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태 5장 6∼8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인생의 행복은 사람의 마음가짐에 달려있습니다.
왜냐하면 행복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육적으로는 다소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우리의 마음이 기쁘고 즐거우면 우리는
언제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옛날에 이런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마지막날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에게 많은 복을 주시면서 그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천사를 시켜서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주라고 명하셨습니다.
명령을 받은 천사들은 어떻게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주는게 좋을까 상의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천사들은 사람에게 행복을 갖다주기는 하되 좀 찾기 힘든 곳에 감추어 놓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한 천사가 사람의 손이 미치지 않는 깊은 바다 속에 행복을 감추어 놓으면 어떨까?"
하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천사가 고개를 흔들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야 사람은 재주가 많아서 그 정도는 쉽게 찾아내고야 말걸."
이번엔 또다른 천사가 "그러면 높은 산꼭대기에 행복을 올려놓으면 어떨까?" 그 의견에도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좋지 않아 사람은 모험심이 많아서 오히려 쉽게 찾아낼거야."
마침내 천사들은 이리 저리 궁리하던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람들은 자기의 머리와 재주만 믿고, 설치기를 좋아하니, 그들에게서 가장 가까운, 그들 자신의
마음 속에 행복을 묻어두자. 그러면 오히려 쉽게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천사는 행복을 사람의 마음 속에 묻어 두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체로 주변의 여건에 따라서 행복이 좌우되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환경을 더
낫게 개선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전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달려있을 뿐입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할 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온몸에 돌을 맞아 깨어지고 부서지고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런데도 그의 얼굴은 천사처럼 환하게 빛났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무릎을 꿇고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그리고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고통의 순간에도 그 모습이 어떻게 천사의 얼굴처럼 빛나며
평온할 수 있었겠습니까? 비록 육체는 고통스러웠다 하더라도 그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기쁨이 넘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들이 바로 복 있는 자요 행복한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인가를 다시 한 번 깨닫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오늘은 팔복 가운데 4, 5, 6번째 복을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만족케 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시편 23편 1∼2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한 목자 되셔서 우리를 푸른 풀밭으로 또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족함이 없는 삶 만족한 삶을 누리면서 살아갑니다.
그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그들이 주릴때 하나님은 하늘의 만나로 그들을 먹이셨습니다. 목말라할 때는 반석에서 생수가
솟아나게 하셔서 그들의 갈한 목을 축여주셨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주릴때 먹게 하시고 목마를
때 마시게 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를 하나님은 다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우리를 가리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라고 부르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저 육적인 것에만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우리들은 거듭난 생명을 얻은 자들
입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주님의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은 생명의 떡이 되셨고 영원한 생명수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안에 있는 우리들은 결코 주리지도 않고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바리새인들이 내세우기 좋아했던 인간적인 자기 의를 가리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영어로 말하면 the righteousness 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의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고 말씀하실 때의 바로 그 의입니다.
종교개혁가인, 마틴 루터는 "마귀는 우리에게 능동적인 의를 요구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수동적인 의를 요구하신다." 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인간적인 의 자기의 의 능동적인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이 아닙니다.
인간의 의는 아무리 쌓고 또 쌓아도 언제나 부족함이 있게 마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의만이 우리를 만족케 합니다. 하나님의 의는 결코 부족함이 없습니다.
우리 영혼의 잔을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한 자들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는 너무나도 허물이 많고 부족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셔서 너무나 감사하고 또한 행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느날 한 문둥병자가 예수님에게 나아왔습니다. 그는 예수님 앞에 엎드려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간구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민망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그의 몸에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문둥병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의 몸을 깨끗하게 고쳐주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영적인 소경이 되어 흑암 속에서 헤매던 우리를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셨으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우리의 모든죄를 깨끗하게 사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어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죄는 미워하지만 형제를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길 줄을 몰랐습니다. 그저 자기들의
의에 가득 차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더니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마저도 비판하고 정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섰을때 하나님의 긍휼하심 대신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을수밖에
없는 불행한 자들이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겨주신 것처럼 비록 사랑이 메마른 세상이지만
긍휼의 빛을 발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의 첫걸음은 불쌍히 여기는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것입니다. 형제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만 있으면 사랑이 그에게 가기
마련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긍휼히 여기며 도와주며 아껴주며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형제 자매된
자들이기 때문에 형제가 잘못을 범하면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8절 말씀입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해바라기는 늘 태양을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안에 있는 우리들은 예수님의 의를 바라보며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만왕의 왕되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영원토록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날마다 매순간
마다 뵈오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럽고 행복한 일입니까?
물론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핀 백합화를 보시면서도 그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손길을 보셨습니다.
우리도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또는 뇌성소리를 들을 때에 하나님의 권능을 생각합니다.
숲속의 새소리와 시냇물이 흐르는 소리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곤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 마음이
깨끗하게 씻음을 받아 청결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에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이 구름 타시고 영광 가운데 다시 오시는 그 날 우리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할 것입니다.
그 옛날 바리새인들도 청결에 무척이나 힘썼던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지런히 손을
씻지 않으면 아예 먹지를 않았습니다. 음식 먹을 때 사용하는 그릇들 잔과 주발과 놋그릇까지도
깨끗하게 씻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바로 눈앞에 만왕의 왕이시며 또 하나님의 아들
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건만 그들은 전연 알아보지를 못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이 겉만 깨끗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시고 영광가운데 오시는 그 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하게
씻음을 받은 우리들은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 라고 말하면서 기쁨과 감격 속에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세 무궁토록 기쁨으로 새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너무나도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사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며 살아 갑니다
날마다 주님을 만나고 볼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청결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복이 넘치는 삶을 살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이 행복이 나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의 행복이요 성도들의
행복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민족과 국가의 행복이 되실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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