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성도들의 삶이 변화되지 못하는 것이 좋은 설교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감동적인 설교를 듣고 다짐을 하고 결심을 했다 할지라도, 그 감동이 사라질 때면 그의
행동도 멈추게 됩니다. 그리 오래 가지 못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많이 선포되고 있는데, 우리들의 모습은 아직도 변화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어째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선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쩍도하지 않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면 야고보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서도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자신 스스로
속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내 삶을 바꾸지 않으면서 '나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마태 7장 2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말씀을 마무리하실 무렵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이어서 마태 7장 22-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날에 많은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
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저들은 자신들이 주님의 제자인줄 알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천국백성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에게 속지 마십시오. 우리가 말씀을 많이 들어서 이것저것 아는것이 많고
교회에 다닌 년수도 많고 이것 저것 봉사도 많이했고 또 헌금도 많이했다 할지라도 주님으로부터,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이 엄청난 말씀을 들을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고백하며 성도로서 살아간다고 하는것은 적당히 살아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을의미합니다.
그 분이 나의 죄를 위해서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그 분과 함께 하나가 되었음을 믿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고백한 순간 내 삶 전부가 그 분께 달렸음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참된 가치가 하나님 나라에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며 육체의 소욕을 버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도 세상에서 구별되이 살아가지 못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정말로 천국을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은 아닙니까?
우리는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믿지않고 있으면서 마치 믿는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면서도 자녀인양 속지 말아야 합니다.
전도하기 어려운 사람가운데 하나가 예전에 교회를 다녔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해서
제법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들만큼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 말씀을 전해 주어도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이상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
합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저들은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못하고 있으며 그리고 성경도 바르게 알지
못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안다면 예수님을 믿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자신들은 다 알고
있고 말씀대로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이어서 야고보는 강력하게 말합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없는 믿음이 헛것인줄 알고자
하느냐?'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자체가 죽은 것이라.'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3절에서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
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자칭 그리스도인 자칭 천국백성들이 많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을 알지도 못하는데 자기 혼자 아는체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출석한다고 다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을 많이보고 기도를 많이하고 말을 젊잖게
한다고 다 예수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진짜 그리스도인이요, 천국백성이요, 예수의 제자이요, 진짜 믿는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내생명과 삶 전체를 걸고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예전에 보면 잘못된 이단 사상에 빠져서 직장도 팽게치고 재산도 팔아서 다 바치고 가족도 버리고
산속으로 들어가거나 심지어는 자기의 목숨까지 끊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런 사람들이 있을수 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분명 잘못된 믿음입니다.
참 믿음이란 믿음대로 내 모든 삶의 태도와 방향과 내 생각 가치관들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냥 내 머리 속에만 남아 있는 것은 참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나로 행동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26-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우리는 성경책을 옆에 끼고 말을 부드럽게 하고 항상 온화한 표정을 지은 사람들을 보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은 참 경건이 아니고 경건의 모양일 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자가 참 경건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경건의 모양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평가가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경건의 모양을 갖추었다 하여도 그 중심에
하나님을향한 온전한 마음과 경외함이 없다면, 그모든 경건의 모양은 헛것이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야고보 사도가 말하는 참 경건은 무엇입니까?
① 혀를 재갈 먹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듣기는 속히 하되 말하기는 더디하라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누구나가 말에 실수가많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말을많이 하면 할수록 실수는 많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야고보 3장 1-8절에서 이 혀에 대해서 상세한 경계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도 바로 이 혀의 문제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산다고 하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먼저 내입에 재갈을 먹이시기 바랍니다. 잠언17장27-28절에 보면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있는
자라'고 하였으며,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기고 그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긴다'고 하였습니다. 또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하고 과격한 말은 노를격동한다'고 하였습니다.
잠언 25장 11절에서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라' 고 하였습니다.
말에대한 교훈은 하나님 말씀이 아니라 하더라도 세상에서도 많이 들을수 있는 교훈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훈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말씀을 결코 가볍게 들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삼가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② 성내기를 더디하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내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감정으로부터 나오는 성냄은 분명 우리에게 유익되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 20절을 보면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하였습니다.
또한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성내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는 것입니다.
③ 고아와 과부를 환난 중에 돌아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입술로 형제사랑을 말하면서,
내 주머니를 열어서 어려움을 당한 형제를 돌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없는 것입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수고가 따라오는 것입니다. 수고와 희생이없는 사랑은 빈말에 불과한 것입니다
④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어버리고 자신을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만연되어 있는 모든 더러운 것과 악한 것들을 내어버리시기 바랍니다.
세속에 물들지 말아야 합니다. 생선은 바다의 짠물에 살지만 결코 짠물에 물들지 않는것처럼,
세상에 물들지 않고 살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믿음이고 참된 경건인 것입니다.
세상과 어우러져 살면서 나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분명 세상과 구별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⑤ 우리 마음에 심어주신 도( 말씀)를 온유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모든 말씀을 우리는 온유함으로
받아야 합니다. 전하는 사람을 보지마십시오. 전하는 자나 듣는자나 우리 모두는 말씀 앞에 겸손히
엎드려야 합니다. 내 고집과 강퍅함을 버리고 온유함으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거울을 보는 이유는 우리의 모습을 보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내 모습을 들여다 보고 말씀대로
내 삶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거울을 보고 잊어버리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온유함으로 받은말씀이 내삶 속에 역동적으로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 삶이 고쳐질 때까지 그 말씀이 나를 두들겨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삶을 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우리의 전부를 거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모든 것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이 말씀을 믿는다면 우리 자신을 부인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살아서 스스로에게 속지않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