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복음·갈라디아서

성경이 미리 알고(갈3;6-9),

Andy1954 2021. 2. 19. 13:13

 

 

갈3장 6-9절, 성경이 미리 알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은, 무엇이었습니까? 

한 마디로, 누구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6장 30절을 보게되면, 빌립보의 간수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저희를 데리고 나가 가로되,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거늘"

빌립보의 간수는, 자기가 무엇을 행해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과 같은, 생각을 가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바울은 주저하지 않고, 그의 잘못된 생각을, 고쳐주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구원을 얻는 길은, 무엇을 행하는데 있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데 있음을, 

바울은, 빌립보의 간수에게, 분명하게 일깨워준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에베소서 2장 8-9절,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의 구원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또한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1장 16절,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로마서 3장 22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로마서 3장 28절,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강조하고 있는 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은, 바울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원은, 행함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얻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곳을 떠나고 난 뒤에, 갈라디아 교인들을, 꾀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율법주의자들이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순진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믿음만으로는, 부족하고, 믿음에 더해서,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은, 결코, 복음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행위가 온전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따라서,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것이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이, 어떻게, 복음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들의 주장은, 

복음 곧 good news가 아니라, 그와는 정반대인 bad news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율법주의자들의 꾐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5절에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의, 신앙적 체험을 통해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진리를 분명히 했었습니다. 

그런 후에, 바울은 오늘 본문인 갈라디아서 3장 6-9절에서는,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사실을, 성경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제 오늘 본문 말씀을 차례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오늘 본문 6절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을, 그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는 진리”에 대한 성경적 근거로, 

아브라함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다고 여기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무엇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고 여기셨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행위를 보시고, 그를 의롭게 여기신 것은, 결코 아니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그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기 때문도 아니오, 착한 일을 많이 했기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바로 그것을, 하나님은 그의 의로, 여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창세기 15장 6절 말씀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수 있습니다. 

창세기 14장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소돔 성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적에게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자기 집에 있는 사람들을 이끌고, 적군을 추격해서, 

무사히 롯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마음에는, 두려운 생각이,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언제, 적군이 보복해 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창세기 15장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주지 아니하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그의 방패가 되셔서, 지켜주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상급이, 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무엇을 상급으로 주실 것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라함은, 자신에게 아들이 없음에 대해서, 하소연했습니다. 

자기에게는 아들이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자기의 종 엘리에셀이, 자신의 상속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말했습니다. 

 

계속해서, 창세기 15장 4-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사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은 지금, 불가능한 일을, 말씀하시고 계신 셈입니다. 

아브라함이나 그의 아내 사라, 둘다,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을 정도로, 

늙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했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 믿음을 보시고, 그것을 의로 여겨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기 15장 6절에서, 분명히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신 것은, 그의 행위를 보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의 믿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이 원리는, 언제나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위를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지 않습니다. 

비록, 보잘것 없고, 연약한, 적은 믿음이지만, 이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위가, 온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도 우리와 똑같은, 죄인에 불과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래, 갈대아 우르,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말씀을 보면,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나홀의 아비 데라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분명히 우상을 숭배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오늘 본문을 기록한 사도 바울이나, 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택하여 주셨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을 택하여,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은, 

창세기 12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자신이 그 동안 살아왔던, 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너의 친척을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의 조카, 롯을 데리고 갔습니다. 

또, 하나님은 그에게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자기 아버지, 데라를 모시고 갔습니다. 

그래서 중도에 있는 하란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머물러 있어야만 했습니다. 

데라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아브라함은 가나안으로, 갈 수 있었습니다. 

그 때에도 아브라함은, 자기 조카 롯을,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그 뒤에 조카 롯 때문에, 마음고생을, 많이 해야만 했습니다.

 

드디어 아브라함 일행이, 가나안 땅에 이르렀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에게, 제일 먼저 임했던 시련은, 기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 대신 그는, 자기 가족들과 함께,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아브라함은, 거짓말도 잘 했습니다.

거짓말이 한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번씩이나, 자기 아내 사라를, 자기의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한번은, 애굽의 바로를, 속였습니다. 

또 한번은, 그랄 왕, 아비멜렉을 속였습니다. 

그리함으로서 아브라함은,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를 욕되게 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팔아서, 자기의 목숨도 보존하고, 재물도 모았던 셈입니다. 

 

그뿐 아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인내하면서, 기다리지를 못했습니다. 

그는 아내 사라가, 제안하는 대로, 하갈을 첩으로 들여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브라함은 자기의 가정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많은 불행을, 

만들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의 행위가, 온전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

따라서 아브라함은, 그의 행위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수가 없었습니다. 

더더구나, 아브라함이, 율법의 행위로, 온전함을 얻었다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율법은, 아브라함보다 수백 년 뒤인, 모세 때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할례는, 어떻습니까? 

할례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조건이 될 수 없는 것, 또한 같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이 할례시에,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무할례시에,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까?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창세기 15장에 나옵니다. 

그러나 할례에 대한 말씀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난 뒤인, 

창세기 17장에 가서야, 비로소 등장하고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난 후, 

적어도 14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을 때는, 

아직 이삭과 이스마엘이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 

 

그 뒤, 창세기 16장에서, 이스마엘이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7장에 가서, 이스마엘이 할례를 받을 때가, 13살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마엘의 나이 13살에, 

그가 어머니 뱃속에, 있던 1년을 합치면, 14년의 차이가 납니다. 

다시 말해서,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14년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할례를 명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할례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표징으로,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의롭다 함을 받기 위한 조건으로, 할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의롭다 함을 받은, 표징으로서, 할례를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결혼반지를, 한번 생각해볼수 있습니다. 왜, 결혼반지를 낍니까? 

결혼을 했다는 표징으로서, 결혼반지를, 손에 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도 않은 사람이, 결혼반지를 손에 낀다고 해서, 그 자체가, 

결혼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또, 결혼을 하고서도, 불편하기 때문에,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결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그 자체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할례든, 무할례든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할례는,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인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도, 밝히고 있는 사실입니다.

 

신명기 10장 16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말라"

 

예레미야 4장 4절 에서도, 같은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행악을 인하여, 나의 분노가, 불 같이 발하여,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살펴본 대로, 

아브라함이라고 해서, 그의 행위가, 온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율법도, 수백 년 뒤에, 모세를 통해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할례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난 뒤에, 행해졌습니다. 

이러한 성경적인 근거를, 통해서 볼 때에, 사람이, 의롭다 함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는 사실입니다.

 

계속해서, 오늘 본문 7절 말씀입니다.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알지어다.” 이는 명령형입니다. 

게다가 원문에는, 문장의 제일 앞에, 이 단어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 단어를, 강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해서,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갈라디아 교인들이, 똑바로 알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이, 바로,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8장 39-44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려면, 

그 역시,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면, 이는, 아브라함의 행사와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겠습니까?

 

율법주의자들은, 자기들이야말로, 

태어나면서부터 유대인이요, 또한 할례도 받았으니까, 

자기들은 전혀 의심할 여지없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들의 실상은, 마귀의 자식일, 뿐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 했던, 가인의 후예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과 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이러한 의도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아! 

성경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지 않느냐? 

너희들이 의롭다 함을 받은 것도, 아브라함처럼, 역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를 꾀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은, 

아브라함의 행사를,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아브라함의 아들이 될 수가 없다. 

아브라함의 아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바로 너희들이다. 

너희는,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닫고, 알아야 하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또한,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도,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비록, 육체적으로는,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8절 말씀입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우선 8절 상반부의 말씀만 생각해봅니다.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8절 상반부의 말씀의 주어는 “성경”입니다. 그리고 동사는 “미리 알고”입니다. 

성경이, 의인화되어, 표현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사의 목적어는,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 입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도, 하나님이 정하신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여기시는 것, 또한,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입니다. 

따라서, 이 원리는, 결코, 변함이 없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정하신, 이 원리를 미리 알고, 어떻게 기록하고 있습니까? 

그 내용이, 8절 하반부에, 있는 말씀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복음은, 말 그대로, good news 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 인류에게 주신, good news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되, 다른 아무 조건을 걸지 않으시고, 

오직 한 가지 곧, 믿음만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구원을 얻는데, 율법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good news가 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인간으로서는, 결코 그 행위가, 온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것은, 우리를 절망으로 몰아넣는  bad news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이, 먼저 아브라함에게, 전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모든 이방이, 너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하였으니.” 

이것은, 창세기 12장 3절, 하반부의 말씀을, 강해한 것입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간이, 하나님에게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구원의 복' 입니다. 

이 땅에서 누리는, 건강의 복, 장수의 복, 물질의 복은, 다 일시적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은, 영원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이처럼 큰 복을, 어떻게, 얻게 되었습니까? 

믿음으로,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족속들도, 믿음으로 살게되면, 

아브라함처럼, 구원의 복을, 받게 될 것임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말씀에 “땅의 모든 족속”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이방인들의 구분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 9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 또한, 영원 불변합니다. 

바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는 성경의 원리를,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적용을 시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받은, 그복을, 갈라디아 교인들이, 어떻게 받을수 있습니까? 

한 가지 길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을 받은, 성도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을, 베푸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고 하였습니다.

믿음을 붙들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도, 딤후 4장 7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끝까지 믿음을 지켰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구원의 복을 받아, 우리 주님과 함께, 영생복락을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