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사도신경 강해

사도신경 강해(1)(요한 1장 1-3절)

Andy1954 2023. 5. 21. 05:04

사도신경 강해 1 :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앙 [ 본문: 요 1:1-3, 14, 18, 요 14: 26, 15;26, 16:13-15 ]


우리가 바른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방법 중의 하나는 우리의 신앙의 내용이  2000년의 역사를 지닌

공교 회의 신앙에 충실한 것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입니다.

공교 회의 신조 가운데서 가장 보편적인 신조는 2세기 때부터 사용되어 온 사도 신조입니다.

이 사도 신조의 내용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작성자들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즉, 성부와 창조에 대한 부분 성자와 구속에 대한 부분 그리고 성령과 성화에 관한 부분으로 구분하는

것입니다(제24 문답).

이것은 다시 말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사도 신조를 삼위일체적 구조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터툴리안이 처음 사용하고 교회 안에서 일반화된
"삼위일체"(trinitatis)라는 

말로서 우리가 의미하는 바를 분명히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의 제25 문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직 한 하나님이 있을 뿐인데 왜 당신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에 대해서 말합니까?"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대답이 주어져 있습니다: 

"왜냐 하면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말씀 가운데서 당신님을 계시하신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 가지 구별되는 위들이(these three distinct Persons) 하나의 참되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이제 하나님께서 이렇게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으로 드러내신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참되고 영원하신 한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떠하신 분이신지를 단번에 가 아니라 점진적으로 계시하여 오셨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한 분의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아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시대엔 신들이라 칭하는 것들이 많은 상황 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강조하는 것이

아주 중요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마다 암송하는 소위 "쉐마"(shema)에서는

"이스라엘아 들으라(shema Israel),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신명기 6장 4절)라고 

하나님이 하나이심을 강조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약의 가르침은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거나 다른 신을 섬길 수 없다 는 중요한 가르침인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오직 하나이신 이 여호와는 한 분이시며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절대적인 관계를 요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즉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하여 섬겨야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심은 신약에서도 명백히 가르치는 중요한 교훈입니다. 

디모데후서 6장 15-16절을 보면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도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찌어다".  

이 말씀 속에 하나님은 한 분이시며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이심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2. 삼위 하나님에 대한 계시

그런데 신약에서 계시된 또 하나의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한 분이 있다고 하면 그에게 하나의 인격(person)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계시에서 보면 하나님은 이와는 전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세 위격(three persons, three hypostasis)으로 존재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본질(ousia, essentia)은 하나지만 이 본질이 구현되어 있는 위격(person)은 셋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이런 용어의 사용을 통해서 성경에 제시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이를 표현해야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사실이 신약에서 어떻게 계시되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됩니다. 

그의 생애와 가르치심을 신약 성경을 통해서 살펴보면 그는 자신이 아버지라 부르신 하나님이 있으며, 

그리하여 자신과 아버지를 구별하시면서도 반면에 자신을 아버지 하나님과 동일시하시기도 하십니다. 

요한 10장 30절에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니라" 라고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마가 2장 1-12절 말씀에서는,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사죄의 선언을 하심으로써 자신이 죄를

사하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드러내십니다. 

또한, 그를 신적인 분으로 인정하는 고백을 받아들이시기도 하십니다. 

마태 16장 16절을 보면 베드로의 말한 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을 포함한 신앙고백에

대해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알게 하셨다고 하시면서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또한 요한 20장 28절에서는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도마의 "나의 주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라는

고백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이렇게 그가 아버지라 부르신 하나님과 자신을 구별하면서도 자신을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그가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시지만, 또 아버지와는 구별되는 분이시라는 사실에 직면하게 됩니다. 

이것이 잘 이해되지는 않아도 하나의 사실로서 우리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역을 마칠 즈음에 그는 후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요한 14장 26절/15장 26절,/ 16장 7-14절 참조). 

그리고 이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 가운데 계셔서 그들을 가르치시고 인도하시며 지도해 가시는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였습니다(행 5장 1-11절 참조).

이렇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특한 존재를 계시하시자 사람들은 난제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전부터 하나님으로 섬겨 왔고 예수께서 아버지라 부르신 그 분과 자신을 그의 독특하신 아들로 드러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아버지께서 이 아들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의 관계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난제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3. 두 가지 잘못된 해결책

이 난제로 인하여 교회 안에는 이에 대해서 두 가지 대립되는 잘못된 이해가 발생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세 하나님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소위 삼신론적 이단 입니다.

그러나 이는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은 한 분이신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와 상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있을 수 없는 명확한 형태의 삼신론으로 교회 안에서 거의 찾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성부 하나님만을 온전하신 하나님으로 말하고
성자와 성령을 좀 못한 하나님 제 2의 하나님이나

제3의 하나님으로 말하는 이들이 있으나 이런 견해도 성경과 일치하지 않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생각은 교회에서 이단적인 생각으로 정죄된 것입니다. 

이러한 이단적인 견해는 아리우스(Arius)와 그를 추종하던 아리안(Arians)의 주장입니다. 

아리우스는 성자는 영원에서 창조된 최초의 피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의해서" 존재하게 된 하나님의 온전한 피조물이요 하나님의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세상이 창조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영원에서는 성자가 "있지 않던 때가 있었다"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자는 성부보다는 좀 못한 하나님 선을 선택하여 불변성을 얻고 신성에 이른 존재이고 

하나님으로 받아들여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의 영예를 받으시기에는 합당하나 경배의 대상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지위는 더 격하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런 생각에 의하면 성부, 성자, 성령이 따로 계시되 성부만이 온전하신 하나님이시고 성자와 성령은 부차적인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성부, 성자, 성령의 동등하심과 심지어 하나이심을 강조하다가 잘못된 사상도 있습니다. 

양태론(modalism)으로 알려진 이단은 성부, 성자, 성령이란 한 하나님께서 각기 다른 시기에 자신을 드러내신 

세 가지 양태(three modes of manifestation)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부가 성자이고 그가 성령인데 그것은 각기 다른 시기에 다른 형태를 가지고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고 계시하신 수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성부와 성자 그리고 성령이 뚜렷이 구별되어 계시되어 있다는 것과 또 성부, 성자, 성령이

동시에 나타나신 사건들 (예수님의 수세, 변화산 사건 등)을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견해는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이 두 가지 오해는 아주 명확한 형태로 나타난 것만이 문제가 아니라 비록 정통적 삼위일체론을 지니더라도 

그런 경향에로 나아가는 모든 것도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삼위일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터툴리안(Tertullian)도 성자를 성부에게 종속시키는 듯이 말을 한 

일이 있고, 오리겐(Origen)은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되어 있고, 성령은 성자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표현하여 

소위 종속론(subordinationism)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들은 과거의 교회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도 우리 주변에 있을 수 있기에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들에게도 성부에 비해서, 성자와 성령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성자의 인간되심에 충실한다고 하면서 그의 신성을 무시하거나 이를 완전히 감추어진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나

성령을 향해서 명령하듯이 말을 하는 풍조나 성령의 인격성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언사와 행동이 위에서 말한

첫번째 오류와 연관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성부, 성자, 성령을 설명하면서 한 존재가 가질 수 있는 세 양태와 관련해서 설명하는 것

(예를 들어, 물질의 삼태(三態)에 따라서 물이 수증기, 물, 얼음으로 될 수 있으나 다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든지, 

한 존재가 가질 수 있는 다양한 지위와 관계로 [아버지, 남편, 교사 등] 설명하든지 하는 것)은 위에서 말한 

두 번째 오류와 관련될 수 있는 것입니다.

4. 우리의 바른 삼위일체 이해는?

그러면 우리는 삼위일체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오직 한분 하나님이 계시는데 세상의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수 없는 아주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가지셔서

그 한분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three persons)로 존재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부, 성자, 성령은 그 존재와 영광과 권세에 있어서 동등하시며 동일 본질을 가지고 계시어서 

한분 하나님으로 계시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는 각 위 간에는 종속적인 면이 없고 위격적 차이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다만, 그분들이 계시하실 때 아버지 아들의 용어를 써서 계시하시므로 우리는 그 계시를 따라서 

성부(아버지 하나님), 성자(아들 하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삼위일체를 인식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점진적으로 계시하고 계시므로, 
신약에서야

비로소 온전히 인식할 수 있지만 이 삼위의 관계는 구약에도 그런 계시도 있었다고 볼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로 존재하신 하나님을 우리는 본체론적 삼위일체, 혹은 존재론적

삼위일체라고 하며, 하나님이 자신을 역사적 경륜 가운데서 드러내신 것을, 경륜적 삼위일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자신이 삼위일체적 존재이심을, 경륜과 계시 가운데서 드러내어 주셨으므로 우리는 그것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삼위일체적 존재로 인정하고 섬겨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