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행함.야고보서

순복하고, 대적하라 (약 4:1-10)

Andy1954 2022. 7. 2. 01:28

교회에 처음 나오는 사람들은, 교회는 사랑이 가득하고, 서로 위해주고, 아껴주는,

선한 사람들만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막상 교회 속으로 들어와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툼이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사람을 깍아 내리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고, 교회를 떠나기도 합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이러한 문제들이 쉬이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교회에 모이는 많은 사람들이, 모순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교회에 대해서는,

거룩해야 하고, 사랑이 넘쳐야 하고, 헌신적이며, 희생적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지만,

정작, 자신에 대해서, 너무도 안일하고, 너그럽다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남을 미워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은, 절대로 이해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생각을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속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제대로 표현이 안되어 오는, 오해라고 말합니다.

어떤 경우는, 저 사람들은, 정말로 사랑 받지 못할 행동을 하기 때문이라고,

아예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깍아 내립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이 사랑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성도가 저럴 수가 있느냐고, 비판을 합니다.

결국, 이러한 자기 중심적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교회 안에서, 여전히, 미워하고, 높아지고자 하고, 용서하지 못하고, 시기하고, 다투는,

세상의 모습들이, 남아 있을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은, 초대교회에서도, 일어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1절 말씀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그들 가운데, 싸움과 다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그 싸움과 다툼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정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욕심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1절 말씀의 후반부를 보게되면,

'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어떤 싸움을 싸우든 간에, 그 원인이 무엇인가를, 잘 생각해 보면,

결국엔, 욕심 때문입니다

자신이 손해보지 않고, 자신이 낮아지지 않고, 자신이 죽지 않을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손해보고자, 싸우는 경우를, 보신 적 있습니까?

서로 양보하고 싶어서, 싸우는 것, 보신 적 있습니까?

서로 낮아지고, 겸손해지기 위해서, 다투는 것, 보신 적 있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24절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을 자들이 아니라,

못 박은 자들입니다.

이미, 그렇게 되어진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신다는 것은,

나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죄의 삯인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영생을 얻는 원리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함께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고 하는 자들이,

정욕으로 좇아나오는, 싸움과 다툼 가운데 있다는 것은, 참으로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다툼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속에 그러한 욕망들도, 용납하지 말아야 합니다.

"고든 케디"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탄이, 교회를 무너뜨려고 할때, 성도들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는데,

교회 안의, 많은 타툼과 시기와 분쟁들로 인해서, 교회의 하나 됨이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다투고, 분쟁하는 것이, 바로 마귀의 종노릇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끊임없는 욕심이, 시기와 다툼과 살인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야의 아내를 향한, 다윗의 욕망이, 결국 자기 충신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에 대한, 야합의 욕망 때문에, 결국 나봇과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살인은, 다 이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싸우고 있다면, 그 이유를 자세히 들어다 보십시오.

무엇보다도, 내가 죽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정욕과 탐심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욕심을 낸다고, 다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얻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도, 결국에 다 잃고 말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얻지 못하는 이유를,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절 하반절에 보니까,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고, 남을 것을 취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따라, 부지런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붙잡고, 열심으로 구하는데도, 얻지 못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절 말씀을 보십시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정욕으로 구할 때에,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구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아무리 떼굴떼굴 구르면서 떼를 써도, 잘못된 것을 구할 때에는,

부모가 절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좋은 부모일수록, 더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 정욕에 대해서, 얼마나 경계하고 계시는지를,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탐심이 곧 우상 숭배라고, 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시험에 넘어간 것도, 결국은 탐심(욕망) 때문이었습니다.

모든 죄의 근원이, 바로, 세상적인 욕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욕망 때문에, 우리가 쉽게 무너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죄의 원인이 되는, 욕망을, 끊임없이 경계시키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누가 12장 15절에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은 계속해서, 우리의 탐심을 자극하기 때문에,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우상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영적 간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탐심이 곧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욕으로 구하는 것,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 

욕심 때문에 다투고, 싸우는 것, 이 모든 것들은,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그래서, 4절 말씀에 보면,

정욕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간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정욕을 좇아가는 것, 그것은 곧 영적 간음이요, 세상과 벗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 원수됨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내가 비록, 하나님을 떠나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탐심으로 행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됨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정욕대로 살아가는 것의 심각성을, 이보다 더, 강하게 나타낸, 표현도 없을 것입니다.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의 욕심을, 경계하고 계십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요, 영적 간음이요, 하나님과 원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탐심 때문에, 인류가 죄악에 빠졌고, 탐심 때문에, 수 많은 성도들이 넘어지고 있으며,

세상은 온통 물고, 뜯고, 싸우는 정글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우리의 최대의 적은, 바로 이 탐심입니다. 이 탐심은 여러 모양으로, 우리에게 접근해 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해서, 이 탐심이 필요다하다는 식으로 접근해 오기도 하고,

때로는, 교회의 부흥이라는 이름으로, 이 탐심이 은근슬쩍 들어오기도 합니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탐심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탐심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34장14절 말씀에 보면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에 대한 영광과 찬양과 존귀를, 다른 신이나, 우상이 차지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질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리에, 다른 것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에게는, 하나님보다 더 귀한, 그 무엇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우리 주 예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셨습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 우리 안에 있는 정욕으로 말미암아, 시기하고, 다투고, 싸우며,

아직도 정욕을 버리지 못하고,

세상과 벗되고, 영적 간음을 행하는, 하나님과 원수된 자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합니다.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우리 안에 정욕을 품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습니다. 

내 속에 있는, 육체의 욕망으로 인해, 우리는 애통하며, 울어야 합니다.

버렸는가 싶없는데, 어느새, 내 마음 속에 다시 들어와, 앉아 있는,

그 끈질긴 정욕 때문에, 울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세계 평화와 선교를 위해 기도하고, 민족의 통일과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먼저, 내 심령을 뒤돌아,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도,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있으나,

아직도 여전히, 육체의 정욕이, 자신을 이끌어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탄식하였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속에 있는, 육체의 욕망들, 세상적인 탐심들이,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 떼어놓습니다.

우리의 눈을 멀게 하고, 우리의 귀를 먹게 합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욕망의 문제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완전히 떨쳐 버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에대해, 적극적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것이 슬며시 파고 들때마다, 초기에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정없이 내리쳐서, 자라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이처럼, 강력하게 대적하면, 결국은, 우리를 피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의 핍박보다, 우리에게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는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는

육체의 소욕이고, 정욕입니다.

안일하게 대처하면, 은근 슬쩍, 우리에게 붙어서, 우리를 허물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겸손히 하나님께,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 곧, 마귀를 대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에, 순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늘 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늘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빛 가운데로 나올수록, 어두움의 일들은,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수록, 마귀의 일을, 분명하게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손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죄는 더 큰 죄를, 불러옵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일들을, 삼가시기 바랍니다.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고자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두 마음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은, 정함이 없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을, 동시에 사랑하거나,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성결케 하시기 바랍니다. 성결은 구별됨입니다.

그래야, 세상 정욕에 속한 마음들을, 내어 쫓을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겸손히 자신을 낮추시기 바랍니다. 낮아진 자는, 결코, 넘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도, 그리스도의 덕목 가운데,

첫째도 겸손이요, 둘째도 겸손이요, 셋째도 겸손이라고 했던것입니다.

겸손한 자가, 하나님께 순복합니다. 그리고, 마귀를 대적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정욕을, 물리치게 되는 것입니다. 

겸손은,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늘 승리하도록, 이끌어 주는, 놀라운 영적 무기입니다.

반면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성경은 교훈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 이 마귀와의 영적 싸움에서, 우리의 탐심을 내려놓고,

겸손함으로, 늘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