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네가 믿으면

사가랴의 노래 (누가 1장 67-79절)

Andy1954 2023. 12. 2. 12:25

 누가복음 1장과 2장에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된 노래가, 모두 다섯 편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엘리사벳의 노래 (1장 42~45절), 두번째, 마리아의 노래 (1장 46~55절), 

세번째, 사가랴의 노래 (1장 67~79절), 네번째, 천사들의 노래 (2장 13~14절), 

다섯번째, 시므온의 노래 (2장 28~32절) 가 바로 그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 가운데 세번째 노래인, '사가랴의 노래'를 통하여,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성취된 언약을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사가랴의 노래'를 일명 “베네딕투스”(Benedictus)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것은 사가랴의 노래에 나오는 첫 단어가, 라틴어 “베네딕투스”로 시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투스란 말은 오늘 본문 68절에 있는대로 “찬송하리로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장을 보게되면, 제사장 사가랴가 그의 직무를 수행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사가랴에게 그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고 말하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요한' 이라 하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러나 사가랴는 천사의 이런 말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누가 1장 7절에 엘리사벳은 잉태하지 못하는 여자여서 자식이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사가랴나 그의 아내 엘리사벳은 이미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천사는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가랴에게,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말을 하지

못하리라 고 하였습니다. 

실제로 샤가랴는 천사의 말대로 세례 요한이 태어날 때까지, 벙어리로 지내야만 했던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그후 천사가 말한 대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은 잉태를 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이 잉태한지 여섯 달이 되었을 때, 엘리사벳의 친족 마리아가 그들을 찾아왔습니다. 

마리아는 석 달쯤 그들과 함께 머물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에 사가랴는 마리아가 이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통해서 그의 아들 세례 요한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할 선지자가 되리라는 사실 또한 알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기한이 차서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낳은 지 팔 일이 되어 할례하기 위해 이웃과 친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그 때에 비로서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면서, 사가랴는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한 내용이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사가랴의 노래 입니다. 

특별히, 사가랴의 노래에는 세 가지 언약이 나옵니다. 

다윗의 언약과, 아브라함의 언약, 그리고 새 언약 입니다.

말하자면, 사가랴는 그의 노래를 통하여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이 세 가지 언약이 성취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말씀을 보면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통해서 성취된 세 가지 언약에 대해서 자세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67-71절 말씀은, 다윗의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67-68절을 다시 한번 보겠습니다.

67절,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68절,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누가복음 1장 15절 말씀을 보면, 

세례 요한은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1장 41절 말씀을 통해서는,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67절에서는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세례 요한의 모든 가족이 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은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세례 요한은,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놀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즐거워 했습니다. 

엘리사벳도, 그의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주의 말씀대로 오실 것을

믿으며, 증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가랴도 그의 예언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가랴가 한 예언은 미래에 되어질 일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때 사가랴가 한 예언 곧, 그의 이웃과 친족 앞에서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은, 한 편의 노래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의 첫 단어는 “찬송하리로다,” 입니다. 

그러니까, 사가랴의 노래는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이라고 할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8절을 보면, 사가랴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가 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식이 없는 그에게 늦둥이, 세례 요한을 아들로 주셨기 때문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그 백성 이스라엘을 돌보시며 속량하셨기 때문에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가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곧, 탄생하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 이 그 백성을 돌보시며 속량하셨다고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그 백성 이스라엘을 어떻게 돌보시며 속량하셨습니까?

이어서 본문 69-7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69절,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절,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절,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시편 18편 2절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나의 구원의 뿔” 이라고 노래했습니다. 

이 때 다윗이 고백한 뿔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구원의 힘과 능력이심을 노래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신 구원의 뿔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사가랴는 여기서 다윗의 언약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다윗의 언약이, 여러 선지자들에 의해서 대략 40번 정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사무엘하 7장을 보면 하나님이 다윗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는 장면이 나옵니다. 

다윗이 왕이 되어 평안히 살 때, 그는 하나님의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쟁에서 너무도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 일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대신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 왕에게 놀라운 약속을 하셨습니다. 

"내가 네 자손을 영원히 견고히 하며, 네 왕 위를 대대에 세우리라",

이 약속은 하나님이 주권적이며 일방적으로, 다윗 왕과 더불어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물론 여기서 언약이라는 단어는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무엘하 23장 5절에서, 

이 때 하나님이, 그와 더불어 영원한 언약을 세우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때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가리켜서 이른바, “다윗의 언약”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약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 유념해서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언약은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언약은 먼 훗날,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몸에서 날 그의 씨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약속대로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것은 다윗의 언약 가운데, 가까운 시기에 이루어진 언약이었습니다.

 

그러나 솔로몬 이후에는 그 왕위가 견고하지 못했습니다. 

결국, 솔로몬 사후에 나라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둘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러더니, 북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남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이후 유다는 바벨론에서 해방되었지만, 계속해서 메대와 바사의 통치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 이후에는, 헬라의 지배를 받아야 했고 헬라 이후에는 로마의 통치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다윗의 언약이, 온전하게 성취되지 않았음을 알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오시면 그들을 모든 원수와 대적들의 손에서 구원하고, 

또, 그의 나라와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사가랴는, 머지 않아 마리아의 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그의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이 다윗의 집에 일으키신 구원의 뿔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시면 하나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들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는것 자체가 바로,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신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대적하고 나중엔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예수님이 성취하신 구원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지금도 사단 마귀에게 매여서 아직껏 원수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저들과 다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고 예수님이

다스리시는 영원한 나라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돌보시고 속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도 사가랴처럼 기쁨으로,

하나님을 늘 찬송하실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이어서 72-75절 말씀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2-7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72절,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절,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본문 말씀 가운데,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아브라함 이전에는 유대인도 없었고, 이스라엘 백성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그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의 조상이라고 불려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른바, 아브라함의 언약 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이유는 아브라함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이 그 아들 이삭에게 또한 이삭의 아들 야곱에게 이어진 것도, 오로지 하나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함이었습니다.

 

사가랴는, 아브라함의 언약거룩한 언약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시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긍휼히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의 언약이란 말이, 아브라함부터 이삭, 

그리고 야곱에 이르기까지 무려 여덟 번에 걸쳐서 등장하고 있습니다. 

( 창세기 12장, 13장, 15장, 17장, 22장, 26장, 28장, 35장에 아브라함의 언약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시면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 자세한 내용은 창세기 15장17-18절 말씀에 나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짐승들을 쪼개서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게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친히 짐승들의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이런 행위는 고대 사회에서 언약을 맺을 때, 당사자의 생명을 걸겠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짐승들처럼 쪼개진다는 뜻이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맹세까지 하시면서 아브라함과 더불어 거룩한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더불어 맺으신 언약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이른바, 아브라함의 언약은 창세기 12장에 처음으로 나옵니다.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첫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둘째,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셋째, 풍성한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 땅을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열두 지파에 이르는 큰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기록하여 그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언약이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말할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억압을 받으며 심한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해서 다윗의 집에 구원의 뿔을 일으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사가랴는, 예수님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온전히 성취하실 것을 내다보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본문 말씀 74-7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74절,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절,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원수의 억압 때문에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성결과 의로 하나님을 섬길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으로 인해서, 그들은 “종신토록” 주 앞에서,

두려움이 없이 성결과 의로 섬길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주는 영원한 평화를 받고 누릴 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받을 복도 더욱 풍성하고 영원할 것이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그들이 복의 통로가 되어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비판하고 시기하고 정죄했습니다. 때문에, 예수님 안에서 아브라함의 언약이

성취되었지만 그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없었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는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9절에서  이제는 우리가 아브라함과 함께 모든 복을 받게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니다. 

다시 한번 나를 돌아보사 나를 속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며, 사가랴처럼 기쁨으로,

늘 하나님을 찬송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로, 76-79절 말씀에서는, 새 언약을 성취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언약과, 아브라함의 언약에 이어서 예수님은 새 언약도 성취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새 언약이라는 용어는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예수님이 새 언약도 성취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계속해서 76-7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76절,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앞서 가서 그길을 예비하여

77절,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사가랴는 지금, 세례 요한을 가리켜서 “내 아들아” 라고 부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아이여”라고 하면서 세례 요한을 공적으로 호칭하고 있습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이 비록 자신의 아들이지만, 지극히 높으신 이 곧, 하나님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게 될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사가랴는 그의 아들 세례 요한이 해야 할, 사명도 알고 있었습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또한,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 이란 말이 나옵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한분 예수 그리스도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다윗의 언약이나 아브라함의 언약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보면 뭔가 다른점이 있습니다.

다윗의 언약의 핵심은 원수의 손에서 구원을 받아, 그의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게 되는 것

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수의 손에서 구원을 받아 자자손손이 번성하고, 하나님의 복을 풍성하게 받고 누리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이들 두 언약에서는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영적 구원은 약속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윗의 언약도 아브라함의 언약도 성취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누릴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또 다른 언약 곧, 새 언약에 약속된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1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새 언약에서 하나님은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죄를 사하시며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음으로는, 그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또, 신명기 29장 1절에도 새 언약에 대한 언급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모압 땅에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는, 호렙에서 세우신 언약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새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 때 세우신 새 언약에서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며 구원하시겠다고 약속

하셨습니다. 

 

그뿐만이 아니라, 신명기 30장 6절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셔서 그들에게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새 언약에 대한 언급은, 에스겔 36장 25-26절 말씀에서도 찾을수 있습니다. 

이 때도 역시, 하나님은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죄 사함에 대한 약속과 새 마음에 대한 약속입니다. 

 

그러면 우리 예수님은 어떻게 새 언약을 성취하셨습니까?

누가복음 22장 20절을 보면, 예수님은 이 땅에서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내 피로 새언약을,

세우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자신을 대속물로 주시고 그 보혈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씻으시고, 우리안에 성령이 거하시는 새 마음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우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새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새 언약을 세우신 것도 또한 예수님이 새 언약을 성취하신 것도 두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입니다.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기 때문에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이어서, 본문 78-79절 마지막절을 보겠습니다.

78절,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절,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하나님의 긍휼로 인하여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요한복음 8장 12절 말씀처럼, 하나님은 성자 예수님을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빛 되신 예수님은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을 그리고 구원의

빛을 환하게 비추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42장 6절 말씀에서,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세워서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시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이방의 빛이 되셔서 백성의 언약 곧, 새 언약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는 그 발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빛을 받은 사람은 평강의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죄 사함에서 오는 평강 새 마음을 받은 데서 오는 평강이 넘치기 때문입니다.

 

또, 이사야 9장 6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오셔서 우리를 평강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54장 10절에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가리켜 “화평의 언약,”평강의 언약, 

이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우리를 다스리시며 영원히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으며, 이 세상에서도 복의 통로가 되어, 살아갑니다.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새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언제나 평강의 길을 걸어갑니다. 

이 모든 것은 전적으로, 예수님의 사랑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를 돌보시고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성탄의 계절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사랑과 은혜를, 다시 한번 생각하면서 우리들도 사가랴처럼 날마다, 하나님을 찬송하실수 있으시

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