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행함.야고보서

믿음과 행함 (약 2:14-26)

Andy1954 2022. 6. 20. 11:08

로마서3장27-28절 말씀에 보면, 바울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그러면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된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이처럼,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이, 행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자기의 행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을려고 하다가는

낭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는, 24절 말씀에서, 이렇게 반론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

이어서 26절에서는,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야고보서의 말씀을 오해했었고,

종교 개혁자 마틴 루터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까지, 혹평을 했던 것입니다.

또한, 지금도 많은 분들이,  '그럼 그렇지, 공짜가 어디 있어,

그래도 뭔가, 내가 한 것이 있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구나' 하고 오해를 합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이해해야 합니다. 야고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행함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우리의 믿음과 행함이,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의 증거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참 믿음이란, 무엇인가? 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나불대면서, 그것을 믿음이라고 착각 할까봐,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술로, 주를 부르고 있다고, 내 안에 믿음이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였다,고

그것으로 ,내가 온전한 믿음 가운데 있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해야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셨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믿음이 있어야, 교회에서 이것저것 열심으로 봉사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자기 만족으로, 봉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 믿음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어찌보면,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가 전도 하는데, 불과 5분 정도면,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로 하여금, 예수 믿게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였는데, 불과 5분만에,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얻는 것입니다. 살려내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이처럼 믿음의 위력은 놀라운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로 비유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가, 믿음이라고 했을 때,

그 열쇠가 대충 비슷하면 열리는, 그런 열쇠이겠습니까?

아무 열쇠로나 열리도록, 해 놓았겠습니까?

아닙니다. 정확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조금이라도 틀리면, 열리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바로 그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내 안에 있는 믿음을, 뒤돌아 봐야 합니다.

그 믿음이, 살아 있는 참 믿음인지, 죽어 있는 거짓 믿음인지, 점검해야 합니다.

그냥 대충 덮어놓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는 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살아있는 참 믿음이 아니라면,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영혼의, 죽고 사는 문제가 달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중하게, 내 안에 믿음을,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 자신도, 스스로에게 속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믿고 있지도 않으면서, 제대로 믿고 있는 줄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죽은 믿음, 헛된 믿음,을 품고서도, 영생 얻는 믿음인 줄, 착각할 수가 있다는 말씀 입니다.

오늘 야고보는, 행함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그 믿음이, 살아 있는 믿음인지, 죽어 있는 믿음인지를,

구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장'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들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저들은 모두, 믿음으로 살았던, 위대한 믿음의 용사들입니다.

그들의 믿음은, 그들이 바라는 것들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실상이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믿음이 실체가, 저들의 삶을 통해서, 밝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용사들을 살펴보면, 

저들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어떻게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낳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고,

믿음으로 노아는, 방주를 예비하였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약속의 땅에 그 자식들과 함께 우거하였고,

모세의 부모들은 믿음으로, 모세를 죽이지 않고, 석달 동안 숨겨 키웠으며,

믿음으로 모세는, 애굽의 모든 보화와 큰 재물들을 버리고,

그 백성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능욕을 받았으며,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들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며........,

믿음은, 우리 안에 숨어 있는, 그 무엇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거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로마서 말씀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믿음의 내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면,

야고보서 말씀은, 그 믿음의 능력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믿음은,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속에서부터,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을 바꾸고, 내 가치관을 바꾸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바뀜으로 인해서, 결국 내 행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믿음이, 내 안에 들어와 있는데, 어떻게 삶의 모습이,

변화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 믿음인 것입니다.

그야말로 무늬만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무늬만 무성한 믿음을 가지고, 천국 문을 열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그런 믿음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는 잘 믿고 있다고, 나는 분명 천국 백성이라고,

나는 확실한 천국 열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다가, 천국문에 이르렀는데,

아무리 열려고 해도, 열리지 않는다면, 그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주님께서, 도무지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시 세상에 내려가서, 제대로 믿고, 오겠다고 할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들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점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날마다 묵상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들은대로 행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죽은 믿음으로는, 구원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믿음, 머리 속에 머물러 있는,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의 전 인격과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반드시 그 삶가운데,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야고보 사도는,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그냥 입으로만,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면서,

정작 그에게 쓸 것을 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그 믿음대로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을 통해서, 증거되고 나타나기 때문인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산 위에다가, 방주를 지은 것입니다. 그냥 믿고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노아의 믿음은, 방주를 짓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더 좋은 부활을 믿기에,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 예비하신, 더 좋은 것들을, 믿기에, 이 땅에서, 희롱과 채찍과,

결박과 옥에 갖히는 것과, 온갖 시험을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에, 반드시 영향을 끼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귀신들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줄을 믿고, 두려워 떨지만, 섬기지는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이와같이,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그저 알고만 있는,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오늘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이 얼마나 오용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루터가 외친, '이신칭의'의 그 복된 진리가 얼마나 잘못 인식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믿음은, 그렇게 내 머리에 머물러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그 믿음은, 야고보 사도의 말씀처럼, 죽은 믿음이고, 헛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아직도, 내 안에 무늬만 무성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는 아닌지요?

아직도, 나는 색깔만 무성한, 그리스도인은 아닙니까?

우리는 돌이키고, 회개해야만 합니다. 안일함에서 깨어나야만 합니다.

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나의 믿음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은혜와 긍휼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럴때,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며, 믿음대로 행하는, 참된 능력의 믿음을,

소유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와같은 믿음을 받고, 증거하며, 누릴수 있기를,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