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5장1∼5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세상을 밝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바라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들의 표정이 대체로 환한 미소와
해맑은 얼굴의 모습을 띠고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을 어둡고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잔뜩 찌프리고
있거나 어두운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자기의 생각과 마음가짐에 따라서 얼굴 표정이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어떠한 마음가짐과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까?
마땅히 밝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산상수훈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이 바로 복있고 행복한자라고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지 다시 한 번
깨닫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것입니다.
먼저 1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지금 '예수님 자신이" 말씀하시기 위하여 산에 올라가 앉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에 이 세상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고 권세있는 설교자
이십니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가장 권세있는 분이시고 가장 위대한 설교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은혜의 말씀을 직접 듣게 된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동기는 많은 무리들이 모였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예수님의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또는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에게로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의 처지가 어떠하든지 그들의 필요가 무엇이든지 간에 언제나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셨습니다.
우리가 아는대로 마태복음 5, 6, 7장은 예수님이 그들에게 주신 주옥같은 산상보훈의 말씀이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8, 9장에는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설교의 장소는 "산에 올라가"를 보면 산에서 하신 설교입니다.
그래서 성 어거스틴 이래로 마태복음 5, 6, 7장의 세 장을 가리켜서 Sermon on the Mount, 곧
'예수님의 산상설교'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설교하실 때 어떤 자세를 취하셨습니까?
"앉으시니" 입니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공식적인 가르침을 베풀 때 취하는 자세입니다.
산상설교의 직접적인 대상은 누구입니까?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
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입을 열어 가르쳐 가라사대."
예수님은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종종 이러한 표현을 쓰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와 같이 마찬가지 표현 방식입니다.
"입을 열어"라는 표현도 중요한 내용을 가르칠 때 사용하던 관용구입니다.
우리앞엔 위대한 설교자의 입에서 나오는 지상 최대의 설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예수님의 산상설교가 끝났을때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 나와있는 마태 7장 28-29절의
말씀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그들은 예수님의 설교에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치심에 완전히 압도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들에게도 같은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예수님은 산상설교의 첫머리에서 이른바 8복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8가지 복이라고 해서 각자가 누리는 복이 다르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팔복은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 다시말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누리는
복을 여덟 가지 다른 각도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은 8복 가운데서 처음 나오는 세 가지를 함께 생각해 보면서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3절 말씀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예수님은 말씀을 하실 때 미래형으로 말씀 하시지 않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들 인것 입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유한 자들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유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의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또 다른 한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바리새인은 자신의 의를 내세우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한 마디로 이 바리새인은 심령이 부요하고 자기 의로 가득 찬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필요로하지 않을뿐만 아니라 예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없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필요로하지도 않고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기 때문에 결국
예수님의 나라인 천국을 소유할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리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자기의 가슴을 치면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우리는 세리처럼 심령이 가난하며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고 사는 우리들이기에 예수님의 나라인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땅의 부귀, 영화, 권세가 없을지라도 부귀, 영화, 권세가 부럽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땅의 부귀, 영화, 권세를 가진 자들이 우리를 부러워할 만큼 우리 모두는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허락하신 그의 나라 영원한 천국이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일로 인해서 애통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너무도 행복합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우리가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참된 위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일로 애통하든지 하나님은 위로의 하나님이 되셔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해 주시며 또 그 환난 가운데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십니다.
그 옛날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남편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한나가 자식을 낳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첩을 들였습니다. 엘가나의 첩 브닌나에게
여러 명의 자식이 생겼습니다. 그러자 브닌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를 무시했습니다.
한나는 그것 때문에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성전에 올라가서 마음이
괴로워서 통곡하며 기도했습니다. "주여,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아보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옵소서. 그러면 제가 그 아들을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나님은 한나의 애통함을 보시고 위로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들 사무엘을 주셨습니다.
한나가 자신의 서원대로 자신의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하나님은 한나에게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허락해 주셨습니다.
마음의 아픔으로 인해서 애통하던 한나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게 된 것입니다.
그 옛날 히스기야 왕이 병들어 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성전 쪽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면서 기도했습니다.
" 하나님이시여, 주의 종이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잊지 마시옵소서."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이나 더 연장해 주셨으며 그가 사는 날 동안에
태평함이 있게 하셨습니다.
육신의 아픔으로 애통하던 히스기야 왕에게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넘쳤던 것입니다.
그 옛날 다윗 왕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는 큰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사실을 숨기기 위해서 우리아를 최전선에 내보내어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다윗 왕은 나단 선지자의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회개했습니다.
그는 영혼의 아픔 때문에 애통해하며 시편 6편 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탄식함으로 곤핍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자신의 아픈 영혼을 부여잡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다윗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엄청난 죄에도 불구하고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말씀하시면서 다윗 왕을
사랑하시고 그를 이스라엘의 성군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세우셨습니다.
영혼의 아픔으로 애통하던 다윗에게도 하나님의 위로하심은 넘쳐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한나처럼 마음이 아파서 애통할 때도 있습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육신이 아파서 애통할 때도 있으며 다윗 임금처럼 죄로인한 영혼의 아픔 때문에
애통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마태 11장 28절의 말씀으로 위로해 주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으며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곤고함을 돌아보시며 위로해주시고 모든 곤경을 돌이켜주실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 때문에 넘어지고 쓰러질 때도 있지만 최후의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너무나도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 당시에 '열심당' 에 소속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이 무력으로 자기들의
땅을 빼앗은 것처럼 그들도 무력으로라도 빼앗긴 땅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 정부에 대해서 반란을 꾀하며 끊임없는 투쟁을 일삼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힘으로 땅을 차지하려는 강한 자에게
땅을 주시지 않고 온유한 자 즉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땅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온유하고 따뜻한 태양입니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 최후의 승리를 안겨주십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의 종들과 롯의 종들이 서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에게 말했습니다. " 나와 너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는 모습을 보니 나의
마음이 몹시도 아프구나. 서로 다투지말고 따로따로 떨어져 살자.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그러니 네가 먼저 좋은 곳을 택하도록 하여라."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땅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롯의 삼촌이요,
그를 가나안 땅으로 데리고 온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모든 것을 다 양보했습니다.
자기 생각에 좋은 땅을 차지했다고 믿었던 롯은 전쟁에 휘말려 포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모든 재물을 다 잃었습니다. 거기다가 그의
아내는 소금기둥으로 변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땅을 차지하려했던 롯은 그 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심령으로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했던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롯이 떠난 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동서남북을 바라보아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네 후손은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땅의 티끌처럼 창대하리라."
온유한 심령으로 모든 것을 롯에게 양보했던 아브라함이 그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된 것입니다.
온유한 자가 승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폴레옹이 남긴 이 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칼과 대포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는 사랑으로 이 세계를 정복하였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너무나도 약해 보일는지 모릅니다.
누가 오른편 뺨을 치면 말없이 왼편뺨을 돌려대는 자들입니다. 누가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
까지 주는 자들입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까지 가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는 보장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세상에서는 땅을 차지하지 못하고 땅을 빼앗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 성을 보장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너무나도 감사하고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며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너무나도 잘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눈물을 흘리면서 애통할
수밖에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 자신의 힘과 의지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기에 그저 하나님
만 바라보면서 의지하는 자들입니다. 이러한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천국이 너희의 것이며 너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너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기에 너희가
복이 있는 자요 너희야말로 행복한 자들이니라."
그 옛날 하박국 선지자의 아름다운 신앙고백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기뻐하십시다.
예수님으로 인해서 기뻐하십시다. 하나님은 자녀된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감사하고 즐거운 마음 평안한 마음으로 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날마다 행복이 가득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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