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7장 15∼19절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영국의 유명한 코미디언이었던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에 관한 이런 일화가 있습니다.
하루는 그가 잠시 머리도 식힐 겸해서 시골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어느 작은 마을을 지날 때 때마침 그곳에서는 "채플린 흉내내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만큼 채플린은 당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고 유명했습니다.
채플린은 포스터를 보고서 흥미를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대회를 구경해 보기로 했습니다.
모두들 채플린처럼 분장을 하고 나와서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채플린은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그 대회에 출전했습니다.
그리고는 평소에 하던대로 그곳에서도 열심히 연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심사결과는 놀랍게도
그 대회에서 겨우 3등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진짜 채플린보다 더 연기를 잘한가짜 채플린이 두 사람이나 더 있었던 셈입니다.
때로는 진짜보다 가짜가 더 진짜 같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일화입니다.
세상에는 가짜가 참 많습니다.
남대문 시장에 있는 어떤 참기름 가게에 가면 이런 간판이 붙어있다고 합니다.
"정말로 진짜 순 참기름만 판매합니다." 참기름이라는 단어에 이미 "참"자가 붙어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부족해서 그 앞에 수식어가 3개나 더 붙어있습니다. "정말로, 진짜, 순." 오죽이나
가짜가 많았으면 그러한 간판이 붙어 있겠습니까? 세상에는 가짜가 많은 것이 항상 문제입니다.
미국의 어느 마을에 장사가 잘 되기로 소문난 장난감 가게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게의 왼쪽에 새로운 장난감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가게는 "Best Quality Guaranteed."
라는 큰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최고의 품질을 보장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번에는 본래 있던 장난감가게의 오른편에 또 다른 장난감 가게가
문을 열었습니다. 그 가게는 "Lowest Price Guaranteed." 라는 큰 간판을 내걸었습니다.
최저의 가격을 보장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본래 가게의 주인은 그 틈바구니에 끼여서 얼마나 마음속으로 고민을 많이 했겠습니까?
한쪽은 최고의 품질을 보장한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최저의 가격을 보장하지 그는 이러지도 저러
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며칠 밤을 새우면서 고민하던 끝에 자기 가게에도 큰간판을 내걸었
습니다. 그 간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The Main Entrance." 주 출입구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그곳에 있는 여러 장난감가게의 주 출입구는 자기 쪽이니까 이쪽저쪽으로 눈 돌리지 말고
다 자기 가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좁은 문으로 들어가고 좁은 길을 걸어가는 바른길을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여기에 다른 문이 있다, 여기에 또 다른 길도 있다." 라고 미혹하는 자들이 있다 할지라도 눈길을
돌려서는 안됩니다. 예수님만이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문이 되시며 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를 미혹하는 이른바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둘째로, 거짓 선지자를 판별하는 두 나무의 비유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셋째로,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에게 다가올 종말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우리 모두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길만 걸어가야 합니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를 미혹하는 자들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5절 말씀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은 나쁘다 거짓 선지자들은 옳지 않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말씀하시면서 강한 경계를 하셨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위험하기 때문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이 겉에 양의 옷을 입고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는 목자들이 양무리와 친근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 양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들은 양을 돌보는 목자의 모습으로 가장하고 나온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양을 돌보는 목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니 얼마나 가식적입니까?
차라리 마태 7장 6절의 말씀처럼 개나 돼지의 모습이라면 덜 가증스러웠을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습니다. 마음 속에는 탐심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들은 양을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양을 해치고 죽였습니다.
목자는 양들을 생명의 길로 인도하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파멸의 길로 인도할 뿐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본문에서 말씀하신 거짓 선지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대문에 "개조심"이라고 써 있으면 집안에 사나운 개가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고 하신 것은 당시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특징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종종 "외식" 이라고 표현하셨는데 바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외식하는 자" 의
대명사 입니다. 그들이 거짓 선지자들 이었던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경건하고 신앙 생활을 잘 하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마태복음 6장을 보면 그들의 외식하는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들은 회당과 거리에서 나팔을 불면서 구제했습니다. 그들은 기도시간이 되면 회당 앞이나 큰
거리 어귀를 상관하지 않고 그자리에 멈추어 서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이레에 두번씩 곧 일주일에
이틀씩 금식을 했습니다. 금식할 때는 아예 얼굴을 흉하게 하고 슬픈 기색을 하며 금식했습니다.
그러니 겉으로 보면 얼마나 경건 생활에 힘쓴 것처럼 보였겠습니까?
그러나 사람의 눈은 속일 수 있어도 중심을 보시는 예수님은 속일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는 전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서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기 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의 외식을 단호하게 책망
하셨습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서 이 말씀을 무려 여섯 번씩이나 반복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태복음 24장에 세상 끝날에있을 여러 징조들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미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었습니다. 좌로도 우로도 우리의 눈길을
돌리지 마십시다. 예수님만 바라보며 예수님만 따르고, 예수님의 말씀에만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기를 다시 한번 간절히 축원합니다.
둘째로, 거짓 선지자를 판별하는 방법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우리가 거짓 선지자를 어떻게 판별할수 있습니까? 거짓말하는 사람이 "내가 지금 거짓말합니다"
하면서 거짓말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거짓 선지자가 이마에 '거짓 선지자' 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거짓 선지자들을 판별할 수 있습니까?
16절 말씀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You will know them by their fruits.)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우리는 열매로 정체를 알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겉으로는 양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시적으로는 착각을 일으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입니다.
결국에 가서는 그들의 본색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으며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의 일종으로서 갈매나무라는 것이 있는데 줄기에 가시가 있습니다. 언뜻 보면 열매가
작기는 하지만 모양이나 색깔이 포도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갈매나무의 열매를 멀리서 보면 마치
포도나무에, 포도가 달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써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엉겅퀴도 마찬가지입니다. 잎이 무성해서 멀리서 보면 무화과나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 있는 엉겅퀴의 꽃도 무화과와 그 모양이 비슷합니다.
그러나 갈매나무가 포도나무처럼 보인다 해도 갈매나무에서 포도를 딸수 없는 것입니다.
또 엉겅퀴가 무화과나무처럼 보인다 해도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17∼18절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나무가 나쁜열매를 맺을수 없고 못된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수 없느니라."
예수님은 같은 내용을 17절에서는 긍정적으로 18절에서는 부정적으로 표현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선목선실"이고 "악목악실"이라는 것입니다. 나무가 선해야 열매도 선하고 나무가 악하면
열매도 악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한번 생각해 보면 모두가 하나같이 부족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실수도 했습니다.
잘못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을 향해서 가고 계실때 야고보와 요한은 그들의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자신들을 위해 청탁을 할 정도로 철이 없는 제자였습니다.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 못할만큼 의심이 많았으며 나머지 제자들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이 무리들에게 잡히실때 모두 달아났습니다. 이와 같이 제자들에게는 하나같이 다 부족하고
실수도 많고 허물 투성이 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근본적으로 좋은 나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하며 아름다운 믿음의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또 다른 제자 가룟 유다를 보면 그는 본질적으로 못된 나무였습니다. 처음에는 성실한것
같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돈궤를 맡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양의 옷을 입고 나온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은 30 에 예수님을 팔고 배반했습니다. 이와같이 나무는 그열매를 보고
알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못된나무는 한마디로 거짓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 그리고 선량한 백성들을 미혹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2서 10절에서 이러한 사람들은 집안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조차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못된 나무요 본질적으로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좋은 나무는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참 선지자를 말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 자신을 좋은나무라고 일컫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 15장 1절
말씀에서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농부라" 라고 말씀을 하셨으며, 또 요한 15장 5절에서
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음이라." 이렇게도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참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접붙임을 받은
가지들입니다. 그런고로 예수 그리스도로 늘 충만한 우리들의 삶이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고 예수님이 우리안에 거하실때 우리는 날마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이 은혜가 우리에게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거짓 선지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의 종말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9절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못된 나무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찍히고 베어져서 땔감으로 불에 던지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씀하는 불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마태 13장 41∼4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예수님은 지옥을 풀무불에 비유하셨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고 뜨겁겠습니까?
또 예수님은 마태 25장 41절에서 "또 왼편에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지옥불은 꺼지는법이 없는 영원한 불입니다.
이번에는 계시록 21장 8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점술가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던져지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지옥은 뜨거운 불로 인해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유황이 탈때 나오는 유독가스로 인해
받는 고통은 말로 형언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지옥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그곳에는 소망이 없다
는 사실입니다. 그저 세세 무궁토록 밤낮 없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어떤 남자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아내를 따라서 그저 이따금씩 교회를 출석하기는 했지만 그의
마음 속에는 확실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는 교회를 다닌다고 하면서도 주색잡기에 바빴습니다.
그러다 나이를 먹어가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죽으면 십중팔구 지옥에 갈 것이 뻔하기 때문
이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꿈속에서 자기가 죽어 하늘나라 심판대 앞에 서있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그에게 다가와서는 천국과 지옥을 구경시켜 주겠다고 했습니다.
먼저 천사는 그를 이끌고서 천국으로 갔습니다. 그가 천국에 가보니까 흰옷을 입은 성도들이 천사
들과 함께 새 노래로 하나님께 찬미를 드리면서 예배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천사와 함께 뒷자리에 앉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에 익숙해
있지 않았습니다. 조금 앉아 있으니까 좀이 쑤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아이고 천국 생활이 왜 이리 따분하냐? 무슨 재미가 있어야지."
잠시 뒤에 그는 또 천사의 이끌림을 받아서 지옥으로 갔습니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곳에는 술집이 있습니다. 카바레도 있습니다. 카지노도 있습니다. 또 여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다 있었습니다. 그는 신나게 구경을 하다가 넌지시 천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지옥체질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저를 지옥으로 보내주세요.
그는 자신의 원대로 지옥에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지옥에 와보니까 사정은 전연 달랐습니다.
지옥의 가운데 불과 유황으로 타는 큰 못이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
습니다. 마귀는 그를 보더니 붙잡아서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집어 던지려고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깜짝 놀라서 외쳤습니다. "이곳은 조금 전에 보았던 광경과는 너무나도
다른데요?" 그러자 마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조금 전에는 네가 관광비자로 지옥에 왔으니까 전시용으로 만든 지옥을 마음껏 구경하고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네가 영주권을 가지고 이곳에 왔으니까 너는 이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영원토록 살아야 하느니라." 그가 깜짝 놀라서 깨어 보니 꿈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주색잡기를 끊어버리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신앙 생활을 잘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장기나 바둑을 잘못 두면 다시 새롭게 두면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그렇지 않습니다. 일방통행입니다. 가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일단 끝이 나면 두 번 다시 시작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애당초부터 정신을 잘 차리고 바른 길을 걸어가야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좁은길을 걸어가는 것은 희생이 따르기 때문에 힘들어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길에 생명이있고 복이있으며 참된 승리가 있습니다. 그길은 예수님께서 마태 28장 20절
에서 말씀하신대로 예수님이 함께 하시면서 지키시고 동행해 주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면서 이 생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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