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바로(Pharaoh)에게 많은 재앙을 내리시고 나서야, 이스라엘 자손들은 애굽 땅을 떠날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넌후 3개월이 지나서야, 시내산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은혜롭게도 주님의 종 모세(Moses)를 통하여, 하나님의 귀한 '십계명'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애굽을 떠나 시내산에 이르기 까지, 하나님께서 행한 많은 표적과 기사를, 체험하고 목도한
이스라엘 백성들 이었지만, 모세가 시내산에서 사십 일을 금식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가지고 내려 왔을 때,
황당하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그것이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부패하고 타락한 모습에, 모세가 크게 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증거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그들이 숭배하던 금 송아지를 깨뜨리고 불타게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다시 시내산에 올라가, 또 다시 40일을 금식하며 머물다, 두 증거판을 들고 다시 내려 올때,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radiant)가 났다고 오늘 읽은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 입니다.
하루 이틀만 금식해도, 얼굴의 생기가 사라지고 힘들고 슬픈 모습을 띠게 되는데, 40일씩 연속으로 금식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얼굴에서 광채가 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나, 생리학적으로나 그 어떤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얼굴에 광채가 난 사람이 두 분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모세에게서,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에게서 광채가 났습니다.
그런데 얼굴에 광채가 난, 두 사람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다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자,라는 것을 성경은 증거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9절에서 우리 예수님께서, '나는 마음이 온유(gentle)하고, 겸손(humble)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고 계시며, 또 민수기 12장 3절에서는,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humble)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 하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온유하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다른 사람의 유익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전서 10장 24절에서,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는 온유하고 겸손하면서, 또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있을 때에 나타나고 보여질 수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3장 18절에서, 모세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보고 살자가 없으므로, 얼굴은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시면서 모세가 한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그의 얼굴의 광채를 통해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모세는 얼굴에서만 그 광채가 났으나, 하나님의 영광이 완전하게 나타나신 분이 있는데,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누가복음 9장 28절이하에 보면 우리 주님은 얼굴뿐만 아니라, 몸전체는 물론이고, 입고 있는 옷과 모든 행사에까지 광채
가 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청소년 시절에 읽은 "나다나엘 호오돈"의 소설 『큰바위 얼굴』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주인공 어니스트가 살고 있는 마을 산에는, 인자하고 부드러운 이 성자(聖者) 형상의 바위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큰바위 얼굴이라 부르며 추앙하였습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먼 훗날, 이 큰바위 얼굴의 성자가, 이 마을에서 난다는 전설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위얼굴을 바라보며 존경하며 살아온 '어니스트'가 세월이 흘러 어느덧 백발의 노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백발의 노인이된 어니스트가 많은 군중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많은 군중들은 크게 감동하며, 그를 존경하고 우러러 보게 됩니다,
어느새 어니스트가 전설로 전해오던 곧 지혜롭고 온화한 성품의 큰바위 얼굴이 되었다는 이야기 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누구와 오래 교제하면서 정말 사랑하고 존경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저절로 그 사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긴밀하고도 밀접한 관계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영광이 얼굴에 나타난 것입니다.
특별히 출애굽기 32장 32절을 보면 모세는 이스라엘의 죄를 사해달라고 기도하면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주옵소서,라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고 간절히 기도
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로마서 9장 3절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 지라도
원하는바라,고 기도했습니다. 스데반도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겸손한 마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얼굴에 광채가 나는 영광을,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위한 기도를, 예수님 말씀대로 하면, '중보기도(intercessory prayer)'라고 하며 우리 표현대로 하면
'도고'가 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5절을 보면,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고 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 예수님만이 중보기도를 하시는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들은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을 가지고,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 기도에 응답도 아니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과 같이,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하여, 우리는 기도
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한 5분만 기도해도 할 말이 없다,고 말을 하고 있으나, 교회를 위하여,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또 우리의
이웃과 이 사회를 위하여 기도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아울러, 출애굽기 32장에서 보여진 금 송아지 사건 때에, 모세가 한 말과 행동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세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여호와 편에 있는 자는, 다 내게로 나아오라',고 말할 때에, 레위 자손들이
다 모세에게 나아옵니다,
그럴 때에 모세가 그들에게 칼을 주고 하나님을 배반한 사람들이면, 형제 친구 이웃을 불문하고 다 죽이라고 무서운
명령을 내립니다. 여러분, 모세가 얼마나 온유한 사람입니까?
자기를 저주한 미리암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온유한 모세였지만,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노하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겐, 이처럼 무서운
명령도 망설이거나 서슴치 않고 내렸던, 하나님 편에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시편 118편 6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 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아-멘)
그러나 요즘 이 땅의 대부분의 지도자들,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까지도 세상의 여론과 인기에 영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론의 향방에 따라 움직이고 행동하며,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어디에 51%가 있느냐에 촛점을 맞추고 있을뿐, 하나님을 경외하거나 하나님 편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경우를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여론과 인기에 영합하지 아니했습니다,
또 악인과 연합하거나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도 아니했습니다,
오직 하나님 편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고 행동했던 것을 알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이 어찌 사랑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모세의 얼굴에 광채가 난 것은,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때문이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이것은 모세가 행하고있는 사명들이 하나님의 명령을따르는 것이며,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과 계명에
대한 존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증거로, 광채가 나게 하셨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음에도,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은, 모세 자신을 포함한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만을 가지고 있었지, 율법의 완성자이신 그리스도와 성령의 임재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모세 얼굴의 광채는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의 광채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하고, 스스로 과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얼굴에서 광채가 나자, 두려워 떠는 백성들을 위해서 그의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비하시키는 온유한 모습인 것입니다.
이사야 6장 5절을 보게 되면,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이사야(Isaiah)' 선지자가, 그것을 자랑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자신을 부정하고 더럽다,고 고백하는 겸손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다메섹(Damascus)에서 주님의 영광의 광채를 본 바울은, 그 빛이 너무 강렬하여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었다,고
사도행전 9장 8절에서 말씀하고 있으며, 밧모섬(the island of Patmos)에서 해가 힘 있게 비치는 것과 같은 주님의
영광을 본 사도 요한은, 그의 발아래 엎드러져, 죽은 자와같이 되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누구도 가릴수 없으며, 또한 가리워 지지도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의 영광의 빛이며, 그리스도의 빛인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십니까?
요한복음 11장 40절에,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여주면 믿겠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믿으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시기를 원한다면, 먼저 믿으시기 바랍니다.
모세는 온유하고 겸손할 뿐 아니라, 항상 하나님 편에서 모든 일을 생각하고 결정했던,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였습니다. 여러분, 지도자(leader)란 무엇입니까?
높은 자리에서 호령하며, 다른 사람에게 명령하고, 대접 받는 자를 말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예수님 당시에도 종교 지도자들, 특별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행위를
보이고자, 좋은 옷을 입고, 회당의 높은 자리 앉아, 랍비와 지도자라 칭함 받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들에게는 하늘의 상급이 없다,고 우리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를 인간 찬양시대 혹은 속임수의 시대(Age of delusion)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들을 하고 있습니까? 자기를 높이고, 자신의 영달을 위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무슨 건수만 있으면, 그것을 침소봉대하여 자신을 고귀하게 포장하여 높이고 자랑합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을 깍아 내리는 일에는 온갖 권모술수를 다 동원하여 속이면서까지 망가뜨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잠시 잠깐 남의 눈을 가리우며, 지도자의 모습을 흉내낼 수 있을런지는 몰라도, 결코 진정한 지도자가 될수
없는 소인배에 불과 합니다. 오늘날 지도자의 바른 개념은 어떻습니까?
지도자,란 다른 사람에게 바른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되어, 어둡고 죄악된 세상을 진리의 빛으로 밝히며, 그리스도의
향기로 섬기며, 사랑함으로,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들이 다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았으나, 은혜와 진리는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세와 같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하신 주님의 몸처럼 썩지 않고, 영광스러운 몸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기에
합당한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누리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3절에, 장차 부활할 우리 몸은,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할 것을 입고,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는다,
고 우리 몸의 영광의 부활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약속인, 영광의 부활,은 모세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와는 비교할수 없는
큰 영광으로,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와 생명되시며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날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즐거워
하는 거룩한 삶을 사는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복음은 하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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