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7장 7∼11절 말씀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9세기 말 영국의 런던에는 세 분의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는데 그리스도 교회의 프레데릭 마이어
목사님, 뉴파크 스트리트 교회의 찰스 스펄젼 목사님, 웨스트민스터 교회의 캠벨 몰간 목사님,
이셨습니다. 이들 세 분의 목사님들은 복음을 통한 서로간의 합력을 이루면서 각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크게 부흥시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세 분들 가운데서 교회의 교세면에서나 영향력이
조금 뒤지는 분이 바로 그리스도 교회의 프레데릭 마이어 목사님이었습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이어 목사님의 마음 속에 열등의식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스펄젼 목사님만큼 설교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몰간 목사님처럼 카리스마적인 권위있는
목회도 못하는구나." 이러한 생각이 그의 마음 속에 생기면서 그는 다른 두 분의 목사님에 대해
한편으로는 부러워하기도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시기하기도 했습니다.
"강단에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이래서는 안 되는데…" 그러면서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그러다가도 누군가가 옆에서 스펄젼 목사님이나 몰간 목사님에 대해서 칭찬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의 마음이 다시금 불편해 지고는 했습니다.
아무리 시기심을 떨쳐버리려고 애를 써도 자기 힘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그 문제를 놓고 하나님 앞에서 간절히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제 힘으로는 어쩔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 되겠습니다. 제 마음에서 불일 듯
일어나는 시기심을 없애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날 그는 간절히 기도를 드리던 가운데 그의 마음을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하나님의 음성이 있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기껏해야 시기를 없애는 것으로 만족을 삼으려고 하느냐? 그 두사람과 그들이 섬기는
교회를 위해서 기도를 해 줄 수는 없단 말이냐?"
마이어 목사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두 분 목사님이 생각날 때마다 그들이 섬기는
교회를 위해서 축복하는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심지어 공식석상에서 이렇게 기도할 때가 있었
습니다. "하나님, 스펄젼 목사님과 몰간 목사님의 목회사역에 큰 복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목회하시는 두 교회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크게 부흥할 수 있도록 채워주시옵소서.
그래서 그 교회들이 넘치도록 채워지고 나서 남은 사람들이 있거든 우리 교회로 보내주시옵소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찾아왔습니다. 마음에 자유함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 뒤부터 이 세 분의 목사님은 이전보다 더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들은 함께 힘을 합쳐서 런던의 복음화를 위해 애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 교회 모두를 크게 복 주셨습니다. 세 교회 모두가 아주 크게 성장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은 마이어 목사님에게 글을 쓰는 좋은 재능을 주셨습니다. 그는 좋은 책을 많이 저술
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쓴 책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마태 7장 1∼5절에서 "비판하지 말라" 그리고 마태 7장 6절에서는
"다투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대신에 칭찬하고 격려해 주어야 한다
는 것, 서로 다투지 말고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왜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뜻과 생각대로 그렇게 쉽게 되던가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마이어 목사님같은 분도 자기의 힘대로 되지 않으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할때 다른 사람과의 불편한 관계가 화목한 관계로 바뀌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기도에 관한 교훈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기도의 응답성입니다. 우리가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기도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둘째로, 응답의 당연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며 떡과 생선 비유를 들어서 설명해 주셨습니다.
셋째로, 응답의 여러 가지 형태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기도의 응답성입니다.
7∼8절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예수님은 기도와 관련해서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 는 표현을 하셨습니다.
원래 세 번 반복해서 기도하는 것은 그만큼 간절하게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육체를 찌르는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세 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도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외면하거나 거절
치 않으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지 못하는것은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힘으로 무엇인가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실수하고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구하는 심정으로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예수님은 첫번째 기도를 마치신후 제자들에게 가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잠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깨우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신후,
하나님의 뜻을 찾는 심정으로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두 번째 기도를 마치신 뒤에 제자들에게 가셨
습니다. 그때도 제자들은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번째 기도하러 나아가셨습니다. 이번에도 같은 내용의 기도를 문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하셨습니다. 얼마나 애써 기도하셨는지 흐르는 땀이 피방울처럼 되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기도하시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주신 마셔야할 잔이었으며, 예수님은 그잔을 마심으로 모든 백성이
죄에서 구원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신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해서 담대히 나아갈 수 있으셨습니다.
그때 가룟 유다가 검과 몽치로 무장한 무리를 이끌고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에게 거짓 입맞춤을 하면서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라고 하면서 함께 온
무장한 무리들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사랑을 쏟아준 제자로부터 지금 배신을
당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친구여, 네가 무엇을 하려고 왔는지 행하라."고 하시며 가룟
유다를 친구라고 불러 주셨습니다. 가룟 유다를 책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불쌍히
여기셨을 뿐입니다.
반면에 베드로는 그때 어떻게 했습니까? 제자로서 의분이 발동해서 검을 빼어서 예수님을 붙들러
온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한쪽 귀를 베어 버렸습니다. 그렇지만 상대편은 검과 몽치로 무장을 한
큰 무리들 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행동 한다고 예수님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베드로가 한 일은 도리어 예수님을 더욱 난처하게 만드는 일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따라서 쓸데없는 만용과
객기를 부린고 만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간혹 사소한 일에 화를 내며 거친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큰 소리로 고함을 칠 때도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는 심정으로 기도하면 평강이 넘칠 것입니다. 또 기쁨이 있을 것이며
마음에 자유함이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응답의 당연성입니다.
예수님은 9-10절말씀에서 이른바 떡과 생선의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떡과 생선은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주로 섭취하던 음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떡 5개와 생선 2마리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시고 남은 조각을 열 두 광주리에 모으
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떡 7개와 생선 2마리를 가지고 4,000명을 먹이시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거두셨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떡을 비유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떡을 달라고 하는데 누가 떡 대신 돌을 주겠습니까?
유대 광야에는 언뜻 보면 크기나 모양도 색깔까지도 떡과 비슷하게 생긴 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가 제일 먼저 무엇을 시험했습니까?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그곳에 있는 돌이 떡과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비슷하게 생겼다 할지라도 아들이 배가 고파서 떡을 달라고 하는데 돌을주는 아버지
가 어디 있겠습니까? 만일 그 돌을 떡인 줄 알고 씹으면 이가 몽창 부셔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은 10절 말씀을 통하여 생선을 예로 들어서 말씀하셨습니다.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아들이 배가 고프다고 생선을 달라고 할때 뱀을 줄
아버지가 어디 있겠습니까? 뱀은 땅위를 기어다니는 짐승입니다. 구약성경 레위기 11장을 보면
땅에 기는 것은 가증히 여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먹지를 못합니다.
또 수중생물 가운데 뱀하고 비슷하게 생긴 뱀장어나 메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이것들 또한
지느러미도 없고 비늘도 없기 때문에 먹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요리해서 생선인양 아들에게 먹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이 되고 스스로를 더럽히며 부정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기 자식을 그렇게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아버지는 없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자식을 사랑하고 아낄 줄 아는데 하물며 우리 하나님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녀된 우리가 구하면 반드시 주십니다. 문제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에 얻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찰스 스펄젼 목사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성공하는 것은 오히려 그 성공
때문에 망하는 것이다." 즉 기도없이 성공하는 것은 참된 성공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대로 기도했는데도 불구하고 잘 되지 않는 것 같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고 성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면 언제나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셋째로, 응답의 여러 가지 형태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우리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은 악하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비록 악한 자라도 우리의 자식에게는 좋은 것을 줄줄 압니다.
하물며 선하신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기도를 했는데 아직도 얻지를 못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이신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기도응답에는 세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첫째, "yes" 의 응답이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응답하실 때입니다.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을때 그는 침상에 누운 채 성전 쪽을 바라보면서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사는 날 동안에는 평안함과 견고함이 있게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긍정적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십니다.
둘째, "no" 의 응답이 있습니다. 부정적으로 응답하실 때입니다.
고린도후서 12장을 보면 사도 바울의 경우는 그에게 육체를 찌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괴로워서 자신의 육체에 있는 가시를 없애달라고 세 번이나 기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육체의 가시는 없어지지 않았지만 사도 바울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바울로 하여금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서 그에게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다는 사실과 또한 바울의 연약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나타날 수 있음을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오히려 자기의 연약함을 기뻐하고 자랑하고 감사하게
생각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no"로 응답하실 때가 있습니다.
셋째, "wait" 의 응답이 있습니다. "기다리라"는 응답입니다.
하박국 2장 3절 말씀입니다. "비록 더딜찌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땅에 떨어지는 기도는 없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응답이 있고 열매를 맺게되어 있습니다.
나사로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가 병에 걸려 죽게 되었을때 그의 가족들이 예수님에게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즉시 그곳으로 가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경과한 후에 가셨습니다. 그리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님은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기도할 때 경우에 따라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게 하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은 때로는 히스기야의 경우처럼 "yes"로 긍정적인 응답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또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no" 로 부정적인 응답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나 나사로의 경우처럼 "wait" 로 응답을 주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언제나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누가 11장 13절에보면 똑같은 말씀이지만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표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곧 성령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그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우리의 삶속에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열린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성령 충만한 가운데
언제나 사랑하며 나누고 베풀며 희생하며 섬길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섬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 기쁨과 평강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평안하고 아름다운
관계 화목한 관계로 바꾸어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함을 받아 이와같은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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