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그러나, 하나님께서는(에베소서 2장 1-10절) (But because of his great love for us, )

Andy1954 2023. 7. 10. 08:08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가운데, 그러나 하나님은, 이란 말을 찾아 볼수 없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을 보게되면 2장 4절 초두에, but 이란 단어로 시작하고 있으며, 신약성경의 원본이라 할수 있는

헬라어 성경에도 4절 초두에 '포데쎄오스'라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접속사 인데, 우리 한국어 성경

에는 누락이 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망이 없던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행하였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단어인

것입니다. 오늘 본문 1-3절을 자세히 살펴 보시면, 과거에 내가 어떠한 사람이였는지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번쯤  과거의 나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과거의 의미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살고 있었던 시절

의 삶을 의미합니다. 과거의 나는 첫째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 였습니다.

둘째로, 세상의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자를 따라 살았던 불순종의 아들,이었고,

셋째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았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우리들의 과거가 이처럼 가증하고, 천하고, 소망이 없던, 우리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구원해 주신것 입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사색하고 연구하면서, 이런 저런 많은 말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가 믿는 성경이 가르치고 계시하는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를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1) 창조주 하나님 이십니다. 

목적과 계획을 가지시고 우주 만물과 인간을 창조 하신, 모든 생명의 조물주이시며 근원이 되십니다.

우리가 잘 아는 프랑스의 수학자며 철학자인 파스칼(Pascal)이라는 사람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과학자의 하나님도 아니시며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철학자들이 깊이 생각하고 묵상해서 만들어낸

하나님이 아니며 과학자들이 실험하고 연구해서 찾아 낸 하나님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2)자존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출애굽기 3장 14절에 하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고 모세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권능과 능력으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타율적인 존재입니다, 

그래서 무언가에 위해 만들어지고 또 이끌리어 움직이며 살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을 보면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데,

이 말씀이 바로 자존하시는 하나님께서 전 우주와 인류를 주관하시는 절대 주권자이심을 나타내는 말씀인 것입니다.

3)인격적인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깊이 생각하고 연구해서 찾아지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인격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 생활속에서 만날수 있고, 체험되는 하나님 이십니다.

4)다스리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들을 다스리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이 분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역사도 개인의 삶도 되어지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국가의 흥망성쇠도, 인간의 생사화복도 하나님

의 손끝에 다 달려있는 것입니다.

5)거룩하신 하나님 이십니다.

'거룩'이란, 구별되다, 분리하다의 뜻을 가진 말로써,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가 없고 깨끗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인간에게 거룩한 생활을

요구하십니다(레11:45.19:2, 벧전1:16, 살전4:3) 

그래서 구원 계획을 의와 불의로 나누시고, 죄를 벌하시고 의를 세우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이처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된 우리는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멀리 떠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찾고 계시며, 찾아오셔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절망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사실 우리는 전혀 희망이 없던(hopeless) 자들 이었습니다. 왜, 희망없는 자들이었습니까?

1)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 였기 때문입니다. 

죽은자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모든 노력도 끝난 상태입니다. 구원의 여망이 없는 것입니다. 

2)죄의 사슬에 꽁꽁 묶여 있기 때문입니다. 죄 아래서 영적으로 죽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반응을 보일수 없습니다.

반면에 죄에 대해서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3)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심판 아래 있게 됨으로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 가운데서 실종되었던 우리들을, 다시 찾으시고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5절 말씀을 보시게 되면, 허물로 죽은 우리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을 볼수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어서 무덤속에 있었습니다.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이나 되었습니다, 썩어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살려내셨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여러분, 죽은자가 들을수 있습니까? 죽은자가 움직일수 있습니까?

그런데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 ! 하고 부르시니, 놀랍게도 나사로가 살아서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죽은 나사로에 닿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살아 있는 주님의 말씀은 능력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생겼습니다. 말씀으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는데, 그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신 것입니다. 

6절을 보면,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하나님이 계신 하늘 보좌에는, 죄를 가지고는 갈수 없는, 놀라운 권능의 자리요

영광의 자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계속해서 죄 아래 놓여 있었다면, 감히 쳐다볼수도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죄의 사슬을 끊어 주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될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까?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어서 구원해 주셨을까요?

그 대답이 오늘 읽은 본문 4절에 나와 있습니다.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그 큰 사랑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어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것입니다.

사랑이 무엇입니까? 사랑이란,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귀하게 여기며, 그를 유익하게 하는일,이라고 성경은 가르

치고 있습니다. 그런고로 사랑은 자기 희생이 따르는 것입니다. 헬라어에는 4가지 사랑이 있는데, 

'휠리아(philia)' 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친구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스톨게(storge)'라는 말은 가족간의 사랑을

말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에로스(eros)' 는 남녀간의 이성적사랑을 말합니다. 

그러나 4절에 나와 있는 사랑은 '아카페(agape)' 의 사랑을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 말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사랑은, 에베소서 3장 19절에서는,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헤아릴수 없는 무궁

무진한 사랑이라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이 사랑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주시는 사랑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 사랑은 로마서 9장 13절에서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는 사랑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주권적 사랑이요 영원 무궁한 사랑이며

무조건적으로 베풀어 주시는,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고

로마서 8장 38-39절에서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구원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과 사랑으로

얻을수 있었으며,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the gift of God) 이라고 8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랑과 구원과 은혜를 받은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로마서 5장 8절을 보게되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참으로 놀랍고도 감격스런 말씀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말씀을 듣고도, 어떻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결론의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10절에,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사람으로 만드신 이유가 나와 있는데,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이

주신 새 생명을 가지고,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세상속에서 인간이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착하게 사는 것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항상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이, 바로 선한 일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디도서 2장 14절에서도,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

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적극적으로 성화된 삶 속에서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