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5장 9∼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진정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모습
으로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듬뿍 받고있는 우리들은
너무나도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사랑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팔복 가운데 7번째와 마지막 8번째 복에 대해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습니다.
9절 입니다. "화평하게 하는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사실을 생각
할 때 우리는 너무나도 가슴 벅차고 또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기독교인 두 사람이 있는데 성경에 능통한 성경학자우찌무라 간쪼와 그리고 다른
한 사람은 가가와 도요히꼬 입니다.
특히, 가가와 도요히꼬는 빈민운동등을 통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앞장 섰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가가와 도요히꼬를 일본의 성자 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이처럼 일본의 기독교인들로부터 칭송을 받고있는 가가와 도요히꼬 였지만 어머니는 기생출신으로
아버지가 고오베 시장으로 있을때 이기생을 첩으로 들여서 낳은 아들이 바로 가가와 도요히꼬
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여의었습니다.
그래서 어쩔수 없이 아버지의 본처 집에 얹혀 살았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많은 눈치를 보며 구박을
받았겠습니까? 그가 12살 때였습니다. 마땅히 갈 때가 없었던 그는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따스한 햇볕을 즐기고 있었을 때 예수 전도단이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수 있습니다. 인생의 참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라고 외치면서 지나갔습니다.
가가와 도요히꼬는 그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나 같은 기생의 자식도 첩의 아들도 예수님만
믿으면 정말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습니까?"
그때 전도대원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는 요한복음 1장 12절 말씀을 알려주면서 그러니 당신도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얼마든지 하나님
의 자녀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그 길로 자기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누가 물으면
그는 언제나 "나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나는 기생의 자식도 첩의 아들도 아니고 하나님의 아들
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처럼 불쌍한 자들을 위해서 일생토록
많은 봉사를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우리는 죄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던 우리를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시고
하나님과 화평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화평케 하는 자" 로 살아갑니다.
우리는 성 프랜시스의 기도문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를 잘 알고 있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며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자기를 온전히 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평화의 도구로서 화평케하는 자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화평케 하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이 있는 곳에는
미움과 분열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로마인들을 미워했고 사마리아인들도 미워했고 세리와
창기들도 미워했습니다.
그들은 "화평케 하는자" 곧 peace∼maker가 아니라 도리어 trouble∼maker 로 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지 못했으며 마귀의 자식이라고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서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깁니다. 또 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기면서 살아가기에 가는 곳에는 사랑이
싹트고 언제나 평화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둘째로, 천국이 우리의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마음에 품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영화로운
하늘나라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1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후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모든 것을 이어
받게 될 상속자들입니다.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리시는 모든 영광을 똑같이
누릴 것입니다. 그 사실 하나만 생각해도 우리는 설레이지 않을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에게는 이같은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어 있기에 이 땅에서 잠시 잠깐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을 오히려 기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귀한 선물들을 주셨습니다.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으며 영원한 천국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우리의 몸을 헌신한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의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기꺼이 핍박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물론 윤리나 도덕에서 말하는 인간적인 의 능동적인 의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주시는 수동적인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핍박을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1절에서 "나로 말미암아" 라고 분명하게 그 사실을 말씀하셨습니다.
사도행전 5장을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사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러나 밤중에 주의 사자 곧 천사가 와서는 옥문을 열어 그들을 풀어주셨습니다.
감옥에서 나온 사도들은 아침에 다시 성전에가서 백성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관속들에 의해서 붙잡혀서 공회 앞에 끌려가 채찍으로 맞았습니다.
채찍질 당한 뒤에 공회 앞을 떠나오면서 어떠한 반응을 보였습니까? 사도행전 5장 41절에 보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났다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박해 받은 것을 오히려
기쁘게 여겼습니다. 공회원들은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못하도록 금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5장 42절에 보면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님은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죽도록 충성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순교했습니다.
바울은 칼로 목베임을 당하는 참수형으로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이제 그들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쓰고서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하며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제자들을 핍박하던 서기관과 바리새인
들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영한 불 곧 지옥불에 떨어져 고통을
당해야 하는 불행한 자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의를 위하여 언제라도 기꺼이 박해를 받을 준비가 된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이기에 우리가 영화로운 천국으로 들어가는 날 우리의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씌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세세 무궁토록 왕 노릇할 것입니다.
영화롭고 영원한 하늘 나라 천국을 생각할 때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셋째로, 하늘에서 우리의 상이 클 것입니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살기에 주어진 환경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11∼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
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어떤 분은 11절에 복이라는 단어가 또 사용되었기 때문에 11∼12절을
독립시켜 9번째 복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11절과 12절은 10절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이
박해에 관한 것이며 박해를 받은자에게 주어지는 약속도 천국에서 받을 상에 관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10절에 기록된 마지막 8번째 복을 11절과 12절에서 좀 더 자세하게 다시 설명해
주셨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우리 예수님은 11절에 언급된 박해들을 그대로 받으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예수님을 거스려 온갖 악한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히브리서 12장 2절의 말씀처럼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참으셨습니다. 그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도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박해를 받을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인하여 우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합니까?
우리를 박해하는 자를 미워하거나 대항해서 싸울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박해 속에서도 기뻐
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박해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주어진 박해를 기뻐하고 즐거워 해야할 이유를 두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은면 하늘의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 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마도 우리가 받을상은 우리의 말로는 표현할수도 없고 우리의 머리로는 상상할수도 없을 정도로
크고도 영화로운 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12장에서 자신이 셋째 하늘 곧 천국에 이끌려 올라갔던 체험을 기록하고 있는데
그는 천국의 영화로운 광경에 완전히 압도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곳의 아름다움을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하늘에서 받게 될 상이 너무나도 영화롭고 엄청난
것이기에 박해 속에서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더없이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로,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시대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인하여 박해를 받았던 것처럼 신약시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은
예수님을 인하여 박해를 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국에서 선지자의 반열에 서서 선지자
들이 받는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땅엣것만 바라보면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의 삶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도 같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위엣 것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비록 이땅에서는 우리가 잠시잠깐 동안 박해를 당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늘에서 하나님
께로부터 받을상이 큼을 알기에 우리는 그어떠한 박해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가운데 기뻐
하며 즐거워하고 뿌듯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천국은 우리의 것입니다. 선지자의 반열에 서서 하늘에서 큰 상을 받게 될 것이기에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이 기쁨은 나만의 기쁨이 아닙니다. 우리 가족 모두의 기쁨이요 우리 교회
전체의 기쁨이요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 온세계 인류전체의 기쁨과 행복이 되게끔 해야할
것입니다. 아울러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리도 화평케 하는 자로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더 나누고 실천할 수 있는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할것입니다.
고달픈 인생 길을 걸어가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언제나 함께 계시면서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예수님을 바라보며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산상수훈·마태5-7장'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의 (Righteouness)란 무엇인가? (마태 5장 20절) (11) | 2024.07.23 |
---|---|
성경의 절대성과 영원성이란 무엇인가, (마태 5장 17-19절) (1) | 2024.07.22 |
우리가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 (마태 5장 13-16절) (1) | 2024.07.20 |
우리는 행복한 자, (마태 5장 6-8절) (2) | 2024.07.19 |
우리는 복 있는자, (마태 5장 1-5절) (1) | 2024.07.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