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46절, "그들은(악인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복음은, 듣는 이들로 하여금 상급과 형벌을 선택할수 있도록 여러 단서조항을 제공하여, 듣는이들 모두가
복음의 교훈과 가르침에 순종적인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특히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은 언약을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구원의 언약을
주시면서, 무엇보다도 말씀대로 행하며,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일지라도 주님께서 주신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말씀에따른 순종의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뒤돌아 보면 순종하며 살 때보다는, 도리어 말씀을 외면하고 거역하며 살때가 더많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순종의 죄를 깨닫고, 날마다 회개하며 살아야 하는데,
그 이유는,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2장 16절을 보게되면, 복음은 선한 이들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영원한 행복을,
악인들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영구한 비참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생명에 이르게 하는 '생명의 냄새'라고만 하여도, 견실한 믿음을 가진 성도들이라면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찾아 의무를 감당할 것이라,고 상정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복음이 사망에 이르게하는 '사망의 냄새'가 될수도 있음을 상기시켜 주고있습니다,
이것은 주님은 사랑의 주님이면서 또한, 주님이 두려운 분이라는 사실도 알아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두려운 분'이라고 생각할 때에 사람들이 죄를 떠나는데 더 열심을 하게되며, 죄를 삼가게하는 강력한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악인들도, 영원한 벌을 싫어 하는 것이 일반적인 정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신실하지 못하고 거짓과 위선으로 음흉한 행실을 보이면서도 사후의 영원한 행복의 약속에
대해서는 그것을 소유하고 누리기 위해 스스로를 그리스도인이라 여기며 종교생활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원한 형벌과 고통을 생각하는 일은 그들에겐 너무나 충격적인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악인들이 내세에서 영원한 비참을 만나게 된다,는것 자체를 자기들 신앙의 한부분
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곤 합니다.
그래서 이시간 성경이 증거하고있는 보편적인 전제 곧 '악인들을 위하여 내세에 예비된 고통은 영원하다'는
용해된 진리를 말씀드리려고 하는것은 그들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것을 거부하거나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죄악에 대한 영벌의 문제가 해결되거나, 그 문제를 피할수 없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다스리고 계시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영원한 진리의
기반위에 있는 말씀인 성경은, 사람의 영혼은 죽음이라는 과정을 통하여, 몸(육신)을 떠나 또 다른 세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데, 이생에서의 삶을 심판 받게 되고, 그 심판의 결과에 따라, 영원히 행복할 수도 있으며,
영원히 비참할 수도 있다는것을 말씀하고 있으므로 이땅에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증거하고있는 진리의 말씀의 핵심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시어 선택된 죄인들을위해 죽으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믿고 영접하는 자에게 죄사함과 구원
그리고 영생을 은혜로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지만, 반면에 악인에대한 영원한 고통과 형벌에대해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심으로 그말씀을 함께 살펴 보면서 왜 이와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가,
생각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서 12장 2절을 보면, '영생을 얻는자도 있겠고 수치를 당하여 영원히 부끄러움을 당할자도 있을
것이며' 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이사야서 66장 24절에는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고 무서운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33장 14절에서는 선지자 이사야가 저주받은 이들의 고통이 계속됨을 보며 놀람과 무서움으로
'누가 삼키는 불과 함께 거하겠으며 우리중에 누가 영영히 타는것과 함께 거하리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와같은 엄청난 죄인과 악인에 대한 형벌은, 신약성경에서는 더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약성경은 그와 같은 특별한 내용들을 분명하게 밝혀내는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유다서 1장 6절에서, 자기가살던 시대에 하나님의 권위를 업신 여기는 신성모독적인 사람들에
대하여 '주께서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라고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14장 11절에서는 '악인들을 괴롭게하는 그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라고 악인의
형벌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43-45절에서 예수님은, 불구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다,는 엄숙한 선언을 세 번이나
되풀이 하며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시말해 자신의 욕심을 채우지않고 죄를 삼가하지 않기 위하여 자신의 몸을 희생하는 아픔이 있을지라도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욕심을 채우며 죄를 범해,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지옥은 어떤 곳입니까? 지옥은 구더기도 죽지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한다고 마가 9장 48절에서 묘사
하고 있습니다.
의인들이 영생에 들어가듯 악인들이 들어가는 지옥도, 한시적인 감옥이아닌 영벌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인과 악인을 어떻게 대우 하실지는 오직 위로부터 내려온 계시를 통해서 뿐입니다.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 하신일, 노아시대에 홍수로 옛세상을 멸하신일, 아브라함때에 소돔과 고모라
를 유황 불로 둘러 엎으신 일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시면, 실제로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사건
들로 성경은 우리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요나서에서는 '니느웨'에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지지 않은 것을 볼수 있습니다.
요나가 하나님의 심판을 외칠때, 사람이든 짐승이든 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하고 복음에 응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악한 길을 돌이켜 떠나는 회개를 하고, 복음에 순종할 때에는, 심판하기는 커녕
도리어 용서와 사랑으로 상급을 부여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38장 17절에는 우리가 죄를 회개하면 우리의 죄를 주의 등뒤에 던지신다고 약속하고 계시며
시편 103편 12절에서는 동이 서에서 먼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고 말씀하시고
미가서 7장 19절에는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죄를 바다에 던지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부리는 죄인들에게는 영원히 심판하실것도 확실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악인에게 예비된 영원한 벌은 기독교 언약의 본질인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이생을 허락하신것은 우리가 이땅에서 사는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이루어, 죽은 뒤에는 속죄하는 제물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자기의 악함과 하나님의 진노중에 죽으면, 그 상태로 영원히 머물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귀에게 주어진 영원한 벌이 악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마귀(devil)'또는 '사탄(satan)'이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때 광명의 천사였지만,
교만하여 하나님을 거스려 모반을 자행함으로 하늘에서 쫒겨나, 땅 아래로 던져졌습니다.
그들을 위하여 예비된 장소가, 유다서 1장 6절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기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처소를떠난 천사들을 큰날의 심판까지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라고 사도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천사들 즉 마귀와 사탄들과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이 받을 형벌은 둘 다 영원하다는 면에서
같다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 25장 41절을보면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 가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피난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빨리 피해야 하며, 모든 언행에서 거룩하고 경건해야 하는
것입니다.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이, 내세에 받을 형벌이 영원하다는 것,을 여러분이 믿으신 다면,
야고보서 2장 19절 말씀대로, 아주 잘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정당성이 없는 교리를 주장하는 것만큼 불신앙과 신성모독을 더 확실하게 조장하는 일은
없습니다. 지옥의 고통이 영원하다는 하나님의 단호한 말씀과 경고에도 사람들이 죄에서 떠나게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것이 이미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마 카톨릭에서와 같이 아직도 '지옥의 고통에서, 장차
회복될 소망'을 가지라는 허황된 가르침을 계속하고 있다면, 사람들이 회개는 커녕 도리어 얼마나 더극악한
죄악의 소굴로 신속하게 나아가겠습니까?
또한 일부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나 사랑만을 강조할 때에 하나님의 공의가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날 죄를 경하게 생각하는 교회생활이 바로 이러한 편향된 신학사상에서 왔다,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18장 25절을 보면,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냐' 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영원토록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이유때문에 '하나님을 불의하시다'고 말하는 것이
옳지 않은 일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생각하거나 말한다고 해서, 결코 하나님께서 불의한
분이 되는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인들이 이세상에 있을때에,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하시는 '말씀의 공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내세에서 고통을 당할때에, 그것을 인정하며 느끼게 될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죄짓는 것을 피하고 거부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수사적인 기술을
동원하여 설득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영원히 당할 고통을 걸고, 이 땅에서 잠시 죄악의 즐거움을 누리는 모험을
감행할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31절을 보게되면, 이 땅에서 호화롭게 즐기며 살다가 지옥에 떨어진 부자는,
만일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다면, 자기 형제들이 삶의 자세를 바꿀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를 자기의 형제들에게 보내어 그의 형제들만은 고통받는 이곳에 오지 않도록 도와달라
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와 선지자들의 말도 듣지아니하는 '회색적인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요구하는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 자가 찾아갈 지라도,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감각적인 것으로부터 우리의 생각을 거두고, 영적인 믿음의 눈으로, 저주 받은 자들의 한없는
비참함을 잠시 묵상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불행한 많은 영혼들이 불쌍한 신음소리로, 허망한
슬픔을 발하는 것을 반드시 듣게 될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오호라,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었던가?
잠시 잠깐이면 끝나 버리는 이생의 즐거움과 쾌락을 누리려고, 그치지 않는 이 불행과 고통을 자초하다니,
참으로 안타깝도다 죄의 삯의 결과가 바로 파멸과 멸망인데,"
그러므로 다시 한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여러분에게 권면합니다.
자기를 저주하는 양심의 가책이 사라지지 않고, 내세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스스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참 그리스도인으로 사는것이 부담스러워서, 영원한 하늘의 행복과 즐거움을 상실하고, 꺼지지 않는 타는
불 속에 거하는 것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지, 한번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늘 백성의 지위를 회복하고 영원한 고통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울수
있을까, 깊이 묵상하시고 깨달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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