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복음·갈라디아서

자기몸을 주신,예수님(갈라디아서 1장 4-5절 )

Andy1954 2024. 3. 28. 14:09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갈라디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갈라디아는 소아시아 곧 지금의 터키 내륙지방을 의미합니다. 

사도행전 13장과 14장을 보면 갈라디아 지방의 네 도시에 교회가 세워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네 도시의 이름은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입니다.

바울은 그 당시 매우 절박하고도 급박한 상황에서 갈라디아서를 기록했습니다. 

왜냐하면, 한편으로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있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교리적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4장 19절을 보면, 갈라디아 교인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와서, 무리를 충동하니 그들이 돌로 바울을 쳐서 죽은 줄로

알고 시외로 끌어 내치니라.”

바울이 갈라디아의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할 때,  근처 안디옥과 이고니온에 있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무리를 이끌고 와서, 바울이 거반 죽도록 돌로 쳤습니다.  

이처럼, 바울을 핍박한 유대교 지도자들은, 분명 갈라디아 교인들도 핍박했을 것입니다. 

아직은 갈라디아 교인들의 믿음이 깊지 못했기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의 핍박으로 인해

많이 흔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 유대교 지도자들보다도 더 위험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일명 율법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입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눈에 보이게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자들이었다면, 율법주의자들은

광명한 천사의 모습으로 가장하고서 은연중에, 사단의 하수인 노릇을 했던 자들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5장 1절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에 대해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7절에서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자기들이 주장하는 변질된

복음으로 아직은 영적으로 미숙한 갈라디아 교인들을 교리적으로 혼동시키며, 그들을 미혹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 1절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을 미혹하는, 율법주의자들을

주의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율법주의자들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율법주의자들은 누구든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에 더해서, 

할례도 받고, 율법도 지켜야 한다 고 주장했습니다. 

 

순진한 갈라디아의 교인들은, 율법주의자들의 그릇된 가르침에 마음이 쏠려서, 할례를 받고자

했으며 율법도 지키려고 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서 그들을 강하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

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 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주의자들은 한 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도를 무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주의자들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또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갈라디아서를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바로 앞 절인 갈라디아 1장 3절에서,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렇게 문안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가 받는 은혜와 평강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 점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복음의 핵심을 압축해서,

기록해놓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어떤 일을 하셨는가를, 이 한 절 속에서 분명하게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그리스도는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신 분”이십니다. 바울은 이 짧은 말씀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를,

너무나도 명확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4절은 복음의 핵심과 진수를 세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복음의 근원 입니다 (the source of the gospel). 

복음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 신론(神論)이 있습니다.

둘째는 복음의 목적 입니다 (the object of the gospel). 

복음의 목적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 함입니다. 여기에 구원론(救援論)이 있습니다.

셋째는 복음의 본질 입니다 (the nature of the gospel).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기독론(基督論)이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핵심적인 내용이, 우리 성경과 헬라어 원문의 순서가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떻게 다른지에 대해서는, 후반부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우리말 성경에 기록된 차례에 따라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복음의 기원입니다. 

복음의 원천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한 것이 누구의 뜻입니까? 

바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입니다. 

딤전 2장 4절과 벧후 3장 9절 하반부 말씀을 한번 보겠습니다.

먼저 딤전 2장 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번엔, 벧후 3장 9절 하반부 말씀입니다. “..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구원받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셨습니다. 요한 3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것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심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신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라고 말씀

하고 있습니다. 이또한 누구의 뜻에 따라 된것입니까? 이도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따라”

된 것입니다. 

 

누가 22장 42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에 놓으시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예수님이 여기서 말씀하시는 “잔”은 고난의 잔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으로 하여금 고난의 잔을 들게 하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역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어떤 공로가 있어야 구원을 받게 된 것은

아닙니다. 할례를 받고, 날과 달과 절기를 지켜서 구원을 받는 것도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우리에게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 1장 12-1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뜻으로, 된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뜻으로,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에베소서 1장 5절에서도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것은, 하나님의 기쁘신 뜻으로

된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예정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9-30절을 보게 되면, 바울은 구원의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에 보면 구원의 과정이 다섯 단계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미리 아신 것입니다.  둘째,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셋째, 부르신 것입니다. 

넷째, 의롭다 하신 것입니다.  다섯째, 영화롭게 하신 것입니다. 

이같이 구원의 모든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진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의 과정 가운데서 우리 인간이 주어로 쓰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습니다.

모든 동사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미리 아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창세 전에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미리 정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역사 속에서 우리를 부르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쏟으심으로 그 피로 우리를 의롭게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서, 이미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 분도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일 구원이 행위에 따라서 좌우된다면, 매우 불안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과 허물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안에 떨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하나님이, 그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에게 돌리면 됩니다. 

 

바울은 복음의 기원이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복음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복음의 목적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세대를 “악한 세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이 세대가 악한 세대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까? 사도 요한은 요일 5장 19절에서,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대가 악한 것은 이 세대가 악한 자, 곧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이 세대가 마귀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습니까? 인간의 타락 때문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31절 말씀을 보게 되면,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심히 좋았던 세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아름다운 세상을 인류가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

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사단의 꾐에빠져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인류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권리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세상은 악한 자, 곧 마귀가 다스리는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온 세상은 사단의 손아귀에 놓여있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마귀가 했던 말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4장 5-7절의 말씀입니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에서가 팥죽 한 그릇 때문에, 장자의 권리를 야곱에게 넘겨준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때문에,

세상을 다스리는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고 말았습니다. 

그때부터 이 세상은 마귀가 다스리는 “악한 세대”가 되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러한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건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강물에 빠져서 허우적 거리며 떠내려가고 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그때 그 사람이 자기의 머리카락을 쥐고서 잡아당긴다고 물에서 나올 수가 있습니까? 

스스로 아무리 당겨보아야 소용이 없습니다. 밖에서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줘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지금 갈라디아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는 율법주의자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구원을 위해서는,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강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면서 건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예수님이 이세상에 오셔야할 이유가 없는 것이며, 예수님이 십자가에달려

돌아가셔야 할 이유도 없는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무의미해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할례를 받아서도

아니고, 율법을 지켜서도 아닙니다. 우리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때,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복음의 기원과 목적에 이어, 복음의 본질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의 본질은 4절 끝부분에 나와 있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복음의 본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3장10절과 로마서 3장23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죄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6장 23절을 보게 되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가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어떤 인간적인 노력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로마서 3장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간적인 노력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더러운 걸레로 아무리 닦아도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긴다고 건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타락한 인간의 노력과 행위로는 자기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죄는 용서함을 받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를위해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십자가

에서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유일한 길입니다. 

 

마가 10장 45절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또, 벧전 2장 24절 말씀입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이는 이미 이사야 선지자의 입을 통해서, 예언되었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53장 5-6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주셨습니다. 

그 결과 죄의 문제가 비로소 해결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로 죄 씻음을 받을 때 우리는 용서함을 받게 됩니다. 

아울러 우리에게 진정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인 것입니다.

 

정리를 해보면 바울은 4절에서 복음의 핵심을, 세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복음의 기원은,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서 비롯된 것입니다. 

복음의 목적은,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기 위함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바울이 말씀하고자 하는 의도는 무엇입니까? 

구원은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할례나 율법의 행위와는 전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 이 사실만으로, 구원은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을

드리심으로, 우리가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지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따르고, 믿을 때,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제 5절 말씀을 읽어봅니다.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말씀하는 “그에게”가 누구를 가리키고 있습니까? 

우리말 성경대로 읽으면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앞에서 우리말 성경과 헬라어 원문의 순서가 다르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말 성경은 복음의 기원, 복음의 목적, 복음의 본질의 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문에는 우리말 성경과는 그 순서가 반대로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복음의 본질이 나오고, 다음에 복음의 목적이 나오며, 마지막으로 복음의 기원이

나옵니다. 헬라어 원문의 순서를 따라서 직역을 해보면 이렇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의 몸을 드리셨으니, 이는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 함이요,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된 것이니라.” 

이순서를 알아야 그다음 5절의 해석이 바르게 될수가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대로 읽으면, 5절에

나오는 “그에게”바로 앞에 나오는 선행사인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를 가리키는것이 됩니다.

왜, 우리는 하나님에게 세세토록 영광을 돌려야 합니까? 

우리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우리의 구원은 율법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신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에게 모든 영광을 세세토록 돌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 나오는 말씀에 따라서, 

하나님께 세세토록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이렇게 됩니다.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서 말씀드리면 다음과 같이 네 단계가 됩니다.

첫째,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된 것입니다(4절).

둘째,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몸을, 

드리셨습니다(4절).

셋째, 하나님은 바울과 같은 사도들을 세우셔서, 이것을 증거 하셨습니다(1절).

넷째, 이증거를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와 평강을 주십니다(3절).

이모든 것을 생각할때 바울은 감격 가운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고전 10장 31절에서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우리는 먹는 일을 하더라도, 마시는 일을 하더라도, 또 그 이외의 무슨 일을 하더라도,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과 관련해서는 더더욱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아멘”이라는 단어로 끝맺음을 하고 있습니다. 

“아멘”은 히브리어로서 헬라어 성경에서도 그대로 음역을 해서 사용했고 우리말 성경에서도

그대로 음역을 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진실로 그러하다”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구원을 생각할 때, 모든것이 하나님의 은혜

이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아멘”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모든 영광은, 하나님에게만 돌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 안에있는 우리는 이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악한 세상을 완전히 떠나 살 수는 없습니다.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까지,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합니다. 

다만 우리가 세상에서 살아가더라도 이 악한 세대를 본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 17장 15절에서, 사랑하시는 제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그렇습니다,

이 악한 세대에서 완전히 벗어나 살 수는 없으나 물들어 살면 안 될 것입니다. 

배가 물에 떠 있을때는 그 배가 물 안에 있을지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면 문제가 됩니다. 

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합니다. 들어오면 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배는 가라앉아 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거나, 세상을 본받으려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서 12장 2절에서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에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건짐을 받은 우리는, 

이세대를 본받지말고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할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