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팔복·마태 5장

산상수훈(8)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받는 복(마태 5장 10절)

Andy1954 2023. 2. 13. 11:25

 

마태 5장 10절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로마서 8장 17절을 보면,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은 팔복의 마지막으로,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가, 받는 복을 통해,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들은, 하나님 아버지 나라의 모든 것을, 이어 받게 될 '상속자'들 입니다.

그래서 상속자인 우리들도, 천국에서, 주님이 누리시는 모든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 하나만 생각해도, 너무나도 가슴이 설레이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겐 영원한 행복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잠간동안, 주님의 ''를 위하여 받는,

고난과 핍박을, 오히려, 기쁘게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1. 성경이 말하는 '의'란 무엇을 말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구속해 주시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며, 또한 천국도 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고난과 핍박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의'는, 세상의 윤리나 도덕에서 말하고 있는, 

인간적이고, 능동적인 의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의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시는, 수동적인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가르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의'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11절에서 '나를 위하여'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의' 때문에, 핍박을 받는 모습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히브리서 11장 후반부에,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겪은 여러가지 고난과 핍박이, 

자세히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고 했습니다. 

또한, 핍박 때문에,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서, 유리하며, 지냈슴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대로, 스데반은, 돌에 맞아 죽었으며,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메달려 순교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수없이 옥에 갇히고, 매 맞고, 여러번 죽을 뻔 하였으며,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을 당하고,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 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으며, 

마지막에는,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이와같이 그들이 이 땅에서, 갖은 고난과 핍박을 받고, 처참한 모습으로, 이 땅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으로 예비하셨다,고 말씀으로 주고 계십니다.

그들이 겪은, 고초와 순교를 통해,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을 쓰고,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드리고자 하는, 마지막 여덟째 복은, '내세'에 누릴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팔복은 '현세'에 누릴 복뿐만 아니라, '내세'에서 누릴 복까지를, 주시고 있습니다.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11-12절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상이 큼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떻게 "박해를 받는 것이 복이 될수 있으며, 핍박 받는 것을, 기뻐하고 즐거워 할수 있습니까? 

어찌보면, 억지 같이 들릴수도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박해 받는 것'은, 그 자체가 고통이요. 괴로움이지,

결코 '복'이 되거나, 즐거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어떤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역설적인 표현' 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의'을 위해 박해를 받을때, 주님으로부터 놀라운 '상급'이 있기 때문에, '복'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말하는 "의"는, 어떤 '의'를 말하고 있습니까?

11절을 보시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의'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말하는 "의"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혹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박해받고

욕먹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자"라고 현재형이 아닌, "박해를 받은 자"는 과거형을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지난 날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았던 경험을 가진 사람을 가르킵니다, 

과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혹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다가, 박해를 받은 사실이 있다면 

그로 말미암아, 천국 백성이 되고, 또 천국에서 상을 받게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면, 박해를받는다,는 것은?

히브리서 12장 2절을 보면,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그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핍박하는 자를, 미워할 필요도 없으며, 그들과 대항해서, 싸울 이유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 핍박 속에서도, 기뻐해야 하는것입니다. 

왜냐하면, 핍박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받는 '복'이 있고,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가운데는, 예수를 믿다가 어려움과 손해를 볼 것 같으면, 

주님을 부인하거나,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그리스도인'을 가장한 '종교인'에 불과할 뿐이지, 예수 그리스도를 바르게 믿는 

참된 '신앙인'이라,고 할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하나님의 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였으면, 예수님 때문에 주어지는, 

그 어떤 손해나 박해를, 두려워 하거나, 피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면서 오는, 여러가지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리어 당당하게 나갔슴을 알수 있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붙잡혀 갔으며, 거기서 채찍으로 매를 맞으며, 능욕을 당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공회에서, 대제사장을 비롯한, 공회원들이 여러가지로 협박과 위협도 하였습니다.

"다시는 예수를 말하지도 말고, 전하지도 말라. 만약 또 다시 예수를 전하면, 용서하지 않는다"고 

생명의 위협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로 돌아와서, 성도들과 함께 모여서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너무 힘듭니다. 저들을 심판하시고, 이 고통이 끝나게 하옵소서. 

박해가 두렵고, 지긋지긋 합니다" 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4장 29절 이하를 보면,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오히려 더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반응하신 것이, 31절에 나옵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이처럼 박해를 두려워 하지 않고, 기도할때, 성령 충만함을 은혜로 받았으며, 그리고 담대함으로

'복음'을 전할수 있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3.'의'를 위하여 박해 받은 자가 받는 복

우리 가운데 혹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거나 박해를 받으신 적이 있으십습니까?

왜, 내가 박해 받을 때에, 예수님은 가만히 계시는가,라고 원망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전도하다가 욕먹고, 박해를 당해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이 '복' 이라고, 성경이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12절을 보면, 하늘에서 너희의 상급이 큼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은, 세상의 말과 언어로는 다 표현할 수도 없고, 우리의 머리로도 상상할 수 없는,

아주 크고도, 영화로운 상일 것입니다.

 

이어서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구약시대에는 주로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많은 핍박과 고난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신약시대에는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들이 '의'로 말미암은, 핍박을 받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국에서 '선지자의 반열'에 서서 받는 큰 상을, 그대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복된 일 입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7절에서,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로 말미암아 받은 '고난의 흔적'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사도 바울과 같이 '예수의 흔적'을 갖기를 원한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부하신 것, 

'예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전하며, 가르치기를 그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4.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을 벗는 날, 영화로운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될 

'천국'을 마음에 품고 살아 갑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은, 땅엣 것만 바라보고 살아 갑니다.

우리는 이 세상 삶이,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우리들은 위엣 것, 영원한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 갑니다.

비록 이 땅에서 잠시 잠깐, 고난과 핍박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어떤 핍박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도리어 소망가운데 기뻐하며, 즐거워하고, 행복을 느끼며 살아 갈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통해서 주신, 여덞가지 '복'을 다 받았습니다. 

주님이 주신 이 복은, 세상의 그 어떤 무엇과도 견줄수 없는, 귀하고 복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복'을 은혜로 받은 우리들은, 이 땅의 누구보다도 행복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시간 우리들도 '스바냐' 3장 말씀을 묵상하며,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주님께 감사하며, 

영광을 돌시기를 원합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지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지어다. 예루살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 지어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