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의 신앙에 있어서 매우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만약에 우리의 신앙에서 부활이 빠져버리면, 우리의 믿음은 제대로 설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5장 13∼14절에서, 부활의 중요성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만일 죽은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오래동안 신앙생활을 하고있다고 할지라도 부활에대한 확신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바로 설수가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 가운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부활에대한 확신이 없으면, 그사람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망의 권세를 깨치시고 지금도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것이 아니고, 그저 이천년 전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신 예수를 믿는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자기 자신의 육체적인 부활도 믿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결국은 내세에 대한 아무런 소망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의심을 자꾸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몇 가지 주장들을 살펴보면서, 그것들이 얼마나 터무니없고 근거
없는 것인지 깨닫는 동시에 우리의 부활 신앙이 더욱 공고해 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기절설'이란 것이 있습니다.
이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온전히 죽으신것이 아니고 십자가의 고통때문에 정신을 잃어버리고 일시적
으로 기절하셨다는 것입니다. 무덤안의 찬기운과 또 세마포와 함께 둘러싼 향품에서 나오는 자극적인
냄새 때문에 예수님이 다시금 정신을 차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신 예수님이 감쌌던 세마포를 손수 벗기셨을 뿐만 아니라, 때마침 큰지진이 일어나서
무덤의 입구를 막고 있던 동굴이 열렸고, 그래서 예수님은 그틈으로 빠져 나오실수 있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타나셨고, 그때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셨다가다시 사신 것처럼, 잘못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기절설'의 내용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의 군병들이 만약 예수님이 살아 계셨다면 그것을 몰랐겠습니까?
만약 그들이 죄수를 죽이지 않고 살려 내보내면, 자기들이 처벌을 받거나 죽게 됩니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을 살려 내보냈겠습니까? 그들이 나중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가까이 다가갔을 때,
그들은 예수님이 분명히 돌아가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서, 그들은 창으로 예수님의 허리를 찔렀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서는 피와 물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분명히 죽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병들은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에게 내주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 뒤 두 사람은 예수님의 시신을 무덤에 안치했습니다.
만일 그때에 예수님의 숨이 끊어지지 않고 살아있는 기색이 있었으면, 그 두사람이 몰랐겠습니까?
예수님이 돌아가신 것이 분명하니까, 향품과 더불어서 세마포로 온 몸을 감쌌겠지요?
그러니 예수님이 무슨 수로 숨도 안 쉬시고, 사흘 동안이나 기절한 채로 살아 계셨겠습니까?
또, 우리 예수님은 엄청 많은 피를 흘리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셔서 피 흘리시고 가시 면류관에 찢기셔서
피 흘리시고, 손과 발에 못이 박혀 피 흘리시고, 또 날카로운 창에 찔리셔서 피와 물을 다 쏟으셨습니다.
그토록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신 예수님이 어떻게 사흘동안 기절한 상태로 견디실 수가 있었겠습니까?
설사, 그들의 말대로 예수님이 기절하셨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렇다 할지라도 많은 상처를 입으신 예수님이 세마포로 싸여 있는데, 어떻게 자기의 힘으로 세마포를,
풀 수가 있겠습니까? 거기다 로마 군병들의 엄중한 경계를 어떻게 뚫고 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또,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예수님은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제자와 함께 오랫동안 같이 걸어 가셨습니다.
로마 군병들에 의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으신 예수님이 기절하셨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셨다고 해도,
어떻게 그토록 오래 걸으실 수가 있겠습니까? 도무지 얼토당토한 이야기입니다.
이 모든 일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시지 않고서는 도무지 가능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기절했다가 다시금, 정신을 차리셨다는 주장은 전혀 설득력이 없습니다.
둘째로, '매장부인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이 실제로는 무덤에 안치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무덤이라고 생각되었던 곳이 빈 무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셨습니다. 로마 사람들의 관습에 의하면 죄수의 몸은 무덤에 안치를 시키지
않고 공동묘지에 그냥 되는대로 가져다 던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십자가상에 달린 두강도와 함께 공동묘지에 던져졌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애당초 무덤에 시신이 없었으니까 제자들이 본 무덤이 비어있을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 주장도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를 않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의 군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이 무덤에 있지도 않은데, 큰돌로 무덤의 입구를
막아놓고 인봉까지 합니까? 거기다가 경비병들이 밤새도록 그 앞을 지킵니까?
또, 예수님의 시신이 공동묘지에 던저졌다면, 가서 그 시체를 찾아오면 모든 의혹이 해결되지 않습니까?
"봐라, 예수의 시체가 여기 있는데 누가 그의 부활을 주장하느냐?"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 논박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매장부인설도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입니다.
셋째로, '환각설'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너무나도 갈망한 나머지 헛것을 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도 엉뚱한 주장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한두 사람에게 나타났어야 그런 말을 할수 있을 것입니다.
고전 15장 6절의 말씀에,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착각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반박할 가치조차 없는 주장들입니다. 모두 마귀의 궤계입니다. 우선 한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이었습니까?
그들은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 "예수님이 어찌되든 상관없이 그저 내 한 목숨 살아남아야겠다" 라고
예수님을 버려두고서 도망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이 순간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어떠한 핍박과 고난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담대하게 입을 열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자기들의 목숨을 기꺼이 바쳤습니다. 어떻게 그와같은 변화가 가능할수 있었겠습니까?
또, 바울을 생각해 보십시다. 여러분 바울이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원수가 되었던 사람입니다. 예수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바울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의 종이되어서 살아도 예수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예수님을
위해서 죽겠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겠습니까?
해답은 한가지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자기들의 눈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 예수님의 부활은 너무나도 분명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부활의 신앙 위에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말씀드린 잘못된 주장들이 한 가지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의 시신이 도대체 어디 있는지 어떻게 해서, 없어졌는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해 꾸며낸 것이 바로 오늘 본문 속에 나오는 '시체 도난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중에 몰래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 다른 곳에 감추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마치 예수님이 부활한 것처럼 거짓 증거를 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그렇겠습니까?
본문의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이 주장이 가지고 있는 허구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여자들이 갈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오늘 본문 바로 앞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또 다른 마리아가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무덤에 이르렀을 때 큰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하얀 옷을 입은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천사는무덤 입구에 있던 큰돌을 굴려 내었습니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무덤안을 보여주었습니다. 빈무덤이었습니다. 천사는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6∼7절의 말씀입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또 빨리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
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하거늘."
여자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달려갔습니다.
그 사이에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성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모든 된일을 대제사장들에게 다 고했습니다. 큰지진이 일어난 것, 하늘에서 흰옷을 입은 천사가
내려온 것, 또 무덤의 입구를 막고있는 돌을 굴려낸 것, 무덤 안에있던 시신이 없고 빈무덤이 된 것 등,
이 모든 것들을 그들은 대제사장들에게 자세히 고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의문이 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로마의 총독인 빌라도에게
먼저 가서 그 이러한 사실을 고하지 않고, 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고했겠습니까?
그것은 아마도 경비병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총독의 문책과 처벌이 두려웠기
때문이거나 그들은 대제사장들에게 말하면 무엇인가 도움을 얻을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먼저 대제사장들에게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자세히 고해바쳤습니다.
그 보고를 들은 대제사장들이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어떻게 죽은 예수가 어떻게 살아나?"
이렇게 반문하면서 예수님의 부활 자체를 부인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대제사장들은 감히 경비병들이 자기들에게 거짓을 말 한다고는 생각지 않았을 것입니다.
경비병들의 말을 들은 대제사장들은 어떠한 조치를 취했습니까?
12절 말씀입니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그들은 곧 공회를 소집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함께 모여 이 일을 의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이 부활을 하셨는지 안하셨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관심은 예수님의 부활로 인해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고 그에게 가버리면
그동안 자기들이 누리던 영향력과 권세, 영화 등이 줄어들면 어떻게 하나 염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회를 모으고 의논한 결과 세 가지를 결정했습니다.
첫째로, 12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돈으로 경비병을 매수했습니다.
경비병들이 여러 명이니까 돈이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거기다가 필요하면 총독 빌라도까지 돈으로 매수해야 되니까 상당히 많은 돈이 들었을 것입니다.
둘째로, 1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그들은 경비병들에게 거짓말을 유포하도록 조치를 취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에 몰래와서 시체를 훔쳐 어디엔가 감추었다고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셋째로, 14절 말씀입니다.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그들은 총독 빌라도를 돈으로 매수할 것입니다.
만약 빌라도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면, 그들은 이렇게 으름장을 놓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로마의 황제 가이사에게 당신에 대한 좋지 않은 보고를 올리겠소!"
여러분, 빌라도가 어떤 위인이었습니까? 그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는 줄 뻔히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자리에 내어주었던 장본인
이었습니다. 그러니 빌라도는 유대인들과 나쁜 관계를 맺으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 세 가지 조치를 경비병들이 듣게 되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15절 말씀입니다.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그들은 기꺼이 돈을 받았습니다.
그들로서는 주머니에 돈이 생겨서 좋고 또 처벌받지 않아서 좋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르친대로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그결과 거짓된 소문이 마태복음을 기록한 당시까지
그러니까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삼십년 뒤가되는 시점까지 예수님을 믿지않는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상이 '시체도난설'의 진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 주장도 얼마나 모순 투성이인지 몇 가지만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로,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서 어디엔가 숨겼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빨리 손을 써서 예수님의 시체를 찾으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의 제자들은 기껏해야 열두 명뿐입니다. 그들을 잡아서 고문하면 왜 입을열지 않겠습니까?
또 설사 입을 열지 않는다 할지라도 로마의 군병들이나 대제사장들의 종들을 풀어서 예수님의 시체를,
색출하면 금방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보아라, 여기 예수의 시체가 있는데, 누가 감히 예수가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하느냐?"라고 한다면 어찌 제자들이 거기에 대해서 언급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로마의 군인들은 아무도 그런 조치를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뜻이겠습니까? 그들도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쳤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은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었는지 전혀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제자들이라고 해서 예수님의 부활을 처음부터 믿었습니까?
예수님이 수 차례 걸쳐서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라 하리라"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제자들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야'는 죽지 않는다고 하는 사상이 퍼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런 사상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니까
제자들이 낙심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누가 24장 11절에 보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여자들이 사도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을
때입니다. "사도들은 그들의 말이 허탄한 듯이 들려 믿지 아니하나."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고 또한 믿지도 않았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의 경우도 마찬 가지입니다.
누가 24장 25절입니다.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것을 마음에 더디믿는 자들이여."
두 제자는 마음에 더디 믿는다고 예수님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도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이 모였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 때 도마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나중에 도마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했습니다.
"우리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 그 때 도마가 그 말을 듣고 믿었습니까? 아닙니다.
요한 20장 2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그는 도무지 믿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에서 붙잡혔을 때 자기들만 살겠다고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쳤던,
겁쟁이들이었습니다. 나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중에 몰래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올 용기가 과연 있었겠습니까?
더군다나, 부활하시지도 않은 예수님을 위해 그들이 자신의 생명을 받쳐 순교까지 합니까?
어림없는 소리입니다. 앞뒤가 서로 맞지 않습니다.
셋째로, 로마의 군인들이 경비를 서지 않고 모두 잠을 잤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가능한 일입니까? 물론 여러사람 가운데 몇사람은 경비를서고 그나머지는 잠을 잤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 군인들이 자기들의 책임을 소홀히하고 모두 잠을 잡니까?
있을수가 없는 일입니다. 설사 자기들의 말대로 잠을 잤다면,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예수님의 시체를 몰래 훔쳐갔다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서로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
아울러 그때 큰지진이 일어나고 무덤의 입구를 막고있는 큰돌이 굴러가면서 요란한 소리가 났을 텐데,
한 사람도 깨어나지 않았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세상에 그런 거짓말이 어디 있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말을 할 수도 있겠지요. "지나가던 사람이 보고서 군병들에게 알려 주었다."
그러나 이말도 맞지 않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서둘러 범인을잡아 잃어버린 예수님의 시체를 찾는것이
급선무지요? 성안에 가서 대제사장들에게 되어진 일을 고하는 것이 급선무였겠습니까?
결론적으로, 우리 예수님은 부활한 것이 너무나도 분명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에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때, 우리의 부활에대한 믿음도 굳게서는 것입니다.
이 세상만 바라보지 아니하고 천국을 바라볼수 있는 소망이 거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왜 마태가 오늘 본문속에서 로마 군인들의 입에서 나온 거짓된 소문을 기록했겠습니까?
여기에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는 줄 압니다.
본문에 나타난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의 입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그들의 입을 통해서, 부활이 증거 되는 것을 원치 아니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했지만, 타락한 종교인들에게 매수를 당해서 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거짓말을 유포하는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님의 부활이 증거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까?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18∼20절까지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민족을 제자를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며, 살아 계신 예수님으로 인해서 심령이 뜨거운 우리들, 예수님이 너무 좋고,
예수님을 너무 사랑하고,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는 우리들을 통해서, 복음이 전해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들에게 이 영광스러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장을 마감하면서, 결론적으로 5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안에서 헛되지 않은줄을 앎이라." 주님 안에서의 수고는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뜨거운 마음으로 주를 위해서 더욱 힘쓰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를 위해서 흘린 눈물과 땀, 부활의 증인으로서 애쓴 노력은, 주님 앞에 서는날, 주께서 아름답게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부활하신 예수님, 사망의 권세를 깨치신 예수님, 지금도 살아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기쁜 마음으로 담대하게 전할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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