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700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에 의해 기록된 것이지만 놀라운
것은 우리 인간들을 구원하실 메시야에 대해, 너무나 정확하게 서술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부활주일 전 한주간을 고난주간(수난주간)이라고 하는데, 이 고난주간은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는 '종려주일' 로부터 시작됩니다.
종려주일은 왕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쁨으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고 영접하는 날이기도 하며
또한 예수님의 고난의 시작과 십자가의 죽음을 생각하며 정결하게 한주일을 시작해야 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고난주간동안 우리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7일간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우리들의 죄를 깊이 참회
하며 하나님의 구원의 섭리에 감사함은 물론 예수님을 본받아 영적으로 보다 더 성숙한 삶을 살고자 결단하는 계기
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입니다.
제 1일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종려주일)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주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는 것을 아시면서도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겸손하신 모습으로 나귀를 타시고 입성하셨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까?
그것은 스가랴 9장 9절 말씀을 보게되면, 스가랴 선지자가 예수님이 오시기 오래 전에, 메시야가 어떻게 오실까를
잘 예언하고 있는데, 바로 그 예언대로 나귀새끼를 타고 오심으로 그 예언을 성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후 웅장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성전 속에서 인간의 위선, 탐욕, 가증스러움 이기주의등
죄악이 가득차 있음을 보신 날이기도 합니다.
제 2일 (월요일), 성전을 깨끗게 하신 날입니다.
예루살렘 입성을 하신 예수님은 베다니에서 하루를 지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9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른 아침 예루살렘 성으로 다시 들어 오실 때에 잎사귀가 무성한,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그러나 열매는없고 잎만무성한 나무를 보신 예수님은 이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서 '신앙의 열매'를 찾고 계심을 비유적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어 쫒으시면서 하나님의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참 제사장 되시는 예수님은, 더러워진 성전에 대해 격분하시고 이를 깨끗하게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곳일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은혜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통해 주시는 이 은혜는,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수 없으며 사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기도로만 얻을수 있습니다.
제 3일 (화요일), 변론하신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계명중에 첫째가 무엇이냐는 서기관의 질문에, 첫째는 네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대답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성전에서 헌금함을 대하여 앉으셔서, 그들의 헌금 넣는 것을 지켜 보셨습니다.
때가 마침 유월절이라 전국 각처로부터 많은 예배자들이 모였고 또 많이 헌금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어떤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이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른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그들은 다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가난한 중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온전한 헌신을 기뻐하십니다. 즉 하나님은 헌신의 양보다 질을 더 중요시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7절에도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또한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 4일 (수요일), 예수님께서 쉬신 날입니다.
오늘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300 데나리온에 해당하는, 비싸고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부어 드립니다.
마리아는 자기가 하는 행동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걱정과 시기에 대해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대담하게, 향유 한 병을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교만과 위선의 옷을 벗어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며 담대하고 진실한 사랑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제 5일 (목요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우시고, 마지막 만찬을 드신 날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하루 앞둔 날입니다. 주님은 먼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것으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의 죽으심은 발의 때를 씻듯이 우리 영혼의 죄를 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종으로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며,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우리들도 주님이 행하신 것같이,
섬기며 살라는 요청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후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드셨습니다.
오늘도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도 성찬 예식을 통하여, 예수님의 몸과 피를 먹고 마시며 이를 기념하고 있으며,
이러한 성찬 예식을 통하여 영적으로 예수님과 연합하고 하나되어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며 또한 복음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제 6일 (금요일), 십자가에 죽으신 날입니다.
주님께서 결국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마치 이 세상이 이기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은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사흘만에 다시 사셨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7장 25절 말씀과 같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며, 또한 역사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우리는 믿습니다.
아울러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말씀(가상칠언)을 다시 한번 묵상함으로 세상 죄를 지신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위대하신 사랑을 체험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침뱉고 창으로 찌른자도, 주님을 능욕하고 저주하고 비웃던 자도 우리 주님은, 다 용서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 깨달을수 없을 만큼 무한 합니다.
2)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23;43)
낙원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회개하는 죄인에게 은혜를 베풀고 소망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로 못씻을 죄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앞에 겸손히 나아와, 참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3)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요19;26-27)
인간 사이에 있어야 할 돌봄과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 일서 4장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
4)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
우리의 구속과 영생을 위한 예수님의 거룩한 절규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은 오늘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의 기도를 해주시고 계십니다.
5) 내가 목마르다(요19;28) 인간들의 사랑과 헌신과 충성을 요청하시는 갈증입니다.
6) 다 이루었다(요19;30) 거룩한 희생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속하셨다는, 하나님의 어린양의, 승리의 선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 말씀대로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7)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
사람의 모양으로 이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 그리스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순종하며, 살아오신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며 결론입니다.
제 7일(토요일), 예수님께서 무덤에 머무신 날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자기를 위해서 새로 만들어 둔 무덤에 예수님을 장사 지냈습니다.
그는 잘 알려지지 않은 제자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관원의 박해와 바리새인들의 눈총을 무릎쓰고 용기있게
행동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처럼, 죽으셨고 무덤 속에 묻혀 있었습니다.
예수님 죽으심으로 실망하고 낙담한 어떤 제자들은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누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 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은 끝이 아니라
구원의 완성인 것입니다. 세상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인류 구원의 길을 여셨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 말씀대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마지막 한 주간인 이 고난주간에, 나같은 죄인 위하여 받으신 예수님의
그 고난을 마음의 문을 열고 깊이 묵상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우리의 심령이 그리스도의 사랑과 은혜로 뜨거워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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