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산상수훈·마태5-7장

주님 뜻대로 행하면(If you do the will of my Father who is in Heaven.), (마태 7장 20-23절)

Andy1954 2024. 9. 22. 03:39

본문 마태 7장 20∼23절 말씀입니다.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어떤 신문에 멋있게 생긴 곰 사진과 함께 아주 재미있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그네를 타고 담배를 피우는 '곰' 등장 50여 가지의 환상적인 묘기 대행진,, 자세히 보니까 동물

써커스단 공연을 안내하는 광고였습니다.  그러나 공연에 등장하는곰은 진짜 곰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이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진짜 곰처럼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어정어정

걷기도하고 때로는 앞발을 치켜들고 사나운 괴성을 지르는등 진짜 곰같이 재주를 부리는 시늉을

하였습니다. 이따금씩 조련사가 물려준 담배를 쥐고 한 모금 깊이 빨아 들고서는 만족스러운

시늉을 지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서 박수를 쳤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 앞에서 그네타는 묘기를 보이게 되었습니다. 발을 구를 때마다 사람들은

손뼉을 치면서 소리쳤습니다. "더세게, 더높이." 사람들의 환호성을 들으면서 점점 더세게 발을

굴렀습니다. 그러다가 아차 하는 순간에 잡고있던 그네의 줄을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순간 몸이 공중에 붕 뜨는가 싶더니 주변에 있는 어떤 우리안으로 곤두박질하며 떨어지고 말았

습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린 그는 질겁하고 말았습니다. 

떨어진 곳이 다름아닌 호랑이 우리안 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호랑이가 어슬렁 어슬렁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픔을 느낄 겨를도 없었습니다. 

 

그는 얼른 울타리로 뛰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철망을 흔들면서 소리쳤습니다. 

"사람 살려, 나는 곰이 아니고 사람입니다." 그러는사이 호랑이가 가까이 다가와서 더이상 피할수가

없었습니다. 두 눈을감고, 모든걸 운명에 맞기려할 바로 그때에 놀라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쉿! 조용히 하세요. 나도 사람입니다." 다름아닌 호랑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습니다. 

그러니까 두 사람 다 짐승의 가죽을 뒤집어쓰고 동물흉내를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곰가죽을 뒤집어쓰고 아무리 곰 흉내를 잘 낸다 해도 진짜 곰이 될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박수와 환호를 받을때는 내가 진짜 곰인가? 하는 착각에 사로잡힐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곰 가죽을 뒤집어쓰고 그저 곰 흉내를 내고 있을 뿐 이라는 사실입니다. 

 

영적인 견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출석을 합니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체만

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 안에는 여러 직분들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직분을 잘 감당한다고 해서 그것때문에

누구나 천국백성이 될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20절에서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는 방법으로 이 원리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과연 예수님의 참 제자이며 진정한 천국의 백성인가를 점검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이 천국의 백성인가를 세가지로 일깨워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 둘째로,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  

셋째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그뜻을 이루어 드리며 그뜻을 삶속에서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첫째로, 천국백성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15장을보면 하루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유전을 범하나이까? 그들은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라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말을 들으시고 마태 15장 8∼9절에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입술로는 예수님을 공경했으나 마음으로는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요한 8장 31절에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순종하면 참 제자요 천국의 백성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천국의 백성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어느 시골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그교회에 연세가 많으신 목사님께서 새로 부임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설교로서 '사랑' 에 대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교인들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는데 많이 듣던 내용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지난주일 설교를 똑같이 하시는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난 뒤에 교인들은

수군대면서 킥킥 웃었습니다. "아무래도 목사님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기억력이 떨어지는 모양이야. 

어떻게 지난 주일 설교를 그대로 하실 수가 있을까?"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또다시 똑같은 내용의 설교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교인들은 화가 났습니다. "우리가 시골 사람이라고 목사님이 우리를 무시하는 모양이다."

교인들은 목사님을 내보내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짐을 싸셨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교인들은 목사님이 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 달을 채울겸

다음 주일에 고별설교를 하시고 가라고 부탁드렸습니다. 목사님은 다음 주일에도 똑같은 내용으로

고별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 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 없는 모습을 보였으면, 목사님께서 마지막 고별설교를 하시면서도 똑같은

설교를 하셨을까?" 교인들은 자신들을 되돌아보면서 회개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을 다시 붙들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교회에 그대로 계시기로 했습니다.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목사님께서 또 같은 설교를 하실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은 다른 설교를 하셨습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은 전도에서 나타납니다. 모두가

전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목사님의 설교가 끝나고 모두 나가서 열심히 전도를 했습니다.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안 하면 1년 내내 계속 똑같은 설교를 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주에도 설교가 바뀌었습니다. "여러분, 헌신하시고 봉사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이 떨어지자 모두가 앞을 다투어서 봉사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니까 교회가 놀랍게 바뀌

었습니다. 교인들은 성령으로 충만해졌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갈수록 크게 부흥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입술만 움직이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의 백성답게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답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생각

하면서 그 뜻대로 실천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천국의 백성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자라야 합니다. 

22절말씀을 보십시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은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대단한 사람들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으며 귀신도 쫓아냈고 많은 권능도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마태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도 똑같은 일들을 행한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천국이 가까이 왔다"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러운 귀신들도 쫓아내었습니다. 병든 자들을 고쳤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도 행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 모두가 예수님의 참제자는 아니었

습니다. 그 가운데는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도 들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할지라도 그 자체만

으로는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으며 천국의 백성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람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문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가" 에 있었습니다. 다시말하면 '우리가'는 그들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으면 오직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러하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은 하나의 수단과 방편에 지나지 않았으며 주체는 "우리가" 였습니다.

"우리가 선지자 노릇하고 우리가 귀신을 쫓아내고 우리가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했나이까?" 

그들은 그저 자신을 드러내기에 바빴습니다. 

 

이런 동화가 있습니다. 어느 연못가에 개구리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황새 한 마리가 물을 마시기 위해서 연못가에 내려왔습니다. 그때 용기있는 한 개구리가

황새에게 다가가서 이런 부탁을 했습니다. 

"황새야, 나도 너처럼 하늘을 날아 보았으면 좋겠는데, 내 부탁 좀 들어줄 수 있겠니?" 

그 말을 들은 황새는 개구리를 측은하게 생각하고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황새는 막대기를 하나 주워와서는 서로가 막대기 양쪽 끝을 단단히 물기로 하였습니다. 

황새는 개구리와 함께 서서히 공중으로 올라가서 연못 위를 한 바퀴 돌았습니다. 

밑에서 다른 개구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서는 부러운 듯이 소리쳤습니다. 

"개굴개굴, 야 멋있다. 저 멋있는 생각을 누가했을까?" 밑에서 동료 개구리들이 자기를 부러워하는

소리를 듣고서는 공중을 날고 있던 개구리는 자랑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개구리는 소리쳤습니다. "개굴개굴, 누군 누구야? 내가 했지." 그 순간 개구리는 물고 있던

막대기를 놓쳤습니다. 결국 개구리는 땅에 떨어져 허리가 부러지고 배도터져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큰일을 할지라도 자기를 드러내면 결과가 아름답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바로 이러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구제하고 열심히 기도도 했으며 열심히 금식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데 목적이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함으로써 자기들이

영광을 받고자 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바리새인의 기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그저 그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어떻다는 것을 드러내며 과시하기에 바빴습니다. 이와같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자기 중심적인 의로서는 결코 천국의 백성으로 합당치 않은 것입니다.

 

사도행전 3장에 나오는 베드로와 요한의 모습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기도하기 위해서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그때 성전 미문에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된 자가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를 측은히 여겼습니다. 앉은뱅이의 손을 붙들고 일으켰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내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베드로가 그를 잡아 당겼을 때 그의 발목에 힘이 생겼습니다. 그는 뛰기도 하고 걷기도

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사도행전 3장 12절

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무슨 말씀입니까? 그 앉은뱅이를 낫게 한 것은 자신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낫게 했으니, 오직 그분에게 모든 영광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우리 자신을 드러내지 마십시다.

베드로처럼 우리 자신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에 완전히 감추어지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천국의 백성은 예수님의 인정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23절 말씀입니다.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은 천국의 주인이십니다.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서 어떻게 천국의 백성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천국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의 백성이 될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누가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자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지 않는자를 불법을 행하는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자기들이 중간에서 영광을 받으려 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 23장 3절에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말 따로 행동 따로 였습니다. 그러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외식적인

의로서 천국의 백성이 될수 있겠습니까?

 

옛날 어떤 마을에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훌륭하신 스승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어떤 어머니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서 그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이 아이가

단것을 너무 좋아해서 아무리 먹지 말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아이는 선생님을

무척이나 존경합니다. 선생님께서 한마디 말씀만 하시면 들을 것입니다. 그러니 단것을 먹지말라고

제발 타일러 주세요"  이렇게 하소연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스승이 가만히 보더니,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한달 뒤에 다시 오너라.

"아이의 어머니는 의아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까짓 것 바로 그 자리에서 단것을 먹지 말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될텐데 왜, 한달 뒤에 다시 오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스승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아이와 어머니는 집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달 뒤에 다시 갔습니다. 뜻밖에도 스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한 달만 더 기다려라." 그 말이 이해가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한 달을 더

기다렸다가 다시 갔습니다. 그제야 스승은 아이에게 "얘야, 이제는 단것을 먹지 말아라." 라고 말

하였습니다.아이는 " 예 선생님, 이제부터는  단것을 먹지 않겠습니다." 라며 대답을 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단것을 먹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는데 왜 두 달씩이나 걸렸습니까?"

그때 스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부인, 사실 나도 단것을 좋아한답니다. 나는 단것을 먹으면서

어떻게 저 아이에게 단것을 먹지 말라고 말할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한달을 기한으로 정하고

단것을 끊으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한 달을 더 연장해서 재시도를 했습니다. 이제는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도 단것을 끊었으니까 너도 얼마든지 단것을 끊을

수 있다. 이 아이에게 떳떳하게 이 말을 하기 위해서 두 달을 기다려야 했던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말하기는 쉬우나 실천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주시는 메세지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제자인 우리들이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생각하면서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뜻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옆으로는 이웃을 우리의 몸처럼 사랑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주셔서 매순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나의 뜻대로 행하기 위해서 애를 썼구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이와같은 칭찬과 인정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