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팔복·마태 5장

산상수훈(1) 심령이 가난한 자가, 받는 복(마태 5장 3절)

Andy1954 2023. 2. 7. 07:54

마태복음 5장 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태복음에 들어있는, 예수님의 다섯개의 설교 가운데서, 첫 번째 부분이, 바로 산상설교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주신, 이 산상설교를 살펴보면서, 우리 모두가 그와같은 은혜와 복을, 받아 누릴수 있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1절을 보게되면,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신 다음에, 무리들에게 귀한 교훈을 가르치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산상보훈'이라고도 하기도 하며, 여덟 가지 복에 대해 말씀하셨다 하여 '팔복'이라고도 합니다.

우리는 이 산상수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복'이, 어떠한 복을 의미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산상설교에서 주님이 '복'이 있다고 하실 때 '마카리오스'라고 하는 단어를 쓰고 있는데, 이 단어는,

'부요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특별히, '영적인 부요'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헬라어에 '유다이몬'이라고 하는 '복'을 의미하는 또 다른 단어가 있는데, 이 단어는 세상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행복을 의미하는 것으로, 성공과 번영과 같은 '물질적 축복'인 상태를 묘사할 때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산상보훈에서 말씀하신 모든 복은, 유다이몬이 아닌 '마가리오스'란 단어를 쓰셨습니다.

1. 그러면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무슨뜻인가?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들의 성품을 묘사하시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심령이 가난하다' 는 말을 알려면, 먼저 '심령의 부요'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부요한 심령'이란, 물질의 풍요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난 심령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 이하를 보면, '라오디게아 교회'는 물질로 인하여, 그들의 심령이 부요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들에 대해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고 책망하심을 볼수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세상에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심령이 부요한 자인 것입니다.

반면에 '가난'이란 말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것을 말합니다.

이때에 사용하는 '프토코스'란 헬라어 단어는, 구걸해야 할 만큼, 가진 것이 없는, 빈털털이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심령'이란,

첫 째로, 세상 물질이나 세상 소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은 것을, 가리킨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땅의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아니하고, 세상 소망 이나 성공에, 마음이 세상으로 향하지 아니하는

심령을 '가난한 심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일, 제 멋대로 살아가기를 좋아하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을, 가치가 있는 자,라고 생각한다면

이것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두번 째로, 가난한 심령이란, 겸손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많은 재물로 마음에 채워지면, 그 마음이 교만하게 되기 쉽상입니다.

그러나 세상 욕심에 마음을 비운 사람은, 언제나 겸손하고, 온유합니다.

세번 째로, 가난한 심령은, 죄에 대하여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에, 그 마음에 죄를 담아 둘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 24절을 보면, 바울이 부요한 마음을 버리고, 가난한 마음을 가졌을 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 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라'고 고백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네번 째로, 가난한 심령이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가난한 심령속에 채워질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시편 107편 9절을 보게되면,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난한 심령이 소망하는 것은, 신령한 양식, 즉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2.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주시는 복

그러나 가난한 심령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통회하는 심령이, 가난한 마음을 가질수 있습니다.

통회란 곧 '회개'를 의미하며, 이 회개는, 우리의 영혼에서, 죄악을 몰아내고, 정결하고 깨끗하게 합니다.

시편 51편 10절을 보게돠면,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라고 

간구하고 있는데, 바로 이같은 마음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심으로, 우리의 영혼을, 가난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임재하지 않는 마음은, 가난한 마음이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에 대하여,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런 사람들이 천국 백성이요, 

천국의 소유자들이 며, 하나님의 나라의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므로, 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시편 40편 4절에,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소망 중에, 언제나 기쁨과 즐거움에 찬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5장 13절을 보게되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이, 받고 누려야 할 복이, 바로 이런 복입니다.

 

그러나 세상에 부요한 사람들은,  눈이 소경이라, 이 같은 복을 찾지 못하고, 다만 이 세상에서 눈에 보이는 물질적이며,

현실적 복에, 마음을 두고있으므로, 천국백성의 복과는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이 가난하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볼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 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천국시민'으로서,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함'을 인정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은택을

부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났다면, 우리의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해지면, 나는 가진것 없고,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할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인 것입니다.

이러한 깨달음은, 하나님께서 돈 없이, 값 없이, 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성령께서 죄로 어두워진, 우리의 눈을 밝게 해주실 때까지,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상 재물과 성공에 대한, 욕심을 십자가 밑에 내려놓음으로, 심령이 가난해질 수 있으며, 마음이 가난해 졌을 때,

천국백성이 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을 받고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