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마음을 같이하라(빌립보서 2장 1∼4절)

Andy1954 2024. 4. 15. 09:35

 이 시간 주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마음을 같이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빌립보서가 기록될 당시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황제 가이사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 에바브로 디도"를 바울에게 보내서 바울의 옥바라지를 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물질도 함께 보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이같은 사랑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들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먼저 1장을 보게되면 바울은 그의 매임을 걱정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따뜻한 말씀으로 

위로하고 있습니다.

“나의 매임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되었다. 나를 비방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이시다. 내가 순교하면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실것이고, 내가 살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설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기뻐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바울은 먼저 따뜻하고도 애정 어린 말씀으로, 그의 매임을 걱정하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로했습니다. 그런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더하여

주기 위하여 그들을 말씀으로 권면했습니다.

 

첫 번째 권면이, 빌립보서 1장 27∼30절에 나옵니다. 

먼저 빌립보서 1장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보나 떠나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권면

했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려면, 한마음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해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하나가 될 것을 당부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말이 있지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무슨 뜻입니까?

하나가 되라는  것이지요. 가족들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성도들도 하나가 되어야 하고, 국민들도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함께 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하나 됨에 대해서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하나 됨의 동기와 하나 됨의 의미와 하나 됨의 방안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시간 그 내용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첫째로, 하나 됨의, 동기입니다.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그러므로”라는 단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본문 바로 앞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려면,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하면서 이제 바울은 그들의 하나 됨에 대한 말씀을 이어갑니다. 

 

헬라어 원문성경을 보면 1절 말씀이 네 개의 조건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 있거든”입니다. 둘째, “사랑의 무슨 위로가 있거든”입니다. 

셋째, “성령의 무슨 교제가 있거든”입니다. 넷째,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입니다.

 

이들 네가지 가운데 앞에 나오는 두가지 곧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과 “사랑의 무슨 위로”는

그리스도와 관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두가지, “성령의 무슨 교제”와 “긍휼이나 자비”는 성령님과 연관된 것입니다.

 

본문 1절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성경을 보면, 오늘 본문에 사용된 조건절이 모두 일등급이라는 점입니다. 

헬라어에서 일등급 조건절은, 무엇을 가정하기보다는 기정사실화 할때 쓰이고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이같은 경우를 살펴 보겠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 예수님께 무어라 말했습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때, 헬라어로 일등급의 조건절이 쓰여 졌습니다. 

그러니까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니까, 명하여 이돌들로 떡덩이가 되게하라”

고 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이미 받았고, 또한 현재도 누리고 있는

네가지 사실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이미 받았고 또한 지금도 그들이 누리고 있는

네가지 사실들은 무엇입니까?

 

첫째,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구원받은

백성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권면을 따라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둘째, “사랑의 무슨 위로나”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권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사랑의 위로도 있었습니다. 권면이 말씀으로 바르게 세우는 것이라면 사랑의 위로는 사랑으로

감싸주는 입니다. 바울의 의도는 이러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권면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로부터

계속해서 사랑의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 바라시는 대로 그들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성령의 무슨 교제나”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성령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성령은 그들 가운데 계시면서, 그들에게

권능을 주셨고 다양한 은사도 주셨습니다. 또한 그들에게 성령의 열매도 맺게 하셨습니다.

 

넷째,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입니다. 

성령은 빌립보교회의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 말씀

처럼, 성령께서는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고 계셨습니다.

 

바울의 의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성령과의 교제와 성령으로부터 오는 긍휼과 자비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에베소서 4장 3절 말씀과 같이 성령께서 하나되게 하신것을 힘써 지켜야 했습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자녀들이 서로 다툽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이 편치를 않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이들을 불러놓고, 그들에게 타이릅니다. 

먼저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그들이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합니다.

“얘들아 아빠가 밖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은 다 너희들을 생각해서다. 엄마도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며, 너희들을 위하여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너희가 잘못해도 아빠 엄마는 다 용서한다. 

그만큼 아빠와 엄마는 너희를 사랑하고 있다.”

 

그런 후에 아버지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원하는 것을 일러줍니다. 

“아빠와 엄마가 이토록 너희들을 사랑하니까 너희도 아빠와 엄마가 원하는것을 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빠와 엄마가 바라는 바는 너희가 싸우지 않고, 서로 화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바울도 본문에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납득할 수 있는 사실을 먼저 밝힙니다.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권면을 받으며,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위로를 받는다. 

또한 너희에게는 성령님의 교제가 있으며, 성령님으로부터 긍휼과 자비도 받는다.”

 

이와 같이 말씀하는 바울의 의도는 자명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또한 보혜사 성령님에게서 귀한것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이 바라시는 대로, 하나가 되어야 함이 마땅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 17장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하나 됨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

하셨습니다. 또한 고전12장13절을 보면 우리는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받아 한몸이 되었다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간절히 기도하신대로 성령님은 우리의 하나됨을 이루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 되지 못한다면, 이는 예수님의 사랑을 저버리는 일입니다. 

또한 이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는 일이며, 성령님의 역사를 소멸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바라시고 성령님이 이루신대로, 우리의 하나됨을 힘써 지키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 됨의 의미입니다.

빌립보서 2장 2절을 보면,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여기서 바울은 하나 됨의 의미를 네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마음을 같이 하여”입니다. 둘째, “같은 사랑을 가지고”입니다. 셋째, “뜻을 합하며”입니다. 

넷째, “한마음을 품어”입니다.

 

하나 됨의 동기 네가지 중 앞의 두가지는 그리스도와 연관되며, 뒤의 두가지는 성령님과 연관

되었는데 하나 됨의 의미도 앞의 두가지는 그리스도와, 뒤의 두가지는 성령님과  관련지을

있습니다. 차례대로 간단하게 살펴봅니다.

 

첫째, “마음을 같이 하여”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고전 2장 16절 말씀처럼, 이미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마음이 주어졌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모두가 마음을 같이해야 했습니다.

 

둘째, “같은 사랑을 가지고”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사랑의 위로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 13장 34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그들은 그들이 예수님에게서 받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했습니다.

 

셋째, “뜻을 합하며”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이제 그들의 몸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들 가운데 계신 성령님의 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성령님을 따라 영의 일을 생각하며 그들의 뜻을 합해야 했습니다.

 

넷째, “한마음을 품어”입니다. 

성령님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푸셨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자비를 베푸는 한마음을 품어야만

했습니다.

 

바울의 의도는 이러합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권면과 그리스도

로부터 받는 사랑의 위로가 있었습니다. 아울러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는 성령님의 교제가

있었고, 성령님으로부터 받는 긍휼과 자비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마음을 같이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며 하나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은 성령님을 따라 뜻을 합하여, 영의 일을 생각해야 했고, 또한 한마음을 

품어 서로 간에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마음을 같이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합시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뜻을 합하며 서로 간에 긍휼과 자비의 한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 됨의 의미이며, 하나 됨의 본질입니다.

 

사도행전 4장 32절 말씀을 보면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은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었습니다.

 

이어서 사도행전 4장 33절 말씀을 계속 보겠습니다.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 될 때, 그들에게는 큰 권능과 큰 은혜가 임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 됨의 복된 결과입니다.

 

반면에 갈라디아서 5장 15절 말씀을 보면,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가정에서 가족들이, 교회에서 성도들이, 또한 나라에서 국민들이 하나 되지 못하고,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모두 멸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 되지 못함의 비극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언제나 하나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큰권능과 큰은혜의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셋째로, 하나 됨의 방안입니다.

이어서, 3절 말씀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두 가지의 “하지 마라”와 아울러 한 가지의 “하라”가 나옵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반면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먼저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빌립보서 1장 17절 말씀과 같이,

로마 교회의 성도들 중에는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그들은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다툼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본래 이기적인 욕망을 뜻하고 있습니다. 

즉, 자기를 드러나게 하며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육신적인 욕구를 뜻합니다. 

우리가 잘아는 누가 22장 24절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서로 자기를 높이며 으뜸이 되고자 할때,

다툼이 일어났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각자가 자기를 높이려 하면, 서로 간에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서로 간에 다툼이 있으면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를 드러나게 하려는 이기적인 욕망을 없애야 합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면, 또 한 가지의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나옵니다.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허영은 말 그대로 헛된 영광을 뜻합니다. 

서로 다투며 자기를 높여보았자, 그것은 헛된 영광을 얻은 것에 불과할 뿐입니다.

 

우리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해야 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힘써 구하기 바랍니다. 

 

이어서 3절 후반부 말씀입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아무 일에든지 다툼과 허영으로 하면, 하나 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되려면, 아무 일에든지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합니다.

 

겸손한 마음은 다툼과 허영의 반대입니다. 다툼과 허영은 자기를 높이려 듭니다.

그러나 겸손한 마음은 자기를 낮춥니다. 아무 일에든지 겸손한 마음을 가지면,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게 됩니다. 그러할 때 비로소 하나 됨이 이루어집니다.

 

가정생활을 예로 들어봅니다. “이 놈아, 네 엄마를 닮아서 그렇게도 공부를 못하냐?” 

“야 이 녀석아, 네 아버지 닮아서 행동이 그 모양이냐?” 그러면 아이들은 속으로 뭐라고 대꾸

하겠습니까? “ 자기들이 내게 나쁜 DNA를 물려주고서는 왜 자꾸 나만 야단치실까?”

 

생각과 태도가 바뀌어져야 합니다. “너는 엄마를 닮아서 성품이 참 좋구나.”

“너는 아빠를 닮아서 머리가 정말 명석하구나.” 그러면 아이들도 이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 아빠 엄마는 참으로 훌륭하신 분이야.” 그 가정은 서로 화목하며, 절로 하나 될 것입니다.

빌립보서 2장 4절을 보면,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하나 됨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대개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한 사람이 남의 일에 대해서 불평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먼저 각자가 자기 일을 돌보면서 자기가 맡은 일부터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각각 자기 일만 돌보면 안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일이 제일인 줄 알고, 또한

자기 일이 전부인 줄 알고 다툼과 허영으로 하게 되기가 쉽습니다. 

그러므로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보아야 합니다.

 

먼저 각각 자기일을 돌보아야 합니다. 자기 일에 충실하지 못하면서, 남의일에 대해서 불평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내일을 소중하게 여기

듯이 다른 사람들의 일도 귀하게 여기며,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모두가 협력하기 바랍니다. 

 

이제 오늘 본문은 이와 같이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앞서 살펴본 대로, 이미 바울에게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자신이 기뻐하는 까닭을 세세하게 밝혔습니다.

 

바울은 그의 매임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됨으로 기뻤습니다. 바울은 그를 비방하는 자들을

통해서도 그리스도가 전파되니 기뻤습니다. 또한 바울은 그가 순교하면, 예수님이 존귀하게 되실

것이며, 그가 살면 교회가 더욱 든든히 설 것이기에 기뻤습니다.

 

아울러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로 인하여도 기뻐했습니다. 

빌립보서 4장 1절 말씀과 같이 바울은 그들을 가리켜 자신의 기쁨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는 빌립보서 4장 10절 말씀에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그들의 사랑이 바울의 기쁨을 크게

더하였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 되는 것은, 모든 목회자들의 기쁨이며 진정한 바람일 것입니다.

히브리서 13장 17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 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젖소가 젖을 짤 때, 젖소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좋은 우유가 나옵니다. 

산모가 유아에게 젖을 먹일때도 기쁜 마음으로 먹여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랍니다.

화난 채로 먹이면 그 아이는 설사할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이 갈라지면, 목회자는 근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회자가 근심하면 성도들에게 유익이 없습니다. 성도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 될 때,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목회자에게 즐거움이 있을때 성도들에게도 유익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됨의 동기와 의미 그리고 방안까지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 됨의 의미도 알았고, 또한 하나 됨의 방안도 깨달았습니다.

문제는 우리의 순종입니다. 말씀을 읽고 들었으면 말씀대로 지켜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에서도 하나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리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큰 권능과 큰 은혜를, 풍성하게 받고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