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4장은 “위로장"(the comfort chapter)이라고 불려 지고 있습니다.
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드시기 위해서 어느 다락방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고서 예수님 팔아 넘기기
위해서 이미 밖으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제 곧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서 근심
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시는 제자들의 마음에 있는 근심을 아시고, 그들에게 위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요한 14장 1-6절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어떻게 위로하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지난주 살펴본 대로, 예수님은 요한 14장 1-6절에서, 세 가지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늘 함께 하심을 믿어라(His presence, 1절).
둘째, 예수님의 약속을 믿어라(His promises, 2-3절).
셋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 지를 믿어라(His Person,4-6절).
결국은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제자들에게 분명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근심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들을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서 근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로의 말씀은, 오늘 본문에서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과 사랑하시는 제자들이, 함께 있을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놀라운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먼저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제자들에게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보다도 더 큰 일을 행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이
시행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너무나도 놀랍고 엄청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근심에 쌓인 제자들을 위로하시기 위하여, 본문에서 세 가지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the revelation of His Person, 7-11절).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행사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the revelation of His power, 12절).
셋째,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the revelation of His promise, 13-14절).
이 시간 우리 모두도,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큰 위로를 받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7절입니다. “너희가 나를 알았더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며, 예수님을 보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보는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예수님은 감히 이런 말씀을
하실 수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이런 말씀을 분명히 하실수가 있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실 때,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온전히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분명히 알았더라면,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가신다고 하더라도,
근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언제나 함께 하시며, 돌보시라는 사실을
자연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을 같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를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도마를 생각해봅시다.
그는 예수님의 부활도 믿지를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난 뒤에야,
예수님을 바로 알고 요한 20장 28절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반면에 베드로는 마태 16장 16절에서, 이미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을 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그러나 이것도 베드로 스스로가 깨달아 안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베드로에게, 그렇게 계시해
주셨던 것뿐입니다. 마태 16장 1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7절 하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그리고 특별히 성령님의 강림을 통해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 대로 성령님이 하시는 사역은,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쳐 순교하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제자들이 하나님을 분명히 알게되고, 보게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예수님의 또 다른 제자 빌립이 나서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본문 8절입니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무슨 뜻입니까? 빌립은 지금 이런 뜻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시러, 아버지 집으로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시면, 주님은 우리를 영접하시기 위하여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주실 수는 없으십니까?
그러면 주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모든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확신할수 있을 것입니다.”
빌립의 믿음은 결국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그의 믿음은 눈으로 보아야 믿겠다는 낮은 수준의 믿음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빌립은 그의 말을 통해서 자신의 믿음이 그만큼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 것입니다.
빌립의 요구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9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예수님의 마음에 있는 비애를 읽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나간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많은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자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열 두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은 예수님을 배신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열 명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아직도 제대로 알지를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잡히실 때,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칠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실망하지 않으시고,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고 명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다보면 낙심이 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본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이 적다고 해서 결코 실망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리어 제자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낙심하는 제자들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위해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도 그저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는 성령님에게 맡기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9절 하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감히 이런 말씀을 하실 수가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10절 상반부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빌립은 예수님에게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빌립에게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1절에서도 예수님은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그렇습니다. 문제는 제자들의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부족했기에 무엇인가 눈에 보이는 것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시기 위해서, 본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를 두 가지로 제시하셨습니다.
첫째 증거는 그 동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셨던 말씀들입니다. 10절 중반부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르는 말이, 예수님 스스로 하신 말씀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입니까?
요한 12장 49절 입니다.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예수님이 지난 3년 동안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들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받은 말씀 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시라는 믿음을,
가졌어야 마땅했을 것입니다. 마태 7장 28-29절의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가르치심에 놀래니, 이는 그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예수님의 가르치심은 권세 있는 자와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 증거는, 예수님이 행하신 일들입니다.
10절 하반부와 11절 말씀입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나를 믿으라.” 만일 제자들이 지난 3년 동안 예수님이 주신 말씀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지 못하겠으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보고서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 5장 3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는 요한의 증거보다 더 큰 증거가 있으니, 아버지께서 내게 주사 이루게 하시는 역사 곧
나의 하는 그 역사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나를 위하여 증거하는 것이요."
예수님이 행하시는 역사가, 곧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보내심을 받으셨다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 10장 25절에서도 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오늘 본문을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 계십니까?
“너희는 눈으로 무엇인가를 보려고만 하는구나.
너희는 내가 곧 너희가 보기를 원하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한 말과 내가 한 일을 보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단 말이냐?”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밝히 계시하셨습니다.
이는 분명 제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비록 예수님이 이제 제자들을 떠나서 그들의 눈에는 더 이상 보이지를 않는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그들과 언제나 함께 하시면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사실을 제자들이
알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행사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2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이 또한 놀라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들을 떠나시면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해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낙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이 앞으로 예수님이 하신 일을 그대로 할 것이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도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그러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일을 그대로 하며, 심지어 그보다도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12절 끝에 있는 말씀이 그 근거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가시면서, 제자들에게는 성령님을 보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과 함께 있는 것보다는, 예수님이 아버지에게로 가시는 것이,
제자들에게 더 유익이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 16장 7절입니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과연 예수님의 말씀대로, 성령님이 제자들에게 임하셨을 때,제자들도 큰 권능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신 대로, 그들도 기적을 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베드로와 요한은,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했습니다. 또 사도행전 5장 12절에는 이런 기록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손으로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또 사도행전 5장 15-16절입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
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이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뿐 아니었습니다. 어떤 면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1절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하루에 삼 천명이나 되는, 많은 제자들을 한꺼번에 얻으신 적이
있었습니까? 없었습니다. 또한 복음을 전하게 되었던 지역의 범위를 한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팔레스타인 내에서만, 복음을 전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복음을 들고,
예루살렘을 벗어나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거쳐 전 세계로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도 더 큰 일들을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론 우리에게는 사도들에게 주어졌던 것과 같은 능력이 주어지지를
않았습니다. 이런 육체적인 능력은 사도들에게만, 특별하게 주어졌던 능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5장 14절에,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 10장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당한 사람의 상처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따라서, 기름을 바른다는 것은 상처에 약을 발라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야고보는 누군가가 병이 들었을 때 그 병을 고치기 위해서, 그 병자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을
발휘하라고 말씀 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야고보서가 기록될 당시 이미 초대교회 성도들은, 병을 고치는 능력이 사도들에게만,
특별하게 주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든 자는 어떻게 고쳐야 합니까?
청함을 받은 이들은 병든자의 상처에 기름을 바르고, 그와 동시에 그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야고보서 5장 15절 상반부입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사도들은 자기들이 받은 특별한 능력으로 사람들의 병을 고쳤습니다.
사도들은 그러한 능력을 통해서 자기들을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밝히
보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성경이 완성되기 전의 일이었습니다.
성경이 완성된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그러한 능력이 주어지지를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병든 자가 있을 때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기름을 부어 병을 치료해야 합니다. 요즘 말로 하면 병원에서 필요한 치료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하나님이 그의 병을 고쳐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사도들이 가졌던 육체적 능력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능력은 얼마든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 옛날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부흥의 역사는, 그때만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1907년 우리 나라에도 역사에 길이 남을 놀라운 대부흥의 역사가 있었음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는 우리의 사역에 따라서 우리 교회가
실시하는 총동원 전도주일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통해서 그 능력을 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귀하게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3-14절 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실 것이라고 말씀을 하셨을 때 사실 제자
들의 마음에는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입니다.
그 동안은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돌보셨습니다.
누가 5장 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기를 잡는 것을 도우셨습니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이르시되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내려 고기를 잡으라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그리한즉, 고기를 에운 것이 심히 많아, 그물이 찢어지는지라,
이에 다른 배에 있는 동무를 손짓하여, 와서 도와 달라 하니 저희가 와서 두 배에 채우매 잠기게
되었더라.”
갈길리 가나의 혼인잔치 집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님은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주릴 때 예수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그곳에 있는 5천명이 먹고도, 그 남은 조각은, 열두 광주리에 가득 찼습니다.
마태 17장 27절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세를 내시기 위해서, 이런 일을 하신 적도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이처럼 하나에서 열까지 제자들의 모든 것을 일일이 돌보시던, 예수님이 떠나시고 나면,
이제 자기들이 어떻게 살아야할지 막막했을 것입니다. 또한 세상이 자기들을 미워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어디 가서 일자리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제자들의 이러한 마음을 읽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비록 너희들을 떠나가기는 하지만, 너희가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든지 내게 구해라. 그러면
내가 너희에게 계속해서 공급해 주리라.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있을 예수님과 이땅에 머무르고
있는 제자들 사이는 기도로서 언제나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4장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기도할 때 한 가지 조건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무턱대고 아무 것이나 구한다고 해서, 예수님이 다 이루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제일 끝에 가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이라는 말을 빠뜨리지 말아야만,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뜻입니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요한 14장 1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예수님이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사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이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이루어질 때,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얻으시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4장 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우리의 기도는 그저 우리의 욕망을 위하여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시고”
하는 식의 간구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에 이것이 성취됨으로서 과연 예수님을 인하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수
있는 일인가를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예수님은 우리가 간구하는 것을 그대로 시행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세 가지 말씀으로 제자들을 위로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밝히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제자들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계속해서 행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제자들이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시행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문제는 우리의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다.
그리고 우리도 예수님이 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도 믿으십시다.
아울러, 무엇이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면 예수님이 그것을 시행하실 것이라는 약속도
믿으십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예수님이 주시는 위로 속에서,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가 17장 5절에서, 예수님에게 간구했던 것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이러한 제자들의 간구가 또한 우리의 간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우리 모두에게 반석과같은 보배로운 믿음을 더하여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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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의 영적 각성 운동(사무엘상7장1-12절) (2) | 2024.01.11 |
하나님의 영광을 볼수 있는 믿음 (요한복음 11장38-44절)(Beliving that would see the glory of God, ) (1) | 2024.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