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복음은 하나

로마 카톨릭의 배교와 이단사상(1)

Andy1954 2023. 9. 20. 07:57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Martyn Lioyd Jones)의 로마 가톨릭 사상 평가

우리는 왜, 로마 가톨릭을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성경이 그녀에 대해,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칫 종교적 편견이나, 개신교의 시기심에서, 나온 비평으로 오해받기 쉽지만, 그렇다고 침묵을 지키는 것은,

경고의 나팔을 불지 않는 파수꾼과도 같이, 무책임하고도 비겁한 행위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가톨릭 체제와 사상을 반대하지만, 가톨릭 교도들 즉 천주교인들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사랑하기에 사랑안에서 진리를 말하고자 하며, 진리의 말씀의 은혜와 약속에 함께 참여하기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권면하고, 호소하며 경고해 주고자 할 따름입니다.

 

이일을 위해 마틴 로이드 존스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사료되는데, 그는 일반 크리스천들 사이에 매우 객관적

이고도, 신중한 지식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에대한 그의 접근은 언제나 신중했고 소극적 비판을 무척이나 싫어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습니다.

본문 중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로마 가톨릭과 싸울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기독교의 진리와 위대한 개혁 교리를 적극적으로,

선포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외에 이문제를 능히 다룰수 있는 것은 전무후무하기 때문입니다.

내게 있어 소극적 프로테스탄트는, 별 의미가 없다고 여겨집니다.

"나아가 로이드 존스는 로마 가톨릭의 확산이 자기의 믿는바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무지와 무기력함에 전적으로 기인한다고 주장합니다. 

그의 이같은 태도는 그의 설교 중에서 단 한번을 제외하고는 로마 카톨릭주의에 대해 다뤄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서도 역력히 드러납니다.

 

본고는 바로, 그 단 한 번의 예외에 해당됩니다. 

그것도 '마귀의 속임수'를 다루는 성경본문 말씀으로 인해, 부득불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그의 해명

입니다. 이렇듯 본문이 다루는, 로마 가톨릭 사상 평가는 로이드 존스가 할수 있는 단 한번의 그리고 최소한의

비평이라 할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격해 보인다면 그것은 로이드 존스의 접근이 과격해서가 아니라 

로마 카톨릭의 가려진 실체와 실상이 그만큼 치명적이라는, 반증일 것입니다. 

비록 작은 분량이긴 하지만 모든 개신교도들뿐 아니라 가톨릭 교도들이 꼭 한번은 읽어야 할, 필독서라고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이시대 최고의 지성인이 객관적으로 제시한 로마 카톨릭 사상평가, 그것은 종교적 편견과 비평을 뛰어넘어서

누구나 한번쯤 집고 넘어가야 할 바로 우리 모두의 당면과제이며 이시대의 영적분별을 위한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I·로·마·카·톨·릭·체·제

자,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하나의 체제'란 관점에서 살펴볼 때; 본인으로서는 로마 카톨릭주의로 알려진, 이 체제야말로, 

'마귀의 가장 위대한 걸작품'이라고, 단언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 체제는, 크리스천의 믿음과 성경의 가르침에서, 심하게 이탈(離脫)된 종교단체이므로, 본인은 주저없이,

16세기의 종교개혁자들과 더불어, 이 체제를 '배교집단'(背敎集團)이라 단언하는 바입니다.

이제 이 점에 대해, 분명히 하도록 합시다. 

우리는 배교를, 기독교의 진리로부터, 전적으로 이탈한, 기독교라고 정의합니다. 

만일에 카톨릭을, 배교 집단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진실 그 자체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 문제를, 이렇게 설명하고자 합니다.

이 경우엔 진리에 대한 '부인'(否認)의 문제라기 보다는, 차라리 진리에 대한 '첨가'(添加)로 말미암아,

마침내 진리로부터, 이탈하게 된 경우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첨가야 말로, 온갖 교활함이 들어오는 곳이요, 마귀의 속임수가 들어오는 곳이란 말입니다.

무심코 바라보면 세상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만큼 정통(正統)인 교회가 없다는 생각을 충분히 할수 있습니다.  

가령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人格)과같은 교리적 측면을 살펴 볼때는 로마 카톨릭의 정통성에 문제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나사렛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드님이시라고 믿으며; 

예수님의 처녀탄생을 믿으며; 예수님의 성육신(聖肉身)을 믿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믿으며; 

십자가 위에서의 그분의 대속(代贖) 사역과 그분의 육체적 부활(復活)을 믿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昇天)하셔서, 하늘나라에 앉으신, 사실도 믿고 있습니다. 

주님의 인격적 측면에대해 로마 가톨릭은 절대적으로 정통이며, 애석하게도 로마 카톨릭이 종종 대부분의

개신교보다 훨씬 더 정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로마 가톨릭의 입장을 그토록 소름 끼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사역에대한 측면을 가지고 가톨릭을 보더라도 가톨릭의 정통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은혜(恩惠)의 원리'에 대해 고려해 보면, 그것이 그들의 중심 교리(敎理) 중의 하나임을 알수 있습니다. 

성경의 영감(靈感)과 권위(權威)에 대해서도, 그들은 같은 입장을 고수하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거니와, 대부분의 개신교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가톨릭을 단지 일반적인 접근방식으로 바라본다면, 가톨릭은 세계에서 가장 정통적 교회

라고 결론지을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점에서 교활함이 들어오고 어려운 문제들이 야기됩니다. 

가톨릭은 이모든 것에다 '저주받을 더하기'로써, 전적으로 비(非) 성경적인 것들과 사실상 성경을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들을 '첨가'(添加)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카톨릭이 가르치는 바를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결국에 가서는 우리가 거짓말을 믿는 위치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카톨릭의 교리는 일종의 모조품(模造品)이며 성경에 명시된 대로 가톨릭은

다름 아닌 '매춘부'(賣春婦, 음녀) 그 자체입니다.

과연 이문제가 지극히 교활한 것이지만, 다행히도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주제도 '교활함' 즉, 마귀의 속임수에

대한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교활함이 어떤 것인지 정말로 알고 싶다면 반드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문서를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은 모든 사람에게 어떠한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가톨릭 체제는 무척 방대하고 그녀의 교활함은 실로 커서 거의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요새와도 같습니다. 

무작위로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틀림없이 여러분이 여러 번 접한 경우일 것입니다.


여러분이 들어온 바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 교회는 이혼을 용납하지 않으며 가톨릭교인 중 누가 이혼했을

경우, 그는 교회로부터 제명(除名)당하게 될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신문 지상에서 돌연 일부 독실한

가톨릭 신도들의 이혼 소식을 접하고는,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 라고 반문하게 됩니다. 

글쎄요, 그것을 설명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결코 진실된 결혼이 아니었다"고 ...그들은 어떤 것이든지 해명해낼 수 있고, 어려울 게 하나 없습니다.

 

그들의 견강부회(牽强附會)의 체계가 그러하며, 고도의 논법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은 동시에 모든 방향에서의

대응이 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혹은 달리 얘기해서, 로마 카톨릭이 실상으로 얼마나 많은 얼굴들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것입니다. 이 나라(영국) 안의 카톨릭을 살펴보십시오. 

또 아일랜드와 남아일랜드의 로마 카톨릭을 살펴보십시오. 여러분이 미합중국에서의 카톨릭을 살펴본 다음, 

남아메리카에 있는 몇몇 라틴 국가들의 가톨릭을 살펴보면, 그들이 동일한 체제라고 믿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및 기타 유사한 국가들의 카톨릭 교회를 살펴보고, 독일이나

그 주변 국가들의 카톨릭 교회와 대조해 보면,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결코 같은 카톨릭가톨릭 체제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데도, 사실은 같은 가톨릭 체제입니다. 

가톨릭은 얼마든지 그 색깔과 모습, 형태를 바꿀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어디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모든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 가톨릭입니다,


흡사 카멜레온과 같이, 여러분은 마귀가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변모(變貌)시킬 수 있는 것이 마귀의 특징

(特徵) 중의 하나라고 우리에게 알려 준, 사도 바울의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의 '위장술'(僞裝術)에는 끝도 없고, 한계도 없습니다.

이 나라에서는 가톨릭이 고도의 지성적인 형태로 나타나서, 카톨릭 교도들에게 성경을 읽도록 권장합니다만;

다른 나라에서는 그렇게 하는것을 금하며,  비 지성적일 뿐만 아니라, 고의적으로 미신을 조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이 나라에서는 관용적이고, 기꺼이 들어주며, 토론도 하고 양보도 하며, 매우 친근한 모습을 취합니다만;

그러나 다른 후진 국가에서는 아주 완고하며, 이교에 대해 사악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핍박을 가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같은 로마 가톨릭 교회요, 같은 카톨릭 체제이며, 동일한 카톨릭 교도들로서 존재합니다.

나는 이러한 증거들을 통해 카톨릭 교회가 마귀의 걸작품(傑作品) 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 한 거대한 조직과 체제가 있어 수 십세기 동안 간간이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바로 이일을 행하고 있으니

곧 온갖 교활함과 속임수 가운데서, 성경의 표현대로 "온갖 불의의 속임수로써", 마귀의 속임수를 그대로

드러내 왔습니다. 이 모두가 성경에 분명히 예언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인들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 둘째 장에서 이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이 내용이 이 예언에 대한 유일한 설명 구절은 아니지만; 그중의 하나라고는 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여러분은 이 체제가 '발흥(發興)한', 말하자면, 권력을 장악하게 된 사실을 확인하게 되겠지만,

그것은 이미 이 조직이 활동해 오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그것이 계시록 13장의 두번째 짐승으로 묘사되어 있고 계시록 17장의 일곱 언덕위에 앉아 있는

'거대한 음녀'의 그림으로 제시되어 있는것을 확인할수 있듯이, 바로 로마 가톨릭이 그러하며 언제나 그같이

행해 왔습니다. 이 모든 사실은 역사 속에서 그대로 재현되어 왔으니, 이런 식으로 이렇게 성취되어 왔습니다.

여기 은밀히 유입되어 들어와 한 때 기독교 전체를 실질적으로 장악했던 어떤 체제가 있습니다.

바로 로마 카톨릭이 천천히 교활하게 스며들어와 자신의 방식으로 변질시켰고 그결과 가톨릭의 영향력은

거의 보편적이 되어 버렸습니다.

 

 

II·로·마·카·톨·릭·의·중·대·한·오·류·들

로마 가톨릭이 행한 일은 어떤 것입니까? 여기에 대해 적절히 다루자면 여러 달이 걸릴 것입니다.

이 한 설교에서 필자가 규명하고자 하는 관심사의 전부는 본인의 주장이 진실임을 보이기 위한 몇몇 머리글

들을 제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필자는 본 내용을 세 가지 주요 표제 글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는 로마 가톨릭이 어떻게 우상숭배와 미신행위를 도입하는 죄를 범해 왔는지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숭배(偶像崇拜)만큼 신랄하게 정죄받는 행위도 없습니다.

우리는 '조각한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됩니다. 그럼에도 로마 가톨릭은 형상(形象)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신도들에게 형상들을 숭배하도록 가르치고 있으며 그들은 동상들과 조형물들과 초상화들을 숭배합니다. 

여러분이 거대한 천주교 성당에 가보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로마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에 가보십시오. 

거기에 사도(使徒) 베드로를 기념하는 동상(銅像)이 있는데, 그 동상의 발가락 부분을 보면, 그 부분이 많이

닳아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고요? 

로마 가톨릭의 그릇된 가르침에 희생된 수많은 가련한 희생자들이 그 발가락에 입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절하면서, 형상들과, 동상들과 유물들을 숭배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어떤 성인의 유물들과 뼈 조각들과, 사용했던 물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어떤  특별한 장소에 안치하여, 그것을 숭배하며 그 앞에 절을 합니다.

이 정도는 그들이 행하는 우상숭배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두 번째 오류는 카톨릭의 전 체제와 가르침이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를 차단하고 있다는 데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수많은 오류들 중 가장 끔찍한 오류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 카톨릭 교회 자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끼어 들어오고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카톨릭 교회 자체가 구원을 얻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교회 밖에서는 "extra ecclesiam" 결코 구원이 있을수 없다 "nulla salus" 즉 카톨릭 교회가 절대적인 필수요건

이란 말입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혼 사이에 카톨릭 교회를 끼워 넣고 있습니다. 

카톨릭은 그녀 자신이 그리스도의 대리자(代理者)가 됨을 사칭(詐稱)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신약 성경의 어디에서도 그같은 근거를 찾아볼 수 없으되, 단지 로마 가톨릭 주의 안에서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그녀 자신만이 진리가 무엇인지 안다고 주장합니다.

그녀가 진리를 묘사하고, 그녀만이 진리에 대해 정의 내리며 진리를 해석할 수 있다고 합니다.

프로테스탄티즘에서는 당연히 그와 정 반대로, '전(全) 신자의 보편적 성직자(聖職者) 체제'를 가르치며, 

각 사람이 스스로 성경을 읽을 권리가 있고 성령님의 조명(照明) 하에서 그것을 해석할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지만 로마 가톨릭은 그 사실을 절대적으로 철저히 부정합니다.

 

오직 로마 가톨릭만이, 성경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무엇을 믿어야 할지를 우리에게 말해 줄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녀가 스스로 '지속적인 계시(啓示)'를 받아왔노라 고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 크리스천들이 믿는 바와는 달리, 계시가 신약성경과 함께 끝났다고 믿지 않습니다. 

아직도 계시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의 진리에다 첨가해야 옳다고 서슴없이 말합니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반면, 가톨릭이 덧붙인 가톨릭의 전통(전승, 傳承)도 성경과 동일

하게 권위가 있고, 구속력(拘束力)을 지닌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으로부터 이탈하게 만드는 가톨릭적 방식이라 할수 있는데 이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고 

성경에서 이탈하게 만드는 것을 가톨릭의 전통(전승)에다 첨가시킨 다음, 거기에 근거(根據)하여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활함이 기어들어오는 곳이 이 부분입니다.

 

마침내 종착역에 도달하게 되면  가톨릭은 우리에게 전체주의적(全體主義的) 충성을 강요합니다.

그녀는 우리가 믿는 것, 행하는 것까지 지배하려 듭니다. 

그녀는 스스로 우리의 영혼과 구원(救援)을 책임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일러준 대로, 가르쳐 준 대로 절대적으로 철저히 굴복(屈伏)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로마 가톨릭은 전체주의적 체제를 이루고 있습니다. 공산주의가 인권을 유린(蹂躪)하는 것이나, 

히틀러가 그의 잔혹한 체제 안에서 했던 행위만큼이나,

가톨릭이 신도들의 혼을 절대적으로 얽어매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것이 전체주의적 체제입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절대 권위(絶對權威)를 행사하며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문제에 대해 드러난 두번째 증거로서는 당연한 논리적 귀결이기도 하지만 로마 교황(敎皇)과 교황에 대한

온갖 가르침들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대리자(代理者)'로 일컬어집니다.

사도 베드로의 영적인 직계 후손으로서 사도적 계승(使徒的 繼承)을 통해 사도 베드로의 모든 권위를 이어

받았다고 말합니다.  나 자신 베드로 수위권(首位權)에 의문을 제기함으로 곁길로 빠지고 싶진 않지만, 그것이

그들의 주장 그대로이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로마교황을 '거룩한 아버지'(성부, 聖父) 곧 그리스도의 대리자

라고 부릅니다. 비록 성경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땅 위의 어떤 사람도 '아버지'(Father)라 부르지 마라.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아버님뿐이다."라고 말씀하는데도 말입니다. 

그들은 추기경 회의에서 '권좌(權座)로부터' 선언한다고 하면서 교황이 "절대 무오(絶對無誤)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1870년에 교황의 절대무오성 교리를 규정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것을 믿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렇게 규정됨으로써, 그가 선언하는 것들은 절대무 오하다고 주장할 수 있게 되었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처럼 절대무 오하고, 그리스도 자신처럼 절대무 오한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대리자요 대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즉 여러분이 알다시피, 교회의 권력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말씀하듯이, "하나님처럼"

말하는 이 한 사람의 권위 아래로 모아지게 됩니다.

그는 사람들의 숭배를 받고 있고; 그들은 그 앞에서 절하며,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어느 누구

에게도 주어질 수 없는 경의(敬意)를 그에게 표시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드러난 증거는 사제직(司祭 職)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의 사제들은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그들은 모든 신자들의 보편적 성직체계를 믿지 않습니다.

성직자(사제)가 될 수 있는 자격은 오직 가톨릭 교회에서 훈련받고, 교회의 성직 수임(聖職受任)을 받아,

'사도적 계승'에서 나오는 권위를 부여받은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은 우리 모두가 성직자들이라고 알려 줍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세대요 왕가의 성직자 체계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직자들의 왕국'이란 말입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전혀 "아니올시다"입니다. "당신들은 단지 평신도일뿐, 결코 성직자가 아니며, 

오직 가톨릭에서 수임을 받은 사람만이 성직자(사제)가 될 수 있다."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제들에게 기적을 행하는 것과 같은 독특한 권능을 부여해 줍니다.

바로 여기에서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들은 사제가 하나님의 은혜가 물에 임하도록  

세례(洗禮)에서 사용되는 물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그들은 주님의 만찬(晩餐)에서 빵과 포도주와 연관된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들의 그 같은 능력을 '화체'(化體)라고 부릅니다.

빵은 더이상 그냥 빵이 아니며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한다고 그들이 말하는데 겉모습과 색깔은 잔상(殘像)

으로 남지만 내용물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화체(化體)된다고 하며 이러한 기적은 그러한 기적을 일으킬

권능을 소유한 사제에 의해서라야 수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같은 주장은 당연히 성례전(聖禮典, 성사)에 관한 교리 전체로 이어집니다.

가톨릭엔 일곱 성사(성례전)가 있지만, 본인은 이 중 특히 세례성사(洗禮聖事)와 성체성사(聖體聖事) 대해

관심이 있으며, 그들은 이 두 성사에 기적이 역사한다고 서슴없이 가르칩니다.

그들의 이론은 이러하니, 즉 사제의 역할에 의하여 물과, 빵, 포도주에서 기적이 역사하게 되며, 그 결과

이것들에 특별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은혜(恩惠)가 부여되는데 그같은 기적적인 역사는 거의 자동적(自動的)

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같은 현상을 그들은 "ex opere operato"를 이룬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더이상 그냥 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부여된 물이므로 그물을 어린아이 위에 부으면 

어린아이 안에서 기적이 역사(役事)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혹은 성찬식에서 여러분이 빵을 취하게 되면 - 거기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포도주는 마시지 못하게

하지만 - 여러분은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자신의 몸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이것은 마귀의 교활한 속임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첨가'된 것으로서, 거기에 대해 신약 성경에 단 한 단어의 언급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사제에 대한 언급을 마치기 전에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곧 로마 가톨릭의 사제는 우리가 그 앞에 나아가 우리 죄들을 고백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 사제는 면죄(免罪)를 선언하고, 우리에게 죄 사함을 베풀 수 있는 권세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특별한 능력을 할당받은 사제직(司祭職)에 속한 사람들 외에는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들에게 가서 죄를 고백하도록 교육을 받습니다.

성경에는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지만 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죄(허물)를 하나님께 고백해야 하고, 거듭난 크리스천들의 교회 안에서 서로에게 고백해야

한다고 가르치지만, '사제들'에게 고백하라는 말씀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또 하나의 드러난 증거가 있습니다. 본인은 가톨릭 체제가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교묘히 끼어 들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크리스천으로서, 죄를 고백하기 위해 주님께 나아가지만, 카톨릭 교도들은 사제들에게 갑니다.

 

네 번째의 증거로 들어가겠습니다. 

이 부분은 우리를 가장 경악스럽게 하는 터무니없는 궤변(詭辯) 중의 하나입니다. 

로마 가톨릭 주의의 마리아 숭배가 놀라울 정도로 급격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톨릭에서 마리아는 '하늘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며, 그녀는 우리가 일차적으로 찾아가야 할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많은 성당들 가운데서 성모(聖母) 마리아 상(像)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에 의해 가려져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여기에 대해 그들은 이렇게 답변합니다. 

 "인간적인 모습을 지닌 성모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훨씬 사랑스럽고 부드럽게 다가오며;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하고 강력하며 권위 있으신 반면; 너무 엄격하십니다" 

이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며, 마리아 숭배에 대한 설명의 전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너무도 엄격하기에 우리는 그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성모 마리아가 거기에 함께 계시는데 그녀는 사랑이 넘치시며; 더욱이 그녀는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 영향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대신해서 중보(仲保) 해 주시도록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는 바로 우리 영혼의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드님과 우리 사이에 위치하고 계십니다. 

로마 가톨릭은 점증적으로 마리아의 권능에 뭔가를 '첨가'해 왔습니다.


카톨릭 교회는 1854년에 마리아의 '무염시태설'(無染始胎說)을 교리로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마리아의 무염시태설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태어나셨듯이 성모 마리아 또한 그렇게 태어나셨다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마리아의 몽소 승천'(蒙召昇天)의 교리를 발표했는데 그의미는 마리아가 여타의 일반인들

과는 달리 결코 죽지 않았고 묻히지도 않았으며, 그녀의 아들처럼 문자 그대로 하늘로 승천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은 우리가 알다시피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를 세워주며 그녀를 두드러지게 부각함으로 그리스도

자신은 아예 시야에서 가려지게 만들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 숭배에 뒤이어 '성인'(聖人)들 숭배가 추가됩니다.

로마 가톨릭은 성인들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습니까? 

자, 그들의 가르침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현세에서도 완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믿으며, 일부의 성인들이

현세에서 그렇게 완전한 삶을 살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산 결과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양의 '공덕'(功德)을 획득하고 쌓아 올리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그들은 공덕을 과다히 보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결과 우리가 공덕이 아무리 턱없이 모자라고 부족하다 할지라도, 성인들에게 가서 기도하여

간청하면 그들의 과다량의 상당 부분이 우리에게 주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바로 이것을 '적공'(積功, 공을 쌓는 일)이라 칭하는데, 곧 성인들이 우리를 위해 중보 할 수 있고,

우리가 부족하거나 결핍되어 있음이 발견되면 그부분을 보충하기 위해 공덕의 잉여분을 우리에게 전가

해 줄수 있다고 합니다.

그들의 말대로라면 여러분은 성인들을 숭배하고, 성인들에게 기도하며, 그들을 의지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만으로는 충분치가 않고, 여분(餘分)으로 상당량의 공덕이 추가로 보충(補充)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상으로 가톨릭의 전반적 체계 및 제도가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와 믿는 자 사이에 

교묘히 끼어 들어오는지에 대해 간단히 다섯 가지 요점만 정리해 보았습니다.


명심해야 할것은 예수 그리스도께 완전한 신성을 부여하고 성육신 동정녀탄생 및 정통교리들에 대해 명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같은 일들이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귀의 온갖 속임수가 들어오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한편으로는 로마 가톨릭이 뭐든지 옳은 것만을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문제는 그다음에 '첨가'(添加)

시키는 이 모든 것들이 너무도 그릇된 나머지, 도대체 옳은 것 중에서 남아있는 것이 무엇인지 의아하게 만들

정도입니다.

계속해서 세번째 오류는 로마가톨릭이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심을 강탈할 뿐만아니라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고 우리에게 주시는 위대한 구원의 영광과 완전성과 충분성(充分性)을 훼손시키고 있는것입니다. 

칭의(稱義)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문제와 관련된 그들의 가르침에 대해, 첫 번째 예를 들어봅시다. 

루터가 말했듯이 이것은, "교회가 일어설 것인지 넘어질 것인지의 테스트"요 --- 

프로테스탄티즘을 존재하게 만든 동인(動因)으로서 프로테스탄티즘의 영광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제 의롭다 함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우리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요? 

나는 이따금씩 우리 곧 프로테스탄트들이 과연 우리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의아해합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의롭다 함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할때 로마 가톨릭 주의가 성장해 간다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못됩니다. 프로테스탄트들이 단지 선한삶을 사는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동안 가톨릭

주의는 성공(成功)을 보장받게 되어 있습니다. 

로마 가톨릭 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는 사실이 그래서 놀랄만한 일이 아니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