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는, 주님의 구원 계획과 하늘의 풍성하심을, 말씀하고 있다고 말씀드린바 있습니다.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예정' 은 놀랍고 신비스러우며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사역에 있어서, 구원하실 백성들을 미리 예비하셨느냐, 그렇지 않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신학적으로도 두 학설로 나뉘어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설을 주장하는 신학을 소위 '칼빈주의' 신학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예정설을
인정하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로 구원이 선택된다는 학설을 '알미니안주의' 라고 부릅니다.
우리 장로 교회는 하나님의 예정 위에 세운 신학, 즉 칼빈주의 신학을 교단의 기본적 교리로
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성경적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경륜이 기록
되어 있음을 알수 있습니다. 이와같은 하나님의 구원 섭리를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정'을 가장 먼저 주장한 신학자는 바로 사도 바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칼빈주의 신학은, 사도 바울이 계시로 받아, 성경에 기록한 하나님의 예정을,
존 칼빈이, 다른 사람보다, 먼저 발견하여, 그것을 조직적으로 체계화 시켰을 뿐입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늘 찬송하며
사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찬송을 합니까?
고운 목소리를 가진 사람들만이 찬송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음악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찬송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고운 목소리보다 음악을 전공하는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받고 마음에 평강을얻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받은 사람은, 그 입에서 찬송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은혜 없이는 찬송이 있을 수 없습니다. 감사 없이는 찬송이 있을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찬양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은혜가 넘쳐서 늘 찬양하는 사람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집안 일 하시면서 찬송하십시오. 길을 가면서 찬송하십시오. 차를 마시면서 쉴때도 찬양하십시오.
나를 거룩한 성도로 부르신 주님의 은혜를 찬송하십시오. 이렇게 찬양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신령한 복입니다,
바울은 4-14절까지 이 신령한 복에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창세 전에 우리를 선택하신 성부 하나님의 복과 우리를 구속하신 성자 하나님의 복이
있으며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기업으로 삼으시는 복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3절에서 하나님을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신명기 6장을 보면 구약 시대에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신약 시대에 와서 하나님은 그 크신 사랑으로 그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심으로 인간과
새로운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버지와 아들은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3절 끈부분을 다시 보겠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시되"
여러분 신령한 복이란 무슨 복입니까? 신령한 복은 세상의 복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은 내 안에
있는 욕심과 정욕이 채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령한 복이라는 것은 하늘에 속한 복입니다.
하늘에속한 복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설교인 마태복음 5장 45절
의 말씀과 같이 선인이나 악인 모두에게 내리는 하늘의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 공기, 햇빛 같은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것들을 '신령한 복' 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을 '일반적인 복' 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잘 버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하는 것도 복입니다.
건강한것도 복입니다. 자식이 잘되는것도 복입니다. 그러나 이런것들을 우리는 신령한 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 밖에서도 올 수 있는 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런 것들 때문에 낙담하거나 실망해서는 안됩니다.
일반적인 복이 있는 반면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복이 있습니다.
신령한 복은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복을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을 말합니다.
오직 구원받은 성도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람들에게 내리는 복입니다.
성령께서 내리시는 복입니다. 이 복은 세상 사람들이 받을 수 있는 복이 아닙니다.
이 복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복을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일반적인 복을 받은 것도 감사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도
받았기 때문에 더욱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들은 자부심을 갖고 긍지를 가지고 사시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될때 이땅에서 믿지않는 사람보다 덜먹고 덜입고 산다 할지라도
그들을 부러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예정하신 약속의 자녀들이 받는 이복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 약속의 자녀가 되었기에 받는다는 사실을 생각할때 우리는 감격하지 않을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에베소서를 통해서 주시는 이 특권적이고 영광스러운 신령한 복을 우리 모두 받고
누릴 수 있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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