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명령이 기록된 에베소서 5장 18절에는 어떻게 성령충만
을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그 방법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시간, 성령충만의 영적인 상태를 생각하면서,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것인지
를,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1. 성령충만의 영적인 상태를 간절히 사모하라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충만의 영적인 상태를 갈급한 마음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문장은, 비록 수동태이긴 하지만 명령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 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충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고 성령이 그들의 맘속에 내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어도 성령
충만에 대해 무관심한 상태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내주(indwelling of the Holy Spirit)와 성령의 충만(fullness of the Holy Spirit)은,
전혀 차원이 다른, 영적인 상태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도우심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일상적인 신앙생활과 교회생활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날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드릴때에도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
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길때, 자신의 인간적인 결심이나 능력으로만 봉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한 상태에서 성령의 강력한 능력을 덧입으며 봉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영적으로 갓난아이의 처지에 머물러 있었던것은 성령충만에 대한 갈급
함이 부족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 4장 8-10절 말씀을 보면, 그들의 마음에 성령 이외의
것으로 가득 차 있었슴을 알수 있습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그들은, 성령 이외의 것으로 이미 배불러 있었습니다.
또한 계시록 3장 17절을 보면, 라오디게아교회도 예수님으로부터, 비슷한 이유로 책망을
받았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성령충만에 대한 갈급함과 목마름이 있을 때,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사야 55장 1-2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으로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아울러, 요한계시록 22장 17절에도, 비슷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 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 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도 요한 복음 7장 37-38절을 통하여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그 분은 일어서서 큰 소리로 외치며 이르셨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영적인 갈증이 있어서 갈급한 목마름으로 예수님께로 달려가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시원한 생수(living water)를 마셔야 합니다.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물을 흡족히 마셔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13-14절에서 예수님이 인생살이에 지쳐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이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성령은, 보혜사(parakletos)이십니다.
보혜사는 "돕는 자"(Helper) "위로자"(Comforter) "대언자"(변호사, Lawyer)라는 뜻입니다.
보혜사 되시는 성령님을 모시고 살면서도, 내 힘과 내 능력으로만 살려고 한다면, 풍성한
그리스도의 삶을, 누리지 못하고, 시험에 빠지고, 좌절하게 되기 쉽습니다.
보혜사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받기위해서 우리는 목마름과 갈급함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충만을 간절하게 구해야 합니다. 구하지않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한 복음 16장 24절 말씀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
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배고파 우는 아기에게 어머니가 젖을 물리듯이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사모하는 영혼에게
성령충만을 허락하신다는 말씀입니다.
2. 마음속에 남아 있는 죄 문제를 청산하라
성령은 "거룩한 영"이기 때문에, 죄(sin)와 공존하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충만을 받으려면 성도는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죄의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죄와 허물로 가득차있는 성도의 마음에 성령께서 임재할수 없는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는 성도들에게 감추어진 죄를 깨우쳐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의 마음속에 죄가 있으면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에베소서 4장30절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말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성령께서 일깨워 주시는
대로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요한은 요한일서 1장7절에서 "그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죄에서 깨끗하게 하실것"
이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요일 1장 8-9절을 통하여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속에 있지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
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약속하
셨던 것입니다.
"회개"(repentance)와 믿음은, 동전의 앞면 뒷면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회개는 죄와 불신앙의 삶으로부터 돌이키는 것, 유턴하는 것이라 할수 있습니다.
반면에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감동을 주실때, 그러므로 회개와 믿음은 회심(conversion)의 순간에,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신앙적인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일 1장3절 말씀을보면 회개와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된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일 1장3절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이와같이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죄를 범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게 되면 하나님과의 근본적인 관계
가 깨어질 수는 없지만, 그 관계가 심히 불편해진다고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근심하시고 성도들은 의기소침해지고 번민과 괴로움에 사로잡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자백하기만 하면 용서받을수 있는 길이 이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열려 있는 것입니다.
"자백한다"(confess)는 말은 성령께서 하시는 책망의 말씀을 "반복해서 따라서 고백한다"
는 의미입니다. 성령께서 죄를 들추어내시며 깨닫게 해주시면 "예, 제가 실수했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죄를 범했습니다"라고 고백하면 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어떤 종류의 죄를 범했을지라도 진심으로 자백하거나 통회하면 사랑의 하나님께
서는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말씀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받을 특권을 이미 누리고 있다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담당하시고, 이미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의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희게 되리라"
성도들이 이땅에서 살아가면서 마음으로 생각으로 행동으로 죄를 범하지 않을수는 없지만
성령께서 죄를 깨우쳐 주실때 바로 자백하고 회개하여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되는것입니다.
3. 성령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굴복하라
셋째로, 성령께 전적으로 의존할(total dependence) 때, 성령충만 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이란, 성령이 주인되어 나를 지배하고, 통치하는 영적 상태를 말합니다.
성도인 내가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 비로소 성령충만한 성도의 삶은 시작된다고 할수 있습니다.
이말은 성령의 능력 베푸심(empowerment of the Holy Spirit)이 없이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통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만약에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하고 봉사하고자 한다면 성령의 도우심이나 필요를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듯 적지않은 그리스도인들이 매일의 삶을 성령과 상관없이
성령의 도우심 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적인 의존"의 의미를 요한 15장 1-8절 말씀에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포도열매는 포도나무 가지에서 나온 곁가지에서 열리는데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않으면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내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
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안에 내가 그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한 15장 4-5절).
포도나무 가지는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어야만, 포도나무로부터 오는 수액을 공급받아서 생명을 유지할
수있고, 또한 포도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포도나무로부터 단절되어 있어서는, 포도열매를 맺을 수 없음같이,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신앙적인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생명을 유지하고 열매를 맺기위한 필수적인 조건은 포도나무에 전적으로
의존해 있어야 합니다. 포도나무에 철저하게 붙어 있는 상태, 즉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Abide in me, and I in you)는 말씀처럼
성도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의존하여, 긴밀하게 연합되어 있는 상태,
그래서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의 수액을 공급받고 있는 상태가
바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는 영적인 상태라는 말씀입니다.
다른말로 하면 성도가 성령께 전적으로 굴복할때(total surrender) 성령충만의 영적인상태
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적인 의존"과 "전적인 굴복"은 비슷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후자는, 보다 의지적인 결단이 강조된 표현이라고 생각되어 집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나 자신의 의지와 야심을 전폭적으로 내려놓고(굴복 항복 포기)
성령의 인도하심에, 나 자신을 온전히 맡긴 상태가 바로 성령충만인 것입니다.
인명구조대원(Life Saver)으로, 오랫동안 일하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강물이나 바닷물에 빠져서 익사의 위험에 처했을 때, 스스로 살려고 발버둥치며,
허우적거리는 동안에는, 인명구조대원은 절대로 그를 붙잡아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사경을 헤매는 그가 엄청난 힘으로 결사적으로 구조대원을 붙잡기 때문에 아무리 유능한
구조대원일지라도 제대로 헤엄을 칠수가없어 자칫하면 두사람 다 물에빠져 죽을지도 모른
다는 것입니다. 익사 위기에 있는자가 스스로 살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구조대원에게 전적
으로 굴복하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탈진상태가 되어 스스로 헤엄치려는 의지를 포기하고 드러누웠을때 비로소 인명구조대원은
한 쪽 팔로 그의 목을 감고, 다른 한 쪽 팔로 헤엄을 쳐서 이끌고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자가 스스로의 노력을 포기하고 구조대원에게 전적으로 굴복할때 살수 있듯이,
성령의 인도하심에 전적으로 굴복하는 성도가 영적으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를들어 "네 이웃을 사랑하라, 거짓말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인간의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서 지키는 것으로 성도의 삶을 잘사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가 9장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십자가를지고 나를 따를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성령충만한 성도의 삶이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고, 자기를쳐서 자신의 야심과
계획을 성령님께 굴복시키는 삶이고 성령을따라 행하는 삶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삶
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16-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4.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계속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계속할 때, 성령충만의 영적인 상태를 견지할
수 있습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은 수동태이기는
하지만, 현재시제이자 명령형 입니다.
"현재시제"라는 말은 계속적으로, 반복적으로,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성령충만의 상태가 상실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반복적으로 죄를 범할때나 육체의 일들에 빠져 있을때 인격이신 성령자체를 상실할
수는 없지만 성령충만의 상태를 상실할 수는 있는 것입니다.
이러할때 성령께서 근심하시고 성도를 책망하시면 바로 돌이켜야 하는데 그것은 기도밖에
다른 길이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고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를 시작하면 비로소 불편해있던 아버지와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이 말하고있는 육체의 일들,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숭배,
주술, 원수 맺는 것,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 분열함, 이단, 투기, 술 취함, 방탕함 등이
나를 지배하고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살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런 육체의 일들에대해 진지하게 자백할때 성령이 성도의 마음을 주장
하시며 성령으로 충만케 하시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성도의 내적인 생각과 동기까지를 성령께서 다스리시게
함으로써 성령충만의 상태를 견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행에 1억원의 예금을 갖고있는 사람은 그한도 안에서 얼마든지 현금을 찾을수 있습니다
그가 백만 원의 돈이 필요할 때, 은행원에게 백만 원만 달라고 "구걸하지"(beg) 않습니다.
청구서에 백만 원이라고 쓰고 당당하게 현금을 내달라고 요구합니다.
그것은 그의 권리이자 특권입니다.
요한 3장 34절을 보면, 하나님은 예수 믿은 성도에게 "한량없이" 성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이는 하나님의 말씀을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기를 명령하셨다면 누구나 성령충만의 영적인
상태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은행에 1억원의 예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그 한도 안에서 마음껏 현금을 찾아 쓸수 있는
것처럼 성도라면 누구나 성령충만의 영적인 상태를 누릴수있는 특권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께 다음과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세상의 많은 사람가운데 이부족한 죄인을 창세 전에 선택하여 주시고, 또한
사랑하셔서, 독생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주신것 감사를 드립니다.
허물과 죄로 죽어야 마땅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살을 찢으시고,
물과 피를 몽땅 쏟으시며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3일 만에 죽음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슴을 믿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하늘 보좌에서, 죄인들을 위하여 중보기도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My Savior), 생명의 주인으로(My Lord) 고백하며,
영접할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삶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 살아왔슴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이같은 죄인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어서 우리의 마음과 행동과 삶을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며 살아 갈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특별히 성령의 능력과 권능으로 진리의 복음을 증거하여 죄악 가운데 방황하며 죽어가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할수 있는 담대한 믿음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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