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알고 있는것과 같이 마태복음 5-7장까지는 천국의 왕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국의 율법을
선포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것을 특별히 "산상보훈' 또는 천국의 대헌장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간의 최후의 소망이며 천국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안식처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산상보훈의 주제는 말 할것도 없이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천국 백성이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주어지는
놀라운 보물을 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산상보훈을 지나치게 율법적인 작대나 도덕적인 삶과 윤리의 기준으로 삼게 되면 주님께서 말씀
하시고자 하는 의도를 벗어나 괴리감이 생길수 있으며 또한 산상보훈을 통하여 주어진 천국의 보물을 잃을수
있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사회 복음 주의자들과 세대 주의자들이 산상보훈이 주는 참된 진리를 임의로 해석하고
왜곡하고 있음으로 이들의 잘못된 주장을 지적하면서 예수님께서 주시고있는 산상보훈의 참진리를 깨달음
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그 복을 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먼저 사회 복음 주의자들은 "교회는 사회 정의 구현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교회의 복음은 사회를
구원하고 민중을 구원하는게 목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들의 촛점은 산상보훈이 가난한 사람 소외된 사람 노동자 계급을 위해서 하나의 윤리와 도덕의 규범이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말하면 사회적 관심과 활동이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방식이라고 말하면서 가난과 불평등한 경제적
구조를 천국에 반대되는 주요 표현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구원받은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예배와 영적 건립과 전도가 무엇보다도 우선하는 본연의 임무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며 교회가 본연의 사명보다도 사회참여를 우선하거나 사회 활동에 전념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을 벗어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신자와 교회는 점점 심각해져가는 이세상의 부패를 막고 타락한 세상을 적극적으로 개혁해야할 사명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우선순위에 있어서 복음이 먼저라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세대 주의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임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천국은 미래적이면서 동시에 현재적입니다.
영어 표현을 쓰자면 already, but not yet. 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이미 우리 가운데
도래했습니다, 다만 완성된것이 아닐 뿐입니다. (예: 복중의 아기는 아직 이땅에 태어난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구원을 받았으나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에 곧 완성되는 것일 뿐입니다.
누가복음을 17장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물을 때
"하나님의 나라는 볼수있게 임하는것이 아니요 또 여기있다 저기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고 예수님께서 대답하고 계심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는 현재적 실제로 동시에 곧 모든 사람의 눈에
나타나게 될 미래적 사건으로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복음을들은 사람들은 감추어진 그나라의 실재를 인식했고 종말에 인자의 능력으로 그나라가
완전하게 도래할 것을 소망 가운데 기대하며 기다린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동안 박해와 고난이 있을수 있으며 인자는 예상하지 못한때에 모든 사람이
볼수 있게 올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와같이 사회 복음주의자들이나 세대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에 맞추어 자의적으로 왜곡되게 해석할
지라도 산상보훈이 주는 진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면 산상보훈이 주는 진리는 무엇인가?
이것은 거듭난 자의 윤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의 윤리를 말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모습 이대로는 천국 시민이 될수 없습니다.
산상보훈을 통해서 천국 시민의 기본 자격을 갖춘후 거듭나고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28-29절에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가르치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이러라" 라고 성경은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산상보훈과 같은 설교는 누구나 할수 있는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만이 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설교를 통해서 우리에게 천국의 복을 약속으로 주고 계십니다.
여기서 가리키고 있는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 영혼들 즉 하나님 앞에서 연단을 받고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마태복음 4장 17절에서와 같이 회개를 주장하심으로 그의 공적 사역을 시작하시면서
그리고 실로 회개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열매는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무엇 보다도 예수님은 사악한 자들을 저주하시면서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백성을 축복하시면서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고 계신 이 복은 세상적인 복을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적인 복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달라지게 되어있을 뿐 아니라 육으로 난
인생은 그 무엇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구원에 이를 수가 없으며 아침 안개와 같이 파도속의 물거품처럼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 나라에서 가질수 있는 복으로 그리스도의 성품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는 자의 성품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이란 말을 많이 쓰고있는데 "복(Blessed)"이란 말은 피(Blood)의 제사나 의식을 통해서 하나님께
구별받았을 때 복이 된다고 믿었던 말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의미의 복은 받거나 얻거나 쟁취하는것이 아닌 희생하고 바치고 주는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특별히 나전어 사전에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칭찬하는 것이 복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좋은말 하는것이 복이고 다른 사람을 높여 주는것이 복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산상 보훈 속의 복을 얻을 수 있는가?
예수님이 가장 복있는 분이시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오셔서 받으시고 감당하신 모든 고난과 고통
그리고 시험이 우리에게 다가와도 복되다 할수 있어야 합니다.
로마서 8장 17절 말씀에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것이니라"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찾아야지 세상적 방법으로 찾으면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욥기서 1장 21절의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 시니이" 이러한 우리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의 노력으로 얻은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서 얻은 모든것까지 내려놓을 때 비로소 우리가 찾는
천국의 복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최고 최상의 복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산상보훈 속에는 하나님을 모시며 기쁘시게 하는 방법이 계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죄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모실 수 없으며 기쁘시게 할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받기 위해서는 죄 용서함을 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런데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가 선행
되어야 합니다. 성경의 많은 곳에서 회개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공생애의 첫 말씀으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회개란 생활의 변화를 일으키는 생각과 마음의 근본적인 돌이킴을 말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인간이 하나님께 대하여 뜻과 마음이 일치되는 순간으로 바로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과 하나 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천국에 들어가는 첫 단계이며 심령이 깨끗해지는 영혼 세척의 방법이라 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상보훈을 통하여 누구나 죄를 용서받고 구원의 복을 받을수 있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을 깊이 배우고 체험함으로 천국 백성이되어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약속하신 천국의 복을 받아 주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릴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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