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팔복·마태 5장

산상수훈의 팔복(2) 애통하는 자가, 받는 복 (마태 5 장 4절 )

Andy1954 2024. 6. 27. 09:08

마태복음 5장 4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은 산상수훈 설교에서 천국백성의 두 번째 복으로 '위로의 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이 살아 가면서 꼭 필요한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위로'가 아닌가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불완전

하여 각종 두려움과 고통과 시련과 슬픔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위로'를 통하여 때로는 힘을 얻고 모든 것

을 극복해 나갈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위로의 복'은 누가 받게되는 것일까? 이복에 대하여 주님은 '애통하는 자가 받을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곤고하거나 환란을 만났을 때 마땅히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의 위로는 세상이 주는 위로와는 그 의미와 성격이 전혀 다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

에게 위로를 주실 때 '영적 위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이루어지는 위로는 성령을 거스리기

때문에 곤고한 가운데 있는 인간이 받아야 할 진정한 위로라고 할수 없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영적 위로'가 우리에게 소망을 주고 마음의 평강과 영원한 기쁨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1. 그러면 '애통'이란 무엇인가?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애통'이라는 말은 어떤 상태를 의미하고 있습니까?

애통이란 말은 헬라어로 '팬도스' 라고 하는데 이 말은 '슬픔이나 비탄'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마음이 상하고 깨어져 있거나 혹은 슬퍼하며 우는 상태를 가리켜 '애통'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고통과 슬픔은 우리의 영혼을 움치러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본 애통은 낙심과

실패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 느끼는 '슬픔'이지 결코 '복'이 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본성은 '애통'을 싫어하고 미워 할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애통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온 고난과 곤궁을 슬퍼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말미암은 애통으로 성령께서 주시는 '경건한 슬픔'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7장 34절을 보면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 을 죽은 줄로 알고 심히 슬퍼하면서 "자기 옷을 찢고 베로

허리를 묶고 오래도록 그의 아들을 위하여 애통하니" 이 때에 사용한 단어가 '펜도스' 라는 애통입니다. 

요엘 2장 12절에서 선지자 요엘은 종말에 관한 경종에서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애통'은 회개로 인하여 마음을 찢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찌어다'고 외쳤습니다.

 

회개는 지은 죄에 대한 자백을 통하여 죄의 두려움과 그의 결과를 알뿐 아니라 그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산다는 사실을 깨닫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회개는 죄에대한 두려움과 슬픔에서 나오기 때문에 죄에대해 슬퍼하는 마음이 없이는 진정한

회개를 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시편 6편 6절에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침상을 띄우며 내요를 적시나이다" 라고

애통하며 참회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2. 애통하는 자가 받을 위로

그러면 애통하는 자가 받을 '위로'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1) 죄악을 참회하며 애통하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사유함'을 받습니다.

인생이 받는 많은 '복' 가운데 죄의 사유함은 가장 복된 것입니다, 로마서 4장 7-8절 말씀을 보게되면,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있고 주께서 그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죄는 인생의 마음속에 불안과 근심과 두려움을 가져다 줍니다. 

그래서 흉악한 죄인이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죄로인하여 불안해할뿐 아니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받고 죄사함을 받으면 그의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쁨과 평화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 6장 10절을 보게되면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한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이 커도 '위로'를 받게되면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2)죄를 참회하며 애통하는 자에게는 '마음에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에 끌려가 있을때 멀찍이 따라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3번씩이나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 고 부인하는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했다고 누가복음 22장 62절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참회하며 회개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은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3번씩 말씀하시면서 마음에 근심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당부하신 것을 볼수 있습니다.


(3) 죄를 참회하며 애통하는 자는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생명은 '영생'이며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소망'인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무한한 위로'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소망은 허망한 꿈으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이루어지는 확실한 '하나님의 언약'

입니다.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하여 주님께서는 이런 '위로'를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16장 25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나사로는 이 땅에서 비록 거지로 살았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은 줄 믿습니다.

이땅에서 죄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며 애통한 그리스도인들은 다시는 사망도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 하며 만물을 새롭게 하신 주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하나님은 친히 우리들과

함께 하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크신 '위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위로자는 보혜사 '성령'이십니다. 보혜사 (파라크레토스)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는 죄를 슬퍼하고 애통하는

자에게 그의 곁으로 부르시고 위로 하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웃는 것'이 복이라고 말 합니다. 그리고 웃어야 '좋은 일' 이라고 생각 합니다.

그래서 울음이나 애통은 복과 상관 없는 것처럼 말 하곤 합니다.

우리가 예레미야 애가서를 보면 '눈물의 선지자'라고 부르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이스라엘 민족이 범죄해서

하나님이 이를 심판하는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의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미 때가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의'

가 실현되지 않아서 어찌할수 밖에 없는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면서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내 창자가 끊어지며

내 간이 땅에 쏟아지도록 울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렇게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인생들에게는 우리 '하나님의 위로'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지못하면 믿음의 선한 싸움에서 승리자가 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은 사죄의 기쁨과 마음의 평안과 소망의 확신에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가 풍성히 임하기를 원한다면 먼저 죄를 미워해야 할뿐 아니라

죄에 대하여 애통하는 심령을 가지고, 날마다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