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사회학자이며, 하바드 대학의 교수였던 존 K.갈브레이드는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를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확신이 없는 세상이라는 말입니다.
지금은 너무도 변화가 많은 급변의 시대이기 때문에 예측이 거의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우리에게 확신을 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함께 살펴보면서 불확실성의 시대에 확신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언제나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오래전에 창조만 하시고, 쉬고 계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시편 121편에 보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 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으며, 또한 히브리서 13장 8절에도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느니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오늘도 일하시며, 또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루십니까? “합력 하여 선을” 이루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하여 결국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을 위하여 그의 목적의 방향으로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합력하여”란 말입니다. 영어 성경에 보면 according to his purpose 라고 번역했습니다.
사실 어떤 때에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우리의 생각이나 계획과 다를 때가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참 오묘하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잠언서 16장9절 말씀대로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현재라는 틀속에 갇혀 살기 때문에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맥락 속에서만 모든 것을 보고 판단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보시기 때문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라는 말씀 입니다.
이 말씀의 깊은 뜻은 에베소서 1장4-5절 말씀대로,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영원한 영광의 후사로서 하나님의 자녀들
을 선택하신것을 말하며, 이는 성도들의 영광을 미리 작정하여 두셨다는 것입니다.
“미리 정하셨으니” 이 얼마나 오묘하신 하나님의 섭리요 뜻입니까? 이것을 우리는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 1장5절에도 하나님께서 예레미야가 이 땅에 태어나기 전에 이미 성별하였고, 선지자로 세웠노라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예레미야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이 무엇을 하든지, 결국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그의 뜻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것입니다.
30절에서는 네 가지 구원의 기본 틀이 나오는데, 우리는 바로 여기에서 구원의 문제를 짚어보아야 합니다.
(1) 첫째는 하나님의 예정(predestination)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은 이성적 피조물과 관계된 하나님의 작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예정은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리하시는 일로 이루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30절 초두에 “미리 정하신 그들을”이라고 했습니다.
즉 예정에서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제일 먼저 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예정입니다.
이 예정 교리는 장로교의 기본 교리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사실은 성경에 기록된 구원의 기본 틀입니다.
로마서 9:13절에 가장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기록된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주권을 표현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에서를 미워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곱도 똑같이 하나님의 뜻을 버렸지만, 그러나 그를 사랑하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다만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일부를 버리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1서 4장8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하나님의 소명(calling)입니다.
30절 초두에 “또한 부르시고”즉 소명, 부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명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속의 은혜를 받도록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초청하시는 일이라고 말할수 있습
니다. 로마서 12장4-8절 말씀과 고린도전서 12장을 보면, 모든 부르심은 성령의 은사로,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
어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소명에는 일반적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1장 28절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이 말씀은 일반적 부르심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다음으로 특별한 부르심은 사도로 선지자로 목회자로 부르는 부름을 말합니다.
직분을 주시는 것은 특별한 부르심입니다. 바라기는 우리가 일반적 부르심뿐만 아니라, 특별한 부르심까지 다
받아 하나님의 복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3) 세 번째는 하나님의 칭의(justification)입니다.
“또한 의롭다 하시고”믿음으로 우리들을 의롭다고 하신다고 했습니다.
죄인이 복음을 믿을 때에 하나님께서 죄인의 죄를 용서하여 의롭다고 선언하는 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칭의는 정죄와 반대되는 말이며, 도덕적 변화인 성화와도 다른 것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에 대해 반드시 형벌을 내리십니다.
살후 1장7-8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란을 받는 우리에게는 안식으로 갚아 주시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라고 증거하고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구원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의 형벌이 제거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음 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형벌이
제거된 것입니다. 의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가져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에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즉 의는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집니다.
돈이나 지식이나 직위를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우리는 '이신칭의' 이라고 부릅니다.
(4)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영광(glorification)입니다.
30절 마지막에“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천국에서 우리 성도들에게 영광을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그 영광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광이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영광이요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영광입니다.
성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에 보면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는 말이 반복해서 나오는 데 바로 본문의 말씀의
성취를 말씀한 것입니다.
바울이 말한 구원의 단계에서 보면, 이제 우리는 제삼 단계인 칭의의 단계에 와있습니다.
머지않아서 우리는 네 번째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의 단계에 이를 줄로 믿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예정 속에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확신을 가진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입니다.
확신으로 끝나서는 안됩니다, 믿음대로 행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시말하면 신행일치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딤후 3:14절에 보면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는 말씀과 그리고 빌립보서 4장9절에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이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말씀가운데서 얻은 확신을 가지고 진리를 행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그리스도 예수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수 있으며,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확신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혜를 깨달을 때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날마다 확신 속에서 승리하는 우리들이 될수 있을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