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금년 한 해 우리 모두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삶을 살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성도”가되며 우리 교회는 “하나님이 칭찬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 합니다.
먼저, 베다니의 마리아를 잠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자, 그의 언니 마르다가 예수님에게 자기 동생 마리아에
대해서 원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좋은 편을 택하였다고 칭찬하셨습니다.
뒤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서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 때 가룟 유다는, 마리아가 한 일에
대해서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가 예수님을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고 하시면서
마리아를 칭찬하셨습니다. 베다니의 마리아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불평이나 원망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해주시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마지막 부분은 아래와 같이 끝맺음을 합니다.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할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실까요? 오늘 말씀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면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다시 한번 축원합니다.
첫째로, 우리를 낮추어야 합니다(1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그러나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며 또한 예수님을 높여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기뻐하시며 아울러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1절 말씀을 다시 보겠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사도였으나,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겼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그와 같이 여기도록 당부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겼다고 했는데, 여기의 일꾼이라는 말의, 본래
뜻하는 바는 종 또는 노예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이요 노예라고 불렀습니다.
말하자면 바울은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그의 주인으로 높인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종이라는 단어로는 주로 “둘로스”가 사용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하나의 독특한 단어인 “후페레테스”를 사용했습니다.
이 “후페레테스”라는 단어는 노예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젓는 노예를 가리킵니다.
옛날의 노예선은 노를 젓는 곳이 이단 또는 삼단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 젓는 노예가 바로 “후페레테스”였습니다.
노예선의 가장 밑바닥에서 노를젓는 노예가 무엇을 내세우며, 무엇을 자랑할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일꾼들 곧 그리스도의 노예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을 낮추며,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높여야 마땅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교회를 섬기며 봉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사도로서, 그가 받은
하나님의 비밀을 전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높아질 이유가 없음을 분명하게
밝혔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에 불과했습니다.
여기에 “맡은 자”로 번역된 단어가 원래 뜻하는 바는 청지기 입니다.
청지기를 영어로는 스튜어드라고 합니다. 그 여성형 명사는 스튜어디스 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스튜어디스가 시중을 듭니다. 식사시간이 되면 부지런히 승객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제공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스튜어디스가 자기를 높이지는 못합니다.
그들은 손님들에게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담당할 뿐입니다.,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던, 노예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배 안에서 노예가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노예는 자기를 자랑하거나 높일
이유가 전연 없습니다. 노를 젓는 일은 노예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노예가 노 젓는 일을 열심히 하지 않고 태만히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채찍질이 가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결과 고린도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럴지라도 바울은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서, 그에게는 복음을 전해야 할 책임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전 9장 16절 말씀처럼, 복음을 전하는 일은 바울이 부득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만일 바울이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에게는 화가 있을 것입니다.
노를 젓지않는 노예에게 채찍질이 가해지듯이, 복음을 전하지않는 바울에게도 하나님의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벧전 4장 10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은 우리 각자에게 은사를 맡기셨습니다.
우리가 그 은사를 사용하여 섬기지 않으면, 우리에게도 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는 봉사를 하더라도, 우리 자신을 드러내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은, 우리가 부득불 해야 할 일이지, 우리가 자랑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어떠한 직분을 가졌든지, 결코 우리 자신을 드러내지 맙시다.
언제나 우리를 낮춥시다. 그러면서 오직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에게만 모든 영광을 돌립시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와 두 달란트 받았던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칭찬을 주인에게서
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주인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맡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칭찬하십니다.
고전 4장 2절에,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우리가 가진 모든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의 것을 맡은자, 곧 하나님의
청지기일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 우리에게 있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론 건강도 물질도 필요합니다. 시간도 필요합니다.
말도 어눌한 것보다는, 잘하면 더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것들을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맡은 일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바울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바울은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였습니다.
그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온갖 박해와 환난에도 굴하지 않고, 순교하는 그 날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충성을 다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하나님이 그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전하게 전했습니다. 많이 맡고서 적게 전하면 그것은 중간에서 횡령하고 착복하는 셈이 됩니다.
반면에, 맡지도 않은 것을 전하면 그것은 거짓이 되고 맙니다.
고후 2장 17절 말씀에서 알수 있듯이 그 당시에 수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게
전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들은 맡은 것을 그대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은 맡지도 않은
것을 맡은 것처럼 말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맡은 것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가르쳐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이야기나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했습니다.
아마도, 자기들의 말로써 사람들에게서 인기를 얻고 싶었을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생각하기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는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충성스럽지 못한 태도였습니다.
그들과는 달리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사도행전 20장 20절 말씀과 같이 바울은 언제 어디서든지
“유익한 것”만을 전하며 가르쳤습니다. 이 때 바울이 말한 “유익한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이는 딤후 3장 16절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리킵니다.
사실 바울은, 많이 배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체험도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런 것들을 전하며,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이방인들에게 전하며,
가르치라고, 바울에게 맡기신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만을 순전하게 전하며, 가르치기를
고집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로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도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각자에게 맡기신 일에 충성을 다합시다. 그리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셋째로,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3~5절).
어떠한 사람을 하나님이 칭찬하십니까?
첫째로, 자신을 낮추는 사람으로, 예수님을 높이며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사람입니다.
둘째로,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셋째로,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3절 말씀 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이어서 4절 말씀입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오늘 본문에는, 세 종류의 판단이 나옵니다.
첫째, 다른 사람들의 판단입니다. 둘째, 자기 자신의 판단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판단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나, 자기 자신의 판단은 절대적이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판단만이 절대적이라는 사실입니다.
먼저,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대해서 생각해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합니다.
따라서, 사람들이 내린 판단은 얼마든지 잘못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잘못 판단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내린, 잘못된 판단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또한 바울에 대한 로마 원로원의 판단도 틀렸습니다. 로마 원로원의 그릇된 판단이 바울의 목을
베었습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의 판단은 온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이어서 3절 말씀입니다.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 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남들의 판단에서 자유하기를 바랍니다. 남들이 알아준다고 우쭐하지도 말고 남들이 몰라준다고
낙심하지도 맙시다. 사람들의 판단은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 자신의 판단은, 어떠합니까? 3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나도 나를 판단하지 아니하노니.” 바울은 자신을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이 온전하지 못한 것처럼 바울은 자신의 판단도, 잘못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울은 4절 상반부에서, 자기를 실례로 들었습니다.
“내가 자책할, 아무 것도 깨닫지 못하나, 이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과거 바울은, 자기가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는 하나님의 원수였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달라졌습니다.
그는 자신을 낮추며, 맡은 일에 충성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선 줄로 생각하지 않고, 넘어질까 늘 조심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남들의 판단에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을 판단하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고후 10장 18절 말씀과같이 의롭다 함을 얻는것은, 자기가 자기를 칭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남들이 칭찬해준다,고 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칭찬하실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판단만을, 절대적으로 여겼습니다. 4절 하반부입니다.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헬라어로는, 심판이나 판단이나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면서, 하나님이 자기를 판단하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입니다.
그러면 누가 우리의 충성을 판단하십니까? 남들이 우리의 충성을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이 판단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의 충성을 판단하십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남들의 판단이나, 자기 자신의 판단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는 다만,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판단하실 지를 생각했습니다.
우리도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맡은 일에 충성을 다합시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칭찬하실 것입니다.
고전 4장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
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왜, 우리는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까?
우리의 판단은,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온전하게 판단하실 이는, 오직 한 분,
하나님뿐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판단만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함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지 맙시다.
또한, 스스로 잘했다고 으스대지도 말고 힘들다고 쉽게 낙심하지도 맙시다.
다만, 우리를 판단하실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늘 하나님만 바라보며, 각자가 맡은 일에 변함 없이 충성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들입니다. 따라서, 장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셈을 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며, 우리를 판단하십니까?
5절 중반부 말씀입니다.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숨어있는 뜻으로, 우리를 판단하십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기준은, 우리의 마음에 숨어있는 동기입니다.
우리가 과연 어떤 동기로 교회를 섬겼는가? 하나님은 이것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으십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섬깁니까?
인기와 명성을 얻기 위해서입니까? 우리 자신의 만족을 누리기 위해서입니까?
물질적 유익을 바라보기 때문입니까?
만일 우리가 이러한 동기로 섬긴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순수한 동기,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전 10장 31절 말씀과 같이, 우리의 섬김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칭찬하시며, 우리에게 큰 상을 내리실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같이 끝맺음을 합니다.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물론 남들에게서, 칭찬을 받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또한 우리 스스로도, 최선을 다했다는 마음이 든다면, 이 또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우리를 판단하시면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하실 때, 우리의 기쁨과 감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낮춥시다. 맡은 일에 충성합시다. 하나님만 바라봅시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늘 하나님께 칭찬받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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