 서머나 교회를 향하여 죽도록 충성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만일 옥에서 풀려난다면 아직도 해야할 사명이 있음을 깨닫고 더더욱 생명다해, 충성해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때의 “죽도록”은 충성의 강도를 의미할 것입니다.
만일 처형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죽음을 두려워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순교하는 그 순간까지 변함없이 충성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의 “죽도록”은 충성의 기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도록 충성하는 자에게 “생명의 관”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충성했으니까 영화로운 관이 주어지고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바쳤으니까 "영원한 생명”이
주어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잠시입니다. 그러나 장래 우리가 누릴 영광은 영원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경한 것입니다. 그러나 장래의 영광은 지극히 크고 중한 것입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예수님이 당부하신 대로
우리가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예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합시다.
그리함으로 예수님이 주시는 생명의 관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서머나 교회가 받은 약속입니다.
계속해서 2장11절 말씀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편지하시면서 언제나 이와 같은 말씀을 똑같이 하셨습니다. “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각 교회의 사자는 예수님의 편지를 성도들 앞에서 읽어줄 것입니다.
각 교회의 사자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편지를 읽을 때 각 교회의 사자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분은
누구이십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듣는 이의 귀를 열어주시고 듣는 이의 마음을 열어주시는
것은 성령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각 교회의 성도들이 그 교회의 사자를 통하여 성령님이 하시는 말씀을 진지하게 듣고
순종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박해로 인해서 첫째 사망의 고통을 당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시록 20장6절의 말씀처럼 그들은 첫째 부활에 참예하기 때문에 둘째 사망의 해를
결코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더불어 세세토록 왕 노릇하게 될 것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켰습니다.
그들은 극심한 환난과 궁핍과 유대인의 비방 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예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생명의 관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있는 교회는 서머나 교회뿐입니다.
서머나 교회는 폴리갑 기념 교회로 오늘날도 그대로 존속하고 있습니다.
폴리갑은 사도 요한의 제자로서 86세의 나이로 순교한 서머나 교회의 사자였습니다.
박해자들은 폴리갑을 서머나의 노천극장으로 끌고갔습니다. 그 때 로마의 총독이 폴리갑에게
회유의 말을 던졌습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면 용서해주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러자 폴리갑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86년간 예수님을 섬겨왔는데 그분은 단 한번도 내게 해를 끼치신 일이 없소.
그러니 내가 어찌 예수님을 부인할수 있겠소?”
로마의 총독은 폴리갑에게 최후의 통첩을 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당신을 화형에 처할 수밖에 없소.”
그 때 폴리갑은 이와 같이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한 시간 타다가 꺼지고 마는 불로써 나를 위협
하지만 당신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를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심판의 불에 대해서는 알지를
못하고 있소. 주저하지 말고 당신이 원하는 대로 시행하시오.”
그 날은 유대인들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곳에 있던 많은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규례를
어겨가면서까지 자진해서 나무들을 잔뜩 들고 왔습니다. 폴리갑을 처형해버리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폴리갑은 86세의 나이로 화형에 처해져서 순교했습니다.
혹시 “서머나”(Smyrna)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헬라어 “서머나”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몰약”(myrrh)입니다. 몰약은 산 사람을 위해서는 향수로
사용되고, 죽은 사람을 위해서는 썩는 냄새를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향기로운 물질입니다.
몰약은 향기를 내는 식물을 짓이겨서 만듭니다. 마찬가지로, 서머나 교회는 박해로 짓이겨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서머나” 곧 “몰약”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짓이겨지면 짓이겨질수록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를 더욱더 진하게 발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머나 교회에 비하면 우리는 너무 안일하고 나태하지 않습니까?
서머나 교회처럼 생명의 관을 쓰는 그 날까지 예수님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합시다.
그리해서 우리 모두 승리하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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