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행 10:13)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Everyday, people who encounter miracles,,,

**용서·빌레몬서

용서의 동기 (빌레몬서 19-21절)

Andy1954 2023. 2. 3. 09:29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인, 에이브라함 링컨의 얼굴과 관련하여,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링컨의 얼굴을, 가만히 생각해 보시면, 정말 잘생긴 얼굴입니다. 

이마가 시원하게 트여 있습니다. 너무 넓지도, 좁지도 않고, 시원하게 활짝 트여있습니다. 

또 이마 밑에 있는 눈썹은, 남성답게 아주 강하고, 진하게 나 있습니다. 

그 밑에 있는 눈은, 적당한 깊이로 들어가 있습니다. 

그리고 눈 아래에 있는 콧날은, 고속도로처럼 시원하게 뻗어있습니다. 

콧날 밑에 있는 입술, 특별히 아랫입술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리만큼 도톰했습니다. 

뺨에는, 군더더기 살이라고는 전혀 없습니다. 

큼지막한 두 귀는, 보기만 해도, 복이 절로 굴러 들어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구레나룻 수염과 턱수염은, 얼굴 전체의 균형을, 잘 잡아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링컨은 태어날 때부터, 큰 인물이 될 얼굴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링컨이 처음부터, 사람들이 알아줄 만큼, 좋은 얼굴을 가졌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였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이었습니다. 

하루는 시골의 한 어린 여학생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링컨 아저씨, 저는 아저씨를 좋아하는 학생입니다. 

저는 아저씨가, 우리 나라의 훌륭한 지도자가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어른들은, 아저씨가 너무 못생겨서, 아저씨한테 투표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여학생은, 링컨에게 양쪽 뺨과 턱에, 수염을 길러보라고 제안했습니다. 

그러면 뾰족한 턱이 감춰질 것이고, 또 얼굴 전체가, 잘 조화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링컨은 그 말을 듣고서, 그때부터 수염을 길렀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달라진 얼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서, 당당히 미국의 제 16대 대통령에

선출되었습니다. 

링컨의 마음은 따뜻했습니다. 열린 마음이었습니다. 

어린 소녀의 제안도 하찮게 생각지 않고, 잘 받아들여서 자기에게 유익되게 행했던 것입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을 때, 정적 가운데, 그를 몹시도 비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반대당에 소속으로, 당시 법무장관이었던, 에드윈 스탠턴(Edwin Stanton)이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성품이 아주 강직할뿐 아니라, 독설로 아주 유명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대놓고, 링컨을 비난했습니다. 아주 심한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링컨의 얼굴을, 한 번 보십시오. 

그 얼굴이 도대체 대통령이 될 얼굴입니까? 

저는 고릴라를 잡기 위해서는, 아프리카로 가야만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링컨의 고향에 가면, 얼마든지 고릴라를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알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렇게 링컨을, 고릴라 같은 사람이라고, 모욕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링컨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행정부를 조직하면서, 놀랍게도 자기를 그토록 비난했던,

스탠턴을 국방장관에 임명했습니다. 

과거에 자기를 비난했던, 그의 모든 잘못을, 다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자질을 높이 평가해서, 국방장관에 임명했던 것입니다.

스탠턴은, 링컨을 잘 도와서, 기대에 어긋나지 않토록,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다. 

뒤에, 링컨이 암살을 당했을때, 제일 슬퍼했던 사람이 바로, 스탠턴이었습니다. 

그는 링컨의 장례식에서,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인류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가 여기에 누워 있습니다. 

이제 그의 이름은, 인류역사에, 영원히 기념되어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용서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 마련입니다. 

용서에는, 큰 감화력이 있습니다. 용서받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가 있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용서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로, 마음 속에 아직도 용서하지 못한, 오네시모가 있다면, 

깨끗이 용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왜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야만 하는지, 용서의 동기를 몇 가지로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야 하는 동기를 깨닫고,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빌레몬 자신이,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자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먼저 19절 말씀입니다.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바울은 18절에서,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을, 바울이 변상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19절에서, 다시 반복해서, 자기가 대신 갚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신 갚겠다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하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세가지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나”라고 하면서, 일인칭대명사를 사용했습니다.

둘째로, “바울이”라고 하면서, 자기의 이름을 밝혔습니다.

셋째로, “친필로 쓰노니”라고 하면서, 자신이 직접 썼다는 사실을 밝혔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바울은 오네시모를 위해서, 자기가 빌레몬의 채무자 입장에 선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은, 빌레몬에게 해야할 도리를 다했습니다. 

그리고 난 뒤에 바울은, 빌레몬에게, 한 가지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너는 이 외에 네 자신으로 내게 빚진 것을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빌레몬이 바울에게 빚진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빌레몬이 바울에게 무엇을 빚졌습니까? 

빌레몬은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지옥의 형벌을 면하고, 대신 영광스러운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얻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빌레몬에게 있어서, 사도 바울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존재입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과, 빌레몬이 바울에게 진 빚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네시모가 빌레몬에게 진 빚은, 물질적인 것이며,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빌레몬은, 바울에게 생명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영원한 빚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그것을 갚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말해 보았자, 갚을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갚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이겠습니까? 

“네가 내게 진, 영원한 생명의 빚을, 내가 말하지 않는다면, 

너도 너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느냐?” 

그렇습니다. 우리가 갚으려 해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진 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보다 쉽게,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많은 빚을 탕감 받았으니까, 형제의 적은 빚을 탕감해 주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아침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가다 보니까, 식탁 위에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린 아들이 쓴 메모가 그 위에 적혀 있었습니다.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청구서

1. 이번 주에 아빠 구두 닦아드린 값-5,000원

2. 엄마심부름 세 번한 값-3,000원

3. 쓰레기 두 번 내다버린 값-2,000원  합계-10,000원.”

어머니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 밑에 답장으로 몇 자 적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청구한대로, 만원 짜리 한 장을 꺼내어, 메모지 옆에 두었습니다. 

잠시 뒤에 아들이 일어났습니다. 

눈을 비비면서 그는 자기가 쓴 청구에 대해 어머니가 어떠한 반응을 보였을지,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식당 앞으로 왔습니다. 

보니까 자기가 청구한대로 만원 짜리 지폐가 놓여 있었습니다. 그는 기뻤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어머니가 답신한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읽어나가는 순간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1. 너를 열 달 동안, 내 뱃속에 넣고서 데리고 다닌 값-무료

2. 너를 그 동안 먹이고, 입히고, 키우는데 들어간 값-무료

3. 네가 아플 때, 밤새워 기도하며, 눈물 흘리며, 너를 간호한 값-무료

4. 이외에도 너에 대한, 나의 진정한 사랑까지, 전부 무료.”

 

아들은 어린 나이에도, 어머니의 뜻을 쉽게 헤아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가 쓴, 청구서 밑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미 다 지불되었음. 

그래서 만원은, 되돌려드립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갚으려 해도, 갚을 수 없는, 엄청난 빚을 지고 살아왔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부모, 가족, 이웃에 대한 사랑의 빚을 

엄청 지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실을 깨달을 때, 오네시모가 우리에게 진, 적은 빚은, 마땅히 용서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할 때, 바울 자신이, 그것으로 인해서

큰 기쁨과 평안함을 누리게 되리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할 때, 주변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우리와 더불어 기뻐합니다. 

또 그들이 마음에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고, 복수하는 심정으로, 헐뜯고, 비난하고,

욕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보면서 마음 아파할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에, 고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다른 성도들의 마음에, 기쁨을 주고, 평안함을 주어야지, 

마음에 고통을 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0절 말씀입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를 인하여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지금 빌레몬은, 사도 바울에게, 영원한 생명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바울이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물질적으로, 갚는 것을 원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빌레몬으로 인하여, 기쁨을 얻기를 바라고, 그리스도 안에서, 빌레몬으로 인해 평안함을,

원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빌레몬이, 그것을 들어줄 수 있습니까? 

빌레몬이 그의 종,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1만 달란트의 빚을 진 종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1달란트는 6천데나리온이었습니다. 

1데나리온은, 한 사람이 하루종일 일한 품삯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1데나리온은, 약 십만원정도에 해당되는 돈일 것입니다. 

10,000달란트×6,000데나리온×100,000원=6조원 입니다. 엄청난 돈입니다. 

그 당시에는, 더 값어치가 있었을 것입니다. 종에게는 도무지 값을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는 종의 모습을 보면서, 왕은 불쌍히 여기고, 

그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 종은 엄청난 빚을, 탕감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밖에서, 동료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의 동료는, 그에게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진 사람이었습니다. 

일백 데나리온은 1,000만원입니다. 6조에 비하면 1,000만원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가 엄청난 빚을 탕감 받았으면, 자기 동료의 적은 빚 정도는 탕감해 주고, 용서해 주는 것이

마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종은, 어떻게 했습니까? 

자기 동료의 목을 잡고, 감옥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때 누가 그것을 보고서, 왕에게 가서, 그 사실을 그대로 고해 바쳤습니까? 

그의 동료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강퍅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심히 아팠습니다. 

심히 민망해서, 그 사실을 왕에게 다 고해 바쳤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그 말을 듣고 노하여, 일만 달란트의 빚을 갚도록, 잡아서 감옥에 넣어 버렸습니다. 

마지막 36절에,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지 못하고, 미워하면서, 복수하고자 하는 심정을 가질 때, 

하나님은 그 소리를 들으시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을, 징계하실 것입니다. 

 

영국의 명장 가운데 한 사람인, 웰링턴 장군의 이야기입니다. 

그의 부대에,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병사가 한 사람 있었습니다. 

그에게 벌도 주고, 훈계도 했지만, 도무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웰링턴은, 그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병사를, 총살시키기로 했습니다. 

전 장병이 모였습니다. 웰링턴 장군은, 무거운 마음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은 몹시도 아픕니다. 

우리는 저 병사를 선도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써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괴롭지만 어쩔 수 없이, 저 병사를 총살에 처하도록 결정했습니다.”

그때 그 병사를 잘 아는 병사 한 사람이, 조용히 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웰링턴 장군에게, 한 마디 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장군의 허락을 받은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군님, 장군님이 저 병사를 위해서 모든 방법을 써보셨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에는 아직도, 한 가지, 써보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 병사를 용서해 주는 것입니다.” 과연 웰링턴은 훌륭한 장군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듣더니,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벌벌 떨면서, 무릎을 꿇고 있는 병사에게, 웰링턴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다. 네 친구의 말이 옳구나, 우리가 너에게 용서해 보지 않았구나. 

네 친구의 말에 따라서, 이번에는 너를 전적으로 무조건 용서하기로 한다.”

그리고 총살형에서 사면시켜주었습니다.  

그 뒤로 그는 장군에 대해서, 늘 감사한 마음으로 충성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병들의 사기가 충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무적의 군대였던 나폴레옹 군대를, 워털루 전쟁에서, 크게 무찌르고

승리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이, 빌레몬이 기꺼이 순종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으면, 우리는 즐겨 용서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나는 네가, 순종함을 확신하므로.”

여기에서 말하는 순종은, 누구에 대한 순종입니까? 바울에 대한 순종일까요? 아닙니다. 

8∼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많은 담력을 가지고,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 있으나,

사랑을 인하여, 도리어 간구하노니.”

바울은 빌레몬에게 결코 명령한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사랑으로 간구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의 순종의 대상은, 바울이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론 빌레몬은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를,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또, 마태 6장 14∼1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수훈도, 기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 하시리라.”

또, 빌레몬은, 마태복음 18장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내게 잘못을 범하면, 몇 번까지 용서하리이까? 

일곱 번까지, 용서하리이까?” 예수님이 대답하셨습니다.

“일곱번 뿐만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할지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 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빌레몬은, 그 내용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너의 형제의 잘못을, 용서하라”는 것은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여러분, 빌레몬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이미 사도 바울은 5∼7절에서, 빌레몬을, 여섯 가지로 칭찬했습니다. 

1)빌레몬에게는, 주 예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2)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3)믿음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4)그는 선을 실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5)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었습니다. 

6)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하나님을 잘 섬기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었습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빌레몬이,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함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뿐 아니라 바울은, 빌레몬에게 “네가 나의 말보다 더 행할 줄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기대하는 것보다, 빌레몬이 훨씬 더 많이, 더 훌륭하게 행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때부터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편지를 읽고, 오네시모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말대로, 오네시모를 형제로서, 따뜻하게 맞아주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빌레몬은 오네시모를, 종의 몸에서 자유케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오네시모를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에게 되돌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감옥에 있는 사도 바울의 뒷바라지를 잘 할 수 있도록, 돈도 넉넉히 챙겨주었습니다. 

오네시모는 자유의 몸으로, 로마로 돌아 왔습니다. 자발적으로, 감옥에 있는 바울의 뒷바라지를,

끝까지 충성스럽게 잘 하면서, 그의 복음사역을 도왔습니다. 

뒤에 바울은,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아 순교했습니다. 

바울의 뒤를 이어서, 오네시모도 역시, 네로 황제의 핍박때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골로새에 있는 빌레몬도, 네로 황제의 핍박때 순교했습니다. 

세 사람 모두, 주를 위해서 순교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사도 바울의 말대로, 그 세 사람은 영원토록 하늘나라에서,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형제로서, 함께 거하는 사이가 된 것입니다. 

바울의 말대로, 빌레몬은 예수 그리스도의 명에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기대보다도 더 많은 것을 행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왜,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해야 합니까? 

물론 우리가 우리의 오네시모를 용서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잊어버리려고 해도, 자꾸 생각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누가 너희의 오른편 뺨을 치느냐?”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의 왼편 뺨을 돌려대라.”

“누가 너희의 속옷을 달라고 하느냐?” 겉옷까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너희로 하여금 억지로 오리를 가고자 하느냐?” 십리까지 동행해 주라고 하셨습니다. 

억울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손해보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져주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살면, 예수님이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을 책임지는 것보다, 만왕의 왕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시면, 그보다 더 복된 길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 주님께 순종하는, 용서의 삶을 통하여, 천국 백성의 은혜와 복을 누리실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원합니다. 아-멘.