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빌립보서 3장 13∼16절)

Andy1954 2024. 3. 25. 06:49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와 복을 우리

모두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먼저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세워진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분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항 바른 자세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형제들아” 하는 호칭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 형제들아 라는 호칭은, 상당히 애정 어린 표현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여러 번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형제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지극히 사랑했기에 그들이 진정으로 잘 되고 바르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당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할례를 받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되는 것처럼 주장했습니다. 

바울은 사랑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율법주의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본시 바울은 열심으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의 순결을 해치며,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며 교회를 잔멸하는 것이 하나님을위한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잡아오려고 가던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사흘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던 중, 성령님의 감동으로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 곧,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습니다. 그와 함께 바울은 율법에서 난 자기 의를

다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를 가졌습니다. 

바울은 늘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여 항상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자세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감동으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또한 우리들도 같은 자세를 가질것을 바랐습니다. 

그러면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바울은 오직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먼저 빌립보서 3장1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당시 율법주의자들은 자신들의 할례받은

육체를 신뢰하면서 마치 자기들은 이미 얻을 것을, 다 얻어 온전함을 이룬 것처럼 여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아직 자기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했습니다.

 

말씀드린 대로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되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바울은 자기가 잡은 줄로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알고, 그리스도를 부분적으로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부분적으로

발견될 뿐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기 위하여 계속해서 달려갔습니다.

 

로마서 8장 2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바울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그 궁극적인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려 했던

것도, 그리스도로 늘 충만해서 그의 모든 삶에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기 위함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율법주의자들의 생각처럼, 바울은 자신이 이미 얻었다거나, 온전히 이루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자기가 잡은 줄로 여기지도 않았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것은 부분적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한 일에만 전념했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일에 온전함을 이루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그 한 가지 일에만 전념하기 위하여 이와 같이 했습니다. 

오늘 본문 13절 후반부 말씀입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소극적으로는 뒤에 있는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또 적극적으로는 앞에 있는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뒤에 있는 것 때문에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지장이 있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 전념

할 수 있었습니다.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애굽의 고기 가마를 그리워하다가 광야에서 다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9장 62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처럼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과거에 바울은 잘못한 일이 많았습니다. 그가 육체를 신뢰한 것도 잘못이었고, 특별히 그가 열심

으로 교회를 박해했던 것은 더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지나간 일은 다 잊었습니다.

과거에 발목 잡혀서 전진하지 못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잘한 것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여러 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도 다 잊었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자만해서 앞으로 나가는 일에 지장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소극적으로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바울은 잘못한 것도 잊어버렸고,

잘한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언제나 새로운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오직 적극적으로,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바울이 잡으려고 했던 푯대는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는 것을 자신의 푯대로 정하고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갔습니다.

 

고후 5장 17절에서 바울은 이와 같이 말씀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것은 바울의 체험적인 고백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바울은 고후 5장 17절 후반부에서, 사야 43장 18∼19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당시 유다 백성은 그들이 범한 죄 때문에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자기들이 범한 죄때문에, 깊은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을 그들에게 구원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한 유다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은 또한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43장 24-25절 말씀입니다. “네 죄짐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며 네 죄악으로 나를 괴롭게

하였느니라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죄를 다 사함 받고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음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오직 앞에 있는 것을 잡는 일에만 집중했습니다.  

 

이어서, 고후 5장 18절 말씀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자기에게 사도의 직분이 주어진 까닭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렇듯 바울은 과거에 행한 잘못 때문에 죄책감에 짓눌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뒤에 있는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오직 앞에있는 푯대를 바라보며 그것을 잡으려고

줄곧 달려갔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주를 위하여 큰 역사를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이 날마다 우리에게 새날을 주십니까? 

새롭게 시작하라 하심입니다. 뒤에 있는것은 잊어버립시다. 이제는 새로운 각오로 오직 한

가지의 일, 즉 앞에 있는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일에만 전념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빌립 3장14절 말씀입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우리가 읽은 14절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사실 부분과 동기 부분입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는 사실을 말씀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 동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한

것임을 말씀했습니다.

 

헬라어 원어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 14절은 이와같이 시작합니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이 때 동사 “달려가노라”의 시제가 현재형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달렸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여기서 다시한번, 그가 잡은줄로 여기지 아니했음

을 밝혔습니다.

 

물론 바울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같이 아니했습니다. 그에게는 확실한 푯대가 있었습니다.

앞 절에서 밝힌 대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 바울은 푯대만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힘껏 달려갔습니다.

 

바울의 푯대는 오직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려 함이었습니다. 바울은 늘 그리스도로 충만해서 자신의 모든 삶에서,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고자 했습니다. 바울은 이 푯대를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갔습니다.

 

우리의 푯대는 무엇입니까? 이땅에 속한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를 푯대로 삼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기 때문에, 갈 때도 또한 빈손으로 가야만 합니다.

 

골로새서 3장1∼2절에서 바울은 이와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

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고 위의 것을 생각하며, 위의 것을 찾아야 합니다. 

바울처럼 늘 그리스도로 충만해서 모든 면에, 그리스도를 본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어서 오늘 본문 14절에서 바울은 그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동기를 밝히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였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던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바울 시대에도 올림픽 경기가 있었습니다. 그때도 달리기는 인기 종목이었습니다. 

달리기 시합이 끝나면 승리한 선수의 이름이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면 그 선수는 시상대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황제가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길을 마치면 하나님이 위에서 바울을 부르실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에게 상을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이 그에게 주실 영원한 상을

바라보며 줄기차게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바울에게 주실 상은 무엇입니까? 바울이 푯대로 삼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이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게 하실 것입니다. 결국 바울이 삼은 푯대와 그가 받을 상은 같은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동기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하나님이 상을 주시기

위해서 위에서 부르실 때,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부르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밖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있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미혹해서 그리스도 예수 밖으로 끌어

내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이 행한대로 보응하시며 심판하실 것입니다.   

반면에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었습니다. 또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갈 길을 마칠때 하나님은 위에서 그들을 부르시며

상주실 것입니다.

 

딤후 4장 7∼8절 말씀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면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온전하심과 같이 그때는 우리도 온전해집니다. 자연히 우리는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고

그리스도를 온전히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발견되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대적들에게서 박해를 받아도 또한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 그를 비방하는 자들이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고전 4장 3절에서 바울이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말씀했던 것처럼 우리도 남들의 판단에 좌우되지 맙시다. 오직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면서,

푯대를 향하여 끝까지 기쁨으로 달려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15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지금까지 바울은 자신을 예로 들었습니다. 바울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한일에만 전념했습니다. 뒤에 있는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것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또한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려갔습니다.

 

오늘 본문 15절은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그의 형제들이며 그가 사모하는 자들인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자기를 본받기

를 바랐습니다. 바울은 그들도 자기와 똑같은 생각을 갖기를 바랐습니다.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여기서 “누구든지 너희 온전히 이룬 자들은”이 아니라,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입니다. 그러니까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으로 온전히 이룬 것처럼 여기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자만하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이렇게 생각할지니.” 

바울이 자신을 실례로 들어서 말씀한 것처럼, 그들은 이미 얻었다고도 온전히 이루었다고도,

생각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이미 잡은 줄로 여기지도 말아야 했습니다.

 

행여 우리 중에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어떻게 살아도 구원을 얻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여기는 사람은 없습니까? 자만하지 맙시다.

하나님이 주실상을 바라보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가기 바랍니다.

 

15절 말씀입니다. “만일 어떤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아직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의 것을 생각하며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보서 2장 13절 말씀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바울은 하나님이 죄인 중의 괴수인 자기에게

역사하셨듯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도 역사하실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 마음의 눈을 밝히실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며 푯대를

향하여 달리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을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3장 16절에,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고 하였습니다.

사람마다 푯대에 이르게 된 정도는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를 많이 알고 그리스도를

많이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아직도 그리스도를 적게 알고,

그리스도를 적게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적게 발견됩니다.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오직 우리는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우리를 부르시며 상을 주실 때까지, 우리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특별히 바울이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자세를 세 가지로 말씀했습니다.

 

바울은 오직 앞만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실 상을 바라보았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우리들도 오직 앞만 바라보며, 하나님이 주실 상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고, 푯대를

향하여 힘껏 달려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