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6장 9∼1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중세 유럽의 어떤 수도원의 기도실 벽에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라는 제목의 글이 쓰여 있었다고 합니다. 그 글의 내용은 이러합니다.
"너는 나를 주라고 부르면서도 나를 주인으로 모시지 않았고, 너는 나를 진리라고 말하면서도
내게 배우지 않았고, 너는 나를 빛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바라보지 않았고, 너는 나를 길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따라오지 않았고, 너는 나를 능력이라고 하면서도 나를 의지하지 않았고,
너는 나를 응답이라고 하면서도 내게 기도하지 않았느니라. 그러니 너의 삶이 가난하더라도
너는 나를 원망하지 말아라."
우리에게 기도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글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은 불과 3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매우 짧은 기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기도에 힘쓰셨습니다.
예수님은 새벽 미명에 일어나셔서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그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저녁에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는 또다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은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셨고 또 기도로서 하루를 마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중요한 일을 앞에 두시고서는 언제나 먼저 기도로서 준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도 먼저 광야로 가셔서 40일을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택하여 세우시기 전에도 산으로 가셔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서도 먼저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너무나 간절히 기도하셔서 흘러내리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방울처럼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상에서 하신 첫 말씀도 기도였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고난 속에서 시22편 첫 절을 인용하시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상의 마지막 말씀도 역시 기도였습니다.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이처럼 예수님은 친히 우리에게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인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하나의 기도문을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주기도문 (the Lord`s Prayer) 입니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제자들의 기도문 (the Disciples` Prayer)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기도는 예수님이 하나님께 드리신 기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자신의 제자들인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다른 기도는 하지말고 이 기도만 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신 것은 아닙니다.
누가 11장 2∼4절에도 주기도문이 기록되어 있는데 마태복음에 기록된 주기도문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주기도문은 서로 간에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6개의 간구가 나옵니다.
반면 누가복음에는 네 개 반의 간구가 있을 뿐입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기도는 하지말고 주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만 해야 한다면 두개의 기도가 정확하게
같아야할 것입니다. 따라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주기도문에 나타난
방식과 정신에 따라서 기도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해서 세 가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믿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하나님에대한 사랑 이웃에대한 사랑을 믿음의 그릇에 듬뿍 담아서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축원
합니다. 또한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고 영화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는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이며,
둘째는 또 네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니라 바로 이 두가지 계명이 온율법과 선지자
의 강령이니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 속에서도 위로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옆으로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맨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주기도문에는 모두 6개의 간구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그 가운데 처음 나오는 3개의 간구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때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넓어지며 하나님의 뜻이 든든히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겠다는 목적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했으며 자기
들이 영광을 받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시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기도가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기도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에 맞추어지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태 6장 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구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다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0장 31절에서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위로는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아울러 옆으로는 우리의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해야 합니다. 십계명의 근본정신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1계명에서 제4계명까지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5계명에서 마지막 제10계명까지는 이웃에 대한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같은 정신으로 드려져야 마땅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는 이웃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겨져 있습니다.
주기도문은 나 한 사람만을 위한 개인적인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기도문에는 "나"라는 1인칭 단어는 한 번도 쓰이지 않았으며 모두가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로 쓰여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기도할 때에 나 개인만을 위한 기도를 드리지 말고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웃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기도에는 이웃에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스스로
를 의롭게 여기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기에 급급했습니다. 그 단적인 실례가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어느 바리새인의 기도였습니다. 그는 성전에 올라가 자신을 뽐내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바리새인은 기도 중에 자기를 높이기 위해 세리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서슴없이 낮추어 버렸
습니다. 그만큼 자기 중심적이요 이기적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자기만을 내세우는 이기적인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같은 이기적이고 자기만 내세우는 기도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는 곁에 있는 이웃을 생각하며 그들에 대한 사랑을 담아서 하나님께 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럴때 우리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실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통해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정신에 따라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듬뿍 담아서 기도 할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방인들은 기도할 때 중언부언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도 이방인들의 영향
을 받아서 그저 길게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은 말이 많으면 자기들의 기도에 더 큰 효과
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도가 길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The longer, the better. 인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기도의 길이에 있지 않습니다.
때로는 길게 할수도 있으며 짧게 할수도 있습니다. 또 큰소리로 하느냐 작은 소리로 하느냐가
문제가 될수 없습니다. 때로는 유창하게 기도할 수도 있으며 때로는 말이 나오지 않아 떠듬거릴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경 지식을 가지고 기도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주기도문은 헬라 원어로는 72 단어 입니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49 단어 밖에 안됩니다.
천천히 암송해도 30초면 암송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길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더해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지금 우리 곁에 계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기도하는
것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기도에 따라서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면 바로 이러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당시 헤롯 임금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목베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기뻐하니까 이번에는
베드로를 잡았습니다. 내일이면 죽이려고 그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제 베드로는 절박한 상황 속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마가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모였습니다.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베드로를 위해 천사를 보냈습니다. 천사는 감옥의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옥을 빠져 나왔습니다. 베드로는 마리아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때까지도 집안에 모인 사람들은 베드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서 로데라는 계집아이가 뛰어 나왔습니다. 보니까 베드로가 밖에
서 있었습니다. 로데는 너무나도 반가워서 베드로에게 문을 열어주는 것조차도 잊어버리고 집안
으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사람들에게 "지금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습니다"라고
말 했습니다. 그러나 로데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너 미쳤구나?"
그러자 계집아이는 더 힘써 말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지금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다니까요,"
그래도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도리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네가 베드로의 천사를 보았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들의
기도가 그렇게 응답되리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도 없이 그저 기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들은 베드로가 문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때 "우리의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과 확신으로 기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할 때 일용할 양식을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죄 사함을 위해서 기도할 때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인도하심을 바라며 기도할 때 눈동자와 같이 지켜주시며 발걸음을 인도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가 11장 2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예수님은 믿음대로 된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도 야고보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라고 기록했습니다. 누가 의인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자 믿음으로 구하는 자가 바로 의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지금 하나님이 내 곁에 찾아오셔서 내 기도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내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신 주기도문을 통하여 올바른 기도의 자세를 세 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에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을 우리의 믿음에 듬뿍 담아서
기도함으로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하고 우리의 기도를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수 있는 기도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산상수훈·마태5-7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금식'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함 (마태 6장 16-18절) (0) | 2024.08.17 |
---|---|
용서는 위대한 것입니다. (마태 6장 14-15절) (0) | 2024.08.15 |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마태 6장 5-8절) (0) | 2024.08.11 |
구제하는 삶이 받는 복 (마태 6장 1-4절) (1) | 2024.08.09 |
이웃을 사랑하는, 행복한 삶을 삽시다 (마태 5장 43-48절) (0) | 2024.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