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산상수훈·마태5-7장

성경의 절대성과 영원성이란 무엇인가, (마태 5장 17-19절)

Andy1954 2024. 7. 22. 10:04

본문 마태 5장 17∼1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라함 링컨의 이야기입니다. 

링컨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남북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한번은 많은 남군의 병사들이 워싱턴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펜실베니아주의 게티스버그를 향해서

공격해오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서 백악관에서는 링컨 대통령이 주제하는

비상 각료회의가 열렸습니다. 모두들 긴장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링컨 대통령만큼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평온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각료 가운데 한 사람이 대통령에게 물었습니다. 

"각하 지금 수많은 남부군이 게티스버그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전역이 전쟁의 아수라장

으로 변해버릴 위기에 처해 있는데도 대통령께서는 어떻게 그처럼 평온하실수 있습니까?" 

 

그 물음에 링컨은 미소를 띠면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어젯밤 늦게까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전쟁의

승패를 결정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데

두려워할 까닭이 무엇이겠소?" 링컨 대통령의 그 말에 모든 각료들의 마음도 평안해졌습니다. 

 

워싱턴에 있는 박물관에 가면 링컨 대통령이 생전에 쓰던 성경책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성경책에는 너무나도 자주 보아서 눈에 드러나는 구절이 있습니다. 

주변에는 눈물 자국도 있으며 단어마다 손가락으로 눌러서 생긴 손때 묻은 자국도 있습니다. 

바로 시편 34편 4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링컨은 살아오면서 많은 역경을 겪었습니다. 

대통령이 되고 나서도 남북 전쟁을 비롯해서 얼마나 어려운 일이 많았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시편 34편4절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9살이 되던 해 그의 어머니 낸시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앙심이 깊었던 낸시는 사랑하는

아들 에이브라함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당부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나는 네가 부자가 되는 것보다 위대한 인물이되는 것보다도 성경 읽기를 즐기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하는 아들아 매일 성경을 읽도록 하여라. 그리고 앞으로 살아가는 동안

에 삶의 위기가 닥칠때 더열심히 성경을 읽도록 하여라. 이것이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말이다." 링컨은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어머니의 유언에 따라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부지런히 읽었습니다. 성경말씀은 그의 삶 속에 살아 역사하면서 그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그리해서 그는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떡으로 사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따라서 '말씀' 이 우리 발의 등이요 우리 길의 빛이 되어서 우리의 걸음 걸음을 지키

시며 인도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면서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복받은 자들인가를 다시 한번 깨닫는

은혜로운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더욱 사랑하며 가까이

하며 묵상하고 순종함으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 말씀은 세 대지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17절에서 예수님은 성경 말씀의 절대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18절에서 예수님은 성경 말씀의 영원성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19절에서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살아갈때 받을 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성경의 절대성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먼저 17절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신약과 구약으로 나누어 지는데 예수님 당시에는 구약만 있고 신약은 없었습니다. 

신약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후 예수님의 제자들에 의해서 기록되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신약과 구약으로 나누듯이 유대인들은 구약을 율법과 선지자로 나누었습니다. 

구약의 처음에 나오는 다섯 권의 책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가리켜서 '율법'

이라고 불렀으며 나머지 모든 책을 '선지자' 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율법과 선지자라는 말은 오늘날의 구약 성경 그 당시로는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성경을 폐하는 자라고 비난했습니다. 

반면에 자기들은 성경에 충성된 자들이라고 자처했습니다. 

 

성경에있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가지고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들은 그 계명을 철저하게 지킨답시고 안식일에는 짐도 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짐에 대한 정의와 어느 정도까지를 짐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로 오랜 기간 토론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 합의된 사항을 '유전' 으로 만들어서 지키게 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무화과나무의 열매 한 개 이상의 무게는 짐으로 간주했습니다. 

당연히 안식일에는 지팡이를 못 집게 했으며 절뚝발이는 목발을 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의족을 달고 있는 사람도 안식일에는 그것을 벗어 놓아야만 했습니다. 

그것을 들고 있으면 짐을 지고 있는 것이니까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을 범하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여기에 환자가 있습니다. 

그러면 안식일에 치료는 하되 병이 더 심해지지 않을 정도로만 치료할 수가 있었습니다. 

조금이라도 병을 낫게 하면 그것은 일하는 행위로 간주되어 계명을 어긴 셈이 됩니다. 

그들은 온갖 유전을 만들어서 지키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어느 안식일날 예수님은 베데스다 연못가에 38년 동안 병들어 누워있던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그들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신 셈입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고 말씀까지 하셨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을 낫게 하신 것만 해도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수 없는

일인데 거기에다가 그 병자에게 자기 자리를 들고서 걸어가라 고까지 말씀하셨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을 성경을 폐하는 자라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실제로 성경 말씀을 폐한 사람이 예수님이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을 폐한 사람은 예수님이 아니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계명의 참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것은 아니라

는 근본적인 취지를 그들은 망각해버린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저 자기들의 인간적인 의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잡다한 유전들을

만들어서 계명을 피상적으로만 지키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계명의 참뜻과 근본적인 취지를 아시기에 안식일이었을지라도 병든 자에게 자비를

베푸셔서 그의 병을 고쳐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함이라."

 

예수님은 율법이나 선지자에 있는 어느 한 말씀이도 결코 폐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셨으며 성경 말씀을 완전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바로 성경 말씀 그대로였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인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기록한대로 처녀의 몸 다른 말로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기록한 성경 말씀대로 예수님은 유다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 말씀대로 고난을 받으시고 성경 말씀대로 죽으셨습니다. 

성경대로 예수님은 죽은자 가운데서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하늘에 오르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님은 성경에 절대적으로 순종하시고 그의 순종적인 삶을 통해서 성경말씀을

완전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얼마든지 자신의 권세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실 수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세번 다 신명기에 있는 성경말씀으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말씀

절대적인 것으로 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자신의 의를 내세우기 위해서 성경말씀을

왜곡하거나 변형시키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성경 말씀의 권위 앞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며 완전케 되는 것을 보면서 기뻐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가는 우리는 너무나도 복 된 자들입니다.

 

둘째로, 성경의 영원성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성경이 절대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성경 말씀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무리 성경이 권위 있는 말씀이라 할지라도 그 말씀이 영원

하지 못하고 시대에 따라서 바뀔 수밖에 없다면 성경은 절대적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의 말씀이 결코 변할 수 없는 영원성을 가진다고 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은 어떤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실 때 종종 이러한 표현을 쓰신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어서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시 옛 하늘과

옛 땅은 사라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다는 것으로 이 말씀은 세상 끝날까지라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구약성경은 본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일점은 히브리어 알파벳 가운데서 가장 작은 문자인

'요드' 를 가리킵니다. 영어의 아포스트로피(`)와 비슷한 형태입니다. 

그리고 일획은 히브리어 알파벳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 쓰던 방식이었습니다. 

우리 말의 자 위에 옆으로 한 획을 더 그으면 이 됩니다. 그 위에 비스듬히 한 획을 더 그으면

이 됩니다. 히브리어도 마찬가지입니다. 획을 각지게 하느냐 둥글게 하느냐에 따라서 또 획을

붙이느냐 띄어 놓느냐에 따라서 글자가 달라집니다. 아무튼 예수님이 말씀하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 중 단어 하나 문자 하나는 말할 것도 없고 그 글자를 형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한 점 한 획까지라도 변함이 없이 다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성경

말씀의 영원성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그 당시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특히 성경 가운데에서도 율법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고 그외의 성경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았던 이유도 모세가 율법서에 부활에

대해서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이여 모세는 말하기를 사람이

만일 아들이 없이 죽으면 그동생이 그아내에게 장가들어 형을 위하여 후사를 세우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예수님에게 한 가지 예를 들면서 예수님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중에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 장가들었다가 후사가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생이 형수를 취했습니다. 그런데 그도 후사가 없이 죽었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일곱째까지 계속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이 있다고 가정할 경우 그 여자는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말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서 그런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조금도 주저하시지 않고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부활 때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율법에 속한 출애굽기 3장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모세의 가시떨기나무에 관한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이 말씀 가운데서 예수님이 부활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래전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다 죽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서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었고 이삭의 하나님이었고 야곱의 하나님이었느니라" 고 

과거형을 써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고 현재형을 쓰셔서

하나님은 여전히 그들의 하나님이심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모세도 증거하고 있음을 예수님은

율법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명쾌하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모세보다도 수백 년 이전의 사람들입니다. 

모세는 예수님보다도 1400년 앞선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시대를 초월해서

영원불변한 진리의 말씀으로 남아있음을 예수님은 보여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가리켜서 수천 년 전에 기록된 하나의 고전처럼 취급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에겐 성경 말씀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불변의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지금도 살아 우리의 삶속에 역사하면서 우리 길의 빛이되고 우리 발의 등이

되어서 우리의 발걸음을 의의 길로 승리의 길로 인도해 주심을 믿습니다.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셋째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들이 받을 복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안타깝게도 기독교에도 많은 교파들이 있습니다. 성경관이 다 같은 것은 아닙니다.

우리와 성경관이 다른 사람들이 있습니다. 결국 예수님과 성경관이 다른 셈입니다. 

소위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특별히 성경 속에

기록된 초자연적인 기적과 이상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들은 성경을 이성적으로 재해석을 하며

자기들 마음대로 수정합니다. 

그들도 예수님의 제자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제자처럼 행하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 사람들의 결과는 어떻겠습니까? 19절 상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믿음으로 구원을 받으니까 그들도 구원을 받을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하늘나라에서는 지극히 작은

자라는 일컬음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며 성경의 권위에 무릎을 꿇는 사람들

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19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이 엘리 제사장에게 하신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경멸히 여기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존중히 여기기에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존중히 여겨주셔서 천국에서

우리를 큰 자라고 일컬어주실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와같은 신앙생활을 통하여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께서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다 받으실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 

천국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