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 생수의 강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요일 2장 15-17절)

Andy1954 2024. 1. 21. 10:59

오늘 읽은 말씀을 가지고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세상”이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오늘 본문의 요지는 한 마디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5절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한 3장16절에는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시는데, 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면 안 됩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세상과, 우리가 사랑해서는 안될 세상의 의미가 서로 다르기 때문

입니다. 성경에는 “세상” 또는 “세계”라는 단어가 수없이 사용되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단어라고 해서, 매번 같은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세상” 또는 “세계”라는 단어는 세가지의 의미로 사용이되고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뜻할 때가 있습니다. 

요한 1장10절을 보면,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라고 말씀합니다. 

이 때의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세계, 곧 온 우주만물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엿새 동안에 온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특별히 창세기 1장31절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참 아름다워라, 주님의 세계는” 하면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세상에 사는, 사람들을 뜻할 때가 있습니다. 

요한 12장19절을 보면, “온 세상이 그를 따르는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다는 의미입니다. 

이 때 사용된 “세상”은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들도,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셋째로,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을 뜻할 때가 있습니다. 

요일 5장19절을 보면,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악한 자란 마귀 곧 사탄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이 때의 “세상”은 마귀가 다스리는 영역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 사용된 “세상”은, 바로 세 번째의 의미에, 해당합니다. 

악한 마귀는 우리를 대적하며,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습니다. 

그래서 딤후 4장10절에 나오는 '데마'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면 마귀에게 삼키고 맙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자 하는 본문은 명령과 이유로 나누어집니다. 

먼저,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난 후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세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들을,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15절 말씀을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말씀드린 대로 여기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 세계를 가리키지 않습니다. 

또한 이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일컫지도 않습니다. 이때의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 

곧, 악하고 타락한 세상 음란하고 패역한 세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세상을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마귀에게 종노릇을 하기 때문에,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사랑하며 자녀도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다스리는, 이 악한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세상도 좀 사랑할 수가 없나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이는 선과 악을 동시에 사랑할 수 없는 이유와 같습니다. 

선을 사랑하면 악은 반드시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빛과 어둠이 공존하지 못하는 이유와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또한 그러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도 못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여전히 마귀에게 종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여 이 세상을 사랑하면서도, 자기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4절의 말씀과 같이 실상은 하나님과 원수로 살고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도 그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을 때, 

그는 세상적인 것들을 사랑하며 자기에게 있는 인간적인 것들을 대단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될 때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과거에 하나님과 원수였다는 사실을 비로소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과거에 사랑하며 자랑했던 세상적인 것들을 모두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세상적인 것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에 해가 될 뿐임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 바울은 기록하기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다”라는 말은 “죽었다”라는 뜻입니다. 아주 강한 표현입니다. 

“세상은 내게 죽었고, 나도 세상에게 죽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와 세상은 전연 상관이 없다.” 

이러한 뜻으로 그는 아주 강하게 말씀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가 지배하는, 이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전심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풍성히 받는 자녀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288장 3절처럼,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이것이 나의 찬송일세 나사는 동안 끊임없이 구주를 찬송하리로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봅시다. 

그리해서 내 안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늘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요일 2장 16절말씀을 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악하고 타락한 세상은 마귀가 지배합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악하고 타락한 세상은 죄를 짓도록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그가 다스리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통하여 사람들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만듭니다. 

그러니까 이 세 가지는 마귀가 사람들을 유혹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온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것 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짓도록 시험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들은 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육신의 정욕' 입니다 (the lust of the flesh).

이것은 부패한 육신 때문에 생기는 그릇된 욕망을 일컫습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려 하지만, 육신은 죄의 법 아래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은 약합니다. 육신은 죄로인해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둘째, '안목의 정욕' 입니다 (the lust of the eyes).

이것은 눈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그릇된 욕망을 가리킵니다. 탐해서는 안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내눈에 보기가 좋다고, 어떤것을 탐하여 그것을 내것으로 삼으려는, 소유욕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 때 생기는 욕망이 바로 안목의 정욕입니다.

 

셋째, '이생의 자랑' 입니다 (the pride of life).

“이생”이라 함은 이땅에서 사는 삶을 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의 자랑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

되었습니다. 이땅에 살면서 자기를 내세우며, 과시하고 싶은 그릇된 욕망이 생길수 있습니다. 

이 때 생기는 허영심이, 바로 이생의 자랑입니다.

 

악하고 타락한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바로 이들 세 가지입니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입니다. 마귀는 이 세가지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유혹합니다. 그리고는, 죄를 짓게 만들어서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창세기 3장 6절 말씀을 보면 사탄이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했을 때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본즉, 첫째 먹음직 했습니다. 육신의 정욕에 해당합니다. 

둘째, 보암직 했습니다. 안목의 정욕에 해당합니다. 

셋째,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웠습니다. 이생의 자랑에 해당합니다.

이와 같이 사탄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하와는 사탄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남편 아담에게도,

주었습니다. 그 결과 범죄한 그들은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돌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육신의 정욕으로 시험했습니다. 

“네가 내게 절하면, 천하만국을 네게 주리라.” 안목의 정욕으로 시험했습니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이생의 자랑으로 시험했습니다. 

이와 같이 사탄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똑같은 방법 세 가지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매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탄의 시험을 물리치시고 승리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있는 사람들, 곧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마귀가 유혹하는 대로 세상을 사랑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들은 육신의 정욕에 자신들을 내맡깁니다.

그들은 안목의 정욕을 좇으면서 삽니다. 또한, 그들은 이생의 자랑을 따라 지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지를 못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쫓겨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내쫓김을

당합니다. 그들은 마귀와 그의 사자들을 위해서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으로 받을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귀가 다스리는 세상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한 이 세상을 결코 사랑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골로새서 3장 2절 말씀과 같이 "위의것을 생각하고 땅의것을 생각하지

맙시다". 땅의 것을, 생각한다는 것은, 세상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땅의 것을 생각하다 보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빠져 죄를 짓고 맙니다.

늘, 위의 것을, 생각합시다. 거기는,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예수님 안에 있게 합시다. 

그러면 예수님이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기셨기에, 나도 예수님 안에서 얼마든지 마귀의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일 4장 4절 말씀에 "내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안에 계신이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자는 이악한 세상을 다스리는 마귀를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마귀보다 크십니다.

따라서, 내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마귀보다 크신 예수님이 나를 보호해주십니다. 

또한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면 마귀보다 크신 예수님이 나를 위해 역사하시서 싸우십니다. 

그러므로 나는 예수님 안에서, 늘 승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 안에 또한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님으로 충만해서 날마다 마귀를 이기며, 세상을 이기며, 죄에 대한 유혹을 이기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셋째로, 세상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요일 2장 17절 말씀을 보게되면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이 세상은 지나갑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도 지나갑니다. 

또한 이세상에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얻은 모든 것들도 다 지나갑니다.

그것들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저 일시적일 뿐입니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가듯이 시내에 물이 흐르듯이, 공중에 새가 날아가듯이, 이세상과 그안에 있는

것들은 다 스쳐지나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덧없이 지나가는 이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태어날 때는 손을 쥐고 태어납니다. 마치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움켜쥘 것처럼, 손을

꼭 쥐고서 태어납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습니다. 

그 동안 움켜쥔 것들을 다 내려놓고서 완전히 빈손으로 가야만 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속히 지나갑니다. 그리고 벧후 3장 10절 말씀과 같이, 

"장차 하늘은 떠나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물질도, 다 불에 타버릴 것입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완전히 없어지고, 새 하늘과 새 땅이 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랑한다는 것은 잠시 잠깐이면 없어질, 일시적인 것에 집착해서 산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1장 25절 말씀을 보면, 믿음의 사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그는 땅의 것, 세상의 것, 일시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위의 것, 신령한 것, 영원한

것을 생각했습니다. 우리들도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영원히 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다시금,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갑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이미 요한복음 6장 40절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분명

하게 밝혔습니다.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이와 같이 하나님의 뜻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영생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그는 영원히 살게 됩니다.

 

로마서 8장 18절 말씀과 같이 천국은, 지극히 영광스러운 곳입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이세상의

것들은 보잘것 없습니다. 천국은 영원합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이세상은 잠시잠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덧없이 사라질 이 세상을 사랑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매 절마다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첫 절은, 세상을 사랑함과 아버지의 사랑, 곧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서로 대조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마귀가 지배하는 이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절은, 세상으로부터 온 것과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서로 대조합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입니다. 

우리는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따라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 절은, 이 세상이 지나간다는 것과,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가, 영원히 거한다는 것을

서로 대조합니다. 우리는 덧없이 지나가는 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영원을 

사모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 세상은 마귀가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상은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세상은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새겨, 늘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하나님의

자녀, 천국 백성으로 살아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