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의 삶을 살펴 보앗습니다.
첫째로, 세상 풍속을 좇는자요 다음에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따르고 있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허물과 죄로 죽은 자의 삶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이들은 "이세상 풍속을 쫓았다"고 했습니다. 세상 풍속이란 헬라어를 보면 "이세대"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에 이세상 풍습이란 돈, 명예, 음란, 술 취함, 투기, 분쟁, 당 짓는일, 거짓말 등을 일상생활화
하는 사람들입니다
다음에 육체의 욕심을따라 지낸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육체의 생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 육신의 일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육체의 일은 정욕과 탐심이 그 발생 요인으로 이 같은 일은 마귀의 일입니다.
지금 이 세상 사람들이 정욕대로 살며 하나님이 없는 생활의 모습을 의미합니다.
둘째로,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고 했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자란 곧 마귀를 말합니다.
마귀의 존재는 무엇이며 어떻게 존재합니까? 성경에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습니다.
다만 마귀를, 세상을 다스리는 영, 유혹하는 자, 거짓의 아비,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아 다니는자
고발하는 자, 참소하는 자, 등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귀 또한 영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 존재를 우리는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을 보면 뱀의 몸속에 들어가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한 것이 마귀의 첫
등장으로 보입니다. 어째튼 사탄은 뱀 속에 들어가 자신을 나타냈고, 그 이후로 사람들로 하여금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도록 미혹하여 왔습니다.
그래서 2절에서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사야 14장 12절의 말씀을 보면 마귀가 "아침의 아들 계명성"으로 비유되었는데 그가 스스로
"내가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고 하는 자만함으로 하나님을 대적
하다가 결국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떨어져 스올 곧 구덩이 맨 밑에 떨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함께 하늘에서 하나님께 대적한 타락한 천사의
무리들이 악령의 무리가 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는 일에 그들의 활동을 일시적으로 허락하셨다가 최후 심판
때에 영원한 지옥불에 멸망시키실 것을 계획하신 것입니다. 마태 25장 41절 말씀을보면 예수님은
지옥에 대하여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처소"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마귀가 악령과 더불어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 교회 성도들에게 이같은 사탄의 굴레에서 벗어난 일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에는 공중의 권세 잡은자를 따라 불순종의 아들
들처럼 살아 왔던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4절 말씀을 보면 그 때 우리에게 어떤 소망의 빛이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헬라어 성경에는 4절 서두에 "그러나" 라는 단어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그러나'
라는 단어가 빠져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다. 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리
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안에 죄가 가득차서 죽을수 밖에 없는 존재였지만, 그것은 끝이아니라
는 말입니다. 길이 있다는 것입니다. 소망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말입니다.
이같이 말하고 있는 바울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 할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고백은 바울 자신이
경험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전에는 육체를 신뢰하고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 가운데에서도 바리새인이라는 족보를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유대교의 엄격한 규례
를 따라 살아온 것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종교적인 열심을 자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의 삶을 "그러나" 라는 단어 하나로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바울은 육신적으로나 세상적으로 자랑할 것이 너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만난 후부터는 육체를 자랑하지 않고 십자가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사랑을 인하여 허물로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긍휼이란 불쌍히 여기는 측은한 마음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는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크신 사랑은 너무나도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풍성
하신 긍휼에 따라 그 크신 사랑을 입어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에 합당한 성도가 되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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