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신경 강해 2 (마태 16장 16절 / 28장 19절)
1. 사도 신경의 기원
주후 400년 경 루피누스의 저서 [사도신경 주석]을 보면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계로 흩어지기
전에 한 자리에 모여서 그들이 서로 다른 메시지를 전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짧은 요강을 만들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도신경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도신경은 3세기 초반의 터툴리안의 저작물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며 기원 100년경 로마 교회에서
세례를 줄 때에 사용했던 고백문에서 사도신경의 신조와 유사한 형태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과 같은 형태의 사도신경은 8세기에 이르러서야 완성되었습니다.
특히 사도신경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마태복음 28장 19절의 말씀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즉, 이 신조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관한 교회의 신앙을 정의하고 있으며 모든 선교와 설교를 위한
기초 신앙의 근본적인 사항에 관한 교회의 신념을 선포하기 위해 구성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신조의 필요성
그러면 이 신조는 왜 필요한가?
첫째,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말하면 신앙을 정의하기 위해서 신조가 필요합니다.
둘째, 규범과 모범과 표준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이단들로부터 신도들을 보호하고 자신의 신앙과 사상을 검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셋째, 교육과 설교의 자료를 제공해 주기 위해 필요합니다.
설교자가 활동할 수 있는 범위를 한정해 주며 인간 상황의 모든 사건에 대하여 적용하여야 할 계시된
원리들을 제공해 주기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3. 내가 믿사오니
사도신경에서 "내가 믿사오니"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과 세상에 대해서 가르치시고
말씀하신 것에 대하여 자기의 믿음과 결단을 확신하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실 것을 믿고 이삭을 번제로 드린 아브라함처럼 또한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방주를 만든 노아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확신하고 그 진리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믿음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 고백은 두 가지로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믿고 그리스도를 처음 영접할 때 하는 일회적인 고백으로 종교적인 회심의 고백이 있고.
다른 하나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께 하루의 삶을 맡기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확인하는 반복적인 고백이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믿는다"는 이 말은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Ⅱ. 사도신경 강해
사도신경은 마태 28장 19절에서와 같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한 우리의 신앙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창 1:1; 사 45:12; 출 3:14,15; 출 6:3)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철학자들이 말하는 관념적인 신이 결코 아닙니다.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창조라는 말이 세 번 사용되었습니다.
첫 번째는 창조라는 말은 무에서 유를 이루었을때 창조란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최초에 창조된 땅의 상태는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
둘째로 창조라는 말은 생명체를 그 종류대로 만드셨을때 창조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생명의 창조는
반드시 생명으로부터 나옵니다 이것이 생명의 법칙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창조되었습니다.
셋째로 창조라는 말은 인간을 창조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인간의 창조는 일반 생명의 창조와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영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인간의 존재의 근원이 되시며 생명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잠시 이 땅에서 머물다가 다시 창조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6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은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었으며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우주를 주관하시고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와 영혼을 가진 우리
인간을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욥은 욥기 42장 2-3절에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로마서 11장 36절 말씀과 같이,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로마서 1장 20절 말씀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그러므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비롯한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 되시는 것입니다.
2) 아버지를 믿사오며
(신 32:6; 삼하 7:14; 시 68:5; 사 63:16; 64:8; 말 2:10; 마 5:16, 45, 48; 6:6-8; 10:29; 롬 8:14; 히 12:5-8; )
신명기 32장 6절에는 "그는 너를 얻으신 너희 아버지가 아니시냐?" 라고 기록되어 있고
삼하 7장 14절에는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라는 말씀이 있으며
로마서 8장14절에서도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은 그의 능력에 있어서는 하나님이시고, 그의 사랑에 있어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다."
라고 했습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애정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것을 대신할 다른 칭호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5-8절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또 아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오.
징계는 다 받는 것이어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아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양육하시며 보호하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육신의 아버지는 그 자녀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도 근본적으로 연약하고 자기중심적인 한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2. 예수 그리스도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
1)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요 3:16-18; 요일 4:9; 요 1:14)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요한복음에 4번 사용되고, 요한일서에 한 번 나옵니다(요일 4:9).
사도 요한은 요한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외아들이라는 말은 유일성(only)과 독특성(unique)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외아들이라는 말은 출생이나 기원을 의미하기보다 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요한 5장 20절에서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고 말씀하셨으며
하나님께서도 마태 3장 17절에서, 예수님을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셨습니다
이를 볼 때 외아들이라는 말은 곧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관계가 곧 아버지와 아들과 같이 사랑하는 관계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동시에 본질적으로 아버지와 아들은 동일한 것과 같이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과
동등한 본질을 가지신 분이심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 16장 16절 말씀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했을 때 기뻐하시면서 그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는 곧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마태 1장 21절을 보게되면 '구원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그리스도란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으로서 예수님의 사역의 세 가지 직분을 말하고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장과 선지자와 왕을 세울 때 그 머리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이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께서 감당하실 직분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는 면에서, 완전한 선지자이십니다,
우리 죄를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신 영원한 제사장이시며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원토록 왕 노릇 하시는 만왕의 왕이 되십니다.
'주' 라는 말은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님이 시며 구속의 주님이시 되시는 것입니다.
2)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마 1:18-25; 눅 1:26-38; 사 7:14)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습니다
(who was conceived by th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말은 예수님이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통해서 태어나지 아니하고 전적으로 성령께서
잉태케 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이 되신 기적의 사건이 아닐수 없습니다.
동정녀란 결혼하지 않은 여자 남자를 전혀 알지 못하는 처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생물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볼때 동정녀의 탄생을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동정녀에게 탄생하신 것은
첫째, 예수님은 우리와 동일한 참 인간으로 오셨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아이로 태어
나셔서 어른으로 성장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둘째로, 예수님이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며 동시에 죄가 없으신 거룩한 분이십니다. 죄가 있으면 인간의 죄를 대신 하실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반드시 성령으로 잉태되어야 하고 사람의 아들도 이 땅에 탄생하셔야 되었습니다
3)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마 27장; 눅 23장; 요 18-19장)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한 사형방법 이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너무나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당시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십자가 처형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참수형을 당했습니다.
십자가 형벌은 노예나 반역자나 살인 강도 등 흉악범들에게만 처형할 수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죄 없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눅 23:14,15; 요 18:28; 19:4,6).
그러나 빌라도는 자신의 정치적인 목적을 위해서 무죄한 예수님에게 십자가 사형선고를 내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법적으로 재판관인 빌라도의 책임이기 때문에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외아들이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처형을 당하기까지 버려 두셨는가요?
이것은 한 마디로 인간들이 받아야 할 죄 값을 예수님이 대신 받으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려 저주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습니다(갈 3:13).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의 죄를 철저히 벌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를 처벌하지 않고 인간을 용서하신다면 하나님은 불의한 분이 되고 마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지게 하시고 철저히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 장사되어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장사되었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죽으심이 거짓이 아니라 사실을 확실히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헬라어 원본에는 음부에 내려 가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음부란 죽은 영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에베소 4장 8-10절 말씀에는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올라가셨다 하였은 즉
땅 아래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 말씀에도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 전서 3장 18-20절 말씀에도 "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이처럼 예수님은 지옥이 아닌 다른 곳에 있는 영들에게 구약에 수없이 예언된 예수님의 탄생, 십자가,
부활, 메시야의 예언이 성취된 사실을 선포하셨습니다.
이는 구약 시대에 죽은 사람들에게까지 언약의 성취가 증거 되었음을 뜻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어 (마 28장; 막 16장; 눅 24장; 요 20장)
예수님은 장사된 지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사건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사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고전 15장 20절 말씀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성도들의 부활의 첫 열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모든 성도들도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 부활한다는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난 것과는 차원이 다른 사건입니다.
나사로가 살아난것은 다시 죽을 몸으로 죽기 전의 몸으로 살아난 것이지만 예수님의 부활은 다시 죽지
아니할 몸으로 영생의 부활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초자연적인 사건으로 옛 생명의 연장도 아니고 발전도 아닙니다.
옛 생명이 완전히 죽은 다음에 나오는 새 생명의 역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은 후에 반드시 부활이 있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있음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5)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막 16:19-20; 눅 24:50-53; 딤전 3:16; 엡 4:8-10)
부활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관해 가르치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역사적인 사건인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도 승천도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면 하늘에 오르셨다고 했는데 하늘은 무엇을 말하는가?
하늘이라는 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늘(Sky)이고 다른 하나는 하늘(Heavens)입니다.
스카이는 공간적 의미에서 하늘을 가리키고 해븐즈는 차원적인 의미에서의 하늘을 가리킵니다.
Heavens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며 활동하시는 보이지 않는 영역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셨다는 사실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셨음을 말해 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 우편에 계신 다는 말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신 왕이 되실 뿐 아니라 하늘과
땅을 다스리시는 역사의 주관자로서 살아 계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5; 5:11,12; 엡 1:21; 빌 2:9-11).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집에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고 다시 와서 우리를 데려 간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승천은 모든 신자들이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보증이 되기도 합니다.
6)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마 24:30; 25:31; 행 1:11; 계 22:7,12,20)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모든 인류의 마지막 때이며 만물의 마지막 때입니다(벧후 3:8,9).
예수님의 재림은 신구약에 1518번이나 약속되었으며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는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약속하셨으며, 사도 요한은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을 때는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래서 죽기까지 죄인들을 섬겨 주시고 모든 인류의 죄를 십자가에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다시 오시는 그날에는 심판장으로 오십니다.
그날에 산 자와 죽은 자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살아 있는 사람이나 그전에 죽은 사람이나 모두 심판하러
오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세상 끝 날 곧, 예수님의 재림의 때에 심판이 있을 것을 말하고 있다(시 96:13; 전 3:17; 계 20:11-14).
그날에는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신다고 했습니다(마 25:31-46; 계 20:13).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을 믿고 예수님 앞에서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 말씀에,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우리 모든 인간들 앞에는 반드시 죽음과 심판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주님이 재림하실 때 심판이 있음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의 결론으로 삼고 있습니다.
Ⅲ. 성령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해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1)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께서 동정녀 마리아의 몸에 그리스도를 잉태케 하셨고 이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눅 1:35).
성령께서는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그를 메시야라 하셨으며, (마 5:16; 막 1:10; 행 10:38).
또한 그리스도의 사역을 수행하게 하셨고(마 12:28; 눅 4:14; 요 1:32),
그를 죽은 자들로부터 부활시키셨습니다(고전 15:45).
성령께서는 창조시에 수면에 운행하셨고(창 1:2), 구약의 예언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셨으며 백성의 왕들에게
기름을 부으셨고 믿는 자들에게 기도의 영감을 불어넣으셨습니다,
신약은 오순절 때 주어진 성령께서 교회의 생명의 근원이시며 복음의 설교를 통하여 신앙을 일깨워주시며,
세례를 통하여 새 지체들을 그리스도의 몸에 합체시킨다 는 사실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신앙의 불을 당시기고(고전 12:3), 신자와 공동체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은사들을 공급하시며
기도를 불러일으키고(롬 8:15-16), 하나님의 자녀들을 자유를 불러일으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롬 8:12-16).
성령은 그리스도 이외의 다른 보혜사 이십니다(요 14:16).
마지막 때에 바로 이 성령께서 전 창조의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 중 완성시키실 것이다(계 2:17).
사도적 교회는 역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하나의 비인격적인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로고스를 한 인격이신 분으로 이해하면서 하나님의 영 역시
하나의 신적인 인격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구원의 경세(the economy of salvation)에 참여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위격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시 33:6; 겔 37:1-4; 롬 1:3-5,8:14-17).
성령은 삼위 하나님 가운데 제3위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께서 객관적으로 이루어 놓은 구원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 각자의 구원이 되도록 적용하는 역할을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어떤 영적인 힘이나 감화력이 아닙니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와 다를 바 없이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지고 활동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은 고전 2장 10절에서,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이와 같이 우리 성령도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고전 2:11)"
이와 같이 성령은 지성과 감정과 의지를 가진 인격적인 존재입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을 보면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진리를 가르쳐 주시고 확신시켜
주시고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요한 16장 8-11절 말씀을 보면 성령이 하시는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는 것이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5장 22절에서는 성령은,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자비와 인내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게 하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는 풍요롭고 다양한 은사들을 베풀어주시는데 이 같은 은사들은 교회를 세우고 교회의 사회
봉사를 위해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은사들에는 가르침 예언 치유 기적 방언 및 영 분별(고전 12:4-11; 27-20)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 모든 은사들은 공동체의 선을 위하여 개인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고전 12:7),
2)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이 구절은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을 믿는 것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란 세상과 구별된 보편적인 교회 즉, 우주적 보편적 교회를 말합니다.
로마와 헬라의 공식적인 종교는 모두 국가 종교였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하는 일은 그들의 나라의 국가적인 이익을 돌봐주어야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종교는 아주 국수주의적 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구분이 없었습니다.
교회란 말은 에클레시아라는 말로서 구약에서는 이스라엘의 회중을 가리킵니다.
그러니까 교회란 하나님의 메시지를 기다리는 백성들의 모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헬라적인 배경으로 에클레시아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초대와 명령을 받아들인 사람들로 구성된 모임을 말하기도 합니다.
신약 시대는 예배드리기 위해 모인 그리스도인의 모임을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church)라는 말은 쿠리아콘(kuriakon)이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는데 이는 주님께 속한다는 뜻인데
본질적인 측면에서 보면 주님께 속한다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귐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라는 말을 흔히 건물을 가리키는 데 사용하고 있으나 신약 성경에는 그러한 용법이 한 번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아울러 성도란 거룩한 무리 신자 또는 배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교제를 통해서 형제애와 새 계명인 사랑을 실천하는 살아있는 유기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사도행전 2장 42절 말씀과 같이 교회 공동체의 유기적인 연합 활동과 교제를 통하여
서로 배우고 격려를 받는 것입니다.
특히 성도의 교제 중 가장 거룩하고 신비한 교제는 바로 성만찬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이 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의 자녀와 교회가 세상과 성별되었음을 분명하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만찬은 성도 교제의 극치라고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만찬을 통하여 인종과 문화와 역사를 초월하여 온 세계의 교회가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도의 교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여러 형태의 친교를 말하기도 합니다.
성도의 교제의 내용은 함께 말씀을 나누고 같이 모여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은 물론 물질을 나누고 위로와
용기를 주고 간증을 나누는 등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3)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죄를 사해 주시는 것과' 라고 했는데 이것은 '죄를 사함 받는 것과' 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31장 34절에 의하면 "내가 그들의 죄를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치 아니하리라" 말씀하셨고
시편 103편 12절에서도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멀리 옮기셨다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서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신다"라고 약속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지만 매일의 삶 속에서 또 많은 죄를 짓고 사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4장 16절 말씀대로 날마다 죄를 자백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야
합니다.
4)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사도신경에는 몸이다시 사는것을 믿는다고 했는데 이는 몸이 다시 살아나는것을 믿는다고 번역하는
것이 더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곧 우리 몸의 부활을 믿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고전 15장 13절 말씀에서는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였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몸의 부활은 우리 모든 신자들의 몸의 부활의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요한 11장 25절에 예수님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 6장 40절에서 "믿는 자마다 영생을얻는 이것이니 마지막날에 내가 이를 살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초대 교회의 메시지의 핵심은 부활의 복음이었슴을 잘 알 수 있습니다.
고전 15장 54절 말씀을 보면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 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이처럼 사도들도 몸의 부활을 주장했고 썩을 몸과 죽을 몸이 썩지 아니하고 죽지 아니하게 되는 신령한
몸으로 육체가 반드시 변화될 것을 믿고 있음을 알수 있는 것입니다.
5) 영원히 사는 것을 믿습니다. 아멘
요한 17장 3절 말씀을 보면 영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영생이란 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안다는 말은 인격적인 사귐을 통해서 인격적인 만남으로 아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곧, 사랑의 관계성을 의미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성을 회복하고 친교를 하게 되면 자연히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생명이니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곧, 예수님을 믿는 그 순간에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5장 24절에서,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영생이란 무작정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질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영생하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와 바른 관계성을 맺고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지금이나
육신을 벗고 신령한 몸을 입은 이후나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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